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84)
얼떨떨한 기분이다.
대상작에 떡 하니 쓰여있는 내 작품.
정새롬 실장님이 보여준 공모전 결과에는 구체적인 일정이 적혀있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때 시간 맞춰 TVM 방송국으로 오라는 내용.
나는 1등이고 효주가 3등이라니.
경사도 이런 경사가 또 있을까.
“작가님, 우리 제작비 이야기하고 있었죠?”
“네? 아, 그렇죠.”
“공모전 결과도 좋고, 기분도 좋으니까….”
“음?”
“제작비 천억 원짜리 작품이 뭔지 들어나 볼게요.”
“….”
이렇게 훅 들어오니까 당황스럽네.
양손을 모으고 경청하는 정 실장님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아닙니다.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하시죠.”
“네….?”
“아직 완성한 게 아니라서요.”
“그래요?”
“넵. 조만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내, 실장실을 벗어나 내 방으로 향하는 길.
“송권수 감독님이 영화 시나리오를 찾고 계신다니까….”
일단 영화 규모에 대해 송 감독님이랑 먼저 상의를 해봐야겠다.
그 다음에 천 억짜리 영화 찍고 싶다고 말하는 게 맞지.
톡, 토톡─
일단 톡부터 보내놓고.
[송 감독님 잘 지내시죠?]
[영화 시나리오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뵐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미팅 잡히기 전까지 대본을 완성해야 할 것 같다.
아직 디테일한 묘사나 연출은 어려울 것 같고.
적어도 대사하고 전개, 스토리는 다 써놔야지.
드르륵─
작업실에 들었을 때 효주는 누군가와 전화 중이었다.
“응응, 희정아 다시 전화할게!”
“…. 그새 절친됐냐.”
“오빠 오셨어요!?”
TVM 단막극 극본 공모전 3등.
그것도 블라인드였으니까 이미 실력을 입증한 셈이지.
“축하해.”
“감사해요. 헤헤.”
내가 대상 탔다고 말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까 나만 아니었으면.
“…. 아쉽게 3등이네? 2등만 돼도 제작했을 텐데.”
“에이, 어쩔 수 없죠. 3등도 너무 좋은걸요?”
괜히 미안하네.
어차피 나는 제작까지 할 마음도 없었으니까.
“TVM 방송국은 같이 가자. 상 받으러 갈 때.”
“네? 아…. 이민주 작가님 때문에 같이 가주시는 거예요!?”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도 상 타러 가야지.
안 그래도 다른 작가 지망생의 소중한 기회를 뺏는 느낌이었는데.
그날 가서 제작을 포기하면 3등에게 기회가 돌아가는지 알아봐야겠다.
‘이왕이면 됐으면 좋겠네.’
이제 와서 4부작 단막극이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쁜 남자의 사랑법」은 내가 쓴 첫 드라마니까.
언젠가 리메이크해서 16부작으로 제작하고 싶어.
지금은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수상은 이민주 작가가 하려나?”
“네. 공지에 쓰여 있었어요!”
“…. 그래?”
띠링─
그때, MBS 국장님께 메시지가 왔다.
“…. 김영식 국장님?”
뭐지.
* * *
같은 날,
송권수 감독은 김진우 작가와 전화를 하며 KBC 방송국을 방문했다.
사실, SBC에 제대로 찍힌 송 감독을 써주는 곳은 KBC밖에 없었다.
“아, 그래요. 연말 시상식에는 MBS로 가시는군요.”
-네…. 김영식 국장님이 너무 간절하시기도 했고.
“이해합니다. 더 최근 작품이 김나연이었으니까.”
-KBC 주 국장님께는 이미 연락드렸습니다.
“그런가요?”
-저기, 그건 그렇고….
송 감독은 진우가 꺼내는 본론에 귀를 기울였다.
-영화 시나리오 찾고 계신다고 들어서요.
“네? 그렇긴 한데….”
-제가 영화 대본을 써봤습니다. 블록버스터로.
“!!!”
안 그래도 영화 시나리오를 알아보다가 어쩔 수 없이 드라마도 알아보고 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KBC는 괜히 들렀군.’
그의 작품을 먼저 보면 좋았을걸.
여타 드라마 작가의 제안이었다면 거절했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진우 작가가 하는 말이 아닌가.
“하하. 김 작가님 작품이면 수익배당금도 고려하겠습니다!”
-에이, 그건 제작사나 투자사랑 할 말이죠.
“저는 그만큼 환영이라는 말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시죠.
“네. 그럼 조만간 뵙죠.”
-그럼.
뚝.
송권수는 진우의 모든 대본을 읽었고, 단 한 번도 실망했던 적이 없었다.
그의 작품이 ‘영화 같다’라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었으니.
“흠, 기대되는구먼.”
막말로, 로봇이랑 공룡이 같이 나오는 막장 영화만 아니면 잘 살릴 자신이 있었다.
똑, 똑─
어느새 국장실 문 앞에 도착한 송 감독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간 자리에는 주태홍 국장 외에도 한 명의 감독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국진현 감독….?’
“송 감독, 오랜만이구먼.”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나이 지긋한 국 감독과 국장이 한창 대화 중이었다.
“이쪽은 국진현 감독.”
“네. 알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래요.”
16부작부터 100부작 대하드라마까지 가리지 않고 연출을 맡는 사극 전문 연출가.
「고려 왕건」, 「해신 이순신」, 「김유신의 꿈」 까지.
그가 연출을 맡은 작품은 죄다 흥행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연기대상은 「조선 책략사」가 거의 확정이다시피 했다.
최근에 종영한 16부작 퓨전 사극으로 시청률 30%를 뚫었기에.
아마 해당 작품만 아니었으면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는 충분히 대상까지 노렸을 터였다.
“국장님,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 보죠.”
“그래요. 이번 작품 엎어졌다고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괜찮습니다. 하루 이틀인가요.”
국진현 감독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벗어났다.
곧이어, 송 감독은 주 국장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작품 이야기로 시작에서 자연스럽게 연말 시상식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김진우 작가님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날짜가 겹쳤으니까. MBS로 가시겠지.”
“네. 어쩔 수 없죠.”
“대신 차기작은 KBC랑 했으면 좋겠구만. 이왕이면 대하드라마로.”
“하하. 사극이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장르인가요.”
웬만한 작가들은 사극에 진입조차 시도하지 못한다.
그 어마어마한 자료조사를 감당할 수 있는 인력이 마련되지 않아서.
더군다나 보조 작가라고는 고작 한 명뿐인 김진우 작가가 아닌가.
“그래도 김진우 작가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허허.”
“그야….”
항상 다른 장르를 써오던 작가였으니.
* * *
크리스마스이브, TVM 공모전 시상식에 가는 길.
길 한복판에 여기저기 성탄절 트리가 즐비했다.
“효주야.”
“네. 오빠.”
“내가 이브날 너랑 시간을 보내다니.”
“…. 오빠, 내년에는 우리 각자 연애해요.”
“글쎄.”
나는 가능.
너는 불가능.
“효주야, 이걸 어쩌지? 나는 내일 정 실장님이랑 만나기로 해서.”
“아하, 그건 걱정 마세요. 변 팀장님이 그러시던데.”
“응?”
“내일 급한 일정이 잡히셨대요.”
“뭔 소리야, 그럴리가 없….”
띠링─
그때, 정 실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작가님, 죄송해서 어떡하죠?]
차였다.
“고맙다. 미리 알고 차이니까 덜 아프네.”
“저도 차였으니까 괜찮아요.”
“내일 쏘주 한잔하자.”
“콜!”
시답잖은 소리를 하던 중 효주가 나에게 질문을 건넸다.
“…. 결국 연말 시상식은 MBS로 가는 거예요?”
“응. 그쪽으로 가는 게 맞지.”
올해 마지막 날, KBC와 MBS에서 동시에 연기대상 시상식을 열었으니.
“어젯밤에도 김영식 국장님이 울면서 전화하시더라.”
“음….”
“안 오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신대.”
“엥?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
“1층에 사셔.”
“….”
KBC 측은 강준이랑 김현지가 둘 다 템페스트 식구라서 이해할 테고.
해외영업 3팀 김나연이 더 최근 작품이기도 했으니까.
“대신 다음 드라마는 KBC에서 들어갈까 해. 확실하진 않지만.”
“…. 김영식 국장님이 아시면 거품 무실 듯.”
“비밀이야.”
드라마도 이제 새로 쓸 때가 됐지.
시상식장에 배우들 많을 테니 발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끼이익─
TVM 방송국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는 길에 효주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아, 내가 말 안 했는데….”
“네?”
“내가 대상이야. 나쁜 남자의 사랑법.”
“네?”
“그거 내가 쓴 거라고.”
“???”
지금까지 이진호랑 여민서 외에는 아무도 안 보여준 나만의 작품.
일단 습작이니까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까지 해놨으니.
“지, 진짜 오빠가 1등이에요?”
“응.”
“와아….”
효주는 새삼스레 존경의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터벅, 터벅─
둘이서 TVM 방송국에 들어가려는 찰나.
순간, 한 여인이 나를 한눈에 알아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
“???”
“김진우 작가님 완전 팬이에요!!!”
“누구….”
“아, 저는 밍쁨이라고 합니다!”
“…. 밍쁨?”
“벼, 별건 아니지만 TVM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탔어요!”
아, 필명이었구나.
“작가님은 여기 어쩐 일로….!”
“아, 저는….”
“알겠다! 심사위원!!!”
“아뇨….”
너무 하이텐션이라 나랑 잘 안 맞아.
적당히 인사를 하고서 먼저 들어갔는데.
효주는 또 어느새 친해져서 밍쁨…. 이랑 친구가 된 듯 보였다.
‘둘이 잘 어울리네.’
* * *
JTBS 드라마 「오류동 팔남매」 촬영 현장.
크리스마스 이브날, 뜬금없이 밥차 선물이 도착했다.
예전에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진짜로 강준이 밥차를 선물할 줄이야.
“희정아! 잘 먹을게.”
“네? 아, 넵! 헤헤.”
존경하는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강준 배우랑은 언제 친해진 거야?”
“아…. 그게.”
그때, 옆에서 다른 배우가 대신 대답했다.
“희정이, 너 강준 학원 친구 맞지? KBC에서 파일럿 프로그램 했었잖아.”
“그, 그걸 기억하세요?”
“내가 기억력이 좋아. 강준 이름 듣자마자 딱 알아봤다니까?”
“아하하. 맞아요.”
“크리스마스 이브날 밥차 선물도 받고, 희정이는 좋겠네.”
그동안 존재감 없던 희정이 오늘은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그만큼, 강준의 인기가 높다는 증거였다.
“별거 아닌데….”
“별거 아니긴! 지금 임재준이랑 강준 일본에서 난리 난 거 몰라?”
“맞아, 맞아. 임사마랑 강사마 두 명이 지금 투톱이잖아.”
배우들은 희정을 앞에 두고 진우의 작품을 칭찬하기 바빴다.
“김진우 작가님은 어떻게 그런 대본을 그렇게 빨리 쓰실까?”
“그러게나 말야.”
“언제 나 한번 안 써주시나? 잘할 자신 있는데.”
“아무나 안 쓰신다고 하더라.”
“맞아, 데뷔작부터 그랬다던데.”
“하여튼 대단해.”
“맞아. 김나연은 대상각이잖아.”
희정은 그가 자신의 오빠라는 사실을 말하기 더 어려워졌다.
“…. 현실에서는 어떨지 모르잖아요.”
“엄청 젠틀하시다고 하던데? 같이 작업한 배우들이 다 좋아한다고.”
“그, 그래요?”
“당연하지. 그분 직접 만나보는 게 소원이다.”
“….”
별 생각 없던 희정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김진우도 그렇고, 강준도 그렇고.
‘괜히 뿌듯하네.’
희정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자자! 다시 촬영 가겠습니다!”
그때, 성기훈 감독의 말과 함께 다시 지옥 스케줄이 시작되었다.
캐스팅 단계에서는 천사였는데, 촬영장에서는 악마가 따로 없었다.
‘후우….’
희정은 다음 장면 촬영을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 *
TVM 방송국, 공모전 시상식 현장.
이민주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어, 어떻게 니가….”
“작가님, 건강하셨어요?”
밝게 인사하는 김진우를 보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후야, 제 작품을 그렇게 좋게 봐주실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너, 너 이씨….”
“요즘 우리 사이 나쁘다고 소문났던데. 저는 그런 오해가 있는 줄 얼마 전에 알았지 뭐예요?”
“….”
그제서야, 이민주는 주변을 둘러보고 화를 삼켰다.
TVM 관계자들은 물론, 기자들까지 있는 자리였으니.
“…. 진우야, 니가 단막극 공모전을 낼 줄은 몰랐네? 이제 그런 수준은 지나지 않았나?”
“그냥 알고 싶었어요. 제 이름을 버리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지.”
“….”
하필 김진우의 작품을 자신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밀어줬으니.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제 작품으로 이민주 선생님께 인정받으니까 더 기분이 좋네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잘 배워서 잘 써먹고 있습니다. 선.생.님.”
주변에서는 아주 친한 사이의 사제 지간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두 분 보기 좋은데요?”
“같이 사진 한번 찍어도 될까요?”
“김진우 작가님, 차기작은 단막극인가요?”
출입이 허락된 기자들조차 마구 질문을 쏟아낼 만큼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다.
《TVM 블라인드 극본 공모전 대상작 수상자는 김진우!》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 기사를 뿌리고 싶었으니.
아닌 게 아니라, 이미 몇몇 기자들은 카메라도 놓은 채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어쩔 수 있나.
이민주는 욱하는 마음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김진우에게 대상을 시상했다.
“선생님, 웃으셔야죠.”
“…. 이런 씨.”
“웃으면 복이 온다잖아요.”
찰칵─
결국, 이민주는 어색한 웃음으로 사진 촬영을 마치자마자 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개자식이….!’
보조 작가로 있을 때도 일부러 대본이나 잡일만 시켰는데.
업계 관계자를 상대하는 일은 전부 오현식에게만 맡겼는데.
언제 이렇게 머리가 커서 자신을 농락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템페스트 엔터….’
그 정도 수준의 제작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무리 대본이 좋았어도 첫 작품을 성공시키지 못했겠지.
“두고 보자….!”
처음부터 자신을 가지고 놀려고 공모전에 참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작품에 꽂혀서 TVM 직원들 앞에서 별말을 다 했으니.
이민주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갔다.
아마 기자들도 둘의 사이를 어느 정도 눈치챘겠지만.
미리 섭외된 이들이라 악의적인 기사를 쓸 수는 없을 터였다.
한편, 한기성 감독은 진우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대상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아무래도 드라마 제작은 어려우시겠군요.”
“그게…. 네.”
솔직히, 이제 단막극 제작은 내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된다.
그걸 알고 선뜻 먼저 말을 꺼내어주시니 감사할 따름.
“감독님, 이 작품은 나중에 16부작으로 리메이크해서 TVM에서 제작하고 싶습니다. 물론 괜찮으시다면.”
“아하하. 그런 거라면 저희는 환영이죠. 김진우 작가님이니까.”
그동안 JTBS 외에는 케이블 방송국과 인연이 닿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인맥을 쌓아서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저기, 그럼 이번 단막극 제작은 어떻게 되는 건지….”
“글쎄요. 작년에도 블라인드 공모전이라 딱 비슷한 케이스였죠.”
“…. 그렇습니까?”
“네. 그때는 3등 작품이 제작되었는데. 괜찮으시다면….”
말을 흐리면서 효주를 쳐다보는 한기성 감독.
그 순간, 효주는 동그란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황효주…. 단막극 데뷔각인가?’
이날, 효주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나에게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올렸다.
솔직히, 나에게 고마울 일이 전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 * *
이틀 뒤.
효주와 밤새도록 깡소주를 들이켜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드르륵─
작업실에 들었을 때 의외로 효주가 먼저 출근해서 인사를 건넸다.
“오빠, 노트북 가방 안 들고 오셨네요?”
“휴게실에 놓고 왔어.”
“아하, 어쩐지.”
“어제는 잘 들어갔냐?”
“넵! 저 오늘부터 엄청 열심히 살기로 다짐했어요. 말리지 마세요.”
“…. 안 말릴게.”
결연한 표정의 황효주 씨.
그 양쪽 눈두덩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효주야, 너 눈이 아직도 부었다.”
“어젯밤에도 술김에 엄마랑 통화하면서 울었어요.”
“…. 화이팅.”
열심히 다짐하는 효주를 뒤로하고 4층 휴게실로 향했다.
‘오늘은 무조건 끝낸다.’
나도 효주처럼, 아니 그보다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니까.
호기롭게 휴게실 문을 열고 내 짐을 찾았는데.
‘여기서 뭐 하시는….?’
정새롬 실장님은 진중한 표정으로 어떤 대본을 보고 있었다
특히, 대본을 한 장씩 넘기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흐음, 대체 이 대본은 뭐지.”
“….”
이미 방에 들었지만, 내가 온 줄 모르고 있었으니.
똑, 똑─
일부러 노크를 해서 인기척을 내었다.
“아! 작가님?”
“실장님, 왜 여기서….”
남의 물건을 보고 그러세요.
아니, 제작사 직원이니까 완전히 남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코드네임 030 : 마법소녀 Part. 1」
실장님의 손에 들린 대본의 첫 표지에 작품명이 쓰여 있었다.
“그 대본, 어떤가요….?”
“음….”
혹시 모르잖아.
실장님이 특이 취향일지도.
“서른 살 먹은 마법소녀가 나오네요.”
“그, 그래요?”
“공룡도 나오고….”
“음….”
“로봇도 나와요.”
“그래서요.”
좋다는 뜻인가….?
“특이하네요.”
“…. 참신한 거죠.”
“역시, 이거였구나.”
“네?”
“제작비 천억 원짜리 작품.”
“….”
어케 알았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