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9)
JTBS 드라마국.
정새롬 실장은 직원을 대동한 채 방문했는데.
드라마제작국장, 방형태는 대본을 덮으며 입을 열었다.
“대체 이런 작가를 어디서 발굴한 거야?”
“우연히. 라고 밖에는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정 실장은 실력만 있는 게 아니라 운도 따르네.”
“그러게요.”
새롬의 대본 보는 안목은 탁월했다.
“이걸 1부만 보고 바로 알아봤다고?”
“네. 뭐….”
수없이 많은 대본을 봐왔던 방 국장도 1부만 봐서는 긴가민가 했지만.
현재까지 나온 3부를 전부 보고 나서는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안 그래도 요즘 작가가 부족했데. 잘 됐어.”
“사실 전속계약을 제안했는데 거절하더라고요.”
“아…. 그건 아쉽게 됐구만.”
“이번 작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면 되죠.”
“크흠, 제작비를 대체 얼마나 편성 받으려고 벌써부터 밑밥을….”
“국장님.”
새롬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성기훈 감독님이요. 저번 주에 작품 종영하셨죠?”
“아…. 성 감독? 조금 쉬고 싶다고 하던데….”
“붙여주기 싫은 건 아니고요?”
“에이,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좋은 작품에는 실력 있는 감독이 붙어야죠.”
이내, 방 국장은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양반이 원래 신인작가 작품은 안 하는 거 알잖아.”
“설득은 제가 할게요. 허락만 해주세요.”
“…. 그래. 성 감독이 오케이 하면, 나야 뭐.”
사실, 방형태 국장은 JTBS 드라마국의 에이스를 신인작가에게 붙여주기가 조금 껄끄러웠다.
당장 좋은 작품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혹시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갑자기 대박 작품이 떨어질 수도 있는 정글 같은 드라마 시장이니까.
‘성 감독이 신인작가랑? 그 양반이 미쳤다고 도박을 하겠어?’
작품이 좋은 건 인정하지만 신인작가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요즘 시청자들은 작가 이름부터 보고 드라마를 볼지 결정하니까.
스타작가들이 줄을 서는 성 감독이 굳이 커리어 깎아 먹는 짓을 할 리가 없지.
“저기, 그러지 말고. 차라리 젊은 피 두 명이 힘을 합쳐보면 어떨까? 이번 기회에 유천이에게 입봉할 기회를….”
“국장님, 방금 성 감독님이 허락하셨다네요?”
“뭐, 뭐라고!?”
“마침, 함께 온 직원이 성 감독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거 있죠?”
“….”
“참,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제가 운이 좋긴 좋은가 봐요.”
새롬은 능청스럽게 말을 하면서도 미소를 유지했다.
‘당했다….!’
처음부터 그녀가 깔아놓은 판에서 놀아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돼버리니까 화를 내야 하나 애매한 입장이었다.
“대신, 6화까지 시청률 보고 제작비 편성 받을게요.”
“그, 그래도 되나?”
“그럼요. 저는 성적도 안 되면서 제작비 축내는 제작사들을 혐오하는걸요.”
“아… 하하. 그, 그렇게 하지. 그럼.”
하나를 빼앗으면 하나를 양보한다.
성적 보고 제작비를 편성하는 게 방송국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은 혜택인가.
이렇게 된 마당에 감독을 누구를 쓰라 말라 간섭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국장님, 그럼 오늘은 이만 일어나 볼까요?”
“그래. 그러게나.”
더이상 뜯어먹을 구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새롬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떠난 국장실 테이블 위에는 오직 3부짜리 대본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저 친구는 인간미가 너무 없어.”
사실, 그녀가 가져온 작품은 유치한 제목이지만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제작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 한국에서 방송국의 입김은 엔터나 제작사의 그것을 아득히 능가하니까.
“다른 건 몰라도, 지성호 그 친구는 무조건 스타 되겠어.”
심지어, 드라마가 망해도 캐릭터는 반드시 남을 터였다.
템페스트 엔터에서 무리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 * *
“아아, 그래서 여주인공이 그렇게 걱정했구나. 그럼 2부 34번 씬에서는요? 거기서 우울한 듯한 표정으로-, 라고 쓰셨잖아요. 그건 왜 그런 거예요?”
나도 몰라. 그만 좀 물어봐.
‘질문 살인마….’
나의 첫사랑 세미와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 소중하지만.
이건 진짜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고 십칠.
“세미 씨. 지금 두 시간째 질문 중이에요. 저 목이 좀 아픈데….”
“아, 잠시만요! 제가 목캔디 사 올게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타다다닥─
그녀는 자신이 인기 걸그룹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회사 근처라지만, 모자도 안 쓰고 편의점에 가려는 모습.
“원래 자주 가서 괜찮은가.”
한 부에 대략 100개의 씬이 있는데, 그중 여주가 등장하는 장면이 최소 40개.
대략 한 장면에 질문을 세 번씩은 던졌으니까, 총 2백 번 이상의 질문들.
“목이 아픈 게 정상이네.”
아니, 애초에 이 대본은 내가 본 드라마를 글로 옮긴 것에 불과했다.
심지어, 알 수 없는 빛에 닿으면 표현력과 묘사 능력이 월등해지니까.
“나도 시청자라고!”
솔직히 세미를 만나면 능력에 대한 힌트를 조금은 얻을 수 있을까 기대했다.
나도 그동안 이민주 작가 작업실에서 글만 썼지.
실제로 연예인을 마주친 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세미를 본 게 여러 가지 독립변수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드르르륵─
그때, 누군가 빈 휴게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미령이라고 합니다.”
“아, 네.”
퍼플걸스의 리더, 미령.
그룹 내에서 재은과 함께 연기로 성공한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어쩐 일로….”
“방금 뵈었던 다른 작가분들께 들었어요.”
“네? 무슨….?”
“이민주 작가님 작업실에서 난동을 부리고 나오셨다고요.”
“….”
말투는 정중했지만 대화 내용은 굉장히 불편했다.
“…. 그래서요?”
“정말 죄송한데. 우리 막내를 흔들지 말아 주세요.”
“무슨 뜻이죠?”
“어제 세미는 하루종일 작가님 대본만 읽었어요.”
“그런가요.”
기특하고만.
“그래서 더 불안해요. 어차피 제작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야….”
끝내 말을 잇지 못하는 미령을 대신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이민주 작가한테 찍혔으니까?”
“…. 네.”
“미령 씨, 드라마를 제작하지 못할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에요.”
“네?”
“대부분은 제작하고 싶을 만큼 좋은 작품이 아니니까.”
“그, 그것도 있겠지만….”
나는 말을 늘어뜨리는 미령에게 담담한 어조로 질문했다.
“혹시 제 대본 읽어보셨나요?”
“아, 아니요.”
“그럼 미령 씨는 제 작품이 어떤지 보지도 않고 그런 판단을 내린 거네요?”
“….”
대충 어떤 의도로 왔는지는 알 것 같았다.
단체로 이민주 작가의 작품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로 했는데.
나 때문에 일정이 어그러질까 두려운 게 첫 번째일 것이고.
나머지 두 번째는,
“저 때문에 세미가 찍힐까 봐 겁나세요? 이민주 작가한테.”
“그, 그게…. 네. 맞아요.”
리더로서 충분히 걱정할 만한 이유였다.
그만큼 스타작가의 파워가 드라마 판에서 막강하다는 증거였다.
‘그룹 내에 불화설은 찌라시였네. 막내 걱정을 이렇게 하는 걸 보니.’
이제 제작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보다 앞서, 세미가 빈 휴게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작가님, 여기 목캔…. 미령 언니?”
“아, 응. 세미야.”
작은 얼굴에 작게 의문을 표하는 세미.
이에, 미령은 급하게 변명을 둘러대었다.
“그냥, 작가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
“응? 무슨 이야기?”
“그야, 뭐…. 가능하면 나도 출연하고 싶다고 했지. 조연도 좋고, 단역도 좋고.”
“와, 정말? 나는 너무 좋아!”
어차피 제작이 안 될 거라고 확신하고 말을 막 뱉은 것 같다.
띠링─
그런데, 내 스마트폰에 알림음은 그녀의 우려를 가뿐히 종식시켰다.
바로, 정새롬 실장에게서 온 따끈따끈한 문자 메시지 한 통이었다.
[JTBS 감독님과 미팅 잡혔어요. 자세한 내용과 일정은 파일로 첨부하겠습니다.]
방긋 웃는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두 명의 퍼플걸스.
“미령 씨, 방금 말은 지키셔야 할 거예요.”
“네?”
“제 작품에 출연하시겠다고 했잖아요. 조연도 좋고, 단역도 좋고.”
“그게 무슨 말이신지….?”
“제 작품 JTBS에서 제작될 것 같습니다.”
물론, 본격적인 편성은 캐스팅 이후에나 확정이 나겠지만.
눈 앞의 두 명에게는 유치한 자랑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특히, 세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작가님! 정말이에요?”
“네.”
“꺄아아아아!”
그녀는 옆에 있는 미령을 꽉 껴안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녔다.
‘아, 왜 내가 아니라….?’
미령이 안 들어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음부터 세미한테 기쁜 일을 전해줄 때는 꼭 단둘이 있을 때만 말해 줘야겠다.
곧이어, 정새롬 실장이 보낸 파일을 열어 세부적인 일정을 확인했다.
‘감독이랑 첫 미팅인데 지성호가 온다고?’
뭐, 그런 경우도 종종 있을 테지만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세미 씨.”
“네. 작가님.”
“감독님과 미팅 잡혔습니다.”
“아, 정말요? 그럼 진짜 제작하는….”
“미팅 때 같이 가시죠.”
“어…. 제가 가도 돼요?”
“그럼요.”
템페스트 엔터만 배우를 데려오라는 법이 있나.
차라리 세미 출연을 확실하게 못을 박아버리는 게 좋겠다.
‘내 힘으로 캐스팅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지.’
대충 미적대면 적당히 포기할 거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품에서 세미라는 배우는 필수 불가결.
다른 누구를 데려와도 여자 주인공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는 없었다.
“일단 매니저님께 말씀드릴게요.”
“네. 세미 씨.”
이내, 두 명의 멤버들은 함께 방에서 나가버렸다.
나가기 직전까지 미령은 묘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 * *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남았잖아.”
사실, 세미는 시작에 불과했다.
임재준에 비하면 난이도 이지 단계니까.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정 실장에게 세미 동반 참석 소식을 전달했다.
당연히 답장이 오기야 하겠지만 쿨하게 씹을 생각으로.
“아, 이제 4부 쓰러 가야지. 조금만 더 늦으면 진짜 급해지겠어.”
안 그래도 핸드폰으로 써야 하기에 여유롭게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드르르륵─
휴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는데, 뜻밖의 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현식….?”
“아, 어쩌다 보니 밖에서 들었어.”
“그래?”
“축하해. 진짜 작품 들어가는 거야?”
이 새끼의 축하 인사가 왜 이렇게 역겨운 걸까.
효주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또 멍청하게 진심으로 받아들였겠지.
부러움. 질투. 분노. 시기.
지금 보니까 오현식의 이글거리는 눈빛에는 명백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이딴 새끼를 친한 동료라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고마워. 축하해줘서.”
“조심해. 이 작가님이 아시면 방해하려고 할지도 모르잖아.”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네.
“현식아.”
“어, 왜?”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 뭐?”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던 현식의 표정에 균열이 생겼다.
“너도 재능 있으니까 데뷔할 수 있을 거라고. 힘내라.”
“아…. 어. 그래. 고마워.”
툭.
나는 진짜 동료를 아끼는 사람처럼 현식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 지나쳤다.
눈에 띄게 굳어진 얼굴.
미세하게 경련하는 입가.
안 보이던 모습이 눈에 보이니까 그건 또 나름대로 재밌는 경험이었다.
‘이민주….’
방송국에서 거의 국장급으로 강한 파워를 가진 게 스타작가였다.
어쩌면, 시작하기도 전에 제대로 방해 공작을 펼칠지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한창 작품 활동 중이라 한눈팔 여유가 없을 거라는 점.
대본의 절반을 담당했던 내가 빠졌으니 더더욱 그러할 터였다.
“이민주 씨…. 선만 넘지 마세요.”
남의 인생을 망치고 싶으면 본인 인생도 걸어야지.
문득, 떠나기 전에 그녀가 퍼부은 폭언이 담긴 녹음 파일을 떠올렸다.
그 정도로 스타작가의 입지가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멘탈을 흔들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욕 몇 마디만 들어도 정신을 못 차리던 사람이잖아.”
본인이 쌍욕을 하면서도, 자신은 욕 먹을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