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93)
마지막 촬영장, 월곡산 중턱.
버려진 공동묘지에 다양한 모양의 묘석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으으….”
“왜?”
“여기 무서워요.”
무섭다고 벌벌 떠는 효주를 보며 말했다.
“진짜 쫄보구나.”
“에이, 그 정돈 아니에요.”
“여기 스탭들이 이렇게 많은데, 뭐가 무서워?”
“…. 귀신일지도 몰라요.”
“개소리 하지 마.”
“넵.”
생각보다 분위기는 어두컴컴하지 않았다.
수많은 조명이 곳곳을 밝히고 있었으니.
‘여기 뭔가 낯설다.’
한때, 희정이랑 같이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특히, 내가 글을 썼던 장소….
“이상한데?”
“네?”
“분명히 내가 글을 썼을 당시에는 근처에 버려진 폐가가 있었는데.”
“자, 장난하지 마세요.”
순간, 소름이 쫙 올라왔다.
“아니, 진짠데….”
“에이, 장소를 착각했겠죠.”
“그, 그렇겠지?”
수많은 스탭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음에도.
영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으니.
그때, 귓가에 나긋나긋한 귀신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가니임.”
“으아아악!”
“꺄아아악!”
내가 소리를 치자마자 뒤에 있던 소채담은 함께 비명을 질렀다.
“아 왜 뒤에서 자꾸 나타나요!”
“제가 원래 뒤에 있었으니까요!”
“….”
논리적인데?
“슛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조감독의 목소리에 이어 지성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나를 발견하고 가벼운 눈인사와 함께 촬영 준비에 들어갔으니.
“작가님, 저도 이만 가볼게요.”
“네. 채담 씨.”
“오늘 촬영분 내용 참 좋네요.”
“네?”
“곽 무당이 찝찝하게 복선만 남기고 끝나는 엔딩이요. 그게 너무 좋아요.”
“???”
“시즌 투가 나올 것 같아서. 히히.”
“….”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웃음을 짓고 멀어지는 소채담.
천천히 멀어지는 그녀를 보면서 속세에 초월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원래 현대인은 정신병 하나씩 달고 살잖아.
그래도 나보다는 낫지 않나.
시스템도 정신병의 일종이라면.
곧이어, 촬영에 들어가는 두 명의 주연배우와 악역 한 명.
“곽 무당.”
악귀 같은 모습으로 뒤쫓는 곽 무당의 전신에서 포스가 좔좔 흘렀다.
그에 맞서는 지성호는 상대적으로 카리스마가 떨어졌지만.
퍽─
곽 무당에게 얻어맞은 지성호는 주변의 흙을 집어서 곽 무당의 눈에 흩뿌렸다.
“크아악.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아마 CG로 진짜 눈에 정면으로 들어간 것처럼 수정한다고 들었다.
지성호는 돌멩이를 들어서 곽 무당에게 냅다 던지더니 채담의 손목을 잡고 내달렸다.
“후욱, 후욱. 어디 갔어. 개 같은 것들….!”
두 주연배우는 서로의 손으로 서로의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였다.
주변에서 곽 무당은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며 모형 비석을 발로 차고 부숴버렸다.
‘연기 보소.’
물론, 모형이라 돌멩이만큼은 아니지겠만.
그래도 한 번에 부수는 걸 보면 연습을 많이 한 모양이다.
한동안 젠틀한 중년인 배역은 안 들어올 것 같다.
지금 배역과 싱크로율이 너무 잘 맞아서.
잠시 후, 곽 무당이 사라진 걸 확인한 지성호는 채담에게 윙크를 하며….
‘…. 어라?’
윙크를 왜 하는데.
“성호 씨.”
“네?”
아니나 다를까, 조셉 감독님은 NG를 선언했다.
곧바로 성호를 부르며 대본 내용을 지적했으니.
“지문에 쓰여 있잖아요. 멋있게 돌아선다.”
“네. 그래서 윙크하면서 돌아서는 건데요….?”
“….”
그거 안 멋있어요.
“조금 막, 진짜 멋있게! 약간 표정 같은 걸로….”
“아하. 오케이! 이해했다!”
“그래요?”
“네! 저만 믿어주세요!”
지성호는 나름대로 멋있는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이어서, 감독의 큐 사인과 함께 채담에게 자연스레 미소를 지으며.
‘이런 씹.’
앞구르기 하지 마라고.
스탭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이제는 꽤나 익숙한 광경인 듯 하다.
“애드립 금지.”
지성호는 평생 금지.
밤새도록 이어지는 촬영에, 스탭들은 번갈아 가며 텐트에서 쪽잠을 잤다.
물론 대체할 수 없는 주연 배우와 몇몇 감독님들을 제외하고.
다음 날 아침.
월곡산 중턱에 텐트를 치고, 산중에서 아침을 맞았다.
밖으로 나가며 핸드폰을 확인하니 정 실장님께 톡이 와 있었다.
[작가님 아주 좋은 소식이 생겼네요!]
[이따 회사에서 말씀드릴게요 ㅎㅎ]
“오….”
좋은 소식은 모르겠고, 이렇게 편한 이모티콘을 쓰는 건 처음 본다.
아무래도 같이 다큐도 찍고 하면서 친해진 게 아닐까.
‘기분 좋네.’
바깥에 나가 스탭들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침까지 이어져 온 강행군 촬영에 스탭과 배우들도 기력이 쇠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은 오고야 말았으니.
“컷! 수고하셨어요!”
“와아아아!!”
“꺄아아아!!”
스탭과 배우들은 고생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효주는 양쪽 눈두덩이에 다크서클이 내려앉았다.
“뭐냐? 너 밤 샜어?”
“네에….”
“왜? 할 일 없었잖아.”
“원래 잠자리 바뀌면 잘 못자서요.”
“미리 말하지.”
“괜찮아요.”
이럴 거면 괜히 데려왔나.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쉬어.”
“정말요?”
“응. 당직 퇴근.”
“오오! 저기, 근데요. 오빠.”
“응?”
“돈까스집은 안 가요?”
“….”
다음에 포장 배달시켜줄게.
* * *
잠시 후,
드디어 마지막 촬영까지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텐트에서 자느라 몸이 찌뿌둥하긴 하지만.
‘벌써 네 번째 드라마도 완성.’
순정마초와 회귀자, 김나연에 이어서.
캠커사는 제외하고 16부작 네 번째 드라마.
똑, 똑─
정 실장님의 부름을 받고 실장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었다.
“실장님, 오늘 기쁜 소식이 있다고 들었는데….?”
“네. 아주 기쁜 소식이에요.”
“???”
물어봐도 안 알려줄 만큼 기쁜 소식이 뭘까.
“엄청 궁금하신가 보네요? 후훗.”
뭐지. 오늘따라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
방금 웃은 거는 약간 설렘 포인트 같은데.
“뭔데요.”
“이, 흠흠.”
새롬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리메이크 확정이에요.”
“네?”
“순정마초 리메이크!”
“헐!?”
내 작품이 리메이크된다니.
“꽃보다 상남자처럼요?”
“네. 맞아요.”
아니지, 그건 일본 작품이 한국에서 리메이크된 거고.
“얼마 전에 중박친 시끄러운 가족도 리메이크됐죠? 일본에서.”
“네. 그 작품 이후로 작가님 작품이 처음이네요.”
“…. 좋은 소식 맞네요.”
“앞으로 일본 스케줄이 종종 있을지도 몰라요.”
“아아…. 저기.”
“네?”
임진왜란 드라마 대본을 쓰는 작가는 일본에서 인기가 뚝 떨어질 텐데.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부터 마무리해야지.
“실장님, 영화 제작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아, 얼마 전에 국방부 협조 공문이 내려왔어요.”
“오!”
“다큐멘터리 10프로 시청률 나온 게 아주 컸어요.”
“저희 둘이 같이 해냈네요. 실장님도 같이 출연하셨으니까.”
“…. 그러네요.”
정 실장님에겐 아직 방송 출연이 어색한 듯했다.
“지금은 씬마다 출연도 책정하고 있어요.”
“그래요?”
“네. 스탭은 250명 정도로 예상되고. 장비 트럭은 30대 정도.”
스케일 보소.
“발전차는 네 대면 될 것 같아요. 아, 의료진도 포함될 겁니다.”
“거의 할리우드네요.”
“…. 그 시나리오에 이 정도면 최소 인원이에요.”
“아하하. 어쨌든.”
오늘부로 드라마 촬영도 끝났으니.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디지니 편성은 언제죠?”
“대충 편집까지 끝나면….”
대략 두 달 후.
“디지니 플레이, 첫 번째 오리지널 드라마 첫 편성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실장님.”
웃으면서 일어나려고 하는 찰나에 한쪽 구석에서 의외의 물건을 발견했다.
아니, 물건이라기보다는 음식물이라고 해야 하나.
“실장님.”
“네?”
“저기….”
손가락을 들어 그것들을 가리켰다.
“이제 과자도 종종 드시는 거예요?”
“…. 손님 대접용이에요.”
“손님한테 저걸….?”
다큐 시청하면서 먹던 팝콘에, 바닐라킥, 킹새우깡.
여기 오는 손님한테 대접할 만한 음식은 아닌데.
“종종 아이들이랑 같이 오실 때도 있어요.”
“…. 그래요?”
“네. 모르셨군요.”
한 번도 못 봤지만, 그냥 그런 걸로 하자.
하나는 봉지가 뜯어져 있어서 꿀팁을 전수한다.
“실장님, 오래 냅두면 바람 들어가니까 집게로 밀봉해요.”
“아, 그게 좋겠네.”
“그쵸?”
“…. 안 궁금했어요.”
* * *
MBS 다큐제작국은 때아닌 경사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그중, 길 PD는 국장에게 백마 탄 초인과 같은 취급을 받았으니.
“아이고, 우리의 영웅! 길 PD님 왔는가?”
“네. 국장님.”
“점심은 먹었고?”
“…. 같이 먹었잖아요.”
“아, 그러네. 그럼 한 번 더 먹어야지!”
평소에 장난을 많이 치는 국장님이었지만.
그동안은 비꼼이나 시비를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래서 인생 한방이구나.’
김진우 작가 섭외 한 번에 꽃길이 펼쳐졌다.
게다가, 다큐 본방 시청 릴레이 덕분에 게스트 섭외는 한결 수월했다.
더이상 섭외 전화를 돌릴 필요도 없이 적당한 B급 연예인들의 출연 요청이 쏟아졌으니.
‘섭외가 이렇게 쉬웠던가?’
그냥 대충 A급에 가까운 B급 연예인을 고르면 되는 수준.
특히, 연기파 배우들도 많이들 신청을 해주셨으니.
김진우 작가의 작품이 흥행 보증수표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수많은 배우들은 김 작가와 동반 출연하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적어도 김진우가 하차하기 전까지는 이어질 터다.
물론, 앞으로도 섭외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길 PD…. 그래서 다음 촬영은 언제야?”
“네?”
“김진우 작가님이랑.”
어쩐지, 오늘쯤에는 물어보실 것 같더라니.
대충 심심해서 접근하는 양반은 아니었다.
“국장님.”
“응?”
“저는 국장님과 제가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
이전까지 믿어본 경험이 없었지만.
“그러네. 내가 깜빡했네.”
“하하. 아닙니다.”
“그래도 편성을 잊지는 말라고! 연봉 아직 오른 거 아니야. 알지?”
“네. 알죠.”
실로 지독한 양반이다.
무협으로 치면 정의로운 척하는 정파의 수뇌….
삐리리리─
그때, 길 PD의 스마트폰에 기연이 찾아왔다.
“장로님! 김 작가님께 연락이….!”
“오오, 어, 어서 받아보게!”
“명을 받듭니다!”
이어서, 길주창은 목을 가다듬고 두 손으로 존귀하신 지존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하하하. 김 작가님, 제가 요즘 작가님 덕분에 살 맛납니다!”
김진우는 길 PD의 인사치레를 잠자코 듣더니,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저기, 다음 촬영장소를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아,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충남 아산에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이요. 섭외 가능할까요?
“아…. 다행히 관장님 번호가 있네요!”
-10일 이내에 가능할까요?
“…. 그, 그럼요. 저희 섭외만 10년 했어요.”
-오호, 경력직 인정입니다.
김진우 역시 대본을 쓰는데 MBS만큼 상부상조하기 좋은 집단도 없었다.
맨몸으로 가서 잘못하다가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일 수도 있었으니.
“저기, 작가님.”
-네?
이내, 길 PD는 조심스럽게 진우에게 질문을 건넸다.
“혹시 게스트를 초대해도 될까요?”
-누구요?
“그건 아직 안 정해져서, 정해지면 말씀을….”
-아뇨, 뭐. 아무나 상관없어요.
“크으, 역시 대인배의 풍모로다.”
-허 참, 뭘 그렇게까지.
“그럼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고생해주세요.
“넵!”
뚝.
이제 출연하겠다는 사람들을 추려서 고르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동안에는 게스트가 다큐 출연을 선택했지만, 지금만큼은 자신이 게스트를 선택할 수 있었다.
옳게 된 수요공급 곡선이로다.
“어? 이분은….”
게스트 신청자 명단을 확인하던 중 길 PD는 누군가의 이름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급이 높은 배우는 아니지만….”
중요한 건 김진우 작가님과의 케미가 아닐까.
김 작가님이랑 같은 템페스트 소속이었기에
“꽤 괜찮은 그림이 많이 나올 것 같아.”
이미 정새롬 실장님 덕분에 시청률 맛도 봤으니.
다음 시청률도 그대로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상대방의 연락처를 스마트폰에 입력했다.
뚜루루루─
“안녕하세요. 길주창 PD라고 합니다.”
-…. 누구시라고요?
“김희정 배우, 매니저분 번호 맞나요?”
* * *
“으으으.”
집에서 밍쁨에게 받은 콘티를 점검하던 중.
“으으으으.”
관종 여동생이 좀비 목소리를 할 때마다 신경이 거슬렸다.
그냥 깔끔하게 무시하고 내 방에 들어가려고 일어났는데.
꾸욱─
“놔라. 뒤지기 싫으면.”
“으으으.”
“…. 아, 왜 그러는 건데.”
“오늘 첫 방송….!”
“그거 오늘이냐?”
“으으응.”
JTBS 송권수 감독님의 「오류동 팔남매」
‘순정마초’ 이후 송 감독님의 차기작이라 방송가에서는 꽤 유명한 작품이었다.
물론 시청자들은 감독이 누군지…. 아니, 사실 작가가 누군지도 딱히 관심이 없겠지만.
“아, 맞다! 오빠, 내가 얼마 전에 아는 선배님께 부탁을 받았는데….”
“어?”
희정이는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어떤 배우와 식사 자리 한 번만 가질 생각 없냐고.
“…. 윤지희 배우님?”
“응!”
선생님급이라고 불리기엔 애매한 포지션.
경력은 충분하지만,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이 없었으니.
“흠, 글쎄. 딱히….”
“에이, 부탁 좀 하자.”
“오케이. 대신.”
“대신….?”
“김희정 이용권 1회.”
“….”
“싫으면 말고.”
“콜!”
공포 체험 1회 득템.
개이득.
“어? 시작한다.”
오프닝 장면을 보던 희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곧바로 시청률부터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니 순정마초 첫 방송 때가 떠오른다.
‘그래. 작품보다 시청률이 먼저 보이겠지.’
일반적인 케이블 TV의 성공 기준은 3% 정도로 본다.
그밖에, 7% 이상은 대박, 15% 이상은 초대박
그런데, 막상 오류동 팔남매의 성적은.
“음….”
적당하게 2.1% 선에서 스타트를 끊었다.
“….”
복잡미묘한 표정의 희정이.
마침, 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잡혀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오빠….”
“응?”
좋아하는 건지, 슬퍼하는 건지 감이 안 잡히던 찰나.
“대박! 대한민국 전국민의 2.1프로면…. 몇 명이야.”
“???”
“무, 무려 100만 명!!!”
“….”
“지금 내 모습을 100만 명이 보고 있어!”
응. 아니야.
그거 조사기 설치 안 하면 집계 안 돼.
“우왕, 나 지금 100만 너튜버가 된 기분이야!”
“…. 그래. 좋겠네.”
불편한 진실은 넣어두는 걸로.
“와아….! 이걸 누구한테 자랑하지?”
“음….”
“효주? 밍쁨이?”
“…. 밍쁨이랑은 언제 친해졌냐.”
“요즘 셋이 자주 밥 먹음.”
“그래.”
나도 이렇게 단순하게 막 살고 싶다.
이렇게 행복하기 쉬운 것을.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서 노력했을까.
‘2.1프로 스타트도 좋지.’
그동안 시스템 기준에 맞춰져서 눈이 쓸데없이 높아졌다.
케이블 첫 방송 2프로대니까 충분히 대단한 성적이지.
JTBS 방송국 수준이 평균적으로 오른 느낌이다.
“헤헤. 이제 3프로 찍고, 5프로 찍고….”
행복회로를 돌리는 희정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이이잉─
그때, 길주창 PD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작가님! 다음 촬영 섭외 완료했습니다!
“오, 아주 일을 잘하시는구만유.”
-다음 게스트도 정해졌어요!
“그래요? 누구….”
이어지는 길 PD의 말을 듣자마자 귀에서 삐- 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다.
“누, 누구요?”
-김희정 배우님! 오류동 팔남매! 같은 소속사 식구 아닌가요?
“아, 음….”
소속사 식구가 아니라 진짜 식구네요.
-싫은 기색이신 것 같은데…. 아무나 괜찮다고 말씀하셔서….
“그래요. 참 괜찮네요.”
-작가님, 아직 계약한 건 아니니까….!
“아니요. 그냥 그대로 가시죠.”
-네? 아, 넵!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거실을 누비는 망아지를 보며 생각했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내 동생.’
이거는 무조건 숨겨야 돼.
* * *
충무공이순신 기념관.
초록색 잔디 위에 거대한 회색 도자기를 엎어 놓은 듯한 건물.
약속된 촬영 시각보다 6시간 일찍 이곳을 방문했다.
촬영 준비를 위해 스탭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중, 도혜지 PD는 연락을 받고 나를 마중나왔다.
“오셨어요, 작가님?”
“네. 도 PD님, 안녕하세요.”
곧이어, 그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 시스템의 빛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