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99)
공개처형-, 아니, 대본리딩의 날.
여민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도도한 걸음으로 현장에 도착했다.
허나, 속으로는 수십 번도 더 다짐하고 또 다짐했으니.
‘나는 미미다. 마법소녀 미미.’
나지수 조감독이 대본리딩의 시작을 알리고, 주연배우들이 한 사람씩 인사를 올릴 때에도.
“안녕하세요. 마법소녀 미미입니다.”
“???”
“아, 아니. 마법소녀 미미 역을 맡은 여민서입니다.”
“하하하하.”
감독을 포함한 좌중은 폭소가 터졌다.
‘후….’
부끄러운 티를 내면 안 된다.
오늘은 진짜 미미가 되어 정의를 구현하는 거야.
함께 출연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데맛시아!!!!”
“크윽, 마법소녀….! 강한 건 여전하군.”
“당연하지! 당신을 정의의 이름으로….!”
그때, 송권수 감독은 살짝 아쉽다는 표정으로 민서를 막았다.
“방금 디테일을 조금 살릴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감독님.”
너무 성급했다.
처음이라 너무 급하게 대사를 쳤어.
“당신을 정의의 이름으로….”
“흠, 아뇨. 그게 아니라….”
여민서는 뭐가 문제인지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다.
분명히 마법소녀 그 자체가 되었을 텐데.
그때였다.
“저기, 제가 한 말씀 드릴게요.”
조심스럽게 한 손을 들고 말을 꺼내는 김진우 작가.
“민서 씨, 마법소녀 미미는 당당하지 않아요.”
“네?”
“부끄러워한다고요.”
“그게 무슨….”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마법소녀 행세를 하니까요.”
“아!”
당연히 알고 있던 사실이다.
연기에 적용시키지 못 했을 뿐.
‘알고도 놓쳤네.’
이상한 선입견에 빠져 부끄러움을 떨쳐내려 애썼다.
더 당당하게 연기하는 게 진짜 미미가 아니라.
“다시 하겠습니다.”
“흠, 그래요.”
송 감독의 지시와 함께 여민서는 극에 몰입했다.
순간, 이 모든 상황과 대사로부터 민망함이 밀려들었다.
“데맛시아!!!”
“크윽, 마법소녀….! 강한 건 여전하군.”
‘졸라 유치해!’
이렇게 유치한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하는 게 오히려 가식적이다.
“다, 당연하지! 당신을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어요!”
민서의 얼굴은 자동으로 붉어졌는데.
그와 동시에, 송권수 감독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배역을 부끄러워해야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온다니.
이 무슨 저주받은 역할이란 말인가.
‘…. 도망가고 싶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던 가면이 벗겨진 여민서.
급기야, 이제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대사도 버벅거렸다.
“내, 내가 당신을 가만둘 것 같아?”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여민서는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크롸롸롸. 이 A급 빌런 디파인에게 덤비다니…. 어얽.”
“좁밥아.”
“???”
“여기 너 말고 아무도 없잖아.”
“아, 아니 마법소녀가 무슨 욕을….”
“뒈지면 말을 못 하잖아.”
“무, 물리 요술봉은 반칙….!”
“죽어.”
여민서는 몸이 곤죽이 돼서 퇴장한 빌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아…. 인생.”
이 정도면 연기가 아니라 찐이었다.
짝, 짝짝짝─
“브라보!”
“휘이익─!”
여민서는 스탭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면서도 몰입한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후우, 인생….”
한편, 진우 역시 본인의 인생을 돌이켜봤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뚜루루루─
대본리딩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던 중에.
진우는 굳은 표정으로 길 PD님께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길 PD님.”
-네, 작가님.
“우리는 한 팀이잖아요.”
-네?
“거의 어벤져스.”
-그, 그렇죠. 하하.
“딱 촬영 감독님 한 분만 섭외해서 같이 힘내보죠.”
-….?
며칠 뒤.
진우는 완전무장을 마치고 울돌목으로 향했다.
그의 뒤로, 길 PD와 촬영감독은 아무고토 모르는 순진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 * *
쏴아아아─
내리쬐는 햇살 아래 넘실거리는 물살.
그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김진우호.
진우 일행은 잭 스패로우의 갬성으로 바다를 헤치고 나아갔다.
이따금씩, 파도가 일렁이며 선박을 강하게 타격했다.
“우욱.”
“으으.”
나약한 선원 두 명은 메스꺼움을 호소했지만.
겨우 그 정도로 뱃머리를 돌리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조타석에 앉은 선장님은 씨익 미소를 짓고서 진우를 칭찬했다.
“호오, 그 사이에 배를 좀 탔는가 보네.”
“…. 죽을 것 같아요.”
“흠, 여전히 약해빠졌구만.”
놀랍게도 두 명은 구면이었다.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때 나중에 부산에 오면 연락하라고 했던 인물.
작은 고기잡이배의 선장인 줄 알았는데 꽤 큰 배도 취급하는 뱃사람이었다.
“어? 아, 아저씨!”
“왜애.”
“저쪽으로!!!!”
대낮보다 더 화사한 시스템의 등대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를 반겨주었으니.
밀짚모자를 쓴 선장님은 원피스 한 벌을 구하러 가는 심정으로 거친 바다를 헤치고 나아갔다.
드르르륵─
곧이어, 선장은 닻을 내려 위치를 고정했다.
이틀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마침내 목표했던 빛과 조우했기에.
털썩─
진우는 곧바로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펼쳤다.
“자, 작가님?”
“지금 뭐 하시는….?”
나약한 선원 따리들은 그의 행동에 강한 의문을 품었다.
“뭐 하긴요. 글 써야죠.”
“네?”
“다큐 이름이 글 쓰러 어디까지 가봤니-, 잖아요.”
“???”
“이름값 해야죠.”
“….”
“위대한 장군께서 12척으로 왜적을 무찌른 곳이 아닙니까?”
진우의 말을 듣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길 PD와 촬영 감독.
아니, 선장도 별 미친놈을 다 본다는 듯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은 한결같았다.
외계인을 보는 지구인의 시선과도 같았다.
‘그냥 컨셉이 아니라….!’
이 사람, 찐이었어….?
타닥, 타다닥─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우는 대본에 집중했다.
‘갓순신 장군님이 선발대를 막는구나.’
선봉장 고니시의 침략을 막아내고 첫 승리를 따낸 조선군.
하필이면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미래가 바뀌었으니.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나라의 2차 침략은 가토 기요마사의 제2번대.
결국, 신립의 군대는 탄금대가 아닌 조령의 지형을 이용해 전투를 벌였다.
놀라운 통찰력으로 적의 이동 경로를 미리 예측한 김성일.
그의 서포트 덕분에 조선은 다수의 병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 후로, 가장 중요한 해상 전투.
원균이었다면 자침했을 80여 척의 판옥선을 이순신 장군이 지휘했다.
한산도 대첩 때, 두 배 규모의 병력을 이용해 학익진 전법을 펼쳤으니 그 웅장함도 두 배였다.
한편, 김성일은 각종 전장에 합류해 최고의 책사로 인정받아 승리의 아이콘이 되었다.
“흠, 이거 전쟁씬 제대로 살릴 수 있으려나….”
딱 봐도 전쟁씬 퀄리티가 보통이 아니잖아.
이번 작품도 CG 전문가라던가, 투자처를 구하려면 고생 좀 할 것 같은데.
‘정 실장님, 화이팅!’
김진우는 아슬아슬하게 제한 시간 내에 대본을 완성했다.
그런데, 시스템은 그를 편하게 집에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띵동─
‘시발….?’
* * *
두 달간 이어지는 끝없는 대본 집필의 연속.
안타깝게도 절반 이상은 배 위에서 대본을 집필했다.
아무래도 육상전보다는 수상전 전쟁씬이 화려해서 그런 건지.
“스마트폰…. 살아 있나.”
오랜만에 핸드폰의 전원을 켜서 단톡방을 확인했다.
일단 곧바로 보조 작가 단톡방에 대본을 전송했다.
“음, 연락이 많네.”
그동안 확인 못 한 부재중 통화나 메시지가 산처럼 쌓였다.
각종 배우분들, 연출팀이나 효주랑 밍쁨은 당연하고.
김미소 씨, 이분은 왜 이렇게 톡을 많이….? 뭐지?
엄마랑 아빠랑, 엄마 같은 정 실장님이랑.
그 와중에 김희정 연락 없는 게 레전드네.
“김 씨!”
“네?”
“그물을 제대로 건져야지!”
“아, 넵!”
부업으로 어업에 종사한 지도 어언 두 달째.
이쯤 되면 조선의 아픈 역사를 함께 나눈 셈이다.
‘이순신 장군님.’
대체 어떤 싸움을 하신 겁니까?
“선장님.”
“어?”
“이제 그만 하선할까 합니다.”
“아, 그려?”
“네!”
“그동안 고생했어.”
“여기서 배운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별 소릴 다하네.”
나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이제 네 편 남았나.”
임진왜란으로 시작해서 정유재란까지, 약 7년간의 전쟁사.
처음에는 밀리던 조선도 점차 적응해서 일본에 반격을 준비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스윽─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를 검색했다.
연예계에서 두 달이면 어마어마한 기간이다.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디지니 플레이 ‘지금 뜨는 컨텐츠’ 1위 등극! 모든 컨텐츠 중 13위!》
[독점] 김진우 작가의 도전!? KBC의 새 대하드라마 「임진년, 반격의 칼날」은 과연 어떤 드라마!?》《디지니 플레이 오리지널 영화. 「코드네임 030 : 마법소녀 Part. 1」 크랭크인! 주인공은 여민서, 임재준.》
8부작 드라마가 완결 나고, 상위권에 알박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으며.
베일에 싸인 드라마가 타의에 의해 공개될 수도 있는 시간, 그리고.
마법소녀 때문에 놀림받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장르 미쳤다 ㅋㅋㅋㅋㅋㅋ
-마법소녀? 킹룡? 로봇? 이걸 어케 안봄?
ㄴ남자라면 봐야지 ㅡㅡ
-나는 항마력이 딸려서 ㅋㅋㅋㅋ
-김진우니까 믿고 본다 ㄹㅇ
ㄴ갓진우 ㄷㄷ
ㄴ첫 영화 도전이 졸라 과감함 ㅋㅋㅋ
-여민서 눈나…. 대체 왜….
ㄴ협박을 당하고 있다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ㄴㅋㅋㅋㅋㅋㅋ
두 달간 거의 꺼놓은 스마트폰.
문명의 이기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템페스트 엔터에 도착했다.
“이게 얼마 만이냐.”
오랜만에 들르는 사옥, 정 실장님을 보러 엘리베이터로 직행했다.
똑, 똑─
이내, 정 실장님 사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마치 교무실에 어쩔 수 없이 방문하는 학생처럼.
“네. 들어오세요.”
드르륵─
문이 열리고, 정 실장님은 나를 지긋이 응시했다.
“얼굴에 고생한 티가 역력하시네요.”
“네. 뭐…. 하하.”
“그래서, 대본은 잘 쓰셨나요?
“거의요.”
“다행이네요.”
오, 뭔가 생각보다 별로 안 혼나서 개이득 본 느낌.
“아시다시피 회사가 많이 바빠요.”
“네? 아….”
영화와 드라마 제작.
두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각각 연출팀과 제작팀을 합쳐서 최소 100명 이상이 필요했기에.
“그래서 일단 중요한 이야기 먼저 하죠.”
“어떤….?”
“원고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이윽고, 정 실장님은 살며시 고운 입술을 떼었다.
“회당 1억.”
“….”
고작 1년 만에, 보조 작가에서 회당 억을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현재 12부까지 쓰셨죠?”
“네? 아, 네….”
“아마 그 만큼은 오늘 바로 입금될 거예요.”
“대박….!”
‘대충 통장에 40억 정도 있을 텐데.’
오늘 받을 돈까지 치면, 슬슬 등급을 올려도 될 것 같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가슴 속의 악마와 천사 간의 대화가 들려오는 듯했다.
-야, 이 미친놈아!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집 대출도 갚아야지! 시스템에 의존하지 말고 니 실력을 키울 생각을 해.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
-작가님, 인생은 한방이랍니다. 지금처럼 놀고먹는 것도 시스템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시여요! 바로 가챠 지르시는 게 좋겠어요. 하와와.
“그래. 결심했어!”
* * *
유니세프 한국지부.
어떤 직원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금액에 아연실색했다.
한 번씩 큰돈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규모는 절대 흔치 않았다.
“지, 지부장님!”
“왜?
“30억!”
“응?”
“누가 30억이나 기부했다고요!”
“…. 뭐?”
터벅, 터벅─
지부장은 잰걸음으로 움직여 직원의 데스크탑을 확인했다.
그의 말대로 30억이나 입금한 기록이 화면에 띄어져 있었으니
【System Random Studio : 금 3,000,000,000 원】
“아, 아니. 이건….”
“이름이 익숙하죠?”
“작년에 같은 이름으로 5억 입금했잖아.”
“네.”
분명히 대단한 선행이고 누구라도 칭송할 법한 기부였다.
“그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같은 가상계좌야?”
“네.”
시스템 랜덤 스튜디오.
이렇게 익명으로 보내는 경우는 둘 중 하나였다.
자신이 드러나길 극도로 원치 않는 사람이거나.
가상계좌를 통한 계좌이체 방법밖에 모르는 어르신이거나.
후자의 경우, 붕어빵 장사로 10억을 벌어서 전부 기부한 그런 케이스를 포함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전 재산을 기부하고 심중에 기쁨을 얻는 천사 같은 분들.
다만 그럴 경우, 세금 폭탄을 맞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
나이 든 어르신들은 이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괜찮으시려나….”
“걱정되네요.”
원래 기부금이 세금에서 감면이 되긴 한다.
최근에 정책의 변화로 절세율이 늘어났지만, 아직은 많이 미미하다.
부자들의 절세 방법 중 하나로 기부가 악용되는 사례도 있었기에.
“이, 이거 혹시라도 저번 붕어빵 때랑 같은 케이스면….”
“절대 안 되지.”
지부장은 오랜 고민 끝에 상위 부서에 보고하기로 했다.
혹시나 선의의 기부자가 피해를 받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