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1)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화(2/385)
한 번만 봐주세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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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솔직히 부모 입장에서 걱정은 됩니다. 제 잘났다고 저러고 있고 잘 한다 잘 한다 해줬지만, 메이저리그가 보통 험한 곳입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부모라는 게 믿어 주고 밀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지 않겠습니까?”
젊은 얼굴의 아버지가 단호한 얼굴로 말씀하고 계셨다.
아직 꿈에서 덜 깬 건가?
이상할 정도로 너무 생생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발견했다.
설마. 진짜 과거로 돌아온 걸까?
반지는 원래 은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 내 손에 끼워진 반지는 새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꿈에서는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보인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게 꿈이건 아니건,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아버지, 잠깐만요.”
“응?”
과거를 돌이켜보면, 난 이맘때쯤 메이저리그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전 시즌을 두고 야구 팬들이 ‘강건우 시즌’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위권 세 팀이 치열하게 꼴찌 경쟁을 펼쳤는데, 정말 날 뽑으려고 그랬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단장님 말씀을 좀 더 들어보고 싶은데요.”
난 한국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강력하게 주장했었고, 부모님과의 길고 긴 대화 끝에 메이저리그로 가기로 했었다.
아버지로서는 갑자기 배신당한 기분이라도 드셨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오션스 박준기 단장의 얼굴은 확 환해졌다.
“건우야, 너…”
“아버님! 포스팅으로, 그게 안 되면 FA 때라도 해외 진출할 수 있도록 목숨 걸고 돕겠습니다!”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는데.
“투타 겸업 가능성이 있으니 투수 파트와 타자 파트에서 해외의 유명 인스트럭터를 모셔와 선수를 돕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아버님!”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을 준비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런데, 내게 그런 건 딱히 필요하지 않다.
이게 만약 꿈이 아니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난 이미 최고가 되어 본 적 있고, 돈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목맬 필요는 없다.
내가 총 얼마를 벌었었는지도 잘 모른다.
난 부자였다. 뭐, 사업에 손 댔다가 거의 다 날려버리긴 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단장은 나갈 때까지 최고 대우니 뭐니 떠들어댔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하셨으며, 아버지는 날 배신자 취급하셨다.
“야, 강건우. 너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냐?”
“잠깐만요. 제가 진짜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다녀와서 다시 얘기할게요.”
“야! 강건우!”
“아들, 조심해서 다녀와.”
지금 내겐 급한 일이 있다.
유리… 누나를 당장 만나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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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뛰쳐나와, 조금 퀴퀴한 냄새가 나는 아파트 계단에서 전화를 걸어 당장 나오라고 말했다. 유리는 우리 집 아래층에 산다.
꿈이라고 생각하긴 조금 힘들었다. 팔을 때려보니 통증이 느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쉽게 믿을 순 없겠지만, 만약 진짜라면…
“올, 우리 건우. 누나 보고 싶었어? 목소리가 좀 급하더라?”
전 여친, 아니, 전 처… 라기엔 과거로 돌아왔으니 현 여친이라고 해야 하나.
나보다 두 살 많지만, 내가 고3 때로 돌아왔으니 유리는 이제 21살이다.
소꿉친구이자 아랫집 누나인 유리가 계단으로 올라오며 말했다.
말문이 살짝 막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묻고 싶은 것도 많았고.
그런데 그 기억들은, 모조리 나 혼자만 가지고 있던 것들이다.
우리가 결혼했고, 이혼했고, 선물 받은 반지 덕분에 과거로 돌아왔다고 말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보고 싶었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다. 유리는 자기가 보고 싶었느냐고 물어봐 놓고도 내 대답에 깜짝 놀랐는지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뭐?”
나는 꽤 무뚝뚝한 남자친구이자 남편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혼 후에도 계속 후회했다.
자존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발. 아니, 인정하자.
난 그냥, 당연히 유리가 내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었고, 솔직하게 유리가 보고 싶었다.
“진짜 보고 싶었어.”
다시 말하자, 계단 중간쯤에 선 유리는 계단 위의 우리 집과 아래의 자기 집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뭐 잘못 먹었냐?”
어릴 때부터 붙어있기만 했고, 두 살 연상이지만 워낙에 친구처럼 지냈으니.
그런데 뭔가 모르게 속이 시원해진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어쩌면 꿈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말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봤었잖아?”
그랬나?
하지만 난 몇 년 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라.
그것도 21살의 유리를 본 건 반올림하면 20년이다.
“아니, 음. 그래도. 아.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어쨌든 지금 꼭 확인해야 할 건 하나 있었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내가 잘못한 것들은 앞으로 만회할 것이다.
하지만 반지를 어디서 샀는지, 이게 대체 뭔지는 꼭 물어봐야 했기에 손을 들어 반지를 보여주었다.
“응? 야! 강건우!”
“…어?”
“너 이거 내가 준 반지 아냐?”
“맞아. 이거 좀 물어볼 게 있…”
“생일 선물로 해줬더니 이걸 그새 조져놔?”
“아니, 잠깐, 이거 어디서 샀…”
“아하. 어디서 났는지 벌써 까먹으셨다?”
…
아무래도…
“야, 강건우! 너 이걸 내가 어떻게…”
“유리 누나 한 번만 봐주세요.”
“…응?”
말하고도 순간 움찔했다. 혹시라도 또 과거로 돌아가 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아무 일 없는 거 보니, 아무래도 일회용인 것 같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
그러고 보니, 평생소원이라며 누나라고 좀 불러달라고 해도 절대 안 불러줬던 것 같다.
음.
그냥, 화를 냈다가도 금세 풀어지고 하는 어릴 때의 유리를 보니 마음이 말랑해져 버렸다.
귀여워.
“…야!”
말없이 폭 안아버리자, 유리는 아빠 나오면 어떡하냐며 투덜댔지만 얌전해졌다.
모르겠다.
과거로 돌아와서, 다시 한번 시작한다는 거, 이거 내 욕심이 아닐까.
유리 입장은 생각도 안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닐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간질간질한 향기가 코끝에서 맴돈다.
“만약에 있잖아.”
“…만약에 뭐?”
“우리가 결혼했어.”
“허. 강건우. 김칫국.”
“했다 쳐.”
“너 미국 갈 거라며? 그럼…”
“안 갈 거야.”
“응?”
“누나 놔두고 어딜 가.”
“어, 이, 뭐? 뭐라고?”
“아니. 그러니까. 일단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우리가 결혼했다 쳐.”
“…그래서?”
“근데 내 잘못으로 이혼했어.”
“야 강건우…”
“한 번만 봐줄 거야?”
“진짜 뭐 잘못 먹었냐?”
유리는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날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잘못으로 이혼했는데? 바람?”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럼 딱 한 번만 봐준다. 이 누나는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으니까.”
나는 픽 웃었다. 거짓말은 아니니까.
이번엔…
실수 없이 잘해야지.
“미안해.”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너 뭐 잘못했는지 딱 빨리 불어. 뭔가 엄청 큰 잘못 저지르고 퉁치려는 것 같은데, 이 누나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냐?”
“고마워.”
“아, 열받게 하지 말고 빨리…”
“사랑해.”
유리는 얼굴이 벌게지더니 ‘허, 하, 허, 하, 고놈, 참.’ 이라고 말하면서 뒤로 돌았다.
“나 밥 먹으러 간다. 진짜 딱 한 번만 봐주는 거니까 그렇게 알고.”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마음이 놓인다.
뒤로 돌아서면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걸 분명히 봤다.
“야 강건우!”
“응.”
“아, 뭔가 있는데 진짜. 원래 저렇게 고분고분한 놈이 아닌데…”
“진짜 아무것도 없어.”
“됐다. 누나 밥 먹으러 간다. 누나 보고 싶어서 힘들어도 좀 참아.”
유리가 자기 집으로 들어가고도 한 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날 잡으러 오기 전까지.
“야 강건우!”
과거로 돌아온 이 짧은 시간.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야 강건우다.
“아버지.”
“왜!”
“오션스가 싫으세요?”
아버지는 창원 파이러츠의 팬이다.
원래는 오션스 팬이셨지만. 오션스 때문에 고혈압으로 죽을 것 같다고 한동안 야구를 안 보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파이러츠 유니폼을 사셨었다.
“건우야.”
“예.”
“그 팀은… 아니, 그 보다. 몇 분 전만 해도 메이저 간다고 했던 녀석이 어떻게 된 일이냐?”
“죄송합니다.”
“뭐가?”
“갑자기 변덕 부려서요.”
메이저리그로 간 게 실수였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중에 어떻게 되건 간에 지금으로써는 그렇게 결정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냐?”
“조금요. 그리고 아버지.”
“뭐냐?”
“반가워요.”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를 두 팔 벌려 안자, 아버지는 미심쩍은 얼굴로 말씀하셨다.
“아침에 국이 좀 상했었나…”
유리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나에 대한 취급이 영 좋지 못한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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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끝나갈 때가 되자,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지금 내게 벌어지는 일이 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과거로 돌아온다는 게 가능해?
이 반지가 타임머신이라도 되나?
하지만 야구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건 제쳐두고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나 원리 같은걸 알아내는 건 포기했다는 뜻이다. 야구 말고 다른 데 소질은 없다.
그냥 하나만 확인하면 된다.
이게 절대로 꿈이 아니라는 거.
팔뚝을 꼬집어봐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긴장을 애써 다스리며 반지를 끼고 침대에 누웠다.
자고 일어나서도 여전히 내가 19살이라면, 이게 꿈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한참이나 뒤척였다.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잠이 들었고, 지난 꿈에 이어 유리가 나오는 꿈을 다시 꿨다.
“그래도 맨입으로 봐줄 수는 없으니까.”
“뭐?”
“누나 소원 세 가지 들어주면 특별히 봐준다. 이게 바로 연상의 포용력이란 거다, 애송이 강건우. 알겠냐? 응?”
내가 지니도 아니고, 소원 세 가지라니.
어쨌거나,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여전히 열아홉 살이었고, 스마트폰에 유리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으며, 어머니가 날 깨워 밥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반지가 은색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검은색의 동그라미 세 개가 반지에 새겨져 있었다.
혹시 이거, 소원 게이지 뭐 그런 건가.
어쨌거나.
나는 과거로 회귀한 것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