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104)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106화(106/385)
여보세요 나야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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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 선수들까지 누나라고 부른다고? 우와…너 때문에…”
유리는 황당함과 억울함,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섞은 다채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야 안 그래도 요새 50대 아저씨도 유리 누나라 부른다…”
22살 어린 나이에, 부산 시민 한정 누나가 됐다가 올림픽 들어 국민 누나가 되어버렸으니.
“그게 다 너 때문…강건우…”
난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든다.
“너 일부러 맨날 인터뷰에서 그러는 거지?”
“누난 역시 똑똑해.”
내 대답에 유리는 헛웃음을 지었다.
“올림픽 결승전에서 다 터뜨리고 유리 누나 내 거라고 인터뷰할 거야.”
“미친.”
“글로벌 누나 각?”
“돌아버리겠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렇게까지 싫은 건 아닌 듯하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이긴 해도 웃고 있다.
내가 손을 내밀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손을 잡았다.
마주 보며 웃을 때, 유리가 말했다.
“넌 진짜 오션스 우승 못 시키면 죽어…”
“갑자기 왜?”
“이제 해외로 튀지도 못하게 생겼어…”
약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다른 말로 넘어갔다.
“결승전 선발로는 아마 데인 크리스티안이라는 투수가 나올 거야. 더블A에서 뛰고 있는데…”
아주 잘 알고 있다.
파워풀한 오른손 오버핸드 투수.
사이 영 상을 총 세 번 탄 천재.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7마일(156.1km/h)인데 싱킹 패스트볼도 95마일(152.8km/h)이고 슬라이더는 93마일(149.6km/h)이 나오더라. 최고 구속은 각자 1에서 3마일 정도 더 얹으면 되고. 체인지업은 90마일(144.8km/h). 어지간한 크보 투수들 포심보다 체인지업이 빨라.”
하지만 한 시즌 사이 영 상을 타면 최소 다음 한 시즌은 날려 먹는 인저리 프론.
유리 몸이라고 하기에는 차마, 유리 때문에 좀.
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경기 감각을 잃어버렸음에도 커리어 내내 사이 영 상을 세 번이나 탔다는 것은 그 투수가 가진 재능의 크기가 얼마인지 상상도 하기 힘들게 만든다.
뭐, 그래도 데인 크리스티안이 데뷔 시작부터 그런 투수는 아니었다.
데뷔 후 첫 두 시즌 정도는 그냥 공만 빠른 투수였고, 세 번째 시즌인가에 첫 사이 영 상을 탄 후 부상으로 골골대다가 30대가 넘어서 사이 영 상을 두 번 더 탄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무기였던 구속을 포기한 후에야 그런 성적을 내고 부상을 떨쳐내게 된다.
커리어 초반에 메이저리그에서 위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한 것은…
“차라리 빠른 공 못 칠 거 같으면 체인지업만 노려도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물론 너야 빠른 공 잘 치지만.”
뭐, 그것도 한가지 이유였고.
어쨌거나.
나는 내게 접근했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이야기를 유리에게 해줬다.
“아. 호텔에 스카우트가 숨어들어왔더라고.”
“그래? 너 보러?”
“응.”
“뭐래? 뭐래?”
소원 물어보니까 오션스 우승시켜달라고 해놓고, 유리가 신난 얼굴로 물었다.
“메이저리그 올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
“그래서 뭐라 그랬어?”
“유리 누나 미국 유학 가거나 메이저리그 팀에 취직하면 갈 수도 있다고 그랬지.”
“이제 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한테도 누나 소리 듣는 거니…?”
“대학교 가면 그 대학교 있는 지역.”
“…”
“팀에 취직하면 그 팀 갈 거라고 했지.”
“어…”
유리가 당황했다.
난 진심이었는데.
“그, 건우야…”
“응?”
“내가 네 앞길 막는 거 아니야…?”
나는 그 손을 꼭 잡은 채 대답했다.
“내 앞길 말고 우리 앞길. 같이 걸어가고 싶어.”
잡은 손이 살짝 꿈틀댔다.
뭐야 이거.
손발 오그라들고 있는 건가?
“미친 강건우…”
유리는 내게 뽀뽀해줬다. 그리고 말하기를, 대만전 4홈런에 실패했지만 노력이 가상해서 해준다고 했다.
“뭐, 여기까지 온 것도 잘 했지. 결승전에서 무리는 하지 마.”
“금메달 따면 누나 주려고. 은보단 금이 낫지 않아?”
“응 우리 건우 금메달 기대하고 있을게. 잘 할 수 있을 거야.”
역시 유리는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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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나간다. 야구도 그렇지만, 모든 종목도 마찬가지다.
개최국 미국이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고,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은 조금 묻혔다. 일본이 전체적으로 부진해서.
어쨌거나, 우리는 꽤 큰 기대감을 받고 있다. 금메달 하나를 더 추가할 기회이기도 하고, 해외파 없이 순수 국내파로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더욱.
“선발은 용재다.”
“예.”
“투수들은 전원 대기한다.”
“예.”
선수단 미팅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일본전을 앞두고는 ‘저 새끼들 다 죽여버려!’ 같은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어딘가 침착한 느낌마저 든다.
사실, 결승전이란 이벤트는 예측이 쉽지 않다.
감독님이 푸념하듯 말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충분히…”
그런데 갑자기 눈에 힘이 들어갔다.
“…잘 한 거라고 생각하는 놈 거수.”
“…”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감독이다.
“최소 은메달 확보했다고 군 생활 끝났다고 생각하는 놈 거수.”
“…”
아니라고 말하기엔, 누군가는 있을지도 모른다.
야구에서 감독의 역할은 꽤 제한적이다. 타순을 아무리 조정한다 한들 한 시즌 전체로 보면 효과는 지극히 미미하다.
게다가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면 선수들을 장기적으로 훈련시킬 수도 없다. 짧은 기간 이루어지는 합숙 훈련에서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그냥 소집 시점에서 가장 좋은 선수를 밸런스를 고려해 뽑고 교체와 작전 타이밍을 잡거나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선수단의 정신력과 사기를 유지하는 것 정도.
“지금 손들면 봐준다.”
거짓말인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야 우리 이 정도면 충분히 잘했어 부담 없이 뛰다 가자’ 같은 말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
“아무도 없지? 분명하지?”
감독님은 인상 쓰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혹시 아냐? 이 중에 메이저리거 나올지. 스카우트들이 돈 싸 들고 쫓아다니게 만들란 말이야. 그게 아니라도 여기서 잘 하면 어? 광고도 찍고. 얼마나 좋아? 나처럼 안 되려면 더 열심히 하라고.”
“감독님이 왜요?”
“은퇴해서 그냥 펑펑 놀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감독하고 있는 거 아니냐.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삼진 하나 잡고 안타 한 방치면 너희 연봉이 올라.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도 잊으면 안 되겠지만, 이게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냐.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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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야구 결승전은, 다저 스타디움에서 치르게 된다.
여긴 꽤 좋은 곳이다.
그러니까, 내 과거의 기억과는 달리, 야구장만 놓고 보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씁쓸한 기억이 있다. 야구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나는 이곳에서 몇 번 정도 등판한 기억이 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를…
음.
심장 한쪽이 쿡 하고 쑤셔 오는 느낌이다.
에슬레틱스 시절 인터 리그 경기에서 다저스와 맞붙게 됐을 때, 유리가 경기를 보러 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난 티켓을 구해주지 않았고 유리는 알아서 티켓을 구해서 경기를 보러 왔다. 그리고 나는…
…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난 정말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같은 놈이었나보다. 나밖에 모르는 쓰레기.
“이야…”
“경기장 진짜 죽이네…”
결승전을 여기서 치르기 위해 올림픽 야구 일정도 손봤다고 하니까.
여기는 내셔널리그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대칭 구조로 되어 있는 구장이다. 조금 오래된 느낌은 나지만 워낙 관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라커룸 내부 시설도 좋다.
KBO의 몇몇 열악한 구장들과는 비교 자체가 힘드니까.
그 열악한 시설의 대표 주자가 바로 오션스 홈구장이기는 하다. 특히 원정 시설을 보고 진짜 놀랐다.
이런 데서 야구를 하라고? 그런 느낌이었으니.
어쨌거나, 전광판에 선발 라인업이 떴다.
1번 타자로는 정부원. 그다음부터 정조준, 나, 서우주, 양대근, 송병재, 배영한, 조용한, 이현동 순이다.
선발로는 박용재가 나서게 됐고, 대만전에서 투수를 조금 아껴뒀기에 어지간한 투수가 다 대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감독님과의 면담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여러 이닝 던져도 괜찮습니다.”
“휴 브레드먼 감독이 날 죽이려고 하면?”
“방탄조끼 사드릴게요.”
어차피 결정은 감독님 몫이다. 하지만 그래도 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런 건 투지로 보일 수도 있고, 승부욕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몸 사리고 피하려는 것보단 훨씬 낫다.
미국 라인업을 보니, 아무래도 상위급 유망주를 많이 출전시킨지라 익숙한 이름이 꽤 보인다.
1번 타자 중견수에 바비 모리스라.
쟤는…
내 친구였다. 꽤 가깝게 지냈다.
유격수 라이언 콜린은 나와 같은 팀에서 뛰었다. 내가 유격수로 나서면 쟤는 2루수로 뛰어야 했었고.
흠.
아무튼, 상대 팀의 면면을 보아하니 아무리 박용재가 컨디션 관리를 잘 했다 하더라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여기는 미국의 홈이고, 미국 야구 팬들이 메이저리그 외의 야구는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승전이기에 미국 팬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대-한민국!”
물론, 한국 팬들도 있다.
경기 직전 마지막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팬들에게 싸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건우야! 내 니 볼라고 부산에서 왔다!”
그 정도면 무조건 인정이지.
나는 60대 정도쯤 되어 보이는 그 아저씨에게 훈련용 배트에 싸인을 해서 선물했다.
“깡꺼누다!”
꼬마 팬한테는 예비용 글러브도 하나.
“건우야아!”
날 발견하고 아래로 뛰어온 유리 누나에게는 환한 웃음.
“우와! 유리 누나?”
“유리 누나다!”
“유리 누나 예쁘다!”
유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웃었다. 나는 펜스 너머로 손을 내밀어 유리의 손을 잡았고, 잘 하고 오겠다고 말했다.
유리의 응원을 받으면서 야구하는 게 이렇게 좋을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그랬어야 했는데.
명백하게 눈부셨던 과거의 커리어 보다, 지금 우리 관계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몰랐던 황금기를 내가 스스로 망쳐버렸지만.
지난 일들 따위는.
그냥, 유리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이 내 전성기다.
전성기라면 누가 상대라도 자신 있다.
“누나한테 선물할 금목걸이 따올게.”
유리가 화사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몸을 풀던 대표팀 선수들이 날 놀리려 들었다.
“와. 강건우. 경기 전에 유리 누나 손 잡고 왔어.”
“오늘 미국놈들 좆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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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됩니다! 마운드에는 미국 메이저리그 유망주 최대어 데인 크리스티안! 그리고 타석에는 대한민국의 리드오프 정부원!
-오늘 관건은 저 투수를 얼마나 빨리 내리느냐입니다. 공이 굉장히 빠르거든요. 어지간한 투수의 속구보다도 체인지업이 빠를 정도예요. 그런 의미에서, 정부원 선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죠. 일발 장타력도 있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물고 늘어지는 역할을 정말 잘 해주고 있거든요.
-예. 정부원, 정조준으로 이루어진 테이블 세터가 출루를 잘 해줬으면 좋겠네요. 이어주기만 한다면 이번 대회 최강의 타자인 강건우 선수가 대기하고 있죠.
-사실 다저 스타디움이 큰 구장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왜 투수 친화적으로 불리느냐. 언덕 위에 만들어진 구장이라 저녁에는 공기가 식어서 하강 기류를 형성하고, 습도 때문에 공기가 무거워집니다. 플라이볼 타구가 쉽게 뻗지 못하거든요.
-예! 말씀드리는 순간! 데인 크리스티안의 초구, 스트라이크! 정부원 선수는 그냥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158km/h 빠른 볼!
-이야. 공이…예. 하던 말씀을 마저 드리면, 그럼에도 구장 크기가 전체적으로 작다 보니 외야 수비 영역이 좁아요. 그러다 보니 2루타와 3루타가 적어지거든요. 조금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2구 던집니다! 아, 파울! 파울라인을 아쉽게 벗어납니다! 싱커 같은데요, 싱커 구속이 무려 152km/h가 나오네요.
-결승전답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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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아웃에서 감탄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도 몇몇 타자들은 국가대표팀 선수답게, 감탄보다는 머릿속으로 타석에서 어떻게 할지 시뮬레이션을 시도하는 것 같아 보였다.
“졸라 빠르긴 한데…야. 그래도 건우보단 느리지 않냐?”
물론 구속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할 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려면 내 공을 때리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사기를 꺾을 필요는 없으니.
그리고 투구 스타일이 꽤 다르다. 데인 크리스티안은 오버핸드로 던지고, 공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훅 꽂히는 느낌이다.
반면, 나는 쓰리쿼터에 가깝다.
“스트라이크! 아웃!”
볼을 많이 보라는 특명을 받고 나간 정부원이 삼구삼진을 당했다.
포심을 보여주고, 빠른 싱커로 현혹한 후, 체인지업. 타이밍을 빼앗겼다.
“미쳤나. 체인지업이 145km/h?”
대표팀 몇몇 투수의 최고 구속이 그 정도거나, 혹은 못 미치는 선수도 있다.
빠른 체인지업은 독이 될 수도 있다. 훈련 때 그 정도는 인지했지만, 그래도 타석에서 직접 겪으면 이야기가 약간 달라진다.
대기 타석으로 나갔다. 조준이 형이 미국 포수를 노려보면서 타석으로 들어서고 있다.
음.
버릇 여전하네.
조준이 형도 좋은 타자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사람이지만, 153km/h 싱커에 크게 헛스윙했다.
아무리 데이터를 확인하고 훈련했다 한들 처음 상대해보는 투수를 상대로는 쉽지 않다.
두 번째 공도 싱커.
배트를 내지 않아서 볼.
꽤 적응력이 빠르다. 우투수가 좌타자를 상대로 바깥쪽 낮게 잘 제구된 싱커를 던지면, 그것도 각이 저렇게 크면 정말 어려워진다.
3구째도 싱커.
“스트라이크!”
존 안에 걸치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지 조준이 형은 배트로 공 위치를 가리키며 살짝 불만을 표했다.
그리고 마지막 공은.
딱!
아마, 체인지업인 것 같다.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다. 라이언 콜린이 공을 품에 안고 1루로 송구해서 아웃.
전력 질주한 조준이 형이 입으로 식빵을 구우며 물러섰다.
음.
“USA! USA! USA!”
“대-한민국!”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타석으로 걸어가면서, 메이저리그 시절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여기는 꽤 치열했다. 꽤가 아닌가.
미국 포수는 가브리엘 테티.
모르는 이름이고 모르는 얼굴.
아무리 상위권 유망주라 하더라도 메이저리그에 굵직하게 이름을 남기기는 어렵다.
나는 그런 곳에서 살아남다 못해, 그곳에서 가장 훌륭했던 선수들의 목록인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시됐던 선수였다.
“빨리 움직여. 존나 다리 저리니까.”
가브리엘 테티가 내게 쏘아붙였다.
내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후회와 함께 묻어두고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까지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다리 저리면 감독한테 바꿔 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운동을 더 해. 돼지 자식아.”
포수 마스크에 가려져 있지만, 낯빛이 변한 것은 충분히 확인했다.
좌타자를 상대로는 주로 싱커.
그리고 우타자를 상대로는 주로 슬라이더를 던질 테니.
홈 플레이트 가까이에 붙어서 섰다. 몸쪽 낮은 코스가 오면 하나 버린다.
그리고 초구는 몸쪽 낮은 코스의 싱커였다.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하나 손해 보고 시작했고, 결승전이니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느껴질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왜일까.
투수가 익숙해서?
경기장이 메이저리그 구장이라서?
그게 아니면, 유리 손을 잡고 유리를 보고 와서?
자세힌 모르겠고, 그냥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따아아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강건우-!!!”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야구에서는 주로 승리자였다는 거.
그리고 유리의 환한 미소를 봐서 그런지 지금 컨디션이 무지막지하게 좋다는 거!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건우야아아아아!”
“유리 누나 좋아서 기절했다아아아아!”
안돼. 이 정도로 기절하면 안 돼.
보여줄 게 얼마나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