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120)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122화(122/385)
A.I. -1-
#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건 그 포지션에 서 있는 것만을 뜻하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일반 야구 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야수는 해야 할 것과 알아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사소한 것들부터 다 그렇다.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좋은 야수가 되려면 단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오는 타구를 잡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아마 내게 풀타임 포수를 맡으라고 한다면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2이닝을 성공적으로 맡긴 했다. 시욱 형이 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단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갱에게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팀을 우선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강건우 선수가 자진해서 마스크를 썼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코칭 스태프들과 누가 포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화하고 있는데, 그가 나서더군요. 사실, 정말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 팀의 유격수이자 마무리 투수입니다. 그가 잘 하는 것을 보고 정말 기뻤지만, 갱에게 또 다른 부담을 지게 한다는 것이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죠.”
사실, 그렇다.
나와 비슷한 신체 사이즈의 유격수들은 커리어 후반으로 갈수록 대부분 3루로 자리를 옮기거나 부상에 시달렸다. 근육량을 조금씩 늘리고 있는지라 더더욱.
내가 멀티 포지션을 장기적으로 소화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다만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 실전에서 테스트해봄과 동시에, 반드시 필요한 상황-포스트시즌-에서 기용될 수 있도록 보여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물론, 갱의 플레이는 정말 좋았습니다. 이 천재 소년이 처음부터 포수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리그 최고의 도루 전문가를 잡아내는 걸 다들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송구는 정말로 멋있었습니다. 다들 동의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볼 배합도 배터리에게 맡겼습니다. 출루를 허용하면 직접 지시할까 했는데, 그대로 끝내버리더군요. 천부적이었습니다.”
사실 송구는 내가 생각해도 꽤 좋았다.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질 때와 수비할 때 공을 던지는 것은 다르다. 마운드에 있을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립을 잡을 수 있지만, 아까 그 상황은 달랐다.
아무튼, 결론은 이거다.
“그가 정규 시즌 중에 포수로 뛰는 모습을 보긴 힘들 겁니다. 이 루키에게도 휴식을 주는 것이 명백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긴 휴식과 훈련량 조정으로 커버하고 있다.
도루를 거의 시도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어쩔 수 없이 다이빙 캐치를 하거나 몸에 무리가 가는 터닝 스로우를 할 때도 있긴 한데, 어지간하면 먼저 움직여서 간결하게 수비하려고 몸보다 머리를 더 쓰고 있기도 하고.
내 차례가 되어 여러 질문을 받았다. 오늘은 조금 정신적으로 피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에, 그냥 원론적으로만 대답했다.
“팀이 우승할 수만 있다면 포수가 아니라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체력은 문제없습니다.”
“기왕 우승한다면 당연히 통합 우승을 하고 싶습니다.”
“인터뷰가 끝나면 뭘 하고 싶냐고요? 유리 누나랑 영상 통화요.”
“지금요? 유리 누나가 보고 싶네요.”
#
-포수 해본 감상이 어때?
나는 정말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영상통화를 걸었다. 머리를 뒤로 묶은 유리가 내게 물었고, 이번 원정의 룸메이트인 국민성은 내가 뭘 하든 신경도 안 쓰고 이어폰을 꽂고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도 테라스로 나가서 대답했다.
“할 만했어.”
-잘 하긴 잘 하더라. 역시 야구는 잘 하는 애들이 잘 해.
“나 잘 했어?”
-응. 당연하지.
“그럼 포수로 포지션 변경할까?”
-안 돼.
“왜?”
유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포수 보다가 마운드 올라갔는데 조용수가 공 받으면 어떡해?
“아.”
-그것도 그런데…
“응?”
-유격수도 그렇지만 포수도 부상 위험성 높으니까…
하긴 그렇긴 하다. 박의현도 의욕이 앞서서 그렇지, 장비 차고 계속 날뛰다가 체력이 거의 방전 직전까지 간 거다.
최근 타율도 뚝 떨어진 편이었다. 큰 부상이 아니라지만 강제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그런 문제다.
어쨌든, 요새 유리랑 야구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게 좋다.
“머리끈 새로 샀어?”
-오. 강건우. 눈썰미.
“누난 코랄이 잘 어울리더라. 예뻐. 잘 어울려.”
-응? 그런 것도 알아?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응. 누나 립스틱도 거의 다 그쪽 계통이잖아.”
그냥 뭐…
경험적인 지식이라고 해야 하나.
별 것 아닌데도, 유리가 꽤 좋아했다. 자기에게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야구 이야기도 좋다. 유리가 좋아하는 대화 주제다.
그런데 요새는 그냥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게, 뭔가 그냥 내가 더 즐겁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유리도 이런 대화를 좋아하니까.
별 의미는 없지만, 의미 있는 대화들.
큰 내용은 없더라도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지켜보고 있는지.
이걸 의미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내 인생의 목표는 홈런왕이나 월드 클래스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이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거니까.
뭐, 야구는 그걸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행복을 위한 유일한 수단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요건 정도.
한참을 통화하다 들어왔더니, 국민성이 자기 손으로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끄러웠어요?”
“아니.”
그렇게 말하고 날 빤히 바라보는 걸 보니,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말씀하실 거 있으면 하세요.”
“스트라이드를 조금 더 바깥쪽으로 빼니까 투심 무브먼트가 조금 더 생기는 것 같은데 공이 아예 바깥으로 빠지거나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 조금 늘어나는 느낌이 들어.”
내가 그 말을 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국민성은 숨도 제대로 안 쉬고 랩 하듯 내뱉었다.
그리고 말이 끝나자 다시 평온한 평소의 그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잠깐 고민하는 동안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음.
뭐가 좋을지는 본인이 판단하는 것이 최선이다. 내 말만 듣고 그대로 따랐다가 실패라도 한다면?
이게 메이저리그에서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이유긴 하다.
국민성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얼마나 뺐어요?”
“발 하나 정도.”
“중간 정도로도 해봤어요?”
“응.”
“내일 훈련 때 한 번 같이 볼까요? 내일 불펜투구 있죠?”
“고맙다.”
국민성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꽤 만족스럽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다음 날 우리는 함께 훈련했다. 배트 효과를 톡톡히 본 노노 형제에 울프팩도 끼어들고 싶어 했지만, 투수 트레이닝 파트라서.
내가 국민성과 함께 밸런스를 잡으려고 보폭을 조절하는 동안, 선풍기 둘(울프팩과 노루형)과 소형 에어 서큘레이터(노경우)는 뒤에서 우리를 구경하며 담소를 나눴다.
“나도 투수 하고 싶다.”
“형님, 투수는 왜요?”
“햄이 이래 봬도 고등학교 때 에이스 출신이다.”
“근데 왜 타자로 전향했어요?”
“마…내 타격 재능을 그냥 썩힐 수는 없다 아이가…”
노경우가 썩소를 지었고, 둘 사이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던 거대한 덩치를 가진 울프팩이 또박또박 말했다.
“머-라-카-노.”
우리가 모두 놀라서 바라보자, 울프팩이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갱. 이 친구들한테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하라고 전해줄 수 있어? ‘머라카노’가 다시 한번 말해달라는 뜻 맞지?”
누가 울프팩한테 저렇게 가르쳐 준거야?
#
몇 번 생각했던 이야기다.
나는 KBO에 대해 아주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 날듯 말 듯 한 이름들이 있기는 하다. 물론 더 명확하게 기억나는 사람들도 있고.
신기한 것은, 오션스 2군에서 올라오는 선수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선수 중에는 유리가 욕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생각해보면, 유리가 욕을 그렇게 많이 했다는 것은 오션스 1군에서 꽤 오래 버텼다는 뜻일 테고 그 정도로 버텼다는 건 그나마 다른 선수들보다 재능이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부분이다.
또는, 트레이드나 기타 다른 방식으로 그 팀에 가서 국가대표로 뽑힐 만큼 성장한 선수도 있을 테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김정용 선배의 대체 선발로 올라온 2군 투수 종석진은 유리에게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던 선수다.
신장은 185cm 정도인데, 체중이 얼마일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살이 많이 찐 모습이었다.
옆에서 슬쩍 들으니 120kg이라고 했다. 아마 좀 줄인 게 아닌가 싶다. 저게 모조리 근육이면 홈런왕이 될 텐데.
“아이쿠, 코치님. 제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 헤헤.”
2군에서 올라온 코치들에게 냅다 달려가서 친목을 시도했다. 그리고 몇몇 선수들에게도 그랬다. 음. 노루 형에게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선배님! 이 못난 후배 놈 잘 가르쳐주고 이끌어 주십쇼!”
대근이 형이 알려줬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야.”
“그래요?”
“전 수석 코치 있지? 그 사람이 저 학교 출신들을 정말 좋아했어서…그래도 이제 괜찮을 거다. 예전처럼 출신 학교 가지고 밀어주고 하는 건 없어졌으니까.”
이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특정 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 감독 초중고 후배가 와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투수의 실력은, 그러니까.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다. 공에 힘 있고, 변화구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거야 연습하면 되는 일이고 배짱도 그럭저럭 괜찮고.
이것까지만 보면 괜찮은데, 이제까지 2군에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2회 말이었다.
포수 마스크를 쓴 조용수가 포크볼을 놓쳐 주자들에게 한 베이스씩을 더 허용하자 카메라에 잡히건 말건 욕을 해댔다.
블로킹은 포수의 능력이긴 한데, 그래도 저 정도로 바운드 되는 공을 던졌으면 어느 정도는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진 폭투.
“하. 씨팔. 오늘 좆 같네 진짜.”
그리고 노경우를 보고 혀를 찼다. 아무래도 팀 케미스트리를 조져놓는 데다가 만만하게 여기는 상대한테 강한 타입인 것 같다.
노경우가 황당해하길래, 나는 그냥 가만히 놔두라고 손짓했다.
아직 잘 모르니까 저러는 거다.
우리 감독님이 한국어 욕을 얼마나 잘 아는데…
#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볼 판정이 좀 이상하긴 했다.
잡아 줬다가 안 잡아 줬다가. 내가 투수라도 좀 짜증이 났을 것이다.
존이 이상하더라도 일정하게 이상하면 방법을 찾을 수는 있다. 몸쪽을 안 잡아주면 바깥쪽을 노리거나, 높은 코스를 안 잡아주면 낮게 낮게 승부하거나.
하지만 오늘은 좀 그랬다.
지난 이닝에서 안 잡아준 것을 잡아주고, 조금 전에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던 코스를 만루에서 볼넷으로 선언해버리고.
투수의 어려운 점은 이런 부분이다. 존이 어쨌거나, 기록은 그대로 남는다.
종석진의 오늘 성적은 3.2이닝 8실점 7자책.
사사구 7개에 피안타 4개. 피홈런 하나는 보너스.
종석진은 글러브를 집어 던지며 불만을 표했다. 그런데 또 명백하게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던 것은, 그 오락가락하는 스트라이크 존이 우리뿐만 아니라 상대 팀 투수에게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양 팀 합계 사사구가 24개가 쏟아진 날이었다. 심지어 메테오스 용병 타자 빅터 발타사르는 심판에게 항의하다 퇴장 명령을 받기도 했다.
결과를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졌다. 경기 막판에 열심히 따라붙으려고 했지만 10대 6 패배.
심판 탓도 있겠지만 포수의 영향도 분명히 있다. 감독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수로 나가겠다고 쳐다본 것이 아니었는데.
경기 끝나고 박의현이 감독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감독님은 박의현을 부상자 명단에 올리지 않았다. 2군에 내리지도 않았고.
따지고 보자면 휴 브레드먼의 야구는 믿음의 야구다.
“감독님! 저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저 박의현! 어릴 적 별명이 좀비였던 남자! 예! 말도 안 되는 회복력! 그리고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뼈를 가진 남자! 저희 증조부님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6·25전쟁에서 수류탄 파편을 맞고도 하루 만에 일어나신…”
감독님은 통역사를 통하지 않고도 박의현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챈 모양이었다.
“준비됐나?”
아 유 레디 정도는 박의현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박의현은 공익 출신이면서 절도있게 경례하며 외쳤다.
“옛써!”
뭐, 그렇게 복귀가 결정된 모양이었다.
그보다는 오늘 경기가 조금은 화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사구는 터져나갔지, 선수들의 불만도 폭발했지, 게다가 돌소금 전쟁이었지.
그런데 경기 후에 알고 보니, 우리 경기는 완전히 묻혀있었다.
[아이언스 용병 타자 카를로스 발렌수엘라, 심판 폭행!] [야구장에서 볼 판정 불만으로 심판 폭행 사건 발생.]어…
맞다. 이거 때문에 존 판정이 A.I로 대체 됐었지.
내가 ABS(스트라이크 존 판정 기술) 회사 주식을 얼마나 사뒀더라?
#
-박정신 : 하…
-서우주 : ???
-서우주 : 너네 용병 왜 저러냐???
-박정신 : 모르겠다 진짜…
-송병재 : 야 넌 진짜 팀 운이…
-양대근 : ㅜㅜ정신 형님
-송병재 : 아 오션스가 그렇다는건 아니고
-양대근 : 아닙니다 정신 형님 계실땐 좀 그랬죠 ㅜㅜ
-박정신 : 대근아…
-박정신 : 그냥 오션스 남을걸 그랬나보다
-백준섭 : 와
-백준섭 : 안그래도 걔 성질 더럽다 했는데 심판을 갈겨버리네
-조용한 : 이게 무슨 일이야
-조용한 : 팀 좀 어떠냐??
-박정신 : 형님
-박정신 : 진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박용재 : 오늘 우리 빅터도 심판 칠 뻔 했는디
-박용재 : 정신이 형 힘내여
-박정신 : 고맙다
-채지성 : 형 죄송합니다
-박정신 : 아니다 니가 뭔 잘못이냐
-봉재석 : 지성이 형 던질때 일어난 일이죠?
-채지성 : ㅇㅇ;;;
-채지성 : 진짜 개놀랬음
-박정신 : 지성이 잘못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라
-김권종 : 와 방금 영상 봤는데
-조용한 : 김권종 이상한 소리 하지마라
-이대훈 : 김권종 채팅금지
-김권종 : ???
-김권종 : 네
-정조준 : 와 나도 방금 봄
-정조준 : 그걸 갈겨버리네
-정조준 : 우와 진짜 진심
-손용기 : 정좆
-손용기 : 아니 정조준
-정조준 : 뭐라고요???????? 정좆이요????
-손용기 : 급하게 입닫ㅇㅡ라고 하려다가 오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