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129)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131화(131/385)
FAN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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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구단에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구나.
그래도 저렇게까지 요란스럽게 할 줄이야.
“부산이 어떤 도시냐 하면, 저거 보소. 크. 저래 공을 들인다, 공을. 아무튼, 야구만 잘 하면 예? 뭐가 됐든 다 해준다! 택시도 공짜로 타고! 밥도 공짜로 묵고! 여기서 어? 우승 몇 번 하모! 나중에 붓산 시장도 될 수 있다 아이가! 머꼬. 선불이가.”
택시 기사님도 사직 구장에 나부끼는 생일 축하 플래카드를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아무튼, 예상보다 일이 좀 큰 것 같았다.
설마 이렇게 요란스럽게 일 벌여놓고 서프라이즈 같은 소릴 하진 않겠지.
-나 : 누나
-유리 누나 : 응 도착했어?
-나 : 혹시 오늘 내 생일이라고 구단에서 뭐 준비한 거 있어?
-유리 누나 : 아니
-유리 누나 : 전혀
-유리 누나 : 모르겠네
-나 : 알겠어
-나 : 나중에 봐 ㅎㅎㅎ
아무래도 약간 당황한 걸 보니, 같이 준비한 것 같다.
어쨌거나, 내가 훈련장으로 들어갈 때 보이는 사람마다 내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홍보팀 직원, 구장 관리인, 트레이너, 매니저, 응원단장 등등.
“오. 생일 축하한다, 건우. 선물은 안 샀다. 나간 비루한 서민이 너 같은 부르주아 선물 준비해봤자 성에 차지도 않을 텐데. 안 그러냐?”
배영한이 얄밉게 실실 쪼개며 말했다.
서민은 무슨.
78억짜리 FA가 그런 말을 해?
“예. 감사합니다.”
“너 그냥 야구 때려치우고 전업 투자자 해도 되겠다. 개잡주에 계약금 거의 다 태웠지? 존트론 아직도 오르던데. 이야. 다음엔 형도 좀 끼워주라.”
“뭔 소린데요? 건우가 주식 고수라고요?”
옆에 있던 노루 형도 관심을 가졌지만, 난 잘 모른다. 그냥 이게 엄청 화제가 됐었던 것만 알고 있지. 잘 모르는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 사람’의 출현 때문이었다.
“오! 해피! 버스! 데이! 투! 유! 강! 건! 우! 우! 윳! 빛! 깔! 강! 건! 우! 강건우! 생일 축하한다! 생일 축! 하! 합니다! 생일 축! 하! 합니다! 사랑하는 강-건-우! 생일 축하! 합니다! 워후워우우우우!”
생일 축하 모자에 이상한 코주부 안경을 쓴 박의현이 괴상한 춤을 추며 내게 접근했다.
자.
주변을 보자.
상기된 표정으로 카메라를 들고 쫓아오는 홍보팀 직원.
바로 옆에서 생일 축하 케익을 들고 따라오는 비장한 표정의 노경우.
조금도 안 어울리는 요란한 생일 축하 모자를 쓰고 입에 이상한 피리를 물고 뒤를 따르는 국민성.
저 양반은 또 왜 저 바보들이랑 묶여 있는 거지?
노경우는 요즘도 엉덩이를 흔든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멈추는 타이밍을 배웠다.
달려오면서 엉덩이를 살짝살짝 흔들고 있다.
뭔가 있다.
바보 삼인방(요란한 소리를 내는 피리 때문에라도 국민성도 포함할 수밖에 없었다)이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결정적인 순간 고개를 홱 돌려 노경우의 케익 공격을 피해냈다.
퍽!
“생일 축…”
퓨르르르르르릇-
박의현의 노래와 국민성의 피리가 함께 멈췄다. 날 덮치려던 케익이 노루 형의 얼굴에 박혀 있었다.
“어…시욱이 형…”
순간 정적이 흘렀다. 노루 형은 굳어있다가 손으로 눈가의 케익을 쓱 닦아냈고, 천만다행으로 카메라를 발견했다.
“…케익…”
제대로 맞았다. 내가 맨날 노경우 어깨 약하다고 놀리지만, 그래도 야구 선수다. 타격이 꽤 있었을 것이다.
노루 형은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얼굴에 묻은 케익을 떼서 입에 넣으며 말했다.
“아, 달다. 아이고 달다. 아이 좋다. 경우야.”
“예, 형…”
“니도 좀 무 봐라. 아이 달다. 아이 맛있다.”
노루 형이 얼굴에 묻었던 케익을 닦아내 노경우의 얼굴에 발라버렸다.
그리고 추격전이 시작됐다.
“마! 노경우! 일로 온나!”
“형! 실수에요! 죄송해요!”
“알겠으니까 일로 온나! 콩 한 쪼가리라도 노나 먹게!”
둘이 사라지고, 방에서는 공허한 피리 소리만이 들려왔다.
퓨르르르르릇-
국민성이 그제야 입에서 피리를 떼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물고 있는 거 깜빡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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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고가 있긴 했지만, 따로 생일 축하 파티가 있었다. 경기 전이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노경우가 노루 형 옆에서 눈을 깔고 있다는 점 외에는 딱히 뭐.
경기 전 마지막 훈련 때 보니, 관중들이 모두 생일 축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음.
좀 과하지 않나…?
다른 선수들이 좀 박탈감 느끼지 않을까?
나야 뭐. 그냥 신경 끄고 경기에 집중할 생각이긴 한데.
생각해보면 이훈 같은 선수들은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집중이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이 팀 프런트 일 하는 거 보면 좀 오락가락하는 편이기는 하다. 입단할 때도 그랬지. 어찌나 언플을 해대던지. 그러다가 못 하기라도 했으면 욕을 곱빼기로 먹었을 텐데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준비가 끝났다. 그런데, 시구자와 시타자가 우리 부모님이었다.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다. 어쩐지 두 분이 뭔가 숙덕대시더라니. 두 분은 시구 시타를 마치고 날 안아주고 들어가셨다.
완전히 가득 들어찬 만원 관중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노경우가 입을 벌리고 관중석을 돌아보다가 말했다.
“우와…나는 12월생이라 이런 이벤트 못 받겠네…”
12월생이라서가 아니라…음. 굳이 입 밖에 꺼낼 필요는 없겠지.
아무튼.
이런 것들 보다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괜히 들떠서는 안 된다.
리그 경기에서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오늘 상대 선발이 누군지 생각해보면 답은 명쾌해진다.
승기 형이 미친 짓을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게다가 그 형, 어지간히 집중하지 않으면 치기 힘든 공을 던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날 상대로 절대 피해가지 않는다는 거지만.
유격수 위치에서 수비 자리를 잡았다. 마운드에는 앤디가 섰다.
다이아몬즈 덕아웃 쪽에서 승기 형의 지저분한 눈빛이 느껴지는 것 같다.
경기에나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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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가필드는 처음 한국에 와서 이 소란스러운 팬들에게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괜찮았다. 안 괜찮으면 어쩌겠는가. 저 사람들의 입을 막을 방법은 없다.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게 앤디 가필드 개인에게 도움이 된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외부 자극에 둔감해지는 법을 배우고 제구가 안정되는 효과를 봤다.
물론 본인은 그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다이아몬즈는 이번 시즌 최악의 부진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시즌 초반부터 이랬다면 정용호 감독이 물러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 앤디는 경기 초반에 포심과 커브 위주로 풀어나가기로 했다.
다이아몬즈의 1번 타자는 오션스에서 FA로 이적한 김성호. 발 빠른 우투좌타 외야수가 4구째 커브에 크게 헛스윙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단 9구로 1회를 마무리 지었다. 커브로 삼진 하나와 땅볼 두 개를 유도한 앤디는 이닝을 마무리 짓고 포효하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어진 1회 말.
민승기는 사직 구장을 쭉 둘러본 후, 감상에 잔뜩 젖은 표정으로 1번 타자를 맞이했다.
노경우.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다.
경기 직전, 오션스tv에서 이 선수를 봤다. 그리고 그 전에도.
오션스의 촐랑거리는 분위기 메이커 중 하나이자 막내.
민승기가 보기에는, 꽤 좋은 컨택 능력과 적절한 파워, 스피드를 가진 타자. 잘만 성장한다면 리그 최고의 2루타 양산 기계가 될 잠재력이 있는 선수.
시즌 타율 0.269.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수비력이 일취월장했고 타석에서의 집중력도 좋아졌다.
다만, 선구안이 아직 농익지 못해 유인구 승부에 말려들곤 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지.’
유인구로 승부할 필요가 있는가?
‘없다.’
그냥 힘으로 짓눌러 버리면 된다.
딱!
153km/h 포심이 몸쪽을 파고들었고, 노경우는 본능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잘 갖다 맞히는군. 그러나…’
내야에 높게 뜬 타구. 유격수 정예성이 살짝 움직여 잡아냈다.
‘1구에 1아웃.’
민승기가 피식 웃었다. 목표는 단연 퍼펙트. 그렇다면 공 하나로 아웃 카운트 하나를 따낸 것은 고무적인 성과다.
‘배영한.’
까다로운 상대.
국가대표팀 동료.
시즌 타율 0.325.
출루율은 0.389로 타율과 출루율의 갭이 크지 않다. 하지만 날카로운 타구를 날린다. 명백히 노경우의 업그레이드 버전.
힘으로 그냥 짓누르려 하면 기술로 때려내는 선수다. 민승기는 이 좌타자의 바깥쪽 낮은 코스에 투심 두 개를 던져 1볼 1스트라이크를 만든 후 체인지업으로 땅볼을 유도해냈다.
딱!
“아웃!”
3루수 땅볼.
그리고 이제.
수도 없이 마음속에서 싸워왔던 상대와 마주 서서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투수인지 증명할 차례.
“강-건-우우우우! 강! 건! 우! 강건우! 오션스 강건우!”
“갱! 건! 우!”
민승기의 눈이,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여버릴 것처럼 서늘하게 강건우를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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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야!”
“유리 누나가!”
“생일 축하한단다!”
아웃 카운트의 상태나 주자 유무와는 관계없이, 오션스 팬들은 강건우가 타석에 나가 있을 때 점수를 낼 확률이 크다고 여긴다.
물론, 그건 사실이었다.
강건우는 이번 시즌 내내 44개의 홈런을 때리고 126타점을 기록했다.
민승기가 강건우에게 초구를 던졌다.
따아아아악-!
강렬한 타격음.
오션스 팬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지만, 곧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폴대 옆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파울 타구.
강건우는 쯥 하고 소리 내며 입맛을 다시고는 타석으로 돌아왔다. 조금 밀렸다.
민승기는 자신의 생각보다 더 큰 타구에 조금 놀랐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상상과는 달랐지만 어차피 결과는 같다. 1스트라이크를 앞섰다.
2구 슬라이더. 파울 혹은 헛스윙을 유도할 계획이었다. 강건우의 배트가 따라 나왔고 라인 옆으로 흘렀다.
민승기의 마음이 벅차올랐다. 계획대로다.
3구째의 계획은 몸쪽 투심. 주상욱의 연속 슬라이더 싸인에 인상을 구기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 민승기는 자신이 원하는 싸인이 나올 때 까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일방적인 합의가 이루어졌고, 민승기는 두근대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몸쪽 투심을 던졌다.
강건우의 배트가 나오고 있다.
두근.
과연, 자신의 계획대로 헛스윙이 나올 것인가.
자기가 봐도 제구가 잘 된 공이었다.
힘을 빼고 던진 것도 아니다. 맹렬하게 회전하며 날아가고 있다. 어지간한 타자라면 배트를 안 내는 게 아니라 못 내서 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건우의 배트는 분명히 끌어냈다. 이제 남은 것은…
빠각!
결과뿐.
강건우의 빠른 스윙으로도 제대로 맞히는 데는 실패했다. 배트가 부러졌고, 민승기는 자신의 계획대로 삼진까지는 아니지만, 삼자범퇴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함성이 심상치 않았다. 뒤를 돌아보자, 배트가 부러지면서 날아갔음에도 타구가 높게 날고 있었다.
민승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니, 아니야. 안 돼!”
높게 날아간 타구였다. 체공 시간이 꽤 길었다.
하지만 배트가 부러진 탓인지 펜스를 넘어가지는 못했고, 아슬아슬하게 외야수 글러브에 쏙 들어갔다.
“아-”
관중석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소리라 해도, 24,500여 명의 탄식은 다르다.
하지만 민승기는, 두 팔을 다시 번쩍 들어 올리고 펄쩍펄쩍 뛰었다.
삼진을 잡겠다는 계획과는 달랐지만, 그리고 배트가 부러지면서도 펜스 가까이까지도 날려버리는 강건우의 장타력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저 주상욱은 민승기가 자신의 이름을 외치면서 포효하거나 강건우에게 목 긋는 시늉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형…들어가요…”
현재 최강의 타자인 강건우를 무사히 잡아낸 것이 기분 좋은 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형…”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이니까.
“형…들리세요…? 승기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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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오늘 게임 돌았네…”
관중석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여기서 유추해보자면, 오션스가 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지고 있었다면 게임 돌았네가 아니라 저 새끼들(오션스 선수들) 돌았네라는 말이 나왔을 테니까.
1이닝이 끝난 후, 선수들의 영상이 전광판에 나왔다. 생일 축하한다는 멘트와 약간의 농담.
3이닝이 끝났을 때는 강건우 스페셜이 나왔다. 홈런이나 호수비 혹은 강속구 스페셜이 아니라, ‘유리 누나 무새 강건우’ 영상.
며칠 전부터 홍보팀에서 모은 ‘유리 누나요’라는 대답을 짜깁기 한 영상이었다.
구단 홍보팀 직원이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것은 그런 영상들이 잘못 뽑혀서가 아니었다.
영상은 괜찮았다. 팬들에게 나눠준 생일 축하 모자도 퀄리티가 꽤 좋아 반응도 훌륭했다. 팬 중에 강건우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다들 소리높여 강건우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문제는, 5회까지 단 한 명도 출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생일 축포라고 칠 겸 홈런이 몇 방 터졌으면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그런 걸 바라고 있었는데.
민승기는 오늘 정말 괴물 같았다. 강건우 타석의 장고(長考) 외에는 인터벌도 거의 없다시피 해 타자들의 타이밍을 제대로 뺏고 있었다.
제구도, 구위도, 구속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았다. 오션스 관중들이 할 말을 잃게 했다.
다만, 오션스 팬들이 그나마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었다.
오션스 타자들이 단 한 번도 출루하지 못한 사이, 다이아몬즈 타자들도 1루를 한 번도 밟지 못했다는 사실.
양 팀 다 0의 행진.
5회까지 이어진 앤디 가필드와 민승기의 퍼펙트 대결.
앤디 가필드는 오늘만큼은 밀리지 않겠다며 준비했다.
강건우의 생일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민승기에 대한 일종의 라이벌 의식 때문에.
[오션기 내년 영입하고 용병들 재계약하면 민승기-가필드-커크 1, 2, 3선발 ㄷㄷㄷㄷㄷㄷ]민승기가 좋은 투수란 건 안다.
내년에 자기가 여기 있을지 없을지는 본인조차도 모른다.
하지만, 자리를 그냥 내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사람들이 민승기가 본인보다 당연히 좋은 투수라고 말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그 어느 때 보다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오션스의 5회 말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가필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득점 지원 따위.
다음 이닝의 피칭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전광판에 오션스가 준비한 영상이 떠올랐다. 5회가 끝나면 클리닝 타임이다. 다른 이닝보다 공수교대 중간의 시간이 길다.
전광판에 강건우의 ‘유리 누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우야아…
부끄러운 듯한 모습.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선수도 아니고, 그냥 선수 여자친구인데. 그것도 신인의.
그런데 마치 프랜차이즈 스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듯했다.
-아,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려고…
정유리의 얼굴에 부끄러운 웃음이 걸렸고, 정유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주저앉더니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이거 다시 하면 안 돼요? 아, 생각보다 많이 부끄러운데. 다시 하게 해주세요. 네?
강건우는 덕아웃 밖으로 나와서 전광판만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 비친 정유리를 바라보는 눈이 반 정도는 풀려 있었다.
-음. 네. 고맙습니다. 다시 할게요.
-건우야! 생일 축하해!
강건우는 구단이 준비한 모든 이벤트에 무덤덤했지만, 이 영상편지만큼은 마음에 들었는지 바보처럼 웃으며 그 영상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생일 축하하고, 태어나줘서 고맙고…어, 또…
살짝 눈치를 보던 전광판 속의 정유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사랑해…
관중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건우야! 유리 누나가! 사랑한단다! 그러니까! 홈런 한 방만 쌔리도!
영상편지가 끝나고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강건우의 표정이 180도 달라져 있었다.
응원단의 공연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