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161)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163화(163/385)
떡상입니다 -2-
#
정조준은 고교 시절부터 주목받았던 선수였다. 강건우가 갑자기 튀어나오기 전만 하더라도 KBO에서 가장 다재다능하고 강력한 선수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잘 치고, 잘 넘기고, 잘 뛴다.
그런데 강건우가 나타났다. 더 잘 치고 더 잘 넘기는데 뛰지는 않고, 어마어마하게 잘 잡는 데다가 말도 안 되게 잘 던진다.
아무튼, 정조준은 오션스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데뷔 첫 홈런을 때린 상대가 오션스의 김정용이었다. 정조준은 인터뷰에서 ‘프로에서는 공이 무거울 줄 알았다’라는 뉘앙스의 발언으로 오션스 팬들에게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었고, 홈런 치고 베이스를 돌다가 주먹 감자를 날려 징계를 받기도 했다.
김정용이 워낙 순한 성격인 데다가, 한때 오션스에서 굉장히 친한 사이였던 손용기가 거의 사정하다시피 해서 큰일로 번지진 않았다.
물론, 팬들의 감정은 별개의 문제였다.
정조준은 굳이 팬들에게 변명하진 않았다. 사실,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그냥 본인이 그런 일을 저질렀고, 그걸로 끝이었다. 자신에게 악플을 다는 것조차 일종의 컨텐츠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정조준은 본인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선수였다. 파이러츠 선수들이 정조준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캐치볼 하면서 자꾸 잔소리하는데, 이 잔소리가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코치한테도 그래서 아무도 안 놀아줄 뿐이었다.
그것보다는 강건우가 흥미로웠다.
캐치볼 하면서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괜찮았다. 물론 강건우가 대화를 잘 받아주는 편은 아니지만.
그리고 아주 작은 부분이 있다면, 캐치볼 할 때 강건우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도 조금이나마 있었다.
추가로 강건우가 공 던질 때의 습관을 관찰하고 싶은 생각 또한.
별 소득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도 상관없었다. 같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강건우라는 선수를 궁금해하지 않는 선수가 없을 정도고, 입 밖으로 꺼내기는 힘든 이야기고 승부와는 상관없는 말이긴 하지만 정조준 또한 강건우의 팬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정조준은 오션스를 이기고 싶어 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야구선수로서의 강건우를.
과거의 오션스는 정조준에게 한 끼 식사 같은 존재였다. 수비에 약점이 가득했고 투수들의 레퍼토리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경기 초반에 신경 써서 조금만 두들겨 패놓으면 불펜이 올라온다. 그러면 게임 끝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다르다. 작년 시즌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많은 것이 달라졌다.
“태오! 강건우 다음 타석에는 조금 더 신경 써!”
“예. 코치님.”
“그냥 볼넷 내준다고 생각하란 말이야. 어? 리키 기억나지?”
리키 미겔은 지난 시즌 파이러츠의 외국인 투수였다.
데뷔전 상대가 오션스였고,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강건우에게 2타점 2루타를 맞고 양대근에게 홈런을 맞았다.
그리고 그 투수는 시름시름 앓다가 퇴출당했다. 지난 경기에 호투하며 새 에이스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투수가 망가지는 꼴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쇼.”
“조준이 니가 펜스 타고 올라가서 강건우 홈런 걷어내 주려고?”
“아뇨.”
“그럼?”
“제가 승기 형 패서 맛탱이 가게 만들고 오겠습니다.”
“야.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정조준은 히죽 웃었다. 그리고 코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강태오에게 계속 말했다.
“이시욱이랑 울프팩 요새 감 좋으니까 싱커 위주로 가고, 7, 8, 9번 한테는 강하게 해보자. 타바레즈 공은 괜찮지?”
“예. 그냥 뭐. 강건우였잖습니까. 쟤한테 맞은 건 평균자책점에 반영 안 해야 해요. 괴물이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다.”
#
같은 타격 성적을 기록하더라도, 포지션이 어디냐에 따라 선수 평가는 달라진다.
특히 좌익수는 팀 내에서 수비 중요도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그러므로 팀 내에서 상위권의 타격 능력을 가진 선수가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파이러츠의 간판타자인 정조준은 프로 입단 후 타격에 더 집중하기 위해 좌익수를 맡았다.
유격수는 보통 수비력에 더 점수를 준다.
그런데 오션스 간판타자 강건우는 KBO를 우습게 보일 정도의 타격 성적을 보여줬고, 수비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조준은 지난 시즌을 끝낸 후,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
사실 그건 민승기도 마찬가지였다.
두 선수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졌지만, 둘 다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타입이었다.
또 다른 공통점을 찾자면 강건우에게 느끼는 감정.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들에게 강건우는 일종의 시련과도 같았다.
야구에서 어떤 선수가 다른 선수에 비해 명확하게 빼어나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강건우는 누굴 붙여놔도 몇 단계는 위의 성적을 보여줬다.
강건우를 뛰어넘어야 한다. 같은 팀에서든, 다른 팀에서든.
물론, 민승기는 강건우를 투톱 주인공으로 여기고 있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민승기는 파이러츠 중견수이자 1번 타자 박근수를 상대로 삼진을 뽑아냈다.
지난 시즌과 합산해 23.2이닝째 무실점.
2번 타자 김해근은 초구 투심을 건드려 2루수 땅볼 아웃.
정조준은 파이러츠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들으며 타석으로 나섰다.
오션스 원정 팬들이 ‘좆준아 곱게 죽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정조준은 그런 외침은 자체적으로 걸러내는 편리한 귀를 가진 선수였다.
민승기는 상대가 누구든 신경 쓰지 않는다. 강건우만 아니라면.
오션스 벤치는 어지간하면 직접 싸인을 내지 않고 배터리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민승기는 이게 마음에 들었다.
오늘 호흡을 맞추는 주상욱은 신중한 편이라서 종종 자신의 결정에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박의현은 시원시원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받아주는 편이다. 지난 퍼펙트게임 때는 투구 인터벌이 아주 짧았다. 상대 선수들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공격적이고 빠른 피칭이 먹혀들었다.
주상욱도 그걸 보고 느낀 바가 있는지, 마음에 드는 구종과 코스를 요구했다.
결정되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바로 투구 자세를 취하고 타자를 공격해야 한다.
사람들은 타자가 공격한다고 생각하지만, 민승기는 다르게 생각했다. 투수가 타자를 먼저 공격하고 타자가 받아친다. 자신이 던지지 않으면 경기는 멈춰있다.
투수란 얼마나 주인공에 걸맞은 포지션인가.
공이 날아갈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저 공에 타자가 헛물을 켜면 더더욱. 관중들이 반응을 보이면 더.
따악-!
공격적인 투수와 공격적인 투수의 맞대결.
고민 없이 존 안에 꽂아 넣는 투수의 공, 그리고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쏘아져 나오는 배트.
그리고.
“아웃!”
타구 발사 속도는 빨랐지만 발사 각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타구는 유격수 엔딩.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좆준아! 고마 들어가라!”
팔로 스윙 후 자연스럽게 배트를 뒤로 내던지고 달려나가던 정조준을 멈춰 세운 것은 강건우의 다이빙 캐치였다.
“아. 강건우 저거 진짜.”
당연히 안타라고 생각했던 정조준의 허망한 얼굴.
“큭큭큭…”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 민승기의 웃음.
“우와! 강! 건! 우! 내야의 지배자! 내야의 황제! 야구 그 자체! 민! 승! 기! 역사상 최고로 완벽한 투수! 마운드의 남바 완!”
좀 쉬라고 벤치에 앉혀놨더니 입은 쉴 생각이 없는 박의현까지.
강건우는 씩 웃으며 정조준을 바라보곤 덕아웃으로 걸어갔고, 민승기는 주상욱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주상욱. 날 믿어라.”
“강건우는 믿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틀렸어.”
“아뇨. 아무래도 전 옳은 것 같습니다.”
원래는 조금 어려워하는 사이였지만, 한집에 살면서 민승기가 계속 주상욱을 굴리다 보니 약간의 반항심이 생겼다. 그리고 뜻밖에도 민승기가 후배 선수의 반항에 상당히 관대하다는 것을 알게 된 주상욱은 요즘 참지 않고 있었다.
“너도 살다 보면 무언가를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물론, 민승기는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뿐이었다.
#
[갠적으로 좆준이새끼 건우한테 비비는거 존나 어이없음]└양심 터진거지 ㅋㅋㅋ
└좆준이가 건우보다 번트는 잘 댈듯
└아 ㅋㅋㅋ 건우 번트 개못한다더라 ㅋㅋㅋㅋ
└일말의 인간성 느껴지네 ㅋㅋㅋㅋ
└조준이가 건우보다 못한게 뭐임?
└건우 1회에 홈런 후리고 좆준이는 건우한테 타구 잡힘 이것만 봐도 앎ㅋㅋㅋ
└조준이도 좆건우 같은 홈런 밥먹듯 침
└그새끼는 밥을 단식원에서 처먹나봄 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ㅋㅋㅋ단식원이면 킹정이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건우 작년에 유일한 실점 조준이 홈런인거 잊었음?
└뽀록이지 십새끼야 ㅋㅋㅋㅋㅋ
└씨발롬들 강건우 올려치기 존나 심하네
└꼴갤와서 강건우 왜 올려치냐는 댓글 쓰는놈이 비정상 아니냐?
└좆준이 칭찬은 느그갤 가서 하던가
└개새끼들아 니네가 우리갤 와서 조준이 욕 도배하고 갔잖아ㅡㅡ
└아 그랬음?
└몰랐는데 언제 그랬대
└그래서 으쯔라고
#
9회까지 양 팀은 총 27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 뭔가가 나올지 모른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8명의 타자가 큰일을 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
슈퍼스타들은 시즌 내내 뛰면서 스타가 아닌 선수들보다 좀 더 많은 결정적일 역할을 해낼 뿐이다. 모든 경기에서 항상 승리를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나는 오늘 홈런을 쳤다.
다음 타석에서는 볼넷을 얻었고, 내가 도루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는 파이러츠 배터리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2루를 훔쳤다.
대근이 형도 볼넷을 얻었고, 노루 형이 쓰리런을 때려냈다. 좌투수가 우타자에게 몸쪽 컷 패스트볼을 던지는 건 자신의 구위를 믿는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어쨌거나, 승기 형의 연속 퍼펙트 기록은 중간에 깨졌다.
어쩌면 지난 경기의 여파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야구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다.
조준이 형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다. 승기 형은 고개를 까딱하면서 타구를 바라보고 있었고, 조준이 형은 배트를 요란하게 집어 던지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베이스를 돌았다.
“마! 강건우! 넌 솔로 홈런! 나는 투런 홈런! 내가 이겼다!”
아무도 그런 건 신경 안 쓴다. 나는 승기 형에게 물었다.
전에 홈런 맞고 마운드에 쓰러져서 울었던 게 떠올라서.
“형. 괜찮아요?”
승기 형은 의외로 덤덤하게 대답했다.
“길가다 재수 없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거나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저 사람한테 정조준이라는 타자는 돌부리 정도?
6이닝 2실점으로 등판을 마친 후 표정이 조금 씁쓸해 보이긴 했다.
“올 시즌 롤렉스 30개를 포수에게 다 뿌리려는 내 계획이…”
솔직히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닐까 싶다. 퍼펙트를 30번 하겠다고?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발상이다.
파이러츠도 선발 투수를 내렸고, 이제 불펜 싸움으로 들어갈 타이밍이다.
7회에는 이휘은이 마운드에 섰다. 유리가 코치했을 때 제일 빠르게 성과를 보여준 투수다.
내가 보기에도 선발보다는 불펜이 어울린다. 70~80구를 던지면 구위가 눈에 띄게 떨어지고, 완급조절보다는 구위로 짓누르려는 투구를 펼친다.
최고 150km/h의 포심은 구속도 구속이지만 회전수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짱이 괜찮다. 승부욕도 강하다.
빠각!
파이러츠의 선발 투수와 비슷한 패턴이다.
우투수 이휘은이 좌타자에게 몸쪽 커터.
타자가 급하게 배트를 냈지만 영 힘없이 맞아 배트가 부러졌고, 배트 조각이 하필 투수 쪽으로 향했다.
원래는 투수가 처리해야 할 타구다. 하지만 이휘은이 배트 조각을 피하느라 공을 잡을 여유가 없었기에 내가 달려나가 2루 베이스 앞쪽에서 처리했다.
글러브로 잡고 공을 빼고 자세 잡고 던지면 늦을 수도 있다.
자세를 낮춰서 맨손인 오른손으로 잡아 그대로 송구.
“아웃!”
1아웃.
우타자에게는 원래 잘 던지던 포심과 포크볼을 섞어서 삼진.
2아웃.
그리고 다음 타자에게는 진짜 구위만 믿고 존에 아무렇게나 커터를 집어넣어서.
따악!
“아웃!”
뻗지 못하는 타구를 유도해내 중견수 플라이 아웃.
홀드를 따내고 이닝을 삭제시킨 이휘은은 꽤 기뻐 보였다.
그리고 8회는 김정혁의 차례다. 포수 팝플라이로 1아웃을 잡고 볼넷을 하나 내준 다음 삼진을 따낸 후 안타를 한 방 맞긴 했지만.
3루 강습타구를 노루 형이 뜻밖의 순발력으로 잡아채 이닝을 끝냈다.
“메가 노루 다이빙!”
기분이 좋아 보인다. 오늘 홈런도 한 방 때렸고, 결정적인 수비로 파이러츠의 추격을 막아냈으니.
“노-루! 노-루! 노-루!”
자기가 자기 입으로 노루라고 말해놓고, 팬들이 노루라고 외치자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시욱인데…”
“형이 본인 입으로 노루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나는 이시욱인데…”
그리고 초코파이를 한입에 삼키고는 곧 그 일을 잊었다.
멘탈 하나는 메이저리그급이다.
#
강건우가 마운드에 오른다. 지난 시즌 25이닝 1실점. 25경기 등판 25세이브 무적의 마무리 투수.
파이러츠 타자들은 긴장하면서도 외쳤다. 작년 그 1실점을 내준 것이 바로 우리를 상대로라고.
스코어 4대 2.
마침 1번부터 타순이 시작된다. 아주 단순한 계산으로, 1, 2번이 출루하고 정조준이 또 강건우를 상대로 홈런을 때리면 끝내기다.
“박근수! 박근수!”
“가아아앙거어어어언우우우우우!”
“건우야!”
“유리 누나 엄마가!”
“세이브 하고 오란다!”
“사위 사랑은 장모님 아이가! 건우야!”
최고의 타자와 무적의 마무리가 있다.
근데 그게 한 선수다.
오션스 원정 팬들이 파이러츠 홈에서 악다구니를 치다시피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파이러츠 1번 타자가 루킹 삼진으로 물러났다.
“강건우우우우우우!”
“체고다! 건우야!”
1번 타자 박근수가 볼이 아니었느냐고 심판에게 항의했지만, 심판은 할 말이 없었다.
“근수야.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기계가 판정하는데 심판이 뭐라고 하겠는가.
거의 바운드될 듯 떨어지는 커브였는데 스트라이크 판정이었다. TV 중계로는 명확히 보였다. 존을 통과할 때는 존 안이었고, 포수 미트에 도달할 때는 땅 근처였다는 것이.
말 같지도 않은 낙폭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버렸다.
강건우는 2번 김해근에게는 포심 두 개를 던져 2스트라이크를 잡은 후,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는 체인지업으로 두 번째 삼진을 따냈다.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배트가 지나간 후에야 공이 들어왔다. 허공에 떠서 잠깐 멈춰버린 것 같은 체인지업이었다.
어떻게든 출루해 정조준에게 기회를 이어주겠다는 계획 따위는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정조준이 타석에 섰다.
정조준은 강건우를 도발했다. 우측 외야석을 배트로 가리켰다. 예전에 홈런을 칠 때 그 코스였다.
물론 홈런을 친 곳은 사직 구장이긴 했지만, 만화에서나 나오던 예고 홈런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경기장은 들끓었다.
“정조준! 그래! 남자가 자신감이 있어야지!”
“마! 좆준이 돌았나!”
“조준아 함 넘기라!”
“건우야 점마 잡아라!”
정조준은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홈런을 맞은 후, 강건우는 리그에서 166km/h를 던지지 않았다.
포커스를 150km/h대 중반에 맞춘다.
그리고 무조건 풀스윙이다.
시범 경기에서 너클볼에 허를 찔리긴 했지만 설마 실전에서 그러진 않을 테니까.
무조건 친다.
이길 수 있다.
강건우가 투구를 시작했다. 정조준도 정신을 집중했다.
강건우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포심.’
알 수 있었다. 이건 포심이다.
‘존.’
들어온다.
때릴 수 있다.
강건우가 대단한 건 맞다.
하지만 자신도 제대로 준비했다.
강건우를 이기기 위해서.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고, 야구장에 있으면 뭘 하든 공적인 일이다.
따각!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코스도 맞고, 구종도 맞는데.
구속이 다르다.
배트가 다 나가서 제대로 맞히기 전에 소리가 났다. 그리고 타구는 높게 떴다.
“내가!”
강건우가 크게 소리치고 내야수들을 물러나게 했다. 정조준은 전광판에 찍힌 167km/h를 보고 멍한 얼굴로 강건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웃! 경기 종료!”
강건우는 마운드 쪽으로 높게 뜬 타구를 직접 처리했고, 심판이 경기 종료를 알렸다.
“야이 사기꾼 새끼야!”
정조준이 외쳤지만, 강건우는 신경도 쓰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정유리 코치가 있는 곳을 향해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