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168)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170화(170/385)
X핑 테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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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오~어제도오~내일도오~아직도오~”
유리는 오늘 경기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퇴근하는 길에 운전대를 잡고 약간 아저씨처럼 구수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호를 받자 눈을 감고 바이브레이션을 넣었다.
“건우야아아~유리 누나가아아아~”
피식 웃으니까 날 찌릿 노려본다. 그냥 웃으면서 쳐다보자 흥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팩 돌리더니 다시 노래를 불렀다.
“홈런 한 방마으으으안~쳐달란드아아아아…야. 뭐 찍냐?”
동영상을 찍다가 들켰다. 말을 돌려보자.
“오늘 되게 기분 좋아 보인다?”
“기분? 당연히 좋지이.”
“술 먹고 운전하는 건 아니지?”
“야. 강건우. 너 지금 누나를 뭐로 보고.”
“누나를 사랑스럽게 보는 중인데.”
“하…”
유리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는 술 안 마셔도 만취한 것처럼 놀 수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귀엽기도 하고.”
“내 말이.”
“그치? 진짜 사람 미치게 한다니까.”
“고럼고럼.”
“오션스 구단 마크 누나 얼굴로 바꾸면 안 되나? 그럼 연봉 안 받고도 평생 충성할 수 있는데.”
“…”
“왜?”
“그만해…내가졌어…”
진짠데.
유리는 갑자기 운전에 집중하더니, 차선을 바꿔서 방향을 틀어버렸다.
“어디 가?”
“맥주 한 잔만 하자. 광안대교 바라보면서.”
“그래.”
“누나 맥주 마실 동안 우리 건우는 탄산수라도 마셔.”
하긴. 기분이 좋을 법도 할 거다.
유리는 메이저리그에서 인스트럭터를 할 때도 자기가 손댄 선수가 성과를 낼 때마다 자신만의 파티를 하곤 했다.
승기 형이 커브를 장착해서 더 강해진 면모를 보였다 하더라도, 그 형은 원래 국가대표 빅3 인데다가 지난 시즌 투수 골든글러브도 탄 사람이다.
이휘은이나 이훈도 좋아졌긴 하지만, 오늘 국민성은 완봉승을 거뒀고 2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투수가 됐다. 지난 경기 7이닝, 이번 경기 9이닝.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성과가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오션스 우승이 소원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인데,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나는 뒷좌석에 쟁여둔 야구공을 꺼내 싸인을 하기 시작했다.
“뭐 해? 싸인볼은 왜?”
“데이트하는데 누가 알아보고 싸인해달라고 하면 하나씩 쥐여주고 보내게.”
유리가 입을 살짝 벌렸다. 물론 팬들에게 하나하나 신경 써주는 게 좋긴 한데, 데이트할 때는 좀.
“다른 때는 몰라도 누나랑 오랜만에 데이트 하는 건데 방해받긴 싫어.”
내 말에 유리가 잠깐 생각하더니 픽 웃었다.
“오. 준비성…”
요새 황석규 선배가 종종 박의현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한다. 사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구단에서 꽤 많은 사람이 박의현을 따라 한다.
“나 강건우. 준비성 하나는 철저한 남자…”
유리가 크게 웃었다. 나는 공 하나에 싸인을 더 한 후, 슬쩍 말했다.
“언제든 허락만 떨어지면 혼인신고 하러 갈 준비가 된 남자.”
유리가 더 크게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억!”
내 반응을 보고 또 웃었다.
유리는 맥주 두 캔을 샀고, 나는 그냥 생수를 챙겼다. 탄산수 많이 먹으면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수 있다…라고 생각해보니 좀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 강건우?”
광안리 해변에서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유리도 마찬가지다.
“유리 누나?”
유리는 이제 여자들이 자기를 보고 누나라 부르는 것에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꾸벅 고개숙여 인사하고, 뒷일은 내가 맡으면 된다.
“안녕하세요. 잠깐만 바람 쐬고 갈 건데, 소문 안 내주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싸인볼을 꺼내 손에 쥐여주면, 대부분의 팬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물러난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을 거다. 나는 팬이라도 선을 넘으면 강경하게 대처하는 편이지만, 의외로 여기서 뛸 때 그런 경우는 아직 겪지 못했다.
인적이 뜸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차에서 챙겨온 작은 스포츠 타올을 유리 앉으라고 깔아주며 말했다.
“나 강건우…”
뒷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유리가 빵 터졌다.
“야아. 왜 자꾸 박의현 흉내 내?”
“누나가 웃으니까.”
유리가 기막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앉았다. 칙, 하고 맥주 캔 따는 소리가 바닷바람에 촉촉하게 섞인다. 유리가 맥주를 꿀꺽꿀꺽 넘기고는 크으 하고 아저씨 같은 소리를 냈다. 유리는 맥주 안주로 맥주 한 모금을 더 마시는 타입이다. 한 번 더 같은 소리가 났다.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고 맥주를 마시는데, 맥주가 넘어가는 유리의 목선이 흰 초승달같이 보였다.
홀린 듯 보고 있다가 유리와 눈이 마주쳐 물었다.
“팬에서 스타가 된 기분이 어때?”
“음. 글쎄. 잘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그런가?”
유리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작년부터 하도 그래서 좀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너 때문에.”
“나?”
“하도 유리 누나 거려 가지고.”
유리가 슬쩍 웃었다. 싫어했으면 그만했을 테지만, 또 그런 건 아니어서.
“글쎄. 음. 모르겠다. 좀 책임감 같은 것도 생기고.”
“책임감?”
“응. 인턴이긴 해도 일단은 월급 받고 일하니까…사실 예전에도 죽어라 욕하면서도 분석하고 그랬거든. 근데 이제 이걸 실제로 발전시켜야 하니까.”
“부담스러워?”
“부담감도 있긴 한데…그래도 재밌어. 너도 옆에 있어서 든든하고.”
내가 해준 건 많이 없지만, 도움이 조금이라도 됐다면 다행이다. 맥주 캔을 흔들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마신 유리가 다음 캔을 깠다.
“신기하긴 해.”
“뭐가?”
“건우 네가 프로 야구 선수가 된 것도, 오션스 선수가 된 것도, 그리고 내가 오션스 코치가 된 것도. 전부다.”
세상엔 신기한 일이 너무나도 많다. 그중 최고로 신기한 일은 내가 과거로 돌아온 일이다.
그런 생각도 해봤다.
과거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꿈을 꾼 것은 아닐까 하고.
길고 긴 예지몽…같은 거.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꿈을 꾼 것 가지고 내가 이렇게 해낼 수가 있었을까.
그런데 또,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유는 뭐.
그냥.
그때의 유리에게 미안해서다.
“나도 신기해.”
“넌 뭐가 신기해?”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다는 거. 서로 마주 보고, 웃고 있는 거.”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었다. 아마 이해 못 할 거다.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내 진심일 뿐이다.
“그…”
“마! 보소! 갈 길 가소!”
뭐라고 말하려는데, 뒤쪽에서 누군가가 다투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날 발견하고 다가오는 팬을, 다른 오션스 팬 한 사람이 제지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저는 그냥…”
“사생활 침해라 안 하나!”
이걸 고마워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유리는 그걸 보고 씩 웃더니 맥주 한 캔을 그대로 원샷 해버렸다. 미국에서 내가 유리를 놀렸던 것이 기억난다. 맥주 정수기냐고 했었다.
유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자. 대리 부를게.”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서서, 뒤에서 살짝 말다툼하고 있는 팬들에게 다가가 가방에서 싸인볼 하나씩 꺼내 선물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늦어서 저희 그만 가볼 건데, 싸우지 마세요.”
투닥대던 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 경기 홈런 정말 멋있었다며 야구 이야기를 했다.
음.
노루 형도 좀 그런 스타일이긴 한데.
가끔 느끼는 건, 이 사람들은 정말 일희일비를 몸에 달고 사는 것 같다는 거다.
그리고 대리운전 기사님이 도착하자마자 우릴 보고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어! 강건우! 어! 유리 누나!”
부산에서 평범하게 살긴 글러 먹었나 보다. 유리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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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리는 배터리 회의에 참석했다. 투수 코치와 배터리 코치가 동석했고, 이훈과 박의현 및 주상욱도 함께였다.
오늘 경기의 전반적인 운영에 대해서 의논하는 자리다.
이훈이 국민성 다음 순번으로 던지는 것은 꽤 괜찮은 배치였다. 이훈은 포심 패스트볼 기준으로 140km/h대 중후반의 공을 던지고, 이건 KBO에서는 꽤 빠른 구속에 속한다.
물론, 국민성이 어제 경기에서 보여줬듯 구속이 다는 아니다. 하지만 130km/h대의 구속에 익숙해진 상대 타자들에게는 더 빠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메테오스 타자들 선구안이 꽤 괜찮아. 차라리 공격적으로 나가는 게 좋겠어.”
배터리 코치의 말에 정유리가 동의를 표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클린업 트리오를 제외하면 특히 더요. 장타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수비 믿고 던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는…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후니후니.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공격적으로 투심 위주의 피칭을 하되, 타자가 타이밍을 잡는다 싶으면 빠른 공으로 카운트를 잡자.”
박의현은 회의에서는 그렇게 시끄럽게 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정유리는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았다.
진지한 박의현을 보는 것도 어색한데, 흔치 않은 진지한 얼굴로 후니후니라니.
론버거 킨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좋아. 그렇게만 하면 되겠군. 후-니-후-니. 내 의견을 조금 말해보자면, 우타자들에게 슬라이더를 조금 던져봐도 좋지 않을까 싶어. 후-니-후-니가 지난 경기에서 투심으로 효과를 봤고, 어제도 투심에 당했으니까. 어때?”
통역사가 말을 전달하자, 이훈은 조금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슬라이더를 던지긴 하지만 그리 자신 있는 구종은 아니었다.
“모든 상황에서 결정구로 쓰라는 말은 아니야. 카운트를 잡을 수 있을 때는 괜찮다는 말이지.”
론버거 킨 투수 코치의 말에 정유리가 덧붙였다.
“특히 김세진한테는 괜찮을 것 같아요. 145km/h 이상 속구 상대 타율이 0.391인데 우투수 슬라이더 상대 타율이 0.110이거든요. 이번 시즌 경기하는 거 보면 배터박스에서 투수 가까이 서요. 원래 변화구에 약해서 공이 다 꺾이기 전에 치려고 시도하는 것 같은데, 슬라이더 던질 때 어중간하게 말고 완전히 바깥으로 빼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각각 타자에 대한 디테일한 대비책도 세운다. 이해석을 상대로는 무조건 바깥쪽 낮게. 3루수를 라인 선상에 가까운 위치에서 전진 수비시키고 내야수들을 전체적으로 3루 쪽으로 이동시킨다.
2번 타자 복현성에게는 공격적으로 피칭한다. 선구안이 좋아 어설프게 빠지는 공에는 배트가 안 나온다.
FA 영입생인 3, 4번은 조금 신중하게. 5번 외국인 타자에게는 포크볼 위주로.
박의현은 좋은 포수다. 이훈이 이런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집어넣을수록 잡생각이 많아지는 것을 알기에, 본인이 더 열심히 숙지해두려 한다. 이훈은 생각이란 것을 하면 안 되는 투수다.
이훈은 이훈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이런 준비가 전혀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계획을 세우더라도 마운드에 서면 상황이 어떻게든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코치진이 개편된 뒤의 회의는 꽤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예전 투수 코치는 몹시 단순한 편이었다.
‘야. 타자는 말이다. 145키로만 넘어가도 공 제대로 못 쳐. 그러니까 그냥 존 안에 스트레이트 두 개 꽂아 넣고 포크볼 던져서 삼진 잡으면 게임 끝이라 이거야. 이해가 안 되냐? 어렵게 갈 필요 없지?’
말이 쉽지.
벤치에서 투수 코치가 낸 싸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다가 연타석 홈런을 맞은 게 한두 번도 아니다. 시킨 대로 했는데 투수 코치는 또 화를 냈다. 요령 없이 막 던진다고.
투수에게 던지기 싫은 공을 억지로 던지게 하면 제 위력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훈은 요즘 코치들 외의 다른 투수들에게도 많이 배우고 있었다. 민승기는 경기 전후 몸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가르쳐줬고, 김정용은 항상 흔들리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어느새 25살이 되었다. 이제 뚜렷한 족적을 남길 때가 됐다. 마음속에서 전의가 불타올랐다.
그리고 그 전의는, 불펜 피칭을 하고 있는 강건우의 167km/h 속구를 보고 사그라들어버리고 말았다.
파아앙-!
“좋고오!”
파아앙-!
“끝내주고오!”
파아앙-!
“지리고! 아야야, 잠깐만, 잠깐만! 내 손바닥!”
흥겹게 소리를 지르며 공 좋다고 외치던 불펜 포수가 몇 구 받더니 무릎을 꿇고 공을 받은 왼손의 통증을 호소했다. 어떻게 저런 공을 던지는 걸까.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박의현은, 같이 몸을 풀고 난 후 직접 이훈의 공을 받아주겠노라고 나섰다.
파앙!
이훈이 공을 던지고, 박의현이 공을 받았다.
박의현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외쳤다.
“아이고오오오! 후니후니이이이! 내 손바닥! 부러진 것 같다! 경기력 향상 금지 약물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구위가 말도 안 되게 좋다, 후니후니! 아이고 내 손바다아아악!”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선준 트레이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치병이네요, 불치병…”
“선생님! 제 손은 이제 못 쓰는 건가요!”
“예…더 이상 야구를 하긴 어렵겠습니다…”
“아이고오오오오 이제야 빛을 보나 했는데 후니후니 구위 때문에 이렇게 야구를 접어야 한다니이이이!”
장단을 맞춰주던 트레이너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진짜 이런 말 하기까지 고민 정말 많이 했는데, 진짜 약하시는 거 아니죠?”
박의현이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저 박의현. 게임에서조차 약 같은 건 빨지 않는 상남자! 아주 어릴 때 보약을 좀 잘못 먹긴 했지만 감기조차 걸리지 않아서 감기약조차 안 먹는 남자! 예! 저는 그런 남자입니다!”
“다 나으셨습니다.”
“어이쿠! 역시 김 트레이너님! 당신은 프로 스포츠계의 한 줄기 햇살! 크으으으!”
“예예…저 김선준, 손만 대도 다 낫는 오션스의 허준 같은 남자…”
“크으으으으으으! 최고 십니다! 자! 후니후니! 피칭을 계속하지! 걱정 마라! 손바닥이 터져도 김 트레이너님이 고쳐줄 테니까! 자아!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