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173)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175화(175/385)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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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기에 등판해서 3승.
20이닝을 소화했고 3실점 하며 평균자책점은 1.35.
29개의 탈삼진, 사사구는 3개.
개막전 퍼펙트게임. 6이닝 2실점. 1실점 완투승까지.
민승기는 시즌이 개막하고 13일이 지난 지금.
하루하루가 자신의 생일 파티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행복하다.’
전율이 차오른다.
때로 수원에 두고 온 다이아몬즈 팬들이 마음에 밟히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일본 팬들이 선물을 보내주며 자기 팀으로 와달라고 했던 것도 약간은 걸렸다. 만약 오션스가 자신에게 오퍼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거기로 갔을지도 모른다.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볼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행복은 여기 있었다.
오늘 경기는 정말 좋았다. 홈런을 내주며 마지막에 동점을 허용하긴 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오션스 선발투수 민승기였다.
경기가 끝난 후, 박용재와 대화를 나눴다.
“너무한 거 아녀?”
“좋은 승부였다. 내가 이겼으니까.”
“강건우 없었으면 내가 이겼을 겨.”
“좋은 생각이네.”
“뭣이?”
“2년 뒤. 오션스 유니폼을 입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라.”
“형은 왜 맨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만 하는겨?”
“내년에 권종이 오고 내후년에 너도 오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허는디.”
“오션스는 외국인 타자 둘에 투수 하나를 써도 괜찮겠지.”
“아. 뭐래는 겨 자꾸. 나 간다.”
부끄러움이 많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설마, 여기 오고 싶지 않을 리가 없는데.
아무튼.
“민승기! 민승기! 민승기!”
“승기야! 와줘서 고맙다!”
“구단주님 민승기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기가 끝났는데도 팬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응원단장이 부랴부랴 내려와 자신을 불렀다. 팬들이 민승기 선수를 너무 좋아한다고, 팬들에게 한마디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굳이 이 눈물을 감출 생각은 없었다. 뜨거운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물론, 자신의 열정만큼 뜨겁지는 않았기에 뜨겁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오션스 승리 투수 민승기입니다.”
강건우는 흙투성이가 된 채로 덕아웃 구석에서 정유리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오늘도 든든하게 공을 받아준 박의현은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저는 별 것 아닌 놈입니다. 팬 여러분이 제 이름이 쓰인 유니폼을 입고 이곳을 찾아와 제 이름을 불러주셨을 때, 비로소 저는 의미 있는 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합니다.”
팬들은 열광했고, 박의현은 이상한 자세로 그 발언에 환호했으며, 강건우가 인상을 쓰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급기야 민승기는 임시 단상에서 팬들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정유리가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자, 강건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누나. 승기 형 마약 같은 거 하는지 검사 좀 해줘. 아무래도 진짜 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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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와 메테오스의 명품 투수전. 9이닝 1실점의 민승기가 9이닝 2실점 박용재에게 승리하다.]└민승기 국대 1선발 ㅇㅈ
└둘다 개쩔더라 진심
└그래도 민승기가 위임
└몬 개소리임 둘이 팀 바꿔서 던졌으면 박용재 9이닝 무실점 민승기 9이닝 5실점임
└그게 맞지 시발 개승기 저새기는 걍 좆건우빨임 홈런까서 점수내줘 수비로 다 막아줘 9회 말 되니까 출루하더니 도루해서 득점권 들어가 ㅅㅂ
└아ㅋㅋㅋㅋ갓건우 부러우면 꼴빠 하시던가 ㅋㅋㅋ
└존나 억울해서 잠이 안온다 진짜 개씨발 그냥 10위 처했으면 강건우 메테오스 왓을거고 그럼 ㅆㅂ 우리랑 저새끼들이랑 바꼈을텐데
└꼴션스=럭키 메테오스
└마 오션스가 그냥 진 줄 아냐? 왕조 건설 하려고 유망주 모으느라 한동안 탱킹한거임 ㅋㅋㅋ
└탱킹은 지랄하네 걍 야구 좆같이 못해서 꼴아박아놓고
└돌멩이 왜케 풀발함
└풀발 안 하게 생겼냐
└근데 니넨 유리 누나 없자나 ㅎ
[개막 후 10승 1패 부산 오션스. 올해는 정말 다른가.] [‘100억’ FA 민승기, 강렬하게 드러내는 존재감.] [민승기, ‘팬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휴 브레드먼, ‘하나의 팀으로 경기를 하고 있다. 느낌이 좋다. 이기는 유전자가 갖춰졌다.’] [(이용길의 야구회로) 시즌 130승 페이스의 부산 오션스.]└꼴레발 터졌고요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지랄이냐 맞는말 했는데
└130승도 보수적으로 잡은거 아님?
└ㅇㅈ민승기는 30승 페이스고 강건우는 117홈런 260타점 페이스임
└강건우 요새 도루 살살 하는데 시즌 타자 전관왕 쌉가능일듯
└타자 전관왕+세이브왕
└첫끗빨이 개끗빨
└첫끗빨도 못 세우는 놈들이 말이 많아
[FA 투자+트레이드로 선수단 뎁스 강화에 성공한 오션스 단장 박준기, ‘누구에게나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올해가 바로 그 세 번 중 한 번이 아닐까 싶다.’]└시즌 초부터 지랄났네 지랄났어
└DTD냄새 나만 남?
└될(D) 팀(T)은 된다(D) 말하는거임?
└다운 팀 이즈 다운 이새끼야
└꼴레발 존나게 떨다가 성적 꼴박하면 볼만할듯
└그럴일 없음 걱정마셈 ㅎ
└걱정이 아니라 기대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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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경기 승리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민승기, 김권종, 박용재는 어느 팀이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다. 승기 형은 우리 팀으로 와서 김권종과 박용재에 정면승부로 대항할 수 있는 선발투수가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펜의 뎁스가 그리 두껍지는 못한 가운데, 민승기-앤디 가필드-국민성의 세 선발투수가 개막 이후 이닝을 엄청나게 먹어치우며 불펜을 싱싱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고무적이다.
물론, 아직 시즌 초반이다. 11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그래도 패배가 익숙했던 팀이 지난 시즌에 승리의 맛을 깨닫게 되고, 그 감을 잊지 않고 이어나가며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좋은 징조일 수밖에 없다.
몇 경기 정도 비슷한 내용으로 패배하면 선수들도 위축된다. 특히 지난 시즌, 연패에 빠질 때를 보면 보통 불펜에서 문제가 생길 때가 많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불펜이 가동될 때 야수들의 표정이 안 좋아진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긴장감에 휩싸이게 되면 손발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수비에서 에러가 나오게 되고, 타석에서 변화구에 쉽게 속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 달라졌지. 그치? 너도 느끼지 않아?”
…라고 유리가 말하며 기뻐하고 있다.
물론, 내 생각도 그렇다.
“맞아. 선수들 표정부터 달라졌어.”
“그치? 어제 민승기 인터뷰 진짜 감동이더라. 이러다 정말 우승하는 거 아냐?”
동의할 수 있으면서도 동의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냥 웃었다.
유리가 신나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다.
“감독님도. 승리의 유전자라니. 와. 그 말 듣고 소름이 쫙.”
패배의 아이콘이 승리의 유전자를 갖췄으니, 오랜 오션스 팬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유리만 봐도 안다.
우리 부모님도 기뻐하긴 하시는데, 아버지는 파이러츠로 갈아탔다가 돌아오셨고 어머니는 원래 오션스 팬이 아니셨으니 그런 감정은 좀 덜할지도 모르겠다. 모태 꼴션스 팬이자 가족 전체가 그런 포지션인 유리네 가족 구성원들과 비교하자면 말이다.
한동안 신나서 승기 형 칭찬을 하던 유리가 갑자기 장난스럽게 웃으며 날 쿡 찔렀다.
“야. 혹시 민승기 칭찬만 했다고 삐진 건 아니지?”
“물론 내가 맹활약하지 않았더라면 퍼펙트게임도 없었을 것이고 어제 승기 형이 승리 투수는커녕 완투도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삐진 건 아니야.”
유리가 신나게 웃었다.
주변 사람들이 대체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물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이유가 유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나는 약간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오션스의 역사상 첫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것은 똑같다.
잠깐.
“누나.”
“응?”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혹시 말이야.”
“응.”
“통합 우승 아니라도 우승으로 쳐 주나?”
유리가 제대로 정색하며 대답했다.
“통합 우승 아니면 우승 아니지.”
“그럼 오션스는 아직 우승 한 번도 못 한 건가?”
“야.”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통합 우승 이야기는 오션스 팬들의 역린 같은 것이다. 때로 84년도에 후기리그 우승 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으니 통합 우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긴 한데.
아무튼, 1982년 프로야구 시작 이후 아직까지 정규시즌 우승의 경험이 없다는 점은 내가 이 팀 선수인데도 신기하긴 하다.
“그건 다르지.”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오션스 이야기가 나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오션스 선수로서, 어? 구단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어?”
사실, 흥분한 유리도 귀엽다. 날씨가 좀 흐리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었는데, 어떻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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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역시 승기 행님. 크으으. 최고.”
하와이안 피자를 쐈다가 자신이 욕을 먹을까 봐 전전긍긍했던 이시욱의 표정이 꽤 밝았다.
물론, 어제 경기에서 무안타에 그치긴 했다. 민승기도 민승기지만 컨디션 최고조의 박용재는 KBO에서 언터처블에 가까웠다.
“존나 fantastic. Good.”
오늘은 박의현이 쉬는 날이다. 겨우내 민승기에게 혹독하게 굴려진 주상욱도 꽤 안정감이 있다. 주상욱이 블로킹 훈련을 하는 걸 본 오늘의 선발투수 앤디 가필드가 주상욱에게 칭찬을 퍼붓고 있었다.
감독의 성향상 백업 선수들이 크게 기회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럴 때 후보 선수들이 의욕을 가지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몇몇 선수들은 드물게 찾아오는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배영한에게 타격을 배우고 있는 김세완은 꽤 컨택 능력이 늘었다. 오픈 스탠스에서 클로즈드 스탠스로 바꾸며 어깨가 빨리 열리지 않게 수정했다.
대수비로는 정예성이 앞서고 대타로는 주상욱에게, 대주자로는 유준에게 밀리는 뒷순위 후보 선수지만, 시즌이 진행되며 주전 선수들의 체력이 고갈되면 찾아올 기회를 위해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여러모로 좋은 분위기였다. 주전 선수도 후보 선수도 해이해지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히 강점이었다.
당연히 모든 프로야구팀이 다 분위기가 좋지는 못했다. 10승 1패로 압도적인 선두로 치고 나선 오션스가 특히 좋을 뿐.
-조용한 : 건우 어제 무리하던데
-조용한 : 하루 정도 쉬어도 괜찮지 않냐?
바이킹스는 현재까지 11경기를 치러 5승 6패를 거두고 있었다.
주전이자 국가대표이며 KBO 최고 수준의 포수인 조용한을 필두로, 어지간한 팀에 가면 주전 포수 자리 정도는 쉽게 차지할 거라는 정현덕, 그리고 2군 강건우라는 별명이 붙은 우동석(2028시즌 2군 성적 0.391/18홈런)까지.
포수 왕국이라 불리고 있었지만 지난 시즌 테이블세터진이 모두 빠져나간 바이킹스는 그 공백을 힘겹게 메꾸고 있었다. 포수는 어차피 한 명 밖에 출전하지 못 한다.
그리고 오늘, 사직 야구장에서 바이킹스와 오션스의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강건우 : ㅎㅎ
-강건우 : 살살 하겠습니다
-정조준 : 저새끼 또 구라치네
-정조준 : 요새 존나 열심히 하더만
-김권종 : 프로가 열심히 하는건 미덕이야 조준아
-정조준 : 아 권종이형 왜 맨날 나만 가지고 그래
-김권종 : 다른 사람한테라도 똑같이 말했을거야
-정조준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조준 : 죽고싶다
-김권종 : 요새 무슨 고민 있니?
-김권종 : 그런 말은 농담으로라도 입에 담지 마
-강건우 : 권종이 형 말이 맞습니다
-백준섭 : 니네 또 뭐 하냐?ㅋㅋㅋ
-민승기 : 김권종
-민승기 : 운 좋은 줄 알아라
-김권종 : ???
-민승기 : 이번에 나랑 안 붙는게 운이 좋은거지
-민승기 : 박용재는 끝났고 다음은 너다
-박용재 : 아 또 뭔 끝이여
-박용재 : 저 형 요새 더 이상해진거 같어
-강건우 : 저 형 원래 이상했는데요
-박용재 : 요새 좀 더 심해진 거 아녀?
-강건우 : 아닙니다
-강건우 : 태어났을 때부터 이상했을 겁니다
오늘 양 팀의 선발투수는 앤디 가필드와 스티브 브룩스.
단톡방에서 자신감을 피력한 것과는 달리, 강건우는 저 투수가 한국에 왔다는 것을 꽤 놀라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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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브룩스가 왜 KBO에 왔는지 조금 이해가 안 된다. 혹시, 나처럼 회귀라도 했나?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현재 시점에서 아직 만 23세에 불과한 스티브 브룩스가 KBO에서 뛴 적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하긴, 대기만성형으로 나이가 좀 든 후에 메이저리그에 이름을 날린 선수긴 한데. 내가 KBO에 남으면서 많은 것이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저 나이의 선수가 한국에 오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일이다.
공은 그리 빠르지 않지만 묵직한 구위에 마구 수준의 슬라이더와 커브로 이름을 날렸었다. 앤디도 메이저리그에서 뛸 재능을 가졌고 단순히 비교하는 건 좀 그렇지만 재능이 최대치로 개화한다는 가정하에 앤디보다 나은 투수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겁을 낼 것까지는 없다. 스티브 브룩스가 이름을 날릴 때도 나는 저 투수에게 상당히 강했었다.
저 투수는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이었고, 나는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어 같은 지구에 속해서 맞대결을 많이 펼쳤다. 내게 홈런 두 개를 얻어맞은 날 저 선수가 에슬레틱스 단장을 욕해서 꽤 파문이 있었다. 날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로 보낸 놈은 쓰레기 자식이라고 말했었지.
어쨌거나, 경기는 시작됐다.
어제 그 명승부에 이어 앤디가 등판하는 금요일 경기니 팬들의 기대가 상당하다.
앤디는 첫 이닝에 몸에 맞는 볼 하나를 내주긴 했지만,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1회 말. 바이킹스에서 온 서창열이 타석에 나섰다.
이적 후 전 소속팀과 만나면 기분이 묘하다. 나야 뭐. 에슬레틱스를 쥐잡듯이 잡았었다. 솔직히 트레이드가 그렇게까지 반갑진 않았으니까.
어쩌면 변명거리를 찾은 걸지도 모른다. 날 팔지만 않았더라면 좀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지도.
말 그대로 변명일 뿐이다.
삼진을 당하고 돌아온 서창열의 표정이 기묘했다.
“아니, 이게. 구종이 전혀 구별이 안 되는데? 시발. 저 괴물은 또 뭐야?”
공 두 개만에 유격수 땅볼로 끝난 배영한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대기 타석에서 나온 내게 이렇게 말했다.
“포심이라고 확신했는데…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공이 변하네. 조심해라.”
저 투수의 주 무기는 피치 터널이다. 홈 플레이트 가까이 와서야 공이 변한다. 타자들이 구종을 구분하는 것이 난해한 상대다. 나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처음 당해보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다.
타석에 나서자 조용한이 말했다.
“살살 한다고 했지?”
나는 배터박스에서, 투수 쪽에 가장 가까이 서서 대답했다.
“에이스 판독기 아시죠?”
“야. 하지 마. 하지 마.”
원래 에이스급 투수는 나한테 초구에 홈런 한 방 맞고 시작하는 게 국룰이다.
보자.
전성기 때랑 지금이랑 얼마나 다른지.
나는 정신을 집중했고, 초구를 노렸다.
겁낼 필요는 전혀 없다. 여기는 내 집 안방 같은 곳이고, 쟤네 집 안방에서도 난 저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때릴 수 있다.
따아아아아아악-!
갑자기 궤적이 변한다면, 히팅 포인트를 최대한 앞으로 가져가서 덜 변했을 때 때리면 된다.
아득하게 날아가는 타구를 보면서 배트를 뒤로 던지는데, 조용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건우 저 입벌구가 진짜. 살살한다며! 야! 어디가! 없던 일로 하고 다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