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175)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177화(177/385)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3-
#
연승은 길게, 연패는 없거나 짧게.
강팀이 갖춰야 할 요건이다.
7연승 후 1패. 그리고 4연승.
고작 12경기를 치렀다지만, 정말 좋은 출발이라는 데는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성적이다. 13연승이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야구에서 모든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 경기에서 져서 연승이 끊겼지만 흔들리지 않고 바로 다시 시작한 것이 중요하다.
야구란, 집중력을 잃는 순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스포츠다. 승리하기 위한 집중력은 나 혼자만 유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요새 나 피부 좋아진 거 같지 않아?”
유리는 기분이 정말 좋아 보였다. 11승 1패라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하는 데 유리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다. 외부의 어떤 사람들은 아직 유리의 역할과 성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폭발적인 반응이다.
효과를 못 본 선수도 있지만, 효과를 본 선수들이 있기에 유리가 무능한 게 아니라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일 뿐이다.
12경기를 치르는 동안 승기 형의 평균자책점이 1.12, 앤디가 2.84, 호세가 6.3, 국민성은 0, 이훈이 4.15다. 2~3경기씩밖에 치르지 않았기에 변동은 있겠지만 숫자를 떠나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다. 유리도 그걸 알기에 기뻐하고 있는 거다.
“누나 피부는 원래 좋았는데?”
“아니, 그거 말고. 잘 봐봐.”
유리가 운전하면서 오른손으로 자기 볼을 가리켰다. 뽀뽀해달란 뜻인가?
맞겠지?
그래서 상체를 일으켜 가리킨 곳에 뽀뽀했다가 유리가 손바닥으로 입술을 때렸다.
“누가 보면 어쩌게!”
“강건우 정유리 연애하는 거 부산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그렇지! 우리 건우 똑똑하네!”
무슨 말인지 잘 이해는 안 가지만, 두 번째 20대를 살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음. 전생…의 유리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나는 유리가 감정적인 면모를 보이면 그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안다.
세상에는 미쳤거나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정말 많고, 민승기나 박의현뿐만 아니라 노경우나 황석규 같은 사람만 보더라도 유리 정도면 굉장히 정상적이고 이해 가능한 범주에 있다는 것을.
아니, 그런 수준이 아니지. 거기에다 이해 못 할 정도라고 해도 나는 유리에게 그러면 안 된다. 그럴 생각도 없고. 이제 나는 어린 강건우가 아니다.
아무튼, 유리는 설교를 늘어놓았다. 넌 부산에서 충분히 공인이니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는 둥, 운전하다 놀라서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 인터넷에 강건우 정유리 운전하다 지랄 났다.jpg 같은 거 올라오면 어쩔 거냐 등등.
“앞으로 사람들 볼 수도 있는 데선 하지 마!”
그렇게 말하고는 터프하게 차를 꺾더니, 어두컴컴한 구석에 차를 대충 대고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화난 척 귀여운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야, 누나가 뽀뽀 어떻게 하는지 오늘 딱 가르쳐 준다.”
예.
천재 코치님.
얌전히 배우겠습니다.
#
다음 날은 호세 킹이 세 번째 등판을 갖는 날이었다.
두 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6.3.
현재 팀 선발 투수 중 가장 높은 평균자책점이고, 호세는 선발 투수 중 가장 적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가장 많은 실점을 허용했다.
유리가 판단한 가장 큰 문제는 공을 던질 때 상체만 쓴다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건 단기간에 좋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유리도 기술적인 교정 보다는 트레이닝 방식부터 뜯어고치는 중이고, 최근 요가 수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몸 쓰는 방식도 그렇지만 경기 중 멘탈 관리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고 한다.
유리의 방식이긴 하다. 트레이닝의 방식을 여러 가지로 가져가면서 교정 대상의 흥미를 높인다. 지루한 훈련이 아니라 즐겁게 참여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물론, 100% 효과를 발휘하진 못한다. 트레이닝 대상이 그럴 의지가 있어야 한다.
“나마스테.”
호세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인사했다. 아무래도 요가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때. 좀 나아졌어?”
“물론.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면 놀라게 될 거야.”
단기간에 눈에 띄게 달라지기는 쉽지 않다. 특히, 유리의 코칭은 신체의 메커니즘을 통째로 갈아치우는 내용이다 보니 더 그렇다.
그래도 유능한 투수코치인 론버거 킨도 호세의 업그레이드를 따로 진행하고 있으니 좀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그건 뭐, 오늘 결과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개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161km/h를 던지는 좌완이지 않은가. KBO에도 빼어난 타자는 있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절대 MLB에 미치지 못한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저 구위로 그냥 존에만 갖다 꽂아도 어느 정도 성적은 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냥 중앙에만 던져도 제대로 못 칠걸.”
“나마스테.”
여기서 왜 또 나마스테가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실실 웃는 걸 보니 괜찮을 것 같다. 하긴. 맞아도 좋으니까 그냥 던지라고 하는 말은 모든 투수코치들이 투수에게 하는 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투수가 그 말을 못 따라서 문제일 뿐이다.
물론, 투수가 진짜로 그렇게 던지면 그것도 문제다. 존 안에 100% 들어온다면 타자들은 아무 고민 없이 배트를 휘두를 테니까.
볼도 전략적으로 던져야 한다. 스트라이크를 넣으려다가 실수로 볼을 던지거나, 겁나서 볼을 던지면 안 된다.
서창열은 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바이킹스는 호세 같은 타입을 제일 좋아한다.”
무슨 뜻이냐 하면…
“가지고 놀기 제일 좋거든.”
뭐, 그렇다고 한다.
“공 빠르고 제구 안 되는 투수? 투구 수 늘려주는 건 기본이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게 만들어서 지치게 하면 제구 더 안 되거든.”
투수는 공을 던진 뒤에는 수비에 참여해야 한다. 1루 쪽으로 타구가 가면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야 하고, 타자가 번트를 대면 상황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폭투나 포일이 나오면 홈 커버를 해야 하고, 외야 플라이 후 송구 상황에는 베이스 후방 커버를 해야 해서 은근히 많이 움직이게 된다.
수비에 능숙하지 못한 투수들은 실책을 많이 저지른다. 야수의 실책이 나와도 그렇긴 하지만, 투수가 실책하면 멘탈이 더 흔들린다.
“그러니까 내야수들이 특히 투수 많이 도와줘. 옛날에 오션스 상대할 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르지? 투수 흔들린다 싶으면 일부러 투수 앞에 번트 대고 했다니까. 1루나 2루에서 도루하는 척하면 포수가 공 이상하게 던져서 공짜로 진루하고, 더블스틸 성공하면 회식 날이고.”
대체 바이킹스한테 오션스는 어떤 팀이었을까.
대근이 형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악마 같았지…”
서창열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양캡이랑 강건우 때문에 다 조지긴 했지. 그래도 호세 같은 타입한테는 분명히 흔들려고 시도할 테니까 다들 신경 쓰자고.”
“저는요?”
노경우가 끼어들었다. 서창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투수들 대근이한테 맞을까 봐 빈볼 못 던져, 타자들 깝죽거리다가 건우한테 167km/h 속구 머리에 맞을까 봐 못 개겨. 네가 낄 데가 아니다 이놈아.”
하긴. 만만하게 보이면 한도 끝도 없이 약점을 파고드는 팀이니.
때론 성질머리를 드러내야 한다. 이 바닥에서 우습게 보이면 언제든 상대가 날 부당하게 공격할 수 있다.
몇 번 충돌이 있고 난 후 오션스를 상대로 시비를 거는 일이 많이 줄어든 것이 바로 그런 것 때문이다. 거기에다 서창열까지 합류했으니.
어디 가서 호구 잡힐 일은 없을 거다.
#
호세는 정직하게 던졌다.
그 소리는, 경기 초반에 힘이 넘치는 상태에서 160km/h에 육박하는 공을 존에 그냥 냅다 꽂아버렸다는 뜻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바이킹스의 새 리드오프인 좌익수 성현은 초구에 번트 모션을 취했다가 삼진당할 때까지 배트 한 번 내지 않았다.
2번 타자 김만재는 3구째 패스트볼을 때려 투수 앞 땅볼.
3번 김호근의 타구는 서창열이 펜스 바로 앞에서 잡아냈다.
“나마스테.”
호세는 1회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뒤를 돌아보며 서창열에게 요가 인사를 건넸다. 김호근이 저런 행동에 대해 좀 아니꼬운 듯한 얼굴이었지만, 서창열이 냅다 달려오는 걸 보고 그냥 벤치로 들어갔다.
꽤 순조로운 출발이지만, 상대 선발이 오션스 킬러라는 김권종이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오션스 킬러가 아니라 정조준 킬러가 아닌가 싶다. 조준이 형이 헛소리할 때마다 진지한 대답으로 입을 다물게 만든다.
아무튼, 서창열과 김권종의 맞대결은 꽤 치열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관계다. 서창열은 김권종의 슬라이더에 속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구위를 이겨낸 것도 아니었다. 결국, 체인지업에 속아 넘어가 삼진을 당하긴 했지만 공을 일곱 개나 던지게 했다.
김권종은 화려한 슬라이더에 비해 심플한 승부를 즐긴다. 내가 보기에는, KBO 투수 중 나를 제외하고는 제구가 가장 좋다.
볼을 던지더라도 의도해서 볼을 던지는 투수다. 배영한은 2구 만에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그리고 나는…
“건우. 형은 너랑 달리 구라 안 친다. 오늘 너한테 볼만 던질 거니까 그냥 얌전히 서 있다가 나가라.”
“1루에 먼저 가 있을까요?”
“오. 굿 아이디어.”
“아님 어차피 저 볼넷으로 나가면 3루까지 도루할 건데 그냥 3루에 설까요?”
“그건 해봐야 아는 일이고.”
조용한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진심이다. 상대 팀이 내게 무더기 볼넷을 주면 이번 시즌에는 가만히 서 있진 않을 거다.
대근이 형이 장타를 날려줄 능력은 충분히 있지만, 병살도 꽤 당했다. 지난 시즌에는 아직 몸이 약했던 관계로 부상 방지를 위해 자제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어느 정도 시도해볼 생각이다.
몸을 키웠지만, 그냥 근육량만 키운 것도 아니다. 시즌 초반에 홈런을 꽤 쳤으니 이제 상대가 이렇게 나올 때도 됐다. 아마 초반에 그럭저럭 승부가 들어온 것은, 내가 2년 차 징크스에 시달릴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다음 단계를 미리 생각해두고 움직여야 한다.
“스트라이크!”
초구가 바깥쪽 낮은 코스에 절묘하게 제구된 슬라이더로 들어왔다. 백도어 슬라이더.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다가, 마지막에 존 안에 살짝 걸쳐 들어오는 공.
존트론이 아니었더라면 볼이 선언되었을 수도 있다. 김권종 제구력의 정수다.
“볼만 던진다면서요?”
“아.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던지면 볼이었는데. 존트론 고장 났나?”
#
강건우는 결국 볼넷을 얻었고, 2루 도루에도 성공했다. 조용한은 KBO 최고의 어깨를 자랑하는 포수다.
도루는 스피드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 타이밍이 중요하다.
하지만 양대근이 적시타를 때리지 못했다. 좌완 김권종의 슬라이더는 좌타자가 정확히 때려 외야로 날려 보내기 쉬운 공이 아니다.
강건우에게 김권종 한 대만 때려달라고 말했던 정유리는 김권종의 피칭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서 호세가 저런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게 되면 오션스가 우승에 몇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날카롭고 정확하다. 뚝 떨어지거나 옆으로 달아난다.
호세는 빠른 포심과 빠른 슬라이더, 그리고 그리 좋다고는 말하기 힘든 체인지업을 던진다.
정유리가 호세의 투구 메커니즘을 개조하는 동안 론버거 킨은 피치 디자인을 약간 수정했다.
엄청난 수정은 아니었다. 타순이 한 바퀴 돌 동안은 포심과 슬라이더 위주, 한 바퀴 돌고 난 뒤에는 체인지업의 비중을 늘리는 계획이었다.
체인지업을 섞어 던질 때, 체인지업이 맞아 나가면 다시 슬라이더로 돌아간다. 어차피 지금 당장 호세 킹에게 7이닝 이상의 이닝 이팅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길게 보면 6이닝.
투구 수가 늘어나면 구위가 확연하게 떨어지고 있기에 5이닝 정도만 던져줘도 만족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호세 킹의 다음 순번인 국민성이 던질 때, 호세 킹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기에 상대 타자들의 감을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닝을 조금 적게 소화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을테니.
5이닝만 소화해도 괜찮다는 것이 코칭 스태프의 의견이었다. 아직 한참 남은 이야기지만, 포스트시즌에 들어가면 선발로 나와 좀 더 적은 이닝을 소화하거나 좌완 불펜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어쨌거나, 호세 킹은 2회에 안타 하나를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오늘 컨디션이 꽤 괜찮았다. 여전히 상체 위주의 피칭이기는 해도 드래그라인이 약간은 생겼다.
그리고 바이킹스 타자들은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번트를 못 대겠는데?”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는데요?”
“대가리 터질까봐 얼마나 놀란 줄 아냐?”
“어떡하죠?”
“권종이가 잘 막고 있으니까 약간만 길게 보자.”
존에 마구 꽂아넣기는 해도, 제구는 여전히 중구난방인 면이 있었다. 머리 가까이 오는 공도 있다. 타자 한 명은 기습 번트를 시도하려다가 161km/h 포심에 맞고 죽을까 봐 뒤로 넘어지기도 했다.
타순 한 바퀴가 돌았을 때, 타자들은 그래도 타이밍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무리 공이 빨라도 손도 못 대는 것은 아니다. 4회 초, 연속 안타로 무사 1, 2루 기회를 만든 바이킹스 벤치는 다음 타석에서 병살타가 나오자 크게 탄식했다.
“와. 뭐지. 체인지업인가.”
다소 밋밋한 공이지만, 한 번도 던지지 않은 체인지업이었다.
포심과 슬라이더, 두 가지만을 머릿속에 넣고 나온 타자가 선택지에 없는 체인지업에 헛심을 들이켰다.
호세 킹은 심리전에는 영 재능이 없지만, 한 번 보여준 체인지업이 심리전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양자택일에서 삼지선다가 되면 타자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딱!
그리고 풀카운트에서 체인지업을 때린 타구가 강건우 앞으로 튕겨 날아갔고, 이닝이 끝나버렸다.
“나-마-스-테!”
4이닝 무실점. 아직 등판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평균자책점을 6.3에서 4.5로 쭉 끌어내린 호세 킹이 마운드 위에서 포효했다.
서창열이 그걸 보고 벤치로 돌아오면서 황석규에게 말했다.
“쟤 좀 이상하지 않냐?”
“이는 튼튼하던데요. 완전 건치.”
“뭐라고?”
“라미네이트 공구 하실래요?”
“뭐?”
황석규는 서창열의 살벌한 눈빛을 보고 재빨리 도망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