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194)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196화(196/385)
잔말 말고 타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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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우와 맞붙게 된 파이러츠 투수는 손용기였다.
물론, 빠른 공의 구위만 따지면 외국인 투수 둘이 더 강하다. 그래도 서창원 감독은 이런 경기에 손용기만한 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제구 좋고 여러 구종을 던질 줄 안다. 멘탈도 괜찮아서 몇 대 맞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신중하게 승부하다 투구 수가 좀 늘어나도 워낙 철완이라 이닝 소화 능력도 좋다.
아무튼, 손용기는 마운드에 섰다.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당연히 오션스가 이길 거라고 다들 믿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물론, 이런 분위기를 꽤 겪어온 베테랑이다. 승리한 적도 있었고 패배했던 때도 있었다. 승패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한때 오션스에서 성공할 거라 자신하기도 했던 손용기는 침착하게 투구판을 밟았다.
‘일단 던져보고.’
공 하나만 던져봐도 그 날의 컨디션이 감이 온다. 타석에는 서창열. 피곤한 타자.
아무래도 관건은 강건우다. 좋은 타자들이 많지만, 양대근과 울프팩이 빠졌으니 큰 거 한 방을 맞을 걱정은 많이 줄어든다.
“볼!”
초구 커브가 존을 살짝 벗어난 모양이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이제 볼 판정에 불만을 표현할 거리도 없다. 볼 판정을 두고 아쉬운 표정을 짓거나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적반하장이라고 욕을 먹는 시대다.
존트론은 야구에서 우기기를 없애버렸다.
잘 된 걸까, 아닌 걸까.
그건 모르겠지만, 아무튼 할 일은 해야 한다.
따악!
타구가 높게 솟았다. 파이러츠는 내야에 비해 외야 수비력이 약한 편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경기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는 팀이다.
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여기에서 갈린다.
큰 경기에서 긴장한 나머지 할 수 있는 것도 못 하는가.
혹은, 큰 경기이기에 더 집중해서 평소보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가.
중견수 박근수가 전속력으로 달려가 팔을 뻗어 타구를 잡아냈고, 손용기가 환하게 웃었다.
‘해볼 만하겠는데.’
느낌이 좋은 날이다. 내 컨디션보다는, 팀 컨디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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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말이 무득점으로 끝났다. 나를 포함한 세 타자가 모두 외야 플라이로 물러났고, 나는 곧바로 마운드에 올라갈 준비를 해야 했다.
뭐, 많이 해봤던 거라서. 우왕좌왕하거나 하진 않았다. 플라이에 그치자마자 배트를 케이지에 꽂아넣고 글러브를 챙겼다. 덕아웃 앞에서 불펜 포수와 가볍게 캐치볼 한 후 환호성을 들으며 마운드로 올라갔다.
“건우야아아아아아아아아!”
야구는 꽤 정형화된 스포츠다.
새로운 것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팬들은 누군가가 틀을 아주 조금만 깨줘도 굉장한 것으로 여긴다.
그게 바로 이런 일이다.
뭐, 홈런을 때리고 베이스를 돌면서 하트 한 번 날려주고 여유롭게 투구 준비하다가 마운드로 올라와 삼진 세 개로 이닝 끝내면 더 좋았겠지만.
항상 상상대로만 흘러가지는 못한다.
에릭 랜들러는 약점이 없는 스타일의 타자다.
컨택, 장타, 선구안 모두 상위권이며 주력도 갖춘 좌타자.
그럭저럭 재밌는 아이디어가 있다.
조준이 형에게는 힘으로 두 번, 그리고 농락 한 번으로 끝냈다면.
이 타자가 작은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 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반대 손 타자에게는 역회전성 공을 던지는 것이 정석이다. 바깥으로 달아나니 정확하게 때려내기 쉽지 않다.
그런 역회전 무브먼트를 가지는 공은 투심, 싱커, 그리고 서클체인지업.
스크루 볼도 있지만, 그건 유리가 배우지 말라고 했다. 사실, 그 공은 부상 위험이 다른 구종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큰 구종이라서.
어쨌거나, 내 시도는 구속과 무브먼트가 조금씩 다른 저 세 가지 구종을 에릭 랜들러에게 하나씩 던져 타자를 고장 내려는 것이다.
초구, 서클 체인지업.
따악!
“파울!”
바깥쪽 낮게 제구했다. 구속은 134km/h.
167km/h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가 이렇게 구속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큰 무기다.
에릭 랜들러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딱 봐도 보인다. 투심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은 싱킹 패스트볼의 차례다. 구속은 아직 끌어올리지 않는다.
코스는 비슷한 곳으로.
“스트라이크!”
낙폭이 더 크고, 구속은 149km/h.
타자는 배트를 내지 못했다.
아마 존트론의 경계를 살짝 스친 것 같다. 에릭 랜들러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배트를 붕붕 휘두른 후 배트 끝을 응시했다.
걸려든 것 같다.
상대 투수가 어떤 구종을 던지는지 정확히 구분해내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 그것보다는, 방금 두 개의 역회전성 공의 움직임에 혼란을 느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제, 투심을 던질 차례다.
무브먼트나 제구보다는 구속에만 신경 써서. 코스는 바깥쪽을 노린다. 물론, 구속에 힘을 주면 내가 노리는 코스로 정확하게 날아가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디로 가든 첫 두 개의 공에 현혹된 타자가 이 공의 낙폭을 계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와인드업.
그리고.
부우웅-
“스트라이크! 아웃!”
160km/h의 투심.
존 중앙에서 약간 옆으로 치우친 코스였지만, 타자의 배트는 투심의 아래쪽을 헛돌았다. 덜 떨어지고 더 빠른 공. 타자의 손에서 배트가 빠져 3루 방향으로 강하게 날아갔다.
“갱! 건! 우!”
오랜만에 선발로 뛰는 것도 꽤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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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시발. 저거 진짜 뭐냐?”
파이러츠 덕아웃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욕설이라기보다는 넋두리에 가까웠다.
강건우에 대해 대비를 하기는 했다. 워낙 여러 구종을 던지고 구속도 제 마음대로 조절해대는 괴물인지라, 그 대비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오늘 강건우의 컨디션에 달려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Fuck. 내가 뭘 당한 건지 모르겠어.”
외국인 타자 에릭 랜들러도 혀를 내둘렀다. 구속 차이가 30km/h에 달하는 포심과 체인지업을 머리에 넣고 타석에 들어갔었다. 같은 좌타자인 정조준이 당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랐다. 삼구삼진을 당했는데, 세 공이 전부 역회전 무브먼트를 보였다.
그런데 다 다른 공이다. 정확힌 모르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134km/h-149km/h-160km/h.
비슷한 움직임인데, 구속이 저렇게 변해대는데 칠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리고 5번 타자 최지용도 삼구삼진으로 물러났다.
“…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130km/h대 체인지업 두 개에 헛스윙하고 배트를 짧게 쥐었는데, 갑자기 몸쪽 높은 코스로 165km/h 패스트볼이 날아왔다. 깜짝 놀라서 스윙했는데 전혀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
아무도 해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타격 코치마저 입을 떡 벌리고 있다.
“그, 중요한 순간에 168km/h 짜리 날아오니까…”
“그거 안다고 칠 수 있으면 진작에 쳤지.”
“체, 체인지업 노릴까?”
한 타자의 말에, 오늘 선발인 손용기가 슬쩍 끼어들었다.
“쟤 체인지업 세 가지 던진다.”
“…”
“상황 맞춰서 종류별로 던지는데…”
“용기형.”
“어.”
“강건우 타석에 나오면 빈볼 던지는 거 말곤 해결책이 없지 않을까요?”
손용기가 코웃음을 치고 관중석을 가리켰다.
“승리가 중요하냐, 목숨이 중요하냐?”
“목숨이요?”
“지금 강건우 머리에 공 맞으면 진짜 일 터진다.”
“아니, 음. 농담이었습니다.”
어쨌든, 타석에 나선 베테랑 외야수 유시훈이 그나마 기록 하나를 멈춰 세웠다. 2구째 체인지업을 톡 건드려 투수 앞 땅볼을 친 것이다.
-투수 앞 땅볼! 이닝을 마무리하는 강건우!
-아, KBO 최초 4타자 연속 삼구삼진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요. 아쉽게 무산되는군요.
-파이러츠 팬들에게는 달갑지 않겠지만, 예. 2이닝 4탈삼진을 잡아내는 동안 강건우 선수가 던진 공은 고작 15개!
-강건우 선수가 선발로 뛰어도 말이죠. 하하. 더 골치 아플 것 같네요.
-어떤 점에서 그렇다는 말씀이시죠?
-마무리도 골치 아프긴 한데, 9회에 이기고 있으면 안 나오니까요. 그런데 선발로 나온다? 어휴. 답이 없어요, 답이.
-좀 없긴 하네요.
-좀이 아니긴 하죠.
-예! 잠시 후 돌아오겠습니다! 여기는 사직 야구장! 양 팀 0대 0으로 팽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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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새끼 없냐? 나만 지린 거 아니지?]└2028뉴비특)기저귀 미리 준비 안 함
└뉴비새끼들ㅋㅋㅋ기저귀 응원 모르냨ㅋㅋㅋㅋㅋㅋㅋ
└사직 구장 앞에 노점상에서 성인용 기저귀 팔던데 ㅋㅋㅋㅋㅋㅋ
└요새 대양생명에서 보험 들면 강건우 패키지 주는데 거기 기저귀 들어있음 개꿀 ㅋㅋㅋㅋ
└전에 누가 요도에 삽관하고 본다고 하지 않음?
└솔직히 그건 뇌절임;
└뇌절임?
└뇌절이지
└;;
└왜;;
└아니…아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혹시?
└설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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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초, 다시 강건우가 마운드에 올랐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조준은 고민에 빠졌다. 다음 이닝에 두 번째 타석이 돌아오는데, 뭘 노려야 하나.
노린다고 칠 수나 있나.
저 새끼는 대체 뭐 하는 놈인가.
민승기는 갈등에 빠졌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감정이 양립한다.
순수하게 오션스 팬으로 기뻐해야 하나.
혹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나.
고작 2이닝에 불과하지만 강건우의 피칭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100구를 던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그랬다.
박의현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이 포수는 언제나 기본에 충실하려고 애써왔다. 포구는 포수의 기본이다. 그런데, 포구하는 것만으로도 뇌가 쥐어짜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에릭 랜들러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운 후 박의현은 자기가 공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노경우는 생각했다. ‘시발.’
세상은 불공평하다.
이제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건 정말 불공평하다.
그렇다고 해서 강건우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끼진 않을 테지만, 이건 잘못돼도 뭔가가 한참은 잘못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용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박수 치고 있었다.
관중석에 부인과 앉은 양대근은 이렇게 말했다.
“FA 때 어디 갈 생각하면 안 되겠다.”
타석에서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파이러츠 타자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휴 브레드먼 감독은 론버거 킨 투수 코치에게 속삭였다.
“팔꿈치인가 어깨인가 아프다고 한 거, 거짓말이겠지?”
론버거 킨이 대답했다.
“글쎄요. 난 그냥 저 피칭 자체가 거짓말 같은데.”
“거짓말? 제기랄. 또 삼진이야!”
“삼진이 싫어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3회 초가 끝났다. 이제까지 던진 공의 개수는 고작 24개.
파이러츠 팬들은 좌절감을 맛보고 있었다. 투구 수라도 많았으면 강건우가 내려간 후를 좀 노려볼 만도 할 텐데, 고작 24개다.
선발로는 데뷔 경기니 80개 정도면 끝날 거라는 희망도 있었다. 그런데 만약 이 페이스라면?
단순 계산해서 9이닝을 72개에 끝낼지도 모른다.
오션스 팬들은 이미 이긴 거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마! 집에 가자! 파이러츠 짐 싸라!”
“항복 받아준다!”
물론, 아직 스코어는 0대 0이다.
강건우가 씩 웃으며 분석실 창문을 향해 윙크했다. 정유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앓는 소리를 냈다.
“강건우 이 미친…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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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닝이면 타순이 한 바퀴 돌았을 뿐이다. 처음 한 바퀴는 무적에 가까운데 두 바퀴 부터 두들겨 맞는 투수는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정유리는 진짜 오늘 사고가 한 번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포심, 투심, 체인지업, 그리고 싱커 1구.
아직 강건우는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그 많은 종류의 브레이킹 볼은 보여주지도 않았다. 적당한 타자에게는 140km/h 후반에서 150km/h 초반의 공으로 잡아내다가 필요할 때가 오면 168km/h를 자유자재로 던져댄다.
타자들이 혼란스러워 보인다. 심지어 오션스 선수들도 넋이 빠진 것처럼 구경할 정도였다.
민승기가 퍼펙트게임을 달성 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그날 민승기는 남달랐다. 특출나 보였다. 누가 오더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투사처럼 보였고, 배짱과 자신감이 넘치는 1선발 그 자체였다.
그런데 지금, 강건우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파이러츠를 학살하고 있다.
파이러츠는 절대 약한 상대가 아니다. 팀타율 0.284로 오션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느낌이 다르다. 이게 당연해 보일 정도다.
손용기 또한, 그런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 됐을 때만 하더라도 팀 컨디션이 좋으니 어떻게든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당연한 일이다. 야구는 팀 스포츠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런데 뭔가 불안하다. 팀 컨디션 같은 건 아무 의미없는 것 같았다.
경기장에서 두려운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는지 곱씹었다.
게다가 상대 투수에게?
어불성설이다.
손용기도 집중력을 발휘했다. 1회 삼자범퇴, 2회 2사 후 볼넷 하나를 내줬지만, 삼진으로 마무리, 3회 선두 타자를 내보낸 후 병살을 잡아냈다.
4회 초. 손용기는 머리에서 올라오는 열을 식히려 적신 수건을 이마에 댔다. 다음 이닝에 상대해야 할 타자는 배영한-강건우로 시작한다.
상대할 작전을 생각했다. 배영한을 내보내면 안 된다. 강건우는 볼넷을 주고 도루를 허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렵게 승부할 생각이었다. 양대근이 없으니 그만큼 부담도 줄어든다.
“형. 이닝 교대에요?”
“뭐? 벌써.”
자기를 부른 후배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별말을 하지 않았다.
강건우 이놈.
이닝을 어찌나 빨리 삭제시켜버리는지, 상대 선발 투수의 리듬마저 박살 내버린다.
배영한의 배트를 포크볼로 유인해 6구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냈다. 투구 수는 어느 새 68개. 부담감이 있다 보니 신중하게 승부하느라 투구 수가 적은 편은 아니었다.
3.1이닝을 무실점으로 잡아냈다. 그래도 파이러츠는 불펜도 그리 나쁘지 않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주고 내려갈 생각이었다.
강건우가 타석에 들어오자 사직 야구장이 들썩이고 있다.
끔찍한 타자다.
그런데, 첫 타석에서 평소보다 타구가 덜 뻗은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투타 겸업을 하느라 힘을 좀 배분하는 건 아닐까.
그런 건 별 의미가 없다. 막아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집중해야 한다. 귓가에 맴도는 오션스 팬들의 외침을 닫아냈다. 온전히 힘을 발휘해도 부족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타석에 느릿하게 걸어온 강건우에게 압박감을 느낀다. 고작 21살짜리에게.
타석에 선 강건우의 배트 끝이 슬며시 흔들린다. 저 리듬을 뺏을 수 없을까.
차라리 아까 누구 말대로 그냥 맞혀버리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뭔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내가 어디 있는지, 왜 여기 서 있는지.
손에 쥔 야구공의 까칠한 감각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내가 몇 번이나 이 공을 던졌더라.
이 압박감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도 모른다. 손용기는 파이러츠 타자들이 강건우를 공략하지 못 할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실패하면 무조건 질 거라고 생각했던 걸지도.
뇌가 마비된 것 같았지만, 억지로 먼 기억 속에서 자신이 뭘 해왔는지 끄집어냈다. 왼쪽 다리가 앞으로 움직인다. 오른쪽 어깨가 열리고, 팔이 올라간다. 왼팔이 휘둘러진다. 왼발이 땅에 닿고 골반이 회전한다. 오른발 끝이 흙을 챈다.
그리고.
공이 손끝을 떠났다.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이 공.
잘 던진 걸까 잘못 던진 걸까.
거의 무아지경에 가깝게 던진 공이 존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 아까 분명 피해 가는 승부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왜 공은 이다지도 공격적인지.
그리고 강건우의 스윙은 왜 저다지도 섬찟한지.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다른 소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는데, 그 집중력의 방패를 깨고 기분 나쁜 타격음이 고막을 울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정돈되지 않은 비명인지 환호인지 구분가지 않는 괴성들, 강건우의 이름, 거기에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많이 들어본 오션스 인턴 코치의 이름이 섞이며 진동하는 공기가 의식을 어둠 밖으로 끌어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건우야아아아아아아아아!”
“유리 누나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강건우우우우우우우우!”
맞은 투수 본인조차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타구가 아득하게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마운드에서 아군을 학살하던 괴물이, 이제는 타석에서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흐…”
피 대신 멍청한 웃음 한 줄기가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