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199)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01화(201/385)
Glass effect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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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리는 다른 선수들과 강건우의 차이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점에 와 있었다. 그런 일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가야 할 길을 찾는 중이기도 했다.
강건우는 정유리의 남자 친구다. 강건우가 중학생일 때부터 연애를 시작했고, 이제 정유리는 23살이며 강건우는 21살이다.
생각해보면 굉장한 일이다.
윗집 살던 코흘리개가 자신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는데 대략 10년 뒤에 고백했으며, 지금까지 그 관계가 이어져 오고 있는 데다가, 걔가 말도 안 되는 천재라니.
정유리 본인도 강건우가 이 정도로 잘 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상식적이진 않다.
어제 대타로 나가 만루 홈런을 때렸고, 그 이틀 전에는 커리어 처음으로 선발 투수로 등판했는데 퍼펙트게임을 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게 어떻게 말이 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그렇다. 강건우라는 존재가 이 바닥에서 농담 같은 존재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KBO를 혼자서 때려 부수고 있는 강건우의 남자 친구이자 한 명의 야구 광팬으로서는 몰라도, 프로야구팀의 코칭스태프로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 점도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다들 잘 하고 있으니까.’
지난 시즌 꽤 쏠쏠했던 이휘은은 컷 패스트볼 하나로 상당히 다른 투수가 됐다.
이제는 쏠쏠한 정도가 아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평균자책점 4.32에 2승 2패 5홀드를 거뒀던 이휘은은, 올 시즌 평균자책점 2.57에 9홀드를 기록 중이다.
솔직히 강건우였더라면 그 커터에 만족하진 않았을 거로 생각했다. 날카롭고 묵직하긴 하지만 완벽하진 않다.
그런데 성과를 내고 있다. 리그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압도적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팀 불펜의 핵심 요원으로 꼽힐 만하다. 그리고 이건 다른 투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만족도와는 별개로, 실전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커터 비중을 조금 늘리면서, 맞기 시작하면 팔 각도를 약간 낮춰 주면 되겠지.’
경기 중에 혼자 생각하며 쓱쓱 메모했다.
오늘 라인업에는 양대근과 울프팩이 포함되어 있었다. 선수들의 출장 정지가 끝나는 날이며, 그만큼 팬들의 기대가 컸다.
앤디 가필드가 1회 2아웃에서 안타 한 방을 맞았지만 집요한 싱커 승부로 땅볼을 유도하며 이닝을 끝냈다.
‘앤디는 뭐.’
포심, 싱커, 커브, 슬라이더를 던진다. 구종 추가를 진행할 여지가 없다. 정유리가 요새 하고 있는 주요 프로젝트가 바로 투수의 약점을 메꾸기 위한 구종 추가와 연마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지만, 민승기와 이훈, 이휘은의 케이스가 성공을 거두면서 다른 투수들도 관심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앤디는 구종 추가에 관심이 없다. 투수 강건우의 메커니즘에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자신과는 방식이 꽤 다르기에 납득하고 포기했다. 대신, 조금 더 편안하게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과정을 시작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더 시간을 투자한다는 뜻이다.
정유리는 경기 중에 벌어지는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투수들과 관련된 업무가 주 업무이긴 하지만, 서창열이 때린 타구가 유격수 키를 넘기지 못하고 잡히는 걸 보고 ‘가슴 근육을 늘리면 에이징 커브를 몇 년 더 늦출 수 있지 않을까?’라고 쓰거나, 배영한이 체인지업을 조금 앞에서 때려 먹힌 타구를 날려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는 걸 보고 ‘시력 체크 해볼까?’라고 메모하는 등 타자들에 대한 관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따악-!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물론, 방금 좌익수 옆으로 날아가는 안타를 때리고 2루 베이스에 가볍게 도착한 강건우의 이름 옆에는 그냥 ‘♡’라고만 쓰여 있었다.
혹시나 유리창 너머로 카메라가 자기를 비추지 않을까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정유리는 배시시 웃고 있었다.
강건우는 2루에서 하트를 날리고 있었고, 분석실에 있는데도 정유리의 이름을 외치는 오션스 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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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은 가벼운 재활을 진행하면서 정유리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통증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의료진은 재발 방지를 위해 조금 더 휴식이 필요하다고 알려왔다.
-오션스, 마운드를 교체합니다. 앤디 가필드가 6.1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김정혁에게 마운드를 넘기는군요.
-김정혁 선수, 지난 시즌도 괜찮긴 했지만, 이번 시즌 정말 좋거든요. 단순히 수치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 자체가 달라졌어요. 작년과 비교하면 오른쪽 무릎이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갔는데, 전체적으로 자세가 낮아졌는데도 회전수가 좋아졌단 말이죠. 거기에 그치지 않고 테일링까지 걸리면서 우타자들이 쉽게 때려내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빨리 마운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예전 같지 않았다. 해설자가 김정혁의 변화를 침이 튀도록 칭찬하며 오션스의 달라진 코칭 스태프를 언급했는데, 거기서 빠지지 않는 것이 정유리 이야기였다.
-정유리 코치가 말이죠. 오션스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뛰어나다고 합니다. 오션스는 복 받은 거예요. 정말 복 받은 거죠. 강건우 선수에 정유리 코치까지. 조금 오버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 두 사람이 오션스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예요.
어떤 사람들은 정유리 코치가 선수들을 개조했다는 이야기를 두고, 오션스 구단의 영웅 만들기 언론 플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당사자인 이훈은 절대 공감할 수 없었다. 정유리에게 투심을 배운 이훈은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빨리 복귀해서 다시 던지고 싶다.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시끄러운 박의현도, 등 뒤에서 만담이라도 하듯 티격태격하는 키스톤 콤비도, 심지어는 볼 하나 던졌다고 분노했다가 다음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면 환호하는 이해하기 힘든 팬들마저 그리웠다.
야구가 재밌었던 게 언제였던가.
말랑한 고무 공으로 투심 그립을 잡은 채 재활에 몰두하며 보고 있는 경기에서는, 김정혁이 바이킹스 중심 타자 김호근을 상대로 슬라이더만 6개를 던져 삼진을 따냈다.
-전 소속팀 동료였던 김호근을 상대로 삼진을 따내고 뒤돌아서서 씩 웃는 김정혁!
몸이 근질거린다. 당장 가서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고 싶다. 강건우가 선발 투수로도 미친 모습을 보였다. 이훈 본인도 알고 있었다. 만약 강건우가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민승기가 불펜으로 이동할 일은 없을 것이다. 국민성은 신기할 정도로 잘 던진다. 앤디도 말할 것도 없다.
호세 킹은 그래도 외국인 투수다. 무시무시하게 빠른 공을 던진다.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진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예전 같았더라면 차라리 불펜에서 던지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조금 더 업그레이드하고 싶다. 쉽게 밀려나고 싶지 않다. 이훈은 휴식 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었다.
-코치님 조금 더 잘 던지고 싶습니다.
정유리 코치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문득 정유리 코치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요. 너무 욕심 내다보면 밸런스 흐트러지니까 한 단계씩요.’
소심한 이훈은 썼던 메시지를 전송하기 전에 다 지워버렸다. 그 사이 김정혁은 바이킹스의 용병 타자 리암 맥코넬에게 포심만 다섯 개를 던져 유격수 땅볼을 유도해냈다.
배짱 넘치는 투구다. 저런 모습도 본받고 싶었다.
-코치님 배짱을 키우려면 어떤 훈련이 좋을까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메시지를 지웠다. 담력을 키우겠다니. 전임 투수 코치의 근성론이 떠올라서 시무룩해졌다.
-코치님. 구속을…
국민성이 떠오른다. 구속이 다가 아니다.
-혹시 제가 다른 구종을 추가하면 더…
따지고 보면 실전에서 던지는 공이 다섯 가지다. 결코 작은 편이 아니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고민하던 이훈은 결국 메시지를 보내는 데 실패하고 스마트폰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작년에…왔던…”
문득, 박의현이 떠올랐다.
“각설이이이이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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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대근이 형과 울프팩은 복귀전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진 못 했다. 뭐, 감각이 조금 무뎌졌을 수도 있다.
“햄. 내일은 정신 차리고 야구 하세요. 그게 뭡니까. 타구에 히바리가 없어가. 와. 우리 조카가 쳐도 그것보단 씨게 날아가겠다.”
2안타 포함 3 출루의 노루 형이 잘난 체를 하다가 캡틴의 매지컬 손바닥 맛을 볼 뻔했고, 울프팩은 유리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갱처럼 개조해줘요, 코치 누-나. 터미네이터가 되고 싶어요.”
나는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이야기해줬다.
“누가 봐도 내가 아니라 네가 터미네이터야, 드루.”
“내 속엔 연약한 뼈와 근육, 피와 살 뿐이야.”
“연약?”
“너 같은 사이보그는 내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울프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발로 등판한 뒤로 나는 로봇이고 유리가 뒤에서 날 조종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밈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에서까지도.
어쨌거나, 퇴근길에 유리가 말해줬다.
“바이킹스가 호세 킹 복귀전이라고 번트 대고 난리 칠 거 같아서 선더버즈 전으로 등판 미뤘어. 근데 호세 킹 꽤 좋아졌다?”
투수가 단점을 가리고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짧은 시간에 되는 일이 아니다. 물론, 시간이 많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 누나가 또 개조했어?”
“개조?”
개조라는 단어를 들은 유리가 깔깔 웃었다. 인터넷에서 종종 유리 이야기로 달아오르곤 하는데, 유리가 그걸 다 보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조금 걱정될 때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별로 신경 안 쓰니까.
“누가 들으면 진짜 미친 과학자인 줄 알겠네.”
“어쩌면 진짜 그럴지도?”
“뭐? 왜?”
“유리 누나의 사랑으로 충전되는 야구 로봇 강건우 몰라?”
유리가 하이톤으로 비명을 질렀다. 반응이 이렇게 귀여우니 안 할 수가 없다. 하루에 최소 한 번씩은 해줘야 한다.
“인터넷에서 누나한테 국민성 선배 언어 팩 업데이트 좀 해달라더라.”
“그건…무리야.”
유리가 살짝 부스스하게 웃었다.
“노루 형 연료 초코파이에서 업그레이드할 때 안 됐냐고도 하던데.”
“카메라 볼 때 한입에 먹는 거 즐기는 거 같던데?”
“그치? 예전엔 삼진 먹으면 숨어서 먹었는데 요샌 그냥 대놓고 먹더라.”
이번 시즌 일정의 22.2%를 소화했다. 우리는 75%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고, 지난 시즌 내가 출장 정지를 당했을 때 한 경기도 못 이겼었던 것을 생각하면 팀 자체가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리는 조금 부끄러워하지만, 팀이 강해진 데는 유리의 역할이 상당했다고 본다.
FA 투자나 트레이드 등의 영향도 분명히 있을 거다. 그래도 타격이 안 터질 때 경기 후반 불펜 싸움이 가능해진 것은 분명히 유리의 공이 컸다.
“누나 덕분에 야구하기 편해졌다.”
“응? 나 왜?”
“불펜 봐. 나 처음 오션스 입단했을 땐 진짜 말도 안 나왔거든.”
“아…알지알지. 그건 좀 심했지. 하…”
내가 없을 때의 오션스 투수진은…
2점대 불펜?
그런 건 신화에서나 나오는 존재였고, 4점대 투수가 불펜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게다가 선발진도 심각했고.
신인 투수들이 조금 더 경험치를 먹으면 확고해질 수 있다. 오션스 전력에서 내 비중이 큰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내가 온전히 빠지더라도 상위권 싸움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팀으로 단기간에 변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호세 킹 마저 제 궤도에 오른다면?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하면 결혼해준다고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든 게 유리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데서 출발했다.
유리가 행복하다면 어쨌든 됐다. 내가 야구를 잘 하는 것도, 오션스의 순위가 좋은 것도, 내가 다치지 않는 것도 모두 그걸 위해서다. 결혼은 유리를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뭐.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호세 킹 한테 뭐 했어?”
“응? 아.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야?”
“보기엔 좀 불성실해 보이는데, 은근히 교정 잘 따라오거든. 출장 정지 기간에 집중적으로 훈련했는데 열정적이라서. 몸쪽 던질 때 제구가 좀 잡혔어. 어디 막힌다 싶으면 밤늦게도 전화 와서 물어본다니까?”
“…”
“왜?”
“밤에도?”
내 반응에 유리가 고개를 이쪽으로 살짝 숙이며 앙큼하게 웃었다.
“우리 건우, 또 질투?”
“어디 유교의 나라에서 남녀가 유별한데 오밤중에 전화를 걸어?”
유리는 내 말에 그냥 웃기만 했다.
“경을 칠 놈이로세.”
“우리 건우 그랬쪄? 질투났쪄?”
“고놈 등판하면 수비 안 한다.”
“무실책 깨지나요?”
“내 기록이 중한 것이 아니여.”
“우승 필요 없어?”
“실책 한 만큼 홈런 치면 돼!”
신호 대기 중에, 유리가 내 쪽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내 얼굴은 내 뜻과는 다르게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유리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 걱정 같지도 않은 걱정이야. 마. 강건우. 누나는 건우뿐이다. 알겠나!”
이렇게 나오면 항복할 수밖에.
그냥 내일 노경우 타석에 세워두고 라이브 피칭이나 좀 해야지.
-나 : 노경우 내일 몸쪽 공 극복 훈련 ㄱㄱ
-노경우 : ???
물음표는 무슨.
약점 극복을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할 때가 온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