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화(3/385)
한 번만 봐주세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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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금으로 15억 준비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역대 신인 최고액입니다.”
다음 날 다시 찾아온 오션스 단장은 자신 있게 말했다.
역대 최고 계약금이긴 하다. 기존 역대 최고액이었던 10억에서 5억을 더 얹은 금액이다.
그들 입장에서야 통 크게 쏜 돈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오션스에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으로 성공했다.
선발 투수로 사이 영 상, 마무리 투수로 마리아노 리베라 상을 한 번씩 수상했다.
커리어 중간에 부상 때문에 투수를 그만둔 후 타자에 집중했고, 투타 겸업 기간을 합쳐서 MLB MVP도 총 세 번.
나이가 든 후에는 코너 외야수나 1루수, 지명타자 위주로 뛰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한국에서 뛴다니.
리그 터지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전에 말씀하신 SMC에 관해서는…”
단장이 헛기침하더니 입을 열었다.
SMC. 스포츠 모션 체이서.
메이저리거 시절 타격 및 투구 자세 유지와 수정을 위해 정말 잘 활용했던 기계다.
그 장비를 개인적으로 활용하고 싶어서 요청했었다.
사주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언급하셨던 레이팩 사의 제품을 알아봤습니다.”
“네.”
얼핏 들으면 SMC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생색을 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표정에서 감정이 다 읽히는 타입이다.
“음. 윗선에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만…”
단장이 힐끔 쳐다본다.
사실, 그냥 던져본 말이었다. 안 주면 그냥 계약금으로 사려고 했었으니까.
“무상 장기 임대로 제공해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워낙 고가의 제품이다 보니…하하. 귀찮을 정도로 매달렸는데 이 정도가 최선이었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임대건 뭐건 해준다면야.
단장은 마치 칭찬해달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임대라도 좋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 외 계약에 관해서 따로 복잡한 건 없었다.
어차피 신인 연봉이야 주는 대로 받는 거고, 옵션 같은 걸 붙일 여지도 없다.
다만, 단장은 이것 하나만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계약에 관해서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계약 내용도 그렇고, 계약하기로 했다는 사실 자체도요.”
뭔가 흥분을 애써 감추려는 표정인데, 아마 다른 팀들 뒤통수를 후려갈겨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내가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을 했다가 아직 철회하진 않았으니, 오션스가 날 뽑는 순간 다른 팀들의 드래프트 전략이 다 어긋나게 될 테니까.
“일종의… 그러니까, 전략입니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 양해를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구단들에게서 욕을 좀 먹을 수도 있겠지만, 나랑은 별 관계 없는 일이다.
호구 단장으로 유명한 사람이라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장비 무상 임대에 대한 조건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음.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단장은 웃음을 제대로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세상에 공짜보다 비싼 건 없다. 조용히 있는 거로 빚을 퉁칠 수 있다면야 무조건 남는 장사다.
“한국에 남기로 하신 건 정말 잘 생각하신 겁니다. 그리고… 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하하. 갑작스레 마음이 변하거나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이거 참. 제 입장이,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좀 불안해하는 것 같기는 하다.
구두 약속이기에, 내가 드래프트 이후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메이저리그로 가겠다고 하면 오션스 측에서는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날리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아,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투타 겸업은 안 할 생각입니다.”
“예?”
“응?”
“뭐?”
“타자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부모님과 단장이 동시에 놀랐다.
나는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투타 겸업을 하겠다며 떠들고 다녔었고, 솔직히 지금 다시 한다면 그때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투타 겸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이유?
“조금 갑작스럽긴 하네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아까 유리를 만나서 한 대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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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유리는 이상한 표정으로 내 말에 대답했다.
나는 최대한 뻔뻔하게 말했다.
“한 번 봐주면 소원 세 개 들어달라며?”
아리송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냥 던져본 말이었던 것 같다.
“어, 어, 그래. 그랬지. 그래서 소원 세 개 들어준다고? 허, 맞아.”
반지의 동그라미 세 개가 소원 세 개를 뜻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소원 세 개를 안 들어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 리가 없다. 애당초 과거로 돌아온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건데.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고작 소원 세 개 정도쯤이야.
그리고 설마 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없어?”
“음… 갑자기 그러니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혼자 눈을 크게 떴다가, 웃음기를 감추더니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말했다.
“너 진짜 메이저리그 안 가?”
“응. 왜, 메이저리그 가는 게 소원?”
“아니!”
“그럼 안 가.”
“내가 가라고 하면 가게?”
“응.”
“와. 말 드럽게 안 듣던 강건우 어디 갔나. 야, 우리 건우 어디다 숨겼냐?”
멱살을 잡고 노려보면서 흔들어대길래 그냥 씩 웃었다. 유리는 한참이나 날 뚫어지라 쳐다보다가, 그냥 같이 웃었다.
“그래. 뭐, 안 가면 나야 좋지.”
“안 가는 게 소원이란 뜻이야?”
“설마.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유리가 코를 찡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소원은…”
“첫 번째 소원은?”
“우리 건우 오션스 가는 거!”
오션스가 미치지 않고서야, 내가 국내에 남는다고 했을 때 날 지명하지 않을 리는 없다.
지명 안 하려면 뭐하러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 집을 찾아오겠는가.
“오케이. 오션스. 접수.”
“정말?”
“당연하지. 다음은?”
“음…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결승 홈런 때리는 거?”
“결승 홈런?”
아무리 자신이 있다지만, 특정 경기에서 그러는 건 좀.
“좀 어렵나? 그냥 우승 시키는 거로 해, 그럼.”
“그 정도쯤이야. 딱 봐라. 내가 10션스 1션스로 만들어준다.”
“오올. 강건우. 자신감. 나머지는, 음. 안 다치고 건강하게 선수 생활 하는 거?”
“응?”
안 다치고 건강하게 선수 생활?
“응. 왜?”
천연덕스럽게 되묻는데, 그건 아무래도 프로 운동선수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절대 안 다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절대로 없다.
“그건 불가능한 일인데.”
“그럼 두 번째는 가능하냐?”
“오션스가 한국시리즈 못 갈 거라 생각하고 한 말이었어?”
“꼴션스는 글러 먹은 팀이라 안 돼.”
“아냐. 그건 될 수도 있는데, 세 번째건 불가능해.”
“뭐…꼭 그래야 한다기보단 소원이라 이거지…”
“좀 현실성 있는 건 없어?”
“아, 몰라. 그냥 다치지 마.”
기분파인 유리는 생글생글 웃다가도 버럭 하곤 한다.
한때는 그런 게 스트레스일 때도 있었는데.
콩깍지인가. 이것마저 귀엽게 보인다.
“한 시즌 정도면 괜찮지 않나?”
“뭐? 두 번째 시즌부터는 다치시겠다?”
“그게 아니라, 사람이 목표가 있어야지. 한 시즌 건강하게 보내고 그다음 시즌은 새롭게 목표를 잡고. 어때?”
솔직히, 난 이쯤 되면 유리가 고개를 끄덕일 거라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유리는 인상을 팍 쓰며 대답했다.
“뭐래.”
나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2시즌?”
“야구 원투데이 하냐?”
“아니, 불의의 부상이 있을 수도 있고…”
협상이 불발됐고, 내 미래의 와이프는 최후통첩을 내놓았다.
“뭐, 좋아. 어쩔 수 없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누나가 통 크게 양보한다. 다칠 수는 있는데, 시즌 아웃당할만한 부상이나 수술은 안 되는 거로.”
“…언제까지?”
“은퇴할 때까지.”
“아냐. 잘 생각해봐. FA 때까지 정도면 괜찮지 않아?”
“뭐?”
“일단 한 몫 크게 땡기고 나면 그 뒤엔 좀 드러누워서 쉬기도 하고 그래야지. 안 그래?”
그 말이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웃음이 빵 터진 유리는, 한참이나 웃다가 대답했다.
“그래. 그 정도면 인정.”
이게 바로, 내가 투수를 안 하겠다고 말한 이유다.
어쩌면 불펜으로는 가끔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선발 투수는 할 생각이 없다.
메이저리그 시절,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투수를 그만뒀었다.
투타 겸업은 확실히 힘들기도 하다. 투수와 타자가 쓰는 근육이 다른 것도 그렇고, 타자로 시즌을 치르면서 투수로서의 루틴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선수들보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때가 온다. 그렇게 되면 어느 하나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둘 다 엉망이 된다.
그래서 체력 단련을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이 하긴 했었다.
뭐, 난 둘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실제로 둘 다 잘 해냈다.
하지만 타자로서의 커리어 하이는 투수를 그만둔 이후였다. 홈런 40개를 넘긴 것도 그 뒤였고.
어쨌거나.
현시점으로 돌아와서.
타자에만 집중하겠다는 내 말에 오션스 단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도 투수로서의 테스트는 좀 해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미리 정해두지 않고 투타 어느 한쪽을 스프링캠프에서 선택하는 것이 어떨까요?”
WBSC에서 완봉승을 거둔 결승전에서 난 홈런 두 개도 같이 쳤었다.
오션스 입장에서도 15억짜리 유망주의 가능성 중 하나를 포기하긴 힘들지도 모른다.
“혹시나 계약금 15억에 투수로서의 몫도 들어가 있다면 타자로서의 계약금만 받아도 좋습니다.”
내 단호한 말에, 박준기 단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정 그러시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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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쟨 대체 왜 저래? 며칠 전이랑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데…”
박준기 단장은 강건우의 아파트에서 나오자마자 입에 담배를 물면서 혼자 투덜댔다.
15억 베팅에는 투타 모두의 몫이 들어가 있었다. 투수로서도, 타자로서도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는 평가다.
거기에다 WBSC 대회로 인한 인지도 및 탄탄한 체구와 준수한 외모로 인한 스타성도 한몫한다.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모기업 회장님이 강건우를 꼭 잡으라고 지시를 했다는 거였다.
바짓가랑이라도 잡듯 매일 찾아온 건 그것 때문이었다.
“그래도 뭐…”
사실, 현대야구에서 투타 모두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단장은 강건우에게 계약금은 그대로 주겠노라고 말했다.
프로에 입단해서 투타 모두에서 잘 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선수 본인의 뜻이 정 그렇다면 스프링캠프에서 지켜본 결과, 투수보다 타자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 된다. 만약 현장에서 투수로 육성하고 싶거나 투타 겸업 선수로 키우고자 한다면 그건 현장의 몫일 뿐이다.
감독에게는 선수가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고 전달만 해줄 계획이었다.
단장으로서 임무는 끝났다.
“흐흐.”
박준기는 언제 투덜댔냐는 듯 담배를 발로 밟아 끄며 낮게 웃었다.
어찌 됐건 이걸로 다른 단장 놈들에게 엿을 먹일 수 있게 됐다.
다른 팀들도 드래프트 전략을 짰거나, 짜고 있을 터.
오션스가 강건우 영입에 실패하면 유병성을 뽑으리라는 것은 이미 비밀도 아니었다.
하지만 강건우와 계약하기로 한 이상, 드래프트 당일에 타 팀들의 전략을 모조리 어그러뜨릴 수 있는 한 방에 될 수 있을 것이다.
드래프트에서 오션스 다음으로 선수를 고를 대전 메테오스는 원래 계획대로 갈 것인지, 아니면 유병성을 뽑을지 고민하게 될 거다. 계획을 수정하든 그대로 가든 혼란이 연쇄 효과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다른 단장 놈들 표정이 벌써 눈에 선하구만…”
15억?
어차피 자기 돈도 아닌 것을.
박준기는 애써 표정을 숨기며 자신의 차로 향했다. 자신을 호구 취급하던 다른 단장 놈들에게 한 방을 먹여줄 수 있게 됐다.
단장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실 그것보다는, 회장님 지시사항을 어떻게든 이행했다는 데서 온 안도감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