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21)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23화(223/385)
사기꾼들의 스포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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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메이저리그에서 던져도 이렇게 안 맞았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뭐…아마가 아니라 확실히 그렇다.
아무래도 지난 경험이 있으니 그때보단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한다. 과거의 경험 없이 KBO에서 시작했더라면 지금 같은 성적을 내지는 못 했을 거라고 확신하니까.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내가 여기서 더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에 대한 생각도 있다. 혹은, 실력이 쇠퇴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아무래도 경쟁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좀 두들겨 맞거나, 호되게 당해야 발전할 부분을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물론, 유리가 어떻게든 조정할 부분을 찾아내려 노력하기도 하고 나도 감을 잃지 않으려고 집중하고 있기에 쉽게 기량이 떨어지게 놔두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더 높은 레벨에서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내가 KBO 생활을 정리하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게 된다면, 처음에 약간의 적응기를 거칠지언정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별문제는 없다.
그리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다른 이야기다.
여기서 내가 말도 안 되는, KBO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을 정도의 활약을 펼친다 해서 지루한 감정을 느끼거나 야구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그렇지 않다.
“스트라이크! 아웃!”
이해석이 삼진으로 물러나며 애꿎은 전광판을 노려보고 있다.
수준 차이가 크게 나다 보니, 소위 말하는 양학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이런 게 더 재밌다.
아니 뭐.
서로 이 악물고 덤비고 붙고, 치열하게 경쟁해서 결국 승리를 쟁취했을 때의 성취감은 어디에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일이긴 한데.
문제는 언제나 승리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패배 후 찾아오는 승리도 달콤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 이기는 것이 더 좋다.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경기 자체 혹은 경기 내에서의 승리가 너무 길게 이어지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최소한 패배에 찌드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복현성에게 싱커 다섯 개를 연거푸 던졌다. 1볼 2스트라이크. 어떻게든 손목을 꺾어 파울로 연결해내려 애쓰고 있다.
투수들은 사실 대부분의 구종을 던질 줄 안다. 그냥 던질 줄 아는 것과 잘 던질 줄 아는 것은 다르다. 변화구를 던질 때, 투수 본인이 생각하는 궤적과는 영 딴판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제구가 안 될 수도 있다. 제구가 안 되거나 무브먼트가 없다시피 한데 그 변화구를 던질 줄 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공을 던질 줄 안다. 한 구종에 집중하고 있는 타자를 처리하기에 이만큼 좋은 능력이 없다.
딱!
싱커의 궤적을 쫓아오던 배트가 슬라이더를 억지로 따라왔지만, 그런 스윙에 힘이 제대로 실릴 리가 없다. 2루수 땅볼 아웃.
공을 처리해낸 노경우가 날 보며 씩 웃는다. 정면 타구 잡아놓고 잘난 척은.
아무튼, 지금 나는 충분히 행복하고 즐겁다. 굳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두고 천재니,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니 하는 말을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내 몸과 정신을 갈아 넣을 만큼 치열하진 않다. 적당한 치열함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행복과 함께 살아간다.
만족도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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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 카메라가 양 팀 감독을 차례로 비추었다.
오션스의 휴 브레드먼 감독은 여유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타격 코치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투수 코치와 대화를 나눴다. 중계를 지켜보는 팬들은 알 수 없겠지만, 대화 내용은 이랬다.
“타자들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자기 스윙을 하라고 전해. 쉬운 투수가 아니잖아. 길게 보면 승산은 우리가 더 높아.”
“예. 알겠습니다.”
타격 코치와의 대화는 심플했고, 투수 코치는 옆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
“자넨 할 말 없어?”
“딱히.”
“투수 코치 없이도 팀이 잘 굴러가는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때?”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쩐 일로 그렇게 순순히…제기랄. 혹시 자네, 감독이 없어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흐흐.”
“아주 잘못된 생각이야. 자넨 감독이라는 자리의 중요성과 압박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명백하게 말씀드리죠.”
“말조심해야 할 거야.”
“분명히, 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감독님 혼자 그러고 계신 거죠.”
“…”
반면, 메테오스 벤치는 조금 달랐다.
스코어는 여전히 0대 0이다. 하지만 여유 넘치는 오션스와는 달리 이쪽은 꽤 심각했다.
“기습 번트라도 댈까요?”
눈치를 보던 타격 코치의 말에 정태구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선수단 버스에 불나는 꼴 보고 싶어?”
“…”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강건우는 지난 경기를 포함해 아직까지 퍼펙트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리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 노런 진행 중에 번트를 대는 것이 금기라고 하더라도 따지고 보면 아직 경기 중반도 되지 않았기에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타격 코치야 어떻게든 퍼펙트라도 깨서 타자들의 부담감을 줄여줬으면 하는 마음이겠지만.
“용재는 잘 준비하고 있나?”
“예. 침착합니다.”
“그럼 됐어. 언제 한 번은 기회가 오겠지.”
어딘가 비장함까지 느껴졌지만, 때론 정신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는 법이다.
잠깐 침묵에 빠졌던 메테오스 감독과 코치들은, 최종국의 타구가 포수 팝플라이로 끝나며 이닝이 마무리되자 다시 입을 열었다.
“저놈들 저거, 그때 우리가 꼴찌 했으면 강건우 우리 건데…”
“강건우 쟤 여자친구 땜에 오션스 간 거라며.”
“김 코치, 딸 있지?”
“딸은 왜?”
“위층에 강건우 같은 놈 없어?”
감독이 혀를 찼다. 물론 농담인 건 알지만, 본인도 답답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이놈들아. 강건우 같은 놈이 또 어딨어? 세상 어떤 놈이 이번 시즌에 거의 던지지도 않은 싱커만 던져서 타자들 쥐잡듯이 잡냐고. 야. 저기 복현성이 기죽은 거 안 보이냐? 넌 가서 쟤 기 좀 살려주고, 넌 가서 용재 어깨라도 주물러!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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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
내 두 번째 타석,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나선 나는 이번에도 볼에 배트를 냈다.
투수에만 집중하기 위해 대충 공격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차라리 투수로만 경기에 뛰게 해달라고 했을 거다. 선발 투수 겸 지명 타자로 출장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주겠다는 감독님의 말에 유격수로 나서겠다고 주장한 것이 나다.
그냥 강하게 타격하려는 생각일 뿐이었다. 박용재를 상대할 때는 이 방식이 제일 낫다고 판단했다. 볼을 던지더라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존 근처에서 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접근법은 이번 타석에선 꽤 괜찮았다. 펜스를 넘길 만큼 강하게 맞히진 못했지만 배트 끝부분에 걸렸는데도 힘이 꽤 잘 전달되어 오히려 좋은 타구가 나왔다.
최종국-이해석-복현성으로 이루어진 메테오스의 외야는, 타격 측면에서는 괜찮지만 수비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중장거리포-리드오프-선구안 좋은 만능형으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졌지만, 수비력을 놓고 보면 리그 평균 이하다.
살짝 휘어진 타구가 펜스를 향해 날아갈 때, 이해석이 몸을 날렸지만, 공을 잡아내진 못했다.
펜스를 맞고 멀리 튄 타구를 복현성이 허겁지겁 쫓아갔지만 나는 3루에 무사히 도착했다.
구장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기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건우야! 혼자 다 해물라고 그라나!”
한국말이 다 그렇다지만, 부산말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욕인지 칭찬인지 애매하지만, 분명히 칭찬이다. 원정 관중석까지 가득 메워버린 오션스 팬의 외침이었다.
일부 메테오스 팬들도 보이지만, 거의 절대 다수가 오션스 팬들이다.
어쨌거나, 득점 찬스다.
대근이 형이 대기 타석에서 타석으로 나오면서 배트를 위협적으로 크게 붕붕 휘둘렀다. 타석에 들어와서도 풀스윙하는 자세를 취하며 잔뜩 힘을 줬다.
그런데, 왼손으로 배트를 위로 쭉 들어 올리더니 벨트를 만지고 겨드랑이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저거.
번트 신호다.
좌타자에 대비해 시프트가 1루 방향으로 치우쳐서 형성됐다. 거기에 약간 물러서 있다.
대근이 형이 밀어치기도 잘 하는 타자이기는 하지만, 타구 방향 데이터가 있긴 할 테니.
양대근 정도의 타자가 이런 찬스에서 번트를 댈 거로 생각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타구가 내야를 뚫지 못하더라도 조금 깊은 타구가 나오거나 외야 플라이 정도만 나와도 충분히 득점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타자도 아니고 양대근이다. 이번 시즌 타율이 무려 3할 4푼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별 상관없다. 싸인이 나왔으면 그걸 실행해야 한다.
아마 메테오스도 양대근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 못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수비 형태가 이렇지.
대근이 형이 어깨를 잔뜩 올렸고, 나는 3루 베이스에서 리드 폭을 살짝 길게 잡았다. 박용재가 공을 던졌고, 홈으로 파고들 준비를 했다.
딱!
큰 덩치로 날렵하게 배트를 눕혀 가져다 댔다. 번트 타구가 살짝 떴다가 내려앉았다. 나는 달렸고, 메테오스 내야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야!”
“잡아!”
“아!”
솔직히 잘 댄 번트는 아니었다. 대근이 형이 번트를 실전에서 얼마나 대봤을까.
하지만 전혀 준비 안 된 상태에서는 충분히 먹혔다. 허겁지겁 달려온 3루수가 공을 잡았지만 나는 이미 홈을 밟았고, 발 느린 대근이 형이 1루에서 살아남기는 힘들었지만 우리는 선취점을 냈다.
“갑자기 무슨 번트에요?”
내 질문에, 대근이 형은 슬쩍 내게 말해줬다.
“오늘 컨디션 별로라서.”
아무래도 번트는 자의적인 판단이었던 듯하다. 벤치로 돌아가자 선수들은 우릴 환영했지만, 감독님의 표정이 못마땅하다. 대근이 형은 큰 덩치에 안 맞게 슬며시 안 보이는 곳으로 숨었다.
뭐, 점수 냈으니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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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이 상한 이성혁은 어떤 방식으로든 출루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라는 말은, 몸에 맞고서라도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싱커가 몸쪽 가까이 낮게 날아온다. 이성혁은 스윙하는 척하며 배트를 끝까지 내지 않은 다음, 다리를 살짝 밀어 넣었다.
피하는 척하는 것은 필수다. 고의로 맞으면 몸에 맞는 볼 선언이 안 된다.
빡!
“억!”
연기는 꽤 좋았다. 관중석에서 이상한 탄식이 들려온다. 심판은 조금 우물쭈물했지만, 그래도 몸에 맞는 볼을 선언했다.
강건우의 퍼펙트가 깨졌다.
약간의 견해차가 있었다.
오션스 감독은 버럭 화를 냈다. 일부러 맞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강건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슬쩍 웃으며 괜찮다고 신호를 보냈다.
메테오스 팬들은 난리가 났다. 선수를 맞혀 놓고 웃는다며.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성혁이었다.
영 좋지 못한 곳에 맞았다. 괜히 발을 들이밀다가 복사뼈에 그대로 맞아버렸다. 이성혁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자 메테오스 벤치에서 후다닥 트레이너가 뛰쳐나왔고, 이성혁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하자 두 손으로 X를 그려 보였다.
대주자가 교체된 이성혁을 대신해 1루에 섰다. 메테오스 벤치는 빅터 발타사르에게 번트를 지시하는 대신 강공을 선택했고, 이성혁의 복사뼈와 맞바꾼 첫 출루는 병살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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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재는 웃고 있었다.
‘아니 뭐, 내가 잘못 한 건 아니니까.’
자포자기라기보다는 어처구니없음이었다. 강건우의 피칭은 TV로 보는 것보다 더 심각했다. 더 확실해진 의문이 있었다.
‘쟈는 왜 메이저 안 간겨?’
알 수 있었다. 레벨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정도는.
그 의문의 종착역은, 자신이 메이저리그를 노려도 되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쟤도 여기 있는데, 내가 메이저리그에?
여자친구 때문에 한국에 남았다는 말이 진실이기를 바랄 수밖에.
어쨌거나 할 일을 하면 된다. 만년 하위 팀의 에이스로 살면서 체득한 것이 있다.
승리도 좋지만, 아니더라도 잘 던지면 된다는 거.
물론 메테오스는 이번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고 있다. 전력도 좋아졌고, 이성혁이 실려 가긴 했지만, 어느 정도 공백이 있더라도 버틸만해 졌다. 예전처럼 복현성이 부상으로 빠진다고 해서 타선이 신기루처럼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상상도 못 했던 양대근의 스퀴즈 번트에 일격을 당하며 1점 차로 밀리고 있긴 하지만, 오늘 컨디션은 상당하다. 강건우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대처하는 타자도 없다. 물론, 다른 타자들에게 안타를 전혀 안 맞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집중력을 발휘해 던졌다.
강건우도 마찬가지였다. 뽑아낸 1점을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듯.
유병성에게 160km/h 중반대의 빠른 공이 마구 꽂히고, 복현성은 3번째 타석부터 계속 다른 구종을 상대해야 했다. 빅터 발타사르는 강건우의 커브를 보고 정신이 반쯤 나가버렸다.
박용재는 또 이런 생각도 했다.
‘솔직히, 쟈들 타선이 우리보단 좋으니까…’
어쩌면 최소한 무승부가 아닐까. 물론 팀 간 맞대결 말고. 강건우 대 박용재로 봤을 때.
강건우는 어느 순간부터 투심인지 싱커인지 모를 그 공을 던지지 않았다. 150km/h 정도의 포심과 체인지업. 그리고 슬라이더와 커브를 섞었다.
유병성은 끝까지 160km/h대의 포심을 상대해야 했지만.
중간에 행운의 안타가 나오기도 했다. 빗맞은 타구가 3루수 키를 살짝 넘겨 떨어졌다.
“아이고! 노루야!”
“노루 임마! 팔길이가 그것 밖에 안 되나!”
“노루 점마가 다 조지네!”
물론 이시욱 탓은 아니었다. 강건우가 유격수 자리에 있더라도 커버할 수 없는 타구였다.
이시욱은 삐죽대며 살짝 눈치를 봤지만, 그래도 덕아웃에 돌아와 초코파이 하나 집어삼키고 기운을 차렸다.
“야. 건우야.”
“괜찮아요.”
“그치? 내가 잡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못 해서 못 잡은 거 아니지? 아니, 내가 더 잘 했으면 잡았을지도 모르지만…”
횡설수설하는 이시욱에게 강건우는 씩 웃으며 아무 문제 없다고 대답했다.
이시욱은 기운을 차렸고, 노경우가 조금 투덜댔다.
“강건우 저놈 내가 못 잡았으면 쥐잡듯이 잡았을 텐데…”
9회 초에 강건우가 마운드에 섰다.
평소처럼 마무리 투수로서가 아닌, 완봉을 코앞에 둔 선발 투수로.
복현성의 타격 밸런스가 하루 사이에 꽤 무너져 있었다. 결국, 3구째 스플리터에 삼구삼진. 강건우의 오늘 13번째 탈삼진이었다.
박용재는 시즌 초 오션스와의 맞대결을 떠올렸다.
그때, 민승기와 맞붙었었다.
민승기는 1실점 완투승을 기록했고, 자신은 강건우에게 9회 말에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최종국이 또 하나의 삼진을 헌납했다.
지금 스코어는 1대 0. 그때와 다른 점은, 그래도 끝내기 홈런을 맞지 않아도 된다는 점 정도다.
여기서 점수가 나지 않으면 그대로 경기는 끝난다. 베테랑 채정준이 대타로 나섰다.
몇 안 되는 메테오스 관중들은 그래도 성원을 보내고 있었다.
“메테오스-행복한-채저엉주운-날려줘요-채정주우운-!”
안타를 날리진 못했고, 그냥 오늘 경기가 날아갔다. 채정준이 초구에 배트를 휘둘렀고 타구는 힘없이 투수 앞으로 굴러갔다.
강건우가 공을 손쉽게 잡아 1루로 던졌고, 심판이 게임 오버를 선언했다.
박용재는 입맛을 다셨다. 아마도, 내일 강건우는 쉴 것이다.
오늘 나름대로 인생 투를 펼치긴 했지만 강건우만 없었더라도.
그래도 박용재는 슬쩍 웃었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덕아웃에 돌아오는 채정준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형. 너무 기죽지 말어. 형만 못 친 거 아니잖어.”
에이스의 말에 메테오스 타자들이 다들 딴청을 피웠다.
제대로 못 친 건 다들 똑같다.
“갱-건-우우우우! 갱-건-우! 갱건우! 오션스 갱건우우우-!”
부질없이 오션스의 깃발들만 휘날리고 있었다.
오션스가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인 12연승을 기록한 날이었다.
특히 유병성이 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걸 보고, 박용재가 조용한 덕아웃에서 질문을 던졌다.
“야. 건우한테 뭐 미움이라도 샀냐? 너한테 왜 저런다냐?”
유병성이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모르겠어요…저 새끼 나한테 왜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