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24)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26화(226/385)
무슨 반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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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에이스급의 투수들도 중요한 순간 실수를 하곤 한다.
부담감 때문일 수도 있고 상대의 준비가 그만큼 철저해서일 수도 있다. 혹은, 그냥 타격감이 잔뜩 올라와 있거나 운이 따를 수도 있고.
그런데 내가 아는 민승기라는 투수는, 몇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부담감이나 실수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선수다.
오션스라는 조건이 충족된 이후의 투수 민승기는 한 경기를 빼면 에이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투구를 펼쳐왔다.
그리고 자기 백넘버가 번쩍번쩍 빛나는 시계를 자비로 설치해버린 오늘, 커브가 언터처블 수준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첫 타자를 4구 커브로 삼진 처리.
“스트라잌! 아웃!”
까다로운 2번 타자 복현성은 6구 승부 끝에 또 커브로 완전히 속여 넘겼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동기 부여다. 저렇게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렇다고 해서 승기 형이 부럽다는 것은 아니지만…음. 어쨌든 이상한 소리를 숨 쉬듯 하며 살아도 저 사람이 싫지 않은 건, 저런 삶의 방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분은 주상욱과 나의 의견이 비슷한 면이 있다. 주상욱은 승기 형을 ‘너무 이상하지만 존경하는 선배’정도로 생각하고 있기에 뭔가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승기 형은 세 번째 타자를 맞이해, 웃으며 공을 던졌다.
말이 좋아 웃었다는 거지, 절대 미소라고 표현할 수는 없는 표정이었다.
뭐가 그리 신나고 재밌고 행복한 걸까.
초구를 최종국이 파울로 연결하자 또 웃었다. 이번에는 ‘큭’ 하고 짧게 웃는 모습이었다.
2구 높은 패스트볼에 헛스윙이 나오자 씨익 웃었다.
그리고 3구 커브에 배트가 나왔다. 빗맞은 타구를 대근이 형이 뒤로 물러나며 잡아냈고, 성실하게 1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간 승기 형은 공을 받고 베이스를 밟아 이번 이닝 세 번째 아웃 카운트를 따냈다.
“민승기! 민승기! 민승기!”
그리고 쏟아지는 함성의 한 가운데에서, 모자를 벗고 상큼하게 머리를 쓸어올리며 전광판 위의 시계를 응시했다.
“후…”
주상욱이 두 손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비록 주상욱과 나는 아주 친밀하거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최소한 승기 형과 관련된 일 만큼은 그냥 알 수 있는 유대를 쌓고 있다고 믿는다.
“깔끔하고오!”
“이야, 오늘 승기 컨디션 좋은데?”
벤치의 사람들이 투수와 야수들을 환영하는 사이, 나는 큭큭큭 강건우를 듣지 않으려고 얼른 배트 케이지에서 내 배트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승기 형은, 나와 눈이 마주치니 큭큭큭 하고 웃는 대신 그냥 씩 웃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휴.
실질적 연장자인 내가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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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1번 타자 강건우에 대한 기대감은, 유격수 김세완의 수비에 대한 불안감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3루수 이시욱과 유격수 김세완.
이 얼마나 불안하기 그지없는 조합인가.
이시욱을 3루수나 코너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었다.
김세완이 살아남은 것은 내야 전체를 소화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시욱이 지명타자 혹은 1루수로 남아 있다는 것은 이제까지 그 시도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는 뜻이고, 내야 어디에서든 수비할 수 있다는 말은 내야 어디에서든 수비력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오늘 좆되는 거 아이가?”
“겁나 불안하긴 하다.”
“개세완이 저거 삽질하면 안 되는데.”
“노루는?”
“노루는 삽질 확정이고.”
그나마 강건우가 있어서 이시욱의 불안한 수비 범위를 커버하고, 정신줄을 놓곤 하는 노경우가 컨트롤 되는 편이었다.
“그래도 승기가 다 삼진으로 잡아주면 괜찮다.”
“그건 맞지.”
“그래! 승기가 삼진으로 다 잡을기다!”
이 대화를 네티즌들이 듣는다면, 반응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맞긴 뭐가 맞느냐, 혹은 처맞는 말 정도.
아무튼, 이런 불안감은 1회 말이 시작하자마자 날아가 버렸다.
따아아아아악-!
강건우를 1번 타자로 기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꽤 많은 팬들이 갸우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강건우가 첫 스윙으로 홈런 타구를 날려버리자 그런 의문은 모조리 증발했다.
“우와아아아아아!”
“건우야! 유리 누나가 고마 쌔리뿌라고 시키드나!”
어쩌면 1번 타자 강건우는 무리수일 수도 있었고, 비효율적일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무려 146억을 투자해 만든 국가대표급 테이블세터를 놔두고, 최고의 클러치 히터이자 홈런 타자를 리드오프로 세우다니.
하지만 리드오프 홈런을 때린 이상, 그런 의구심은 단 한 줌도 남지 않는다.
국가대표 언더스로우 투수이자 메테오스의 토종 2선발인 홍정수는 강건우에게 또 홈런을 맞고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오션스 감독의 강건우 리드오프 출전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홍정수에게는 꽤 혼란을 준 선택이었다.
시작부터 피해가자니 강건우는 현재 리그에서 가장 까다롭고 공격적인 주자다. 합계 146억 외야수 둘은 따로 떼놓고도 까다로운 타자인데, 더 무서운 점은 팀 배팅에도 능하다는 점이다. 강건우를 내보내고 그 둘을 상대해 제대로 처리해내지 못하면 양대근이 나온다.
득점권의 악마.
이건 최근 매스컴에서 양대근을 지칭할 때 부르는 단어였다. 강건우를 쉽게 내보냈다가 양대근에게 응징당하는 투수가 워낙 많았다.
그리고 야구 팬들은 그 상투적인 별명 대신, 득점권의 뚱뚱보라고 불렀다.
타점을 미친 듯이 먹어치운다. 타점에 대한 먹성이 끝도 없다. 부담감을 행복감으로 바꾸는 법을 알아낸 양대근의 득점권 타율은 0.395였다.
이런 복합적인 생각들이 모여 홍정수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그 복잡한 심경이 어설픈 공으로 연결됐다.
강건우는 어설픈 공을 결코 쉽게 보내주지 않는다.
“아이고오 우리 사위!”
사직동 쌍깃발이 깃발을 치켜세우며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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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지금 쌍깃누님 근처에 앉아있는데]-킹건우 초구 홈런 후려갈기니까 누님이 아이고 우리사위 하면서 울부짖으심
└ㅋㅋㅋㅋㅋㅋㅋㅋ시발 나같아도 그럴듯
└사위 사랑은 장모님 아니냐
└건우네 부모님은 어떻게 반응함?
└존나 좋아하시던데 ㅋㅋㅋㅋㅋ
└원래 부모님들끼리 친구사이였음
└그걸 니가 어케 앎?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냐? 뉴비새끼네 이거
└모를수도 있지;;; 아님 걍 루머일수도 있고;;
└루머 아님
└확실함?
└ㅇㅇ
└점마 사쌍누님 아들임
└아 트루?
└시바 ㅋㅋㅋㅋㅋㅋㅋㅋ 본인 부모님 이야긴데 아니라고 태클ㅋㅋㅋㅋㅋㅋㅋㅋ
└미안;
└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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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승기는 이시욱의 실책으로 주자가 출루했을 때, 오히려 웃었다.
‘강건우…네 놈이 다시는 네 수비 덕분에 이겼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들어주지.’
어찌 보면 기회다.
물론, 강건우가 있으면 든든하기는 하다. 안타가 될 타구를 아웃으로 바꿔놓는 마법을 보여준다.
하지만 진정한 에이스는 여기저기서 터져나가는 수비 속에서 더 빛나는 법.
정말로 시즌 내내 강건우가 없는 오션스에서 뛰었더라면 생각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랬다.
삼진을 잡아내며 메테오스의 기회 하나를 삭제시켰다.
주자가 1루에 있든 3루에 있든.
삼진으로 찍어누르면 아무 문제 없다.
원래의 약점이었던 득점권에 주자가 있을 시 약해지는 부분도 거의 극복했다. 마음가짐의 문제는 쉽게 극복하기 어렵지만 한 번만 벽을 넘어서고 나면 어이없을 정도로 별일도 아닌 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2루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1사 1루에서 2루수 정면 타구를, 노경우가 조금 일찍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살짝 흘린 사이 1사 1, 2루가 되었다.
-아. 오션스. 강건우 선수가 없어서 그런 걸까요? 수비 집중력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문제긴 하죠. 타자 강건우가 상대 팀에게 주는 압박감만큼이나 유격수 강건우가 같은 팀에게 주는 안정감이 크거든요. 오션스가 수비할 때를 보시면, 강건우 선수가 직접 내야 수비 위치를 잡아주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렇군요.
-벤치에서 내야 수비 위치를 잡아줄 수는 있지만, 강건우 선수가 직접 그걸 하면 자기가 얼마나 커버할 수 있는지 스스로 알거든요. 예.
-그래도 민승기 선수의 표정은 밝습니다.
-크으. 에이스의 품격이라고 해야겠죠. 끝났어도 진작에 끝났어야 하는 이닝인데, 실책으로 주자가 채워졌음에도 웃고 있어요.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나는 예전의 그 민승기가 아니다. 득점권에서 약했던 그 애송이 민승기는 더는 없다.
‘나는.’
민승기는 내야수들에게 미소를 보여주고는 다시 투구 판을 밟았다.
‘오션스의.’
박의현이 싸인을 내고 자리 잡았다.
‘선발 투수.’
이 배터리는 인터벌이 길지 않다. 박의현은 민승기가 좋아할 법한 싸인을 내고, 민승기는 박의현을 꽤 신뢰하는 편이었다.
‘민승기다.’
내야수들에게 웃어 보일 때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을 한 민승기가 투구 동작을 시작했다.
팔다리를 쭉 뻗어 던지는 시원한 투구 폼.
타자의 몸쪽을 과감하게 공략하는 배짱.
그리고, 오션스에서 커브를 배워 요긴하게 써먹고 있긴 하지만 KBO 탑 클래스로 평가받는 주 무기 포심 패스트볼.
156km/h의 포심 패스트볼이 맹렬하게 대기를 갈랐다.
빠각!
다급하게 나온 배트의 안쪽에 맞았다. 배트가 강렬한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 났다. 공을 던진 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은 민승기가 민첩하게 움직여 새어 나가려는 공을 잡아냈고, 주저 없이 2루로 던졌다.
“아웃!”
베이스를 밟은 김세완이 빠르지는 않지만 정확하게 1루로 던져서.
“아웃!”
1-6-3 병살(투수-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완성.
민승기는 주먹을 불끈 쥐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무아지경으로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관중석을 향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강건우가 정유리에게 하트를 날린다면.
민승기는, 오션스 그 자체인 오션스 팬들을 향해.
-이야. 배트가 그대로 박살이 났어요. 보통 컷 패스트볼을 칠 때 배트가 많이 부러지거든요? 그게 타자가 예상한 것 보다 훨씬 안쪽으로 들어와서 배트의 약한 부분에 맞고 부러지는 건데, 포심을 때렸다가 저렇게 부러진다는 것 자체가 민승기 선수의 구위를 증명하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수비 불안으로 득점권에 주자가 나갔지만 민승기 선수가 스스로 위기를 이겨냅니다! 이것이 바로 에이스다!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민승기, 정말 대단한 투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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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거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나는, 다음 타석에서 볼넷을 얻었고 배영한의 쓰리런에 홈을 밟았다.
휴 브레드먼 감독은 좌우놀이나 상대 투수에 맞춰 타순을 자주 조정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언더 선발 홍정수는 나의 다음으로 나오는 서창열-배영한-양대근의 3연속 좌타자를 좀 부담스러워서 하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오늘 실책을 저지른 노경우가 속죄의 솔로 홈런을 때리기도 했다.
홍정수는 정말 좋은 투수지만, 모든 투수가 그렇듯 안 좋은 날이 있기 마련이고 그게 오늘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수비에서 실책이 하나 더 나오기도 했다. 승기 형은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실책 세 개 때문인지 평소보다 6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투구 수가 많았기에 김정용 선배로 교체되었다.
6이닝 1피안타 3사사구 9탈삼진.
김정용 선배에 이어 신인 전태재와 이병준이 각각 1이닝씩 맡아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아무튼, 민승기라는 사람이 미친 사람인 걸 부정할 생각은 절대로 없지만, 꽤 인상 깊었다.
속마음은 모른다. 에이스라는 감투에 취해서 대범한 척 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속마음이 어쨌든, 투수가 실책을 저지른 야수들에게 웃어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솔직히 나 같으면 노경우 엉덩이 한 번 걷어차 줘야 직성이 풀릴 텐데.
아무튼, 자기 손으로 14연승을 달성한 승기 형은 잇몸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형광 점퍼를 입고 마운드에 올라가 혼자 덩그러니 서서 새로 단 시계를 응시하고 있더라.
“뭐 해요? 집에 안 가요?”
“말 걸지 마라.”
“예?”
“내 집 거실에 설치해둔 카메라가 날 찍고 있다…”
“…”
미쳐버린…
가지가지 하는 완댜님…
“완댜님…”
승기 형을 측은하게 부른 것은 내가 아닌 주상욱이었다.
대답이 없자, 주상욱이 고개를 툭 떨구며 중얼거렸다.
“집에 좀 가자고요…”
아, 그러니까 이게.
집에 가고 싶은데 부장님이 퇴근을 안 하는 그런 상황?
게다가 부장님이랑 같은 집에 사는?
“저 먼저 갑니다.”
“어. 건우. 조심해서 가고. 정유리 코치님도 정리 끝나신 거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