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27)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29화(229/385)
무슨 반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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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영은 슬라이더를 배우기 시작했다. 투수가 새로운 구종을 장착하는 것은 어떨 때는 쉽지만 그게 아닐 때도 많다.
나야 뭐.
타고 났으니까.
좀 재수 없긴 한데, 사실이다.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신체 조건과 여러 변화구를 손쉽게 익히는 손끝의 감각은 타고난 것이다.
야구에서 재능이 차지하는 부분은 굉장히 크다. 유리가 새 구종을 장착시키는데 아무리 일가견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평범한 선수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지금이랑은 다르게 우리는 많이 싸웠었다.
서로에게 불쾌한 색상의 감정을 토해내기보다는 속에서 썩어들어가는 일이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야구와 관련된 일,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술적인 부분 혹은 훈련과 관련된 부분에서 우리가 의견이 갈린 적은 거의 없었다.
연인에서 부부가 되는 과정에서도 그랬고, 부부로 살면서도 그랬다. 하지 않아도 되는 변명이지만 나는 뭐…그냥, 유리가 짜준 하드한 스케쥴을 무조건 소화하려고 했었다.
아무튼, 슬라이더 연습하는 걸 봤는데 장난 아니더라.
그, 여러 가지 의미로.
“우왁!”
불펜 포수가 몸을 던지며 슬라이더를 잡아냈다. 10구를 조금 넘게 던지는 동안 존 안으로 들어간 공은 단 2구.
그 2구는 변화가 거의 없이 가운데로 들어가는 행잉 슬라이더였다. 타자 관점에서 저런 공이 오면 그냥 땡큐다. 제대로 힘을 실어 때리면 그냥 날아가는 거다.
아직은 변화 각이 그렇게 크지 않다.
그런데 진짜 땅바닥에서 치솟아 오르는 느낌이다. 포심을 던질 때는 끝에서 살짝 가라앉아 어딘가 약해 보이고 치기 쉬워 보인다면, 이건 끝에서 살짝 옆으로 횡 무브먼트를 보이면서 치솟아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을 줄 것 같다.
“그래도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왼발이 조금 더 힘있게 고정되면 훨씬 나아질 거예요!”
뒤에서 지켜보던 유리가 밝게 외치자, 장태영이 땀을 손으로 닦아내며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나가며 슬쩍 유리에게만 들리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다른 새끼들한테 그렇게 웃어주지 마.”
유리가 이상하게 소리 질렀다. ‘흐엙!’
입이 떡 벌어진 유리의 얼굴이 살짝 빨갛게 달아올랐다. 불펜 세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을 향했고, 나는 그냥 튀어버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리가 급하게 해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유리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리 누나 : 야 강건우
-유리 누나 : 너 진짜…
-유리 누나 : ㅎ 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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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아이언스와 3연전을 치르는 동안, 장태영은 한 번 더 등판했다. 점수 차이가 꽤 벌어진 경기였다.
슬라이더의 제구는 여전히 확실히 잡히진 않았다. 등판 결과는 0.1이닝 1탈삼진이다.
뭐.
삼진 잡은 뒤에 홈런 한 방 맞고 볼넷도 하나 내준 다음 교체되긴 했지만.
억지로 긍정적으로 볼 수는 있으니까.
치솟는 듯한 느낌의 슬라이더에 아이언스 외야수 지형욱이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무려 헛스윙만 세 개. 올 시즌 신인왕 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지형욱에게 삼진을 뽑아냈을 때만 하더라도 설마 하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박정신은 밋밋하게 들어오는 행잉 슬라이더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대로 타구가 펜스를 넘어갔고, 그다음 타자인 제이크 웰치는 스윙 한번 없이 출루했다.
약점이 뚜렷하다. 아무리 생소한 공이라 하더라도 존 근처로는 와야 한다.
놔두면 볼이 되고, 실투는 툭 치면 넘어간다.
개선할 부분이 많다.
그것도 그런데, 조준이 형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파이러츠 외야수 정조준, ‘(강)건우가 올스타 투표에서 나한테 지면 파이러츠로 오기로 했다.’]물론 농담이었고, 조준이 형도 인터뷰에서 농담으로 말한 거였다.
하지만 팬들이 불타기에는 충분한 장작이었다.
└ㄹㅇ?
└시바 조준이 투표 가자
└뭔 개소리임
└신경 ㄴㄴ 어차피 뭔 수를 써도 건우 못 이김
조준이 형이 미안하다고 하는 건 꽤 보기 힘든 모습이다. 끝내기 홈런 치고 좀 흥분해서 우리끼리 한 말 퍼뜨려서 미안하다며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나 : ㄴㄴ
-나 : 괜찮음
-나 : 어차피 내가 질 일도 없고
-정조준 : ;;;
-채지성 : 조준이 나가면 난 누구 보고 웃냐
-나 : 저도 그냥 조준이 형이 지금처럼 단톡방 샌드백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정조준 : ???
-정조준 : 시바
-정조준 : 내가 한번은 참아준다
-윤태호 : 뭘 참어
-윤태호 : 야 후배한테 무시 받고 참냐?
-윤태호 : 걍 들이받어
-정조준 : 아 아무래도 좀 그렇지?
-정조준 : 마 강건우!!!!!!!
-조용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용한 : 태호 다음 시리즈 오션스 전이냐?
-윤태호 : 예 형…
-백준섭 : 태호 저놈 저거 ㅋㅋㅋㅋㅋㅋ 요새 오션스 상대 타율 꼬라박더니 저렇게 작전을 짜네 ㅋㅋㅋ
-윤태호 : ㅎ…
-정조준 : 머야
-정조준 : 지금 나 이용하려고 한 거야???
-정조준 : 와 태호형 이런 사람이엇어?????
-윤태호 : 조준아 농담이다ㅎㅎ;
-정조준 : 한 번 뱉은 말은 못 주워 담는 거 몰라?
아무튼, 난 별로 신경 안 쓴다. 물론 유리는 정조준 언젠가는 아가리 때문에 한 번 일 크게 치를 거라며 노발대발했지만, 이런 일도 익숙하다.
설마, 혹시나, 만약에라도 투표에서 진다 하더라도 그냥 농담한 거니까 파이러츠에 가서 뛸 일은 없다.
그리고 어찌 됐거나, 그런 혹시나 하는 일이 벌어질 일도 없을 듯하다.
-정현수 : 형
-정현수 : ㅋㅋㅋㅋㅋㅋㅋㅋ
-정현수 : 파이러츠 팬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현수 : 다른 팀 게시판 가서 정조준 좀 밀어달라고 했거든?ㅋㅋㅋㅋㅋㅋ
-나 : 그래서 타팀 팬들이 밀어준대?
-정현수 : 아니
-정현수 : 강건우 메이저 가야 하는데 뭔 개소리냐고
-정현수 : 꺼지라는 반응이 대부분 ㅋㅋㅋㅋㅋ
그렇다고 한다.
투표수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내가 지면 파이러츠 가서 은퇴할 때까지 뛴다고 했으니까.
제발 좀 메이저리그로 꺼지라는 게 오션스를 제외한 모든 팀 팬들의 여론인데 그게 통할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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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버즈의 투타 간판은 40홈런 1루수 윤태호와 35세이브 투수 봉재석이다.
원래는 선발 투수 황보경태도 있었지만, 황보경태는 불도저스와 FA 계약을 맺고 떠났다.
조훈기를 데려오며 내야를 보강하긴 했지만 선발진 구성에 어려움을 겪으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쨌거나, 부산 원정길에 임하는 두 간판선수의 표정은 꽤 복잡해 보였다.
“재석이 형.”
“어.”
“나 죽겠다.”
“왜.”
“오션스 너무 빡세서.”
봉재석이 실실 웃었다.
“야.”
“왜?”
“난 이상하게 오션스랑만 하면 그냥 휴가 온 기분이 든다.”
“아.”
윤태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꿀빠네.”
“꿀이라니. 경기 감각 다 죽고 얼마나 손해 보는 줄 아냐?”
“나도 경기 감각 다 죽어가는데.”
“그건 네가 못 쳐서.”
“와…말 너무 심하게 하시네.”
둘은 그래놓고도 낄낄대며 웃었다.
“야. 그래도 이번 오션스 투수는 할 만하지 않냐?”
오션스 3연전에서 오션스가 처음으로 내세운 투수는 바로 이훈이다. 오션스의 어떤 팬들은 윤태호가 2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을 때, 이훈 덕분에 윤태호가 홈런왕이 된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태호는 의외로 자신의 훌륭한 상대전적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냐. 요새 이훈 많이 달라졌어.”
올 시즌 들어 아직 두 선수의 맞대결은 없었다. 사실, 이훈은 정말 반가운 상대였다.
윤태호는 빠른 공을 노리는 타자다. 예전만 해도 이훈을 상대할 때면 체인지업만 조심하면 모든 일이 해결됐었다.
특히, 오션스에 제대로 된 포수가 없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포크볼이 꽤 날카로운데 주저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으니.
“그래? 하긴 좋아지긴 했더만.”
“투심 못 봤어? 완전 다른 투수라니까.”
“건우 여친이 그렇게 새 구종 장착을 잘 시키나?”
“그렇다나 봐.”
“나도 뭐 하나 가르쳐 달라고 해볼까?”
“오션스 가게?”
“뭐 못 갈 것도 없지.”
“배신?”
“배신은 무슨.”
확실히 오션스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오션스 전은 편안함 그 자체였는데.
이제는 일정표에서 오션스전이 가까워지면 스트레스를 받기까지 한다.
“오션스가 우완 불펜 구한다길래 내심 기대했어? 설마?”
“야. 내가 가려면 강건우는 받아와야 하는데, 되겠냐?”
“하…”
“사람 면전에 대고 한숨 쉬지 마라.”
“한숨이 안 나오게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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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공장장 소리를 듣던 이훈은, 선더버즈를 맞아 약간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았다. 천제현, 윤태호, 팀 카터에게 그렇게 약했다나.
따지고 보면 선더버즈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 셋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근데 또 작년 상대전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는데도 과거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나 보다.
“요새 투심 진짜 좋아요. 그냥 믿고 던져요.”
경기 전에 그렇게 말해주자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다.
“믿고 던져야지, 맞아. 믿고.”
홈런을 많이 맞는 건 내야수들과 별 관계가 없을 수도 있긴 하다. 근데 또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그라운드볼을 처리 못 할 거라 생각하고 삼진으로 잡으려다 꼬여서 장타 맞는 경우도 빈번하니.
경기가 시작될 때쯤, ‘훈이단’이 난리를 쳐댔다.
“훈아! 올스타 투표에 니 이름이 없는 건 말도 안 된다!”
“음모다 음모!”
“KBO는 각성하라!”
각 팀당 포지션 별로 한 명씩만 투표 대상이 되기에, 저 말은 팀킬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의아하지만, 유리의 말에 따르면 오션스 팬 중에 가장 이상한 사람들이 훈이단이라고 하니까 뭐.
아무튼, 이훈은 선더버즈 1번 타자에게 초구로 몸에 맞는 볼을 꽂아버렸다.
“마! 이훈 이 새끼야! 정신 못 차리나!”
저렇게 외치는 사람의 정체는 훈이단일까, 아니면 안티 훈이단일까.
“훈아! 괜찮다! 병살 잡으면 된다!”
아무래도 훈이단인 것 같다. 정말 이상하긴 한데, 같은 목소리였다.
“작년에 왔던…!”
이훈이 공을 받으며 중얼대자, 노경우가 받았다.
“각설이!”
그러자 박의현도 소리 질렀다.
“각설이이이으이이이잇!”
대근이 형은 조금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노루 형이 3루에서 거들었다.
“각설이 고마 가자!”
난…안 되겠다.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응원을 받은 이훈이 투심을 던져 병살을 유도했다. 천적이나 다름없었던 천제현이기에,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모두가 다 같은 방식으로 동료 선수를 도울 필요는 없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이훈에게 말했다.
“혹시 지금 기고만장 상태이신가요?”
이훈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아니, 너무 내려갔다.
“아뇨아뇨, 그 정도로 기죽진 마시고요.”
이훈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자기 볼을 두 손으로 꼬집었다.
정말 복잡한 투수다.
이훈은 용감하게 윤태호에게 거의 한 가운데로 투심을 꽂았다.
따아악-!
뭐지.
대체 뭐지.
분명 적당히 조절해준 것 같은데, 어디서 저런 용기가…
“아, 아니, 아니야. 이게 아닌데…”
얼굴이 새하얘져서 좌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걸 보아하니, 용기가 아니라 실투였던 것 같다.
윤태호는 배트를 집어 던졌다. 꽤 큰 타구다.
그냥 비명과 이훈을 욕하는 소리가 마구 섞였다.
그리고, 서창열이 날았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약간 짧아서 펜스를 넘길 타구는 아니었다. 펜스에 부딪히고 튕겨 나올 타구였는데, 서창열이 붕 날아서 펜스에 충돌하면서 타구를 잡아냈다. 벌떡 일어서더니 글러브에서 공을 꺼냈다.
“바람처럼 스쳐 가는! 정열과 서! 창! 열!”
“서창여어어어얼!”
팬들이 사직 구장을 뒤집어버릴 것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정말 좋은 수비였다.
“흠.”
하얗게 변했던 이훈의 얼굴색이 돌아왔다. 그리고 윤태호가 던져버렸던 배트를 보며 씩 웃었다.
그가 위풍당당하게 걷기 시작했다.
나는 옆으로 걸어가며 턱을 잡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훈의 얼굴에 순식간에 시무룩이 자리 잡았다.
나도 내가 진짜 어이없다는 거 아는데, 이 사람 대체 뭐지.
왜 귀엽게 보이는 거지.
“후니후니잇! 끝내주는 투심이었다! 너의 배짱! 그리고 나의 두뇌! 둘을 합치면 무적이다!”
“네…”
“후니후니! 선더버즈의 강타선을 맞아 1회 초를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투수치고는 너무 힘이 없다앗!”
“작년에 왔던…!”
“그래! 각설이! 바로 그거다! 나 박의현! 너 이훈! 우리는 무적의! 각설이 배터리!”
그래도 이 사람은 절대, 단 한 번도 귀엽게 느껴진 적이 없다.
그건 내가 정상이라는 아주 작은 증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