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33)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35화(235/385)
우리가 누구 -1-
#
1주일에 6번 경기하고, 경기 시간은 어찌 됐거나 다가온다. 페이스를 잠깐만 놓쳐도 어어 하는 사이에 휘말리게 된다.
하루 쉬고 온 다음 시리즈의 첫 경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휴식일에 뭘 했느냐에 따라 조금은 달라질 수 있고 선수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게 반드시 경기에 임하는 진지한 태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수들은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긴장을 해소하고 경기장에 적응하기도 한다.
선수들 간의 유대감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좋은 유대감이 반드시 좋은 성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한 팀으로 묶여 있다는 안정감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 순위 밖.”
“아, 형. 이거 투표 잘못된 거라니까요?”
“뭐라하노. 10위도 못 하는 게.”
“투표 조작입니다.”
“경우 없는 놈 이거 안 되겠네. 시청자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그렇게 무시하나?”
오션스 선수들은 어제 있었던 인기투표 결과를 두고 서로를 놀리고 있었다. 10위 안에도 들지 못했던 노경우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헤이, 너무 기죽지 마, 니거. 네게 부족한 건 팔뚝이야.”
노경우는 여전히 울프팩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중간에 있던 ‘니거’라는 단어와 울프팩이 팔을 들어 올려 부각시킨 터질 것 같은 팔뚝, 그리고 열 손가락을 다 펴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울프팩이 자기가 10위 안에 들었다고 자랑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서창열과 배영한은 후배 선수들이 그러는 걸 보고 나란히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
“…”
둘은 거액을 받고 팀에 입단한 FA 스타 플레이어임에도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다.
두 선수의 성적은 꽤 괜찮다. 꽤 수준이 아니라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주고 있고, 거액을 받은 FA 선수들이 흔히 듣게 되는 ‘먹튀’ 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저 바보들한테 인기투표에서 밀리다니.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의현! 오션스 인기투표 8위에 빛나는 남자! 저는 어려서부터 8보채를 좋아했었고! 틈만 나면 8공산에 오릅니다! 8로우 스윙을 좀 더 훈련하겠습니다!”
이건 더할 말이 없다. 어떻게 저런 놈한테.
“…4할이라도 쳐야 하나.”
배영한이 투덜대듯 말하자, 서창열이 가만히 서 있다가 슬쩍 대답했다.
“그것보단 여친 만들어서 인터뷰 때마다 여친 찾는 게 더 빠르겠다.”
“그거 이제 너무 진부하지 않냐?”
“그래? 그럼 뭐 해야 하나?”
“글쎄…”
진지하게 고민하던 둘은 금세 고개를 털며 잊기로 했다.
이런 거로 고민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다이아몬즈 선수들도 오션스와 있었던 그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어느 한 집단에 소속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다이아몬즈 선수들이 공통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다이아몬즈는 총체적인 난국을 겪고 있었다. 어쩌면 예전 오션스와 비슷한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오션스에서 건너온 선수들이 꽤 많다. 그들이 하나의 파벌을 형성하다시피 했다. 기존 다이아몬즈 선수 중 일부가 또 그랬고, 몇몇 선수들은 겉돌고 있었다.
기존 다이아몬즈 선수 중 홍석헌은 겉도는 선수 중 하나였다.
오션스 출신의 FA 외야수 김성호는 입단 후 그리 눈에 띄지 않았지만 정귀현을 포함한 선수들이 들어온 후 활개를 폈다.
예전엔 자기도 제 몸 건사하기 바빠서 몰랐는데, 투수조 조장이자 다이아몬즈 터줏대감인 석준규도 원흉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민승기만큼 프로답고 선배 같은 선수가 있었던가.
민승기가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오션스 팬들의 환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누가 그랬더라. 민승기가 다이아몬즈에 있던 시절, 진지하게 경기를 준비하는 걸 보고 ‘저 새끼는 혼자만 프로다운 척한다’라고 욕을 하기도 했었는데.
부산 잘 안다고 경기 끝나고 술 마시러 갈 생각만 가득한 몇몇 선수들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민다.
만약 오늘 또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면 다이아몬즈 선수들 편을 들 자신이 없었다.
오션스 불펜에서 오늘 싸움이 발생하면 다른 중요한 선수들이 출장 정지를 당하지 않게 자기가 가장 앞에 뛰어나갈 생각을 하고 있는 장태영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고개를 슬쩍 돌려보자, 숫자 12가 번쩍이고 있다.
마운드에 선 승기 형이 중얼거리고 있다.
“나는 민승기…”
사직 야구장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오션스의 선발 투수…”
뭐, 그런 게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된다면 어쩔 수 없지.
다이아몬즈 타자가 홈 플레이트 가까이 바짝 붙어서 상체를 살짝 수그리고 있다. 배트는 쥘 수 있는 대로 짧게 쥐고.
어떤 의도인지는 알 것 같다.
뻔하지 뭐.
투지를 보여준다. 몸에 맞고서라도 나가겠다. 맞으면?
싸울 수도 있고.
배트 짧게 쥐어서 겸사겸사 투수도 좀 괴롭히고.
그런데, 음.
애슬레틱스 시절 감독이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었다. 나한테도 말버릇이 되어버린 말.
‘야구장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메이저리그 연봉 1위 투수도, 그냥 한 경기 땜빵 용 마이너리거 타자에게 홈런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 이 바닥이다.
하지만, 그…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진짜 웃기게 느껴지긴 하는데.
큭큭큭 강건우 혹은 나는 민승기라고 말하는 저 사람이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승기 형의 투구 자세는 꽤 와일드하다. 일반적으로는 저런 투구 폼은 부상 위험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 전체적으로 마른 근육질이지만 근육의 탄력성과 유연성이 워낙 높다나.
소화해낼 수만 있다면 훌륭한 자세다. 아무나 따라 하지 못 할 것이다. 신체 밸런스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던지는데, 그런 자세로도 최대한의 힘을 공에 쏟아낼 수 있는 것은 저 투수가 얼마나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조금 궁금한 점은 있다.
김권종과 박용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투수들이다. 승기 형은 그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투수인데, 저 형이 오션스 팬이 아니라서 메이저리그로 갔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
퍼엉!
“스트-라이크!”
155km/h 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포수 미트에 꽂히는 강렬한 소리가 났다. ‘한 번 해보자 시발’이라는 자세로 타석에 섰던 타자가 움찔하며 배트를 끝까지 내지 못 할 정도로 위력적인 공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
“민승기! 민승기!”
관중석에서 보기만 해도 구위가 느껴지는 걸까.
아니면, 전광판에 찍힌 155km/h에 열광하는 걸지도.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하긴, 뭐든 관계없다. 2구째 투심에 파울이 나왔고, 3구째.
하이 패스트볼인 척하며 타자를 유혹한 공이 확 떨어졌다. 유리에게 배운 커브다.
커브의 핵심은 타자를 속이는 것이다. 다른 공으로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커브는 다른 구종과 다른 메커니즘으로 발동되기에 잘못 던지면 구분하기 쉽다. 낙폭이나 제구력과는 관계없이 그렇다.
부웅-
타자를 속이면 큰 헛스윙을 끌어낼 수 있다. 워낙 낙폭이 커서 땅에 스치듯 튀었는데, 박의현이 재빨리 다리를 뻗어 막아낸 후 즉시 공을 잡아 타자에게 터치했다.
“민-승-기! 민-승-기!”
승기 형이 만족스러운 듯, 살짝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관중들을 쓱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야구지…”
뭐, 컨디션 좋아 보이네.
“승기 형 뭐 인기투표 1위 하면 퍼펙트 할 거라고 했으니 실패해서 이제 퍼펙트 못 하겠네요?”
“큭큭큭 강건우…”
“공이나 받으세요.”
“인기투표에 연연하는 것은 에이스의 자세가 아니지.”
“되게 연연하시는 거 같은데.”
“나는 민승기…”
“피처! 경기 안 해? 공 받아!”
심판이 소리를 지르고서야 승기 형은 약간 멋쩍은 얼굴로 뒤돌아서서 포수가 던져주는 공을 받았다.
등이 들썩이는 걸 보니 혼자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안 들리는데.
그건 그렇고, 겨우 아웃 카운트 하나 잡아놓고 완봉까지 아웃 카운트 하나 남겨둔 사람처럼 저렇게 말하기 있나?
딱!
다음 타자가 때린 타구가 살짝 빗맞았다. 아무래도 안타가 될 법한 1-2루간을 향하는 타구였다.
바운드가 크고 절묘한 코스를 향한다.
그런데 노경우가 몸을 날렸다.
“우와아아아아!”
도움닫기로 점프한 노경우가 타구를 어떻게 잡아냈고, 쓰러진 채로 몸을 비틀며 1루에 송구했다.
포구는 좋았지만 송구가 영 별로였다.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급하게 던지느라 방향이 나빴다.
“아웃!”
그런데 대근이 형이 그 큰 덩치에 안 맞게 유연성을 발휘했다. 다리를 거의 일자로 찢으며 몸을 뻗었고, 주자가 1루 베이스를 밟기 전에 공을 잡아냈다.
대근이 형은 찢은 다리가 살짝 뭉치는 느낌인지 큰 주먹으로 허벅지 안쪽을 콩콩콩 때렸고, 노경우는 크게 기뻐했다.
“야.”
“수비 죽이지 않았냐?”
“정신 차리고 수비 안 하냐?”
“뭐? 존나 잘 잡았는데?”
“잘 잡으면 뭐 하냐 그렇게 던지는데. 중심 똑바로 잡고 던져야지. 허리 반동 너무 크게 주니까 그렇잖아.”
#
[경기 도중 노라니 갈구는 킹건우.gif]└ㅋㅋㅋㅋㅋㅋㅋ존나 쥐잡듯 잡네
└송구 좀 경우없긴 했음 ㅋㅋㅋㅋㅋ
└근데 둘 동기 아님?ㅋㅋㅋㅋㅋㅋ
└동기고 뭐고 고참들도 쥐잡듯 잡는다던데 ㅋㅋㅋㅋㅋㅋ
└좆건우 싸가지 개없네
└뭔상관임 차기 주장인데 ㅎ
└뭔 차기 주장임 강건우 특별법 만들어서 빠른 시일 내로 메이저 갈건데
└지가 안 간다는데 어케 보낼거임?ㅋㅋㅋㅋㅋㅋ
└아 걍 좀 보내라고 ㅆㅂ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개정색하고 갈구네 ㅋㅋㅋㅋㅋㅋ
└노경우 수비 많이 는 비결이 저거아님? 강건우 갈굼ㅋㅋㅋㅋㅋㅋㅋ
└그럼 ㅇㅈ이지…
└좀 더 갈궈라 건우야…
└저새낀 좀 갈굼 받아야함
└건우가 노루도 좀 존나 갈궈줬으면 좋겠네
└노루 존나 갈구면 우리 내야수비 완벽완성아님?
└노루가 갈군다고 될까…
└어쨌든 좀 갈궈주면 속이라도 시원할듯
└크 상상만해도 지리네 실책하고 노루 고개 푹 숙이고 강건우가 지랄하는거 ㅋ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선배한테 그건 좀
└선배고 뭐고 노루 수비 범위는 존나 선넘었지
└노루 수비 범위 면적으로 따지면 한 3평 정도 되나?
└노루 과대평가 하는거 보니 이새끼 노루단이네
#
아무래도 화요일 경기는 다른 날보다 관심도가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민승기라는 이름값이 주는 티켓 파워가 대단한 덕분인지 관중석은 꽤 많이 차 있었다.
새삼 유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직은 비어 있을 때 보다 차 있을 때 광기가 몇 배로 커진다고.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가 했지만, 이젠 충분히 알고 있다. 관중이 적을 때는 경기장이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관중이 많으면 이상하게 야구장이 작게 느껴진다.
뭐, 그냥 심리적으로 조금 그렇다는 이야기다. 심리적인 부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따아아아아악-!
울프팩의 스윙은 어딘가 시원한 맛이 있다. 같은 풀스윙이라도 내 스윙과는 꽤 다르다. 특히, 온 힘을 다해 휘두른 배트에 공이 맞고 난 뒤에 울프팩의 표정을 보면 더 그렇다.
타구를 때린 본인조차 못 믿겠다는 얼굴을 한다. 그리고 타구가 제대로 날아가는 걸 보면, 보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들 정도로 시원하게 포효하며 달리기 시작한다.
저 거구가 펄쩍펄쩍 뛰면서 환호하는 걸 보면 분위기에 심취하게 된다. 달리면서 팔뚝을 들어 올려 근육에 키스하면 관중들이 함께 소리 지른다.
“아오오오오오오오오!”
“울퍼팩! 마! 직이네!”
“어디 울씨 할래! 여권 내놔라 이 맷돼지야!”
울프팩이 자신의 두꺼운 가슴을 사정없이 퍽퍽 때리며 홈으로 돌진한다. 가끔 경기 끝나고 보면 너무 흥분해서 가슴에 멍이 들 정도로 때리기도 한다.
이게 바로 오션스가 포지션 정리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울프팩을 팀에 남긴 이유다. 저런 선수들은 팀에 활기를 불어넣고, 의외성을 부여해준다. 울프팩의 홈런에 홈을 함께 밟은 나와 대근이 형이 하이파이브를 해주자 울프팩은 대기 타석에 있던 노루 형에게 소리 질렀다.
“헤이 브로! 공보고 세게 때려!”
노경우 놀리려고 일부러 한 말인데. 그 농담이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퍼져 버린 것 같다.
울프팩이 아까 묻길래 포심만 노리라고 해줬었다. 오늘 다이아몬즈 선발인 배상운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으로 살살 간을 보다가 2볼 이후에 포심을 던지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튼, 홈런을 치고 여전히 흥분한 상태로 벤치에 앉은 울프팩은 마구 떠들어댔다. 울프팩은 인기투표에서 10위를 기록했는데, 솔직히 자기가 9위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9위였던 노루 형이 3루수 라인 드라이브 타구로 아웃되어 돌아오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 투표하면 내가 이길걸.”
“건우야. 울퍼팩 뭐라 하는 거고?”
“이제 자기가 인기투표 9위라는데요. 형 아웃당했다고요.”
“와. 건우야. 니가 말 좀 해주라. 내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니라고.”
“What? Nigga?”
“아이다! 아이다! 울프팩! 오해다! 주먹 내리 놔라! 울프팩! 아이라고!”
울프팩이 장난이라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어쨌거나.
승기 형은 7이닝까지 던지고 등판을 마무리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태영…네가 내 라이벌이 될 수 있는지 지켜보도록 하지. 엄청난 공을 던져야 할 거다…!”
벤치에 앉아있던 장태영이 움찔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태영이 이어 던질 거면 불펜에 있지, 왜 벤치에 앉아있겠느냐고.
마운드에 전태재가 올라가자, 둘 다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두 선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잘들 논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