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34)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36화(236/385)
우리가 누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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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영은 이 팀의 진정한 일원이 되고자 하고 있었다.
그건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팀이라는 것은 쉽게 정의하기 힘들다. 복합적인 유기체로서,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태영에게 가장 힘든 점은 오션스 선수단의 특이한 개성이었다.
주장 양대근은 사려 깊은 사람이다. 외부의 평가는 갈리는 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야구판에서 그만큼 착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착한 척만 하고 수틀리면 손바닥부터 나오는 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장태영이 직접 겪어본 양대근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냥 간단한 대화를 할 때도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며 이야기한다. 하지만 특정 몇몇 선수들에게만큼은 달랐다.
“어. 순위 밖. 어서 오고.”
“아, 형. 그거 뭔가 잘못된 거라니까요?”
노경우나 이시욱 같은 선수들이 그 대상이다.
“뭐야? 순위 밖 다음은 9위? 야. 9위도 순위냐?”
“아, 이 행님이 또 사람 살살 긁네. 주장만 아니었어도 진짜.”
“주장 아니면 뭐? 스파링 한 번 할까?”
“행님이 그래서 안 되는 겁니다. 뭐만 하면 힘으로 할라고…”
“진짜 힘으로 하는 게 뭔지 한 번 보여줄게.”
“와! 또! 또!”
물론 장난이다. 그리고 이시욱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덮어놓고 다른 손으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다가도, 장태영을 발견하자 사람 좋게 웃으며 인사했다.
“오. 태영이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은 무슨! 아! 머리! 머리!”
“이건 신경 쓰지 말고 할 거 해.”
“이거라뇨! 아니, 당연히 신경 써야지! 112! 112!”
어떻게 보면 재밌는 사람들이고, 또 어떻게 보면 정신 사납고.
장태영은 본인이 말이 많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션스에 온 이후로 말을 좀 많이 한 편이었다. 코치에게나 방송 같은 곳에서 그랬다.
물론 이 팀에도 말수가 적은 선수들이 몇몇 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불펜은 대체로 조용한 편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선발 투수였던 김정용이 불펜 리더다. 이쪽은 안정감이 느껴진다. 김정혁도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느낌이다.
이휘은은 기합이 넘치지만 던지는 데만 관심이 쏠려 있다. 추격조의 장진성이나 김호진, 그리고 신인 투수 둘은 둘이서만 쑥덕거리곤 한다.
선발진을 떠올리면 민승기는 이상한 사람이다. 아무래도 장태영 본인이 감당하기는 힘들다.
이훈은 어쩌면 좀 말이 통할 것 같기도 하지만, 옆에 박의현이 항상 붙어있다시피 하다. 박의현도 이상한 놈이다.
외국인 둘은 잘 모른다. 뭔가 거리감이 느껴진다.
국민성은…
“안녕하십니까.”
“어. 안녕.”
자신을 보자마자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책을 들고 옆에 앉았다. 아무런 말 없이, 오른손에는 공을 쥐고 계속 그립을 수정해가며 왼손으로 책을 넘긴다. 슬쩍 보니 투구 이론 서적이다.
“…”
뭐라고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국민성은 옆에 자신이 있다는 것도 잊은 것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 건우 안녕.”
“안녕.”
또 이상한 놈이 하나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이 팀에서 야구 잘 하는 놈들은 대부분 이상한 것 같다. 다른 선수들 이야기할 때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분명히 강건우도 좀 이상하다.
어쨌거나,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어쩌면 조금 조급해진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정유리 코치나 감독, 그리고 투수 코치도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같이 가자고 말해줬지만, 최근 본 기사 때문인지 그런 마음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메테오스 외야수 김지호, 2경기 연속 대주자로 역전 득점 성공.] [대주자 김지호의 트레이드 신화?] [김지호, ‘팀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어 행복.’] [기습 번트로 역전의 발판 만든 김지호.] [메테오스 정태구 감독, ‘팀에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선수. 너무 고맙다.’]요새 메테오스가 꽤 기세를 올리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장태영과 트레이드된 김지호가 힘을 보태고 있었다.
KBO에서 탑 수준의 주력을 갖춘 타자다. 작전 수행 능력도 갖추고 있다. 다만, 휴 브레드먼 감독의 성향과 맞지 않고 외야 수비 능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ㄱㄱㅓ억
└요새 꼴션스랑 틀드 해서 이득 본 거 우리 뿐임?
└ㅇㅇ다이아몬즈 개박살남ㅋㅋㅋ
└아이언스도 눈뜨고 털렸음ㅋ
└폐태영 보내고 김지호? 이건 뭐 ㅋㅋㅋ
└개꿀 트레이드 ㅇㅈ
아무리 그래도, 윈윈 트레이드 소리는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쪽으로 쏠린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싫다.
부담감과 약간의 조급한 마음이 그를 괴롭혔다.
국민성은 여전히 말이 없고, 강건우도 말없이 앉아서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있다.
“뭐 하고 있냐?”
장태영의 질문에, 강건우가 슬쩍 고개를 들더니 대답했다.
“편지 쓰고 있어요.”
“편지?”
“예.”
누구한테 쓰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보나 마나지.
“나중에 갈 때 내가 갖다 줄까?”
“아뇨.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줄 거에요.”
“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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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중에 선수들 간의 마찰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뛰어나오는 선수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팀의 베테랑이 솔선수범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연공서열이 어느 정도 중요한 KBO에서 베테랑이 앞장선다는 것은 싸움이 더 커지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고 몰라도 선 후배로 엮이다 보니, 나이 많은 고참 선수가 앞에서 삿대질하고 있으면 서로 체면을 봐서 적당히 하게 된다.
뭐, 물론 안 그런 경우도 많다. 오션스를 두고 벤치 클리어링 비매너 팀이라는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우리가 말뿐인 난투극이 아니라 실제로 주먹질을 많이 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
경기를 하다 보면 오해를 살 만한 상황이 항상 만들어진다.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데 누군가가 반응하는 순간 일이 커지게 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일이 커질 수도 있다.
일이 커진다고 해서 항상 주먹질이 오가는 것은 아니다.
경기 중에 정귀현이 앤디에게 짜증을 냈다. 사람들은 대근이 형이나 서창열 같은 선수들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해서, 앤디 가필드라는 선수의 본질이 필리건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우우우우우!”
“마! 정귀현이! 죽고 싶나!”
“어디 삿대질이고 이 새끼가!”
한때 정귀현은 사직 야구장의 스타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팀의 유격수에 대한 갈증 때문에 약간은 거품이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오션스 팬들에게 정귀현에 대한 애정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왜 아니겠는가. 운동하라고 보내놨더니 술 마시고 운전이나 하지, 또 알게 모르게 나쁜 소문은 꼬리를 물지.
게다가 지난 벤치 클리어링 때 보여준 행동들까지.
어쩌면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애정이 날아가기에는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앤디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정귀현이 몸쪽 싱커에 당해놓고 삿대질을 했는데, 앤디의 입 모양을 보지 않고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노경우도 들었는지, 슬쩍 말했다.
“존나 식빵 맛있댄다.”
“재밌냐?”
“아니 그냥 뭐 그렇다고…”
너무 기죽는 것도 안 좋으니까. 나는 노경우를 격려했다.
“정신 놓지 말고 수비하자.”
내 격려에도 불구하고 노경우는 내게 ‘나쁜 새끼’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MVP 출신의 격려와 코치를 받을 기회가 얼마나 된다고.
뭐, 아무튼.
경기 중, 노경우가 2루타를 때려냈다. 노경우는 자기가 인기투표 순위권에도 없다는 것에 조금 충격받았던 것 같은데, 팬 서비스를 더 확실하게 해주면 순위가 올라갈 거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튼, 노경우는 2루에 도착하자 프로 레슬러처럼 관중들의 환호를 유도했다.
솔직히 말하면, 음.
좀 눈치가 없었지.
다이아몬즈랑 관계도 좀 그런데.
그래도 은근 노경우의 행동이 반갑기도 했다. 뭐 어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정말 뭐 어때. 시비가 좀 붙든 말든.
예상한 대로 일이 흘러가긴 했다. 정귀현이 노경우에게 불쾌감을 표했고, 우리는 이 일이 그렇게까지 커지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정귀현도 예전 일이 있어 조금 조심하려는지 손을 대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언제나, 야구장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야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아!”
꽤 뜬금없는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새 대타로 쏠쏠한 활약을 펼쳐주고 있던 김세완이 버럭 소리 지르며 달려나가 버린 것이다.
우린 약간 당황했다. 누가 뛰쳐나갈 거라 생각지도 못 했지만, 그 선수가 김세완인것도 그랬고, 또 하나를 더 꼽자면…
“야!”
우리가 공격 중일 때 열릴 리가 없는 불펜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장태영도 뛰어나갔기 때문이다.
“뭔데? 뭔데? 뭔데? 어어? 뭐꼬!”
초코파이 먹느라 상황을 전혀 몰랐던 노루 형이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누가 뛰어나가자 그 뒤를 따라 쫓아갔다.
음.
일단,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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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그중에는 대기 타석에 서 있던 서창열도 있었다. 하지만 벤치 클리어링의 프로 중 하나인 서창열은 당황한 티를 내지 않았다.
큰 충돌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창열은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자신이 맡아야 할 놈을 찾을 수 있었다.
“뭐. 뭔데 씨바. 뭐냐고. 어?”
서창열은 조형오의 얼굴 앞에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조형오가 당황했다.
“야. 조형오. 너 뭔데. 또 투수 손모가지 한번 비틀어보게?”
“아니, 그게 아니라…”
조형오가 당황했다. 사실, 더 당황한 것은 정귀현이었다.
항상 기죽어서 아무 말도 못 하던 김세완이 갑자기?
그리고 어디서 본 적도 들은 적도 거의 없었던 장태영이라는 놈까지.
양 팀 투수조 조장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준규야. 언제까지 이럴 거냐?”
“아니, 그 말은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뇨?”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잘못한 게 뭔데요?”
김정용도 꽤 달라졌다.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내 멱살 한 번 잡아.”
“예?”
“내 멱살 잡고 뺨 한 대 치면 화 풀리지 않겠냐?”
김정용의 뒤에서 양대근의 눈빛이 느껴진다. 석준규도 한 덩치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저건 감당이 안 된다.
“아,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그만 정리하고 들어갑시다, 형님. 야! 철수! 철수해! 별거 아니었다! 오해다!”
“들었지? 들어가자.”
오해라는 말이 고참 입에서 나왔으면 그대로 상황 정리다. 선수들 간에 감정이 터질 만큼 극단적으로 치솟은 상황도 아니었고, 몇몇 선수들은 서로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정도이기도 했다.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홍석헌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자기 수비 위치로 돌아갔다.
‘쪽팔리게 진짜. 왜 자꾸 양아치처럼 시비를 걸지.’
정귀현을 두고 한 말이었다. 주상욱이 뛰쳐나온 장태영을 적극적으로 말리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오션스로 간 선수들은 완전히 팀에 동화된 것 같다.
괜히 오션스에 대한 짜증이 치민다. 트레이드로 보내도 뭐 저런 놈을 보내가지고.
휴 브레드먼 감독은 장태영과 김세완 둘에게 어깨동무하고 말했다.
“좋아. 내 돌격대장들. 아주 인상 깊은 질주였어. 자네들이 살인자가 안 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어쩌면, 오션스가 최악의 벤치클리어링 상대 팀으로 꼽히는 것은 감독의 이런 태도 때문일지도 몰랐다.
뛰쳐나가서 행패를 부리든 무슨 짓을 하든 선수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김세완은 정귀현에게 쌓였던 감정에 의해서, 그리고 장태영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의욕이 앞섰다.
그냥 그런 것 때문에 생긴 일종의 해프닝일 뿐이었다. 감독은 두 선수가 동료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했고, 서창열은 양대근에게 이렇게 말했다.
“양캡. 이제 싸움 나도 우리가 안 나서도 될 것 같지 않아?”
“바라던 바긴 한데요. 제가 워낙 평화주의자라…”
“뭐? 평화주의자?”
“싸우고 그런 거 안 좋아해서…와이프도 걱정하고…”
서창열이 코웃음을 쳤다.
“일전이 아직도 가끔 자기 복수 해달라고 연락 오는데. 암살 좀 해달라고.”
양대근이 쑥스럽게 웃었다.
“그래도 나쁜 짓 하면 맞아야죠…”
서창열은 자기도 모르게 양대근의 두꺼운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무슨 깡으로 저런 놈 기죽이겠다고 그랬을까. 손만 봐도 오금이 저릴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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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씩씩대며 이렇게 말했었다.
“아, 쟤들 왜 이렇게 꼴 보기 싫지?”
쟤들이란, 오션스에서 다이아몬즈로 건너간 선수들을 말하는 거다.
그리고 나는 불펜으로 등판한 조형오를 상대하게 됐다.
조형오도 조형오 나름대로 꽤 약이 오른 모양이었다. 내 몸쪽으로 포심을 바짝 붙였다. 노경우처럼 몸쪽 가까이 공 온다고 비명 지르면서 쓰러지는 건 모양이 안 산다. 만약 이게 맞기라도 했다면 몰라도.
“마!”
조형오에게 쏟아지는 오션스 팬들의 함성에, 조형오는 모자를 다시 고쳐 쓰며 다음 투구를 준비했다.
따지고 보면 조형오도 투수로는 나쁘지 않다. 체력이 안 좋아서 그렇지.
불펜에서 1이닝 던지는데도 최적의 구위를 뽑아내려면 2~3일은 쉬어야 하는 타입이다.
3일 쉬고 올라온 조형오는 꽤 날카로운 공을 뿌렸다. 몸쪽 포심 이후 또 몸쪽 낮게 깔리는 투심.
나한테 겁을 주겠다는 의도인지 뭔지는 몰라도, 별 효과는 없다. 그냥 2볼 노 스트라이크라는 타자에게 극히 유리한 상황이 되었을 뿐.
아무튼, 꽤 치열한 경기다.
내일 경기에 다이아몬즈는 서현우를 등판시킬 예정이라고 했다. 내일 우리 투수가 이훈이던가.
우리 로테이션에서 가장 약한 투수에게 자신들의 가장 강한 투수를 붙여 1승을 확정적으로 따내려는 생각이겠지.
이훈이 운이 상당히 따르는 투수란 걸 생각하면, 그게 큰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유리한테 조형오 두들겨 주기로 했다. 유리는 조형오를 그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았지만, 지난 벤치 클리어링 때 이후로 비호감 그 자체가 됐다.
뒷발을 살짝 빼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열었다. 바깥쪽으로 오면 하나 버리고, 또 몸쪽이면 그대로 나갈 생각이다.
배터리가 꽤 오래 싸인을 나눈다. 구종 세 개짜리 치고는 회의가 길다.
그냥 짐작하자면, 투수는 몸쪽을 주장하고 포수는 바깥쪽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싸인이 길어지면 대체로 투수가 원하는 대로 된다.
조금 불안정하지만, 투구 동작이 시작되자 나는 왼발을 살짝 세우듯 스텝을 밟았다. 오른발은 뒤로 강하게 딛으며.
왼팔은 몸통에 완전히 붙이고 오른팔은 살짝 각을 열어서.
바깥쪽 공에 대처하기 쉽지 않은 포즈다. 안되면 스트라이크 하나 먹으면 된다. 어차피 볼만 두 개다.
공이 날아온다. 내 생각보다 살짝 더 몸쪽이다.
하지만 그건 관계없다. 내가 몸쪽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만 중요하다.
어쩌면, 기왕 볼 카운트 몰린 거 몸에 맞히려고 하는 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꼭 맞히려는 코스로 보이지는 않는다.
애매한 거다. 맞히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맞히자니 후환이 두려운 거지.
그리고 이런 모호한 공이라면.
따아아아아아아아악-!
당연히, 몸쪽으로 좀 치우쳤더라도 제대로 힘을 실을 수 있다.
타구가 쭈욱 뻗는다. 나는 팔로우 스윙한 그 자세 그대로 서서, 공이 날아가는 걸 응시하고 있었다.
공이 펜스를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나는 자세를 풀고 배트를 뒤로 던졌다. 그리고 분석실의 유리를 향해, 두 손으로 번갈아 가며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불만이면 덤비든가.
김세완 장태영이 뛰쳐나올 텐데.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건우야아아아! 직이네에에에에!”
“유리 누나가 시켰는 갑네!”
네.
유리 누나가 시켰어요.
조형오 줘 패고 오라고요.
나는, 그 누구에게도 시비 걸리지 않고 홈까지 몹시 천천히 뛰었다.
그러니까 아까는, 노경우가 만만해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