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40)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42화(242/385)
밑바닥에서부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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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욱에게 오늘은 조금 이상한 날이었다.
3루를 두고 흔히 핫 코너라고 한다. 우타자가 강하게 당겨칠 때 3루를 향해 타구가 날아온다.
번트 타구도 처리해야 한다. 거기에, 오늘 상대 중인 엔젤스에는 밀어치는데 일가견이 있는 좌타자들이 많은 편이다. 자연스레 3루 수비 난이도가 올라간다.
본인도 3루 수비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좌익수 수비와 3루수 수비 중 하나를 준비하자는 이야기에, 면담 후 3루수로 결정했다.
어쨌거나.
수비 때 강건우의 도움을 엄청 많이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수비 연습량도 많이 늘렸다.
평소 국민성의 등판 때는 자기 방향으로 공이 잘 오지 않는 편이었다. 강건우 방향으로 향하는 타구의 빈도가 높다.
비교적 힘든 투수는 이훈이었다. 타자들이 이훈의 피장타율을 고려해 더 강하게 치는 편이다. 투심을 장착해 땅볼 비율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타자들의 접근법 때문에라도 처리하기 힘든 타구가 많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국민성 등판일임에도 이상하게 3루 쪽으로 타구가 많이 오는 느낌이었다.
따악!
정기백이 당겨친 타구가 튕겨 날아온다. 낮고 강하게 튕겨 오른다. 안정적으로 받아내려면 살짝 옆으로 점프하듯 달려나가며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생각만큼 그 자세가 쉽지 않다.
강하고 빠른 타구가 오는 만큼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아직 3루수를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시욱이 전문 3루수 만큼의 그런 재빠른 움직임을 갖추진 못했다.
“아!”
“야!”
“마! 노루!”
타구가 글러브를 스쳐 지나갔다. 관중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사실, 팬들은 이시욱에게 조금 더 가혹한 편이다. 1라운드 지명자라는 기대치도 있고, 일부는 또 재미로 이시욱을 놀리려 하기도 한다.
이시욱은 또 놀리는 재미가 있는 선수다.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가, 또 잠깐만 지나면 평소대로 돌아가니까.
“아.”
실책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타구를 놓치고, 황석규가 달려 나와 송구한 후에 떠올랐다.
‘강건우?’
설마 하는 마음에 고개를 들자, 강건우의 눈빛이 뭔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욕을 하진 않았다. ‘마, 노루 새끼야 제대로 안 하나’같은 말을 들으면 어떡하나 고민했는데.
그런데 다른 선수들의 표정이 좀 애매하다. 노경우는 강건우와 자신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다.
‘점마는 뭘 기대하는 거고.’
양대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 실책도 아닌데.’
문제는, 국민성의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어. 뭔데. 민성이 표정 뭔데.’
언제나 무표정이었던 국민성이다. 그런데 지금 표정은 분명히 평소와 조금 달랐다.
[노루 ㅅㅂ 나가 죽어라 국민성 표정 보이냐?]└노루새끼가 잡았으면 최소한 아시아민성인데 안타 내줘서 남한민성이네 ㅅㅂ
└근데 국민성 입 벌린거 첨 보는거 같은데 나만 그럼?
└민성아ㅠㅠㅠㅠ노루 보유팀이라 내가 미안해ㅠㅠㅠㅠㅠ
└유격수 강건우에 3루수 노루 밸런스 개오지네
└아니 시발놈들아 노루한테 왜들 그러냐 방금 그 타구 졸라 어려웠고 오늘 수비 잘 해주고 있는데
└아 암튼 노루는 까야 제맛이지
└노까맛 모르는건 노루단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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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묘하다. 나는 별생각 없는데, 어쩌면 주변에서 뭔가 기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말이 그렇지.
그렇다고 진짜 욕을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근데 노경우가 슬쩍 이렇게 말했다.
“욕 안 할 거냐?”
“…안 할 건데.”
“야. 그냥 나한테 하는 것처럼 하면 돼. 어려울 거 없어.”
차라리 4타석 연속 홈런 이런 걸 기대하면 좋겠는데.
대체 사람들의 눈에 나는 어떤 놈으로 보이는 걸까.
국민성도 그렇다. 워낙 제구가 정확한 편이긴 해도 아직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은 어느 정도 타자의 타구 방향을 컨트롤 한다는 건데, 매번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정말 유도했다면 오늘 경기 3루로 향하는 타구가 많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아까 국민성의 그 표정을 떠올리면 설마 싶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오션스 싸이코 랭킹을 조금 조정했다. 가끔 승기 형과 박의현이 1, 2위를 두고 격렬하게 다투다가 순위가 뒤바뀌곤 하지만, 만약 내 생각이 사실이라면 국민성을 3위에 올려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비를 마치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면서 슬쩍 국민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일부러 3루로 타구 유도하는 거예요?”
국민성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
뭔가 대답이 꽤 느렸던 것 같은데.
“혹시 3점 여유 있으니까 좀 과감하게 3루로 보내는 거 아니에요?”
“……아닌데.”
“……진짜로?”
“…”
선발 투수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대체로, 6이닝 이상의 이닝 소화다. 초반에 대량실점을 내주고 와르르 무너지거나 체력에 문제가 있지 않다면 현대 야구에서는 100구 정도를 던질 거라는 기대를 받는다.
선발 투수들은 6이닝 이상을 소화해내기 위해 완급 조절을 시도한다. 최고 구속이 150km/h라고 해서 경기 내내 그 수준의 공을 던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점수 차이에 여유가 있거나, 비교적 타격이 약한 타자에게, 혹은 안타 한 대 정도 맞아도 되겠다 싶으면 조금 힘을 빼고 던지다가 득점권에서 힘을 주고 던진다.
국민성은 약간 다르다. 구속에는 애당초 한계가 있는 투수라.
구속을 올리는 대신, 볼 배합을 조금 더 신중하게 가져가거나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선에 걸치는 투구를 시도한다.
가끔 과감하게 존 중앙에 느려터진 체인지업을 던지곤 하는데, 그런 건 여유가 있을 때 하는 행동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점수 차이에 여유가 있고 자기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그리고 타자들이 추가점을 더 뽑아낼 거로 생각했는지 일부러 노루 형에게 타구를 보내 본 것이 아니냐는.
말하고 보니 너무 나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어쩌면 이 미친 사람이라면…
“비밀 지켜드릴게요.”
“…”
“진짜로요.”
“…”
역시 입이 무겁다. 더 찔러도 안 나올 것 같다.
“건우. 좀 기대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하더라? 아니면 눈으로 욕했나?”
외야에서 먼 길을 온 서창열이 날 쿡 찌르며 말했다.
노루 형이 시무룩한 얼굴로 옆을 지나갔다.
“어…초코파이…다섯 개는 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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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선수들의 실책이 나오면 분노한다. 사실, 기나긴 시즌을 치르면서 전혀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못 잡을 공이라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과감하게 도전하다가 실책을 저지를 수도 있다.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해서 실책 숫자가 적을 수도 있다.
단순히 실책 숫자가 적다고 좋은 수비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책은 보는 사람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이시욱은 오늘 경기에서 약간 아쉬웠던 수비 실력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2사 2, 3루에서 2타점 적시타를 터뜨렸다. 밀어친 타구가 외야수 사이를 꿰뚫었고 배영한과 강건우가 홈을 밟았다.
“마! 이게 바로 이시욱이다! 알긋나!”
“알겠다. 앉아라.”
“예. 창열이 행님 초코파이 하나 드실래요?”
“아니.”
“맛있는데…”
조금 묘하긴 한데, 몇몇 팬들은 점수가 벌어지자 이시욱이 실책을 저지르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반쯤은 농담이다.
그런데 실책이 나온 것은 이시욱이 아니라 양대근 쪽이었다. 강한 타구를 잡았다 놓쳤고, 공이 다리 사이로 새버렸다. 큰 덩치가 뒤뚱대며 뒤로 돌아 공을 찾는 사이 타자 주자가 미친 듯이 달려와 1루를 밟았다.
“아!”
“정신 차리라!”
오션스 원정 팬들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짧은 순간, 필드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실책이네 이건.’
아까 이시욱의 플레이는 실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실책이다.
물론 치열한 승부의 현장에서 그런 걸 생각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선수들이 강건우와 양대근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하지만 고함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마! 똑바로 안 잡나!”
그리고 이닝이 마무리된 후.
중계 카메라는 양대근에게 목덜미가 잡힌 채 끌려가는 이시욱을 비추고 있었다.
-하하. 두 선수, 워낙 친해서 말이죠.
-그렇습니다. 야구계에서도 소문난 절친이죠. 아까 실책 나왔을 때 이시욱 선수가 뭐라고 하던데 그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재밌는 선수들이에요.
-양대근 선수가 말이죠. 다른 선수들한텐 굉장히 친절한데 이시욱 선수를 그렇게 괴롭혀요.
-그렇습니까?
-예, 그런데 또 이게.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게 아니고 이시욱 선수가 소위 말하는 그, 까분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런 관계입니다.
-톰과 제리인가요?
-그렇다고 보기에는 제리가 많이 당하긴 합니다만.
-하하. 제리 치곤 덩치가 크네요. 그러고 보니.
-저 톰도 덩치가 엄청나죠.
-예. 그럼 톰이 아니라 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옴인가요?
-…허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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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어떤 분위기라도 나는 누구에게도 욕을 하거나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선발로 뛸 때 결정적인 실책이 나오면 열 받아서 나도 모르게 할지는 몰라도.
이래저래 반성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젠틀하게 다른 선수들을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꽤 많은 선수가 내가 정말로 반말로 욕을 할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물론, 소리 지른 것은 내가 아니라 노루 형이지만.
그런데 이게 팀에 남아있던 약간의 긴장감을 해소해 준 것 같다. 경기 후 영상을 보니 그때 선수들이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 더해진 것은 국민성의 웃음이었다. 자기가 던질 때 실책이 나와 출루를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성의 입꼬리가 분명히 올라갔다.
그리고 인터넷 오션스 갤러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속보) 국민성 AI에 웃음 기능 업데이트 완료] [방금 웃민성 뭐냐? 쟤 웃는 거 첨보는데?] [완봉할때도 존나 무표정 아니었음?] [국민성 살인미소 ㄷㄷㄷㄷㄷㄷㄷㄷ]살인미소라고 하기엔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거긴 했지만, 어쨌거나 웃었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오션스 팬들의 증언에 따르면 단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솔직히, 실책이 나왔는데 웃음이 터지거나 한 거로 욕을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당장 웃은 게 선발 투수인 데다가 오늘 경기에서 승리했기에 별다른 말은 없었다.
어딘가 안도감이 든다. 승리하는 데 내가 일조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나 때문에 팀 분위기가 박살 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베테랑이라 여기고 있었던 나다. 내가 팀 분위기를 망쳐놓는 검은 양이 될 뻔했다는 점은 날 다시 돌아보게 했다.
“분위기 좋아졌더라?”
유리의 표정도 밝다. 괜히 나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걱정을 끼친 것 같아서 미안할 뿐이다.
“근데 노루가 정확히 뭐라고 한 거야?”
“마! 똑바로 안 잡나! 이렇게 소리쳤어.”
유리가 기분 좋게 웃었다. 약간 바보스러운 웃음이라 귀엽다.
“그래서 주장한테 뒷덜미 잡힌 거야?”
“응. 누가 너한테 욕하라고 했냐면서. 그러니까 노루 형은 욕 아니라고 우겼고.”
“그러네. 욕은 안 했네.”
종종 궁금할 때가 있다. ‘마!’는 욕인가 아닌가. 그 말을 외치는 사람들은 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이겨서 다행이다. 벌써 54승이나 했네. 이거 진짜 우승하는 거 아냐?”
싱글벙글 웃는 유리를 보며, 내 생각 없는 언동이 얼마나 유리를 괴롭혔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별로 성장하지 않은 것 같다. 야구 선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말이다. 어딘가 모를 죄책감에 유리를 바라보자, 유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누나.”
“응?”
“누난 나한테 정말 과분한 사람이야.”
유리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나?
나만 아는 이야기, 절대 알려줄 수 없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 때, 나도 모르게 이런 말들이 나온다.
내가 웃으니까 유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또 무슨 소릴 하려나 싶은 것 같다.
“나 진짜 우승하고 싶다.”
유리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운동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운이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내 말에 유리의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로 흔들린다.
“요새 그 말 안 한다 싶더니…”
“누나도 그거만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었어?”
부드럽게 말하며 살짝 웃으니, 유리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리고 벌떡 일어서더니 외쳤다.
“마! 강건우! 내랑 결혼하고 싶으면 어? 집중해가지고! 홈런도 한 백 개 때리고! 세이브도 무조건 성공하고! 가끔 나와서 퍼펙트도 좀 해주고! 어?”
얼굴이 살짝 빨갛다. 조금 부끄러웠나 보다. 유리를 따라 일어나서 유리를 안았다. 히이잉 하고 살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곧 ‘헤헤’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도 팔을 뻗어 내 몸을 감쌌다.
“야 강건우…”
“응.”
“우승 안 해도 돼.”
“안 해도 돼?”
“우승 못 해도, 그냥 이대로만 행복하게 지냈음 좋겠다…”
이거, 소원 교체인가?
굳이 교체할 필요까진 없겠지.
“우승도 하고 행복하게도 살자.”
“그럼 더 좋고.”
“누나가 원하는 건 다 해줄게.”
유리가 실실 웃으며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데 노경우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 온 거지. 내가 눈으로 신호를 보내자, 노경우는 묘한 표정으로 자리를 비켜줬다.
뭐.
부러우면 너도 여친 여기 취직시키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