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45)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47화(247/385)
야구는 포수 놀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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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경기가 취소되고, 마지막 3연전이 예정된 날.
점심때쯤 되어 비가 그쳤다. 그리고 코칭 스태프 회의에서 투수 코치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민이 선발로 뛰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안된다고 똑바로 말해줬겠지?”
“물론이죠. 국이 준비 중입니다.”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민승기가 등판 일정을 바꿔서 던지고 싶다는 말을 하는 일은 종종 있다.
아마도, 지난 홈 등판에서 패전을 기록했기에 이 홈 경기에 등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다음 일정은 원정 3연전이 두 번 있고, 6경기가 끝나고 나면 올스타 브레이크에 돌입한다.
어느새 휴 브레드먼 감독의 KBO 두 번째 시즌도 전반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이번 시즌 지금까지 소화한 경기 수는 75경기. 절반을 넘어섰다.
본격적으로 장마철이 시작되었다는 뉴스가 떠들썩하다. 이 날씨는 조금 적응이 안 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비가 좀 오더라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까지 팀 승률이 무려 74.6%다.
쉼 없이 달려온 만큼 선수들의 체력 문제도 있었고, 부상 선수도 있다. 박의현은 1달가량 빠지게 됐고 배영한도 최근 무릎 상태가 나쁘다. 그 외에도 잔 부상을 달고 뛰는 선수들이 많다. 비가 좀 내려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반가웠다.
물론, 기세가 좋을 때 한 경기라도 더 이겨 놓으면 좋기야 하지만 2위 팀 파이러츠가 46승 31패로 승률 59.7%를 기록하고 있다.
어느 정도 숨 고를 수 있을 만큼의 격차를 벌려놓은 것이다. 7.5게임 차이.
어떤 사람들은 벌써 부터 오션스가 첫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지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물론 그걸 바라고 있고, 최초의 한국 시리즈 직행도 꿈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야 시즌의 절반을 조금 더 치렀을 뿐이다.
주전 선수들의 휴식을 조금씩 보장해주며 여유롭게 시즌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과 역대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각 코치가 순서대로 보고했다.
박의현의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휴 브레드먼 감독은 고마움을 느꼈다.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는 선수다. 당장 돌아오진 못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팀 선수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한다.
트레이닝 파트에서 선수들의 몸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틀 휴식 후 활기가 돈다고 한다. 듣기 좋은 이야기지만, 부상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기에 항상 경계해야 한다.
박의현의 부상 이탈 후 가장 걱정되는 포수 파트에서, 배터리 코치가 입을 열었다.
“어, 상욱이가 태영이 공 받아내는 훈련을 소화했습니다. 워낙 움직임이 심해서 실전이 조금 걱정되긴 하는데, 지금 의욕이 상당히 좋아서 괜찮으리라고 봅니다.”
비 때문에 야외 훈련 소화가 힘들었다 보니, 수비 파트에서는 그리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바이킹스는 오늘 경기 선발로 김권종을 예고했다.
오션스가 내세운 국민성과 꽤 볼만한 매치업이 될 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휴 브레드먼은 정유리를 불러 슬쩍 물었다.
“갱의 컨디션은 어떻지?”
정유리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컨디션 좋습니다. 이틀 쉬면서 무리한 운동보다는 기술 훈련과 필라테스를 소화했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어요.”
“좋아, 좋아.”
감독은 슬쩍 정유리의 눈치를 보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자네가 한 가지 해줘야 할 것이 있는데 말이야.”
“네?”
살짝 헛기침한 감독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홈런 두 방 정도만 쳐달라고 해줄 수 있겠나?”
“네?”
정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이해한 뒤, 조금 쑥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4연타석 홈런 쳐달라고 부탁하긴 했는데요…”
휴 브레드먼 감독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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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 팬들이 몇몇 선수들에게 지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솔직히, 조준이 형은 그럴 만한 업보를 쌓았다. 대놓고 오션스를 안타 자판기처럼 말하기도 했고, 워낙 어그로를 잘 끄는 성격인지라.
서창열은 오션스 팬들 사이에서 공인된 십새로 불렸지만, 지금은 오션스의 슈퍼스타 중 하나다. 뭐, 원래 저런 스타일들이 상대 팀에 있으면 죽이고 싶지만 우리 팀에 오면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타입이니까.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김권종은 조금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저 사람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결정하고 계약이 확정되었을 때, 유리는 만세를 부르고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냈었다. 노래 부르고 어깨춤 추면서 트리를 장식하고 그랬었지.
딱히 관중을 도발할만한 세레머니를 한다거나(정조준), 팀 선수들에게 위해를 가한 적(서창열)도 없고, 팀을 나간 뒤 오션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지도(다수 선수) 않았는데도, 그냥 오션스를 쥐잡듯이 잡아서 오션스 팬들의 공분을 산 투수다.
조금 4차원이긴 해도 사람이 나쁜 건 아닌데. 게다가 조준이 형 킬러이기도 하고.
투수로서 실력도 대단하다. 메이저리그에서 꽤 족적을 남기기도 했었으니.
경기 전, 오늘 선발인 국민성과 주상욱의 대화에 잠깐 끼었다. 국민성이 내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몇 점 정도 낼 생각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다가, 그냥 이렇게 대답했다.
“유리 누나가 4연타석 홈런 치고 오라던데요.”
“그래? 최소 4점인가…”
진지하게 대답해서 당혹스러웠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얼른 말했다.
“실책해도 시욱이 형한테 욕 안 할 거니까 4점 여유 있다고 생각하고 던지지 마세요.”
“…”
“…”
“…난 그런 적 없는데.”
모른 척하다니. 눈동자가 살짝 불안정해진 걸 봤다.
그건 그렇고, 주상욱은 꽤 편안해 보인다. 각설이 타령을 연습하길래 또 한 명의 정상인이 사라지나 싶었는데, 조금 마음이 놓인다.
하긴. 내가 만약 포수고 단 한 명과 호흡을 맞추라면 국민성을 고를 것 같다.
어지간하면 미트 가져다 대는 곳으로 공 오지.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지만 블로킹을 자주 해야 할 만큼 뚝 떨어지는 공도 없지. 멘탈 흔들리는 일도 거의 없어서 마운드에 올라가 자기도 죽겠는데 투수 달래줄 일도 없지.
물론 공이 느린 만큼 상대 팀 주자들이 도루를 좀 더 시도하는 편이긴 한데, 슬라이드 스텝(퀵모션, 주자 견제 등의 이유로 투구시 동작을 빨리하는 것)이 좋아서 주자의 타이밍을 빼앗아버리기도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슬라이드 스텝을 활용하지 않는 추세가 있지만, 국민성은 이것 또한 자신의 무기로 삼고 있다.
“어쨌든, 이상한 생각 하지 마세요.”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은데.”
말수가 좀 적을 뿐이지 정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째 이놈도 저놈도 다 이상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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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욱은 박의현의 자료를 되새겼다.
‘국민성. 투수가 고집을 부리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던지게 두는 게 낫다.’
가끔 포수로서 감이 올 때가 있다. 타자가 어떤 코스의 어떤 공을 노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벤치에서 싸인이 나오기도 하지만, 오션스는 꽤 많은 상황에서 배터리에게 맡기는 편이다.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외국인 감독이 팀에 오고, 박의현이 활약하면서 그런 기조를 유지 중이다.
‘감독이나 투수 코치가 싸인을 계속 내면 포수는 절대 성장하지 못한다.’
이런 말을 했다나.
아무튼, 침착함을 유지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국민성은 종종 어처구니없는 공을 던지려고 한다, 그래도 당황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주상욱도 국민성과 호흡을 맞춰 본 적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투수들과 배터리를 이뤄봤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승기를 제외한 다른 투수들은 박의현과 훨씬 더 많은 경기를 뛰었다.
박의현이 종종 경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투수들에게 신뢰를 사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성과 호흡을 맞출 때 중요한 포인트를 써 둔 부분이 있었다.
‘국민성 특유의 리듬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흐름에 몸을 맡겨버릴 것!’
1회 초, 바이킹스의 리드오프 성현을 상대하면서 그게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국민성은 느긋하다. 타자가 초구를 기다리고 있을 때 던지지 않았다. 타자가 배트를 쥔 손에 미세하게 힘이 빠졌을 때 벼락처럼 공을 던졌다.
물론, 공이 벼락처럼 빨랐다는 뜻은 아니다. 와인드업하지 않고 주자가 있을 때처럼 슬라이드 스텝으로 공을 던졌다는 뜻이다.
딱!
“파울!”
타자가 타이밍을 살짝 놓쳤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됐다.
“파울!”
“볼!”
“스트라이크! 아웃!”
순식간이었다. 느려빠진 공으로, 거의 텀을 두지 않고 마구 꽂아댄다. 싸인을 주고받는 횟수도 한두 번이면 족했다. 결정하면 그대로 던진다. 투심 네 개로 첫 타자를 잡아먹었다.
타격 재능은 있지만 아직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25세의 좌익수가 그대로 말려들었다. 주상욱은 심호흡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다음 타자가 들어오자, 갑자기 포심이 쏟아진다. 바깥쪽 낮은 코스의 투심을 생각하고 홈 가까이 바짝 붙은 우투좌타 2루수가 몸쪽 포심을 공략하지 못했다.
승부는 2구만에 끝났다. 얼핏 보면 설렁설렁 던지는 것 같고 아웃 카운트 두 개를 따내는데 고작 6개의 공을 던졌을 뿐이지만, 주상욱은 손에서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뭣도 모르고 그냥 공 받고 던지고 할 때는 몰랐는데.
박의현이 준 자료를 시간 날 때마다 정독했다. 그리고 뭔가 눈이 뜨이고 시야가 넓어진 기분이다.
박의현이 몇 번이고 강조한 부분이 있다.
‘투수는 전부 부끄럼쟁이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았다. 투수가 부끄럼쟁이라고?
주상욱의 머릿속에 투수의 대표는 민승기다. 민승기는 부끄러움 따위는 모르는 인물이다.
그런데 몇 가지 흩어진 조각들을 모으니 약간은 알 것 같았다.
‘투수는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투수는 공 다섯 개 빠진 공을 던지고도 반의반 개 빠졌다고 아쉬워하는 종족이다!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투수가 두들겨 맞았을 때 팬들이 포수 리드를 욕한다면 졌어도 기뻐해야 한다!’
어이없지만, 주상욱은 존경하는 인물 리스트에 동갑내기 포수인 박의현을 추가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든다. 부모님과 함께 존경하는 인물 둘이 그렇게 돌아버린 사람들이라니.
정말 부모님을 민승기, 박의현과 동일 선상에 놓아도 되는 걸까 하고.
어쨌거나, 다음 타자를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머릿속에서 잡념을 깨끗이 비우고 투수와 싸인을 주고받았다.
전광판에 다음 타자의 기록이 나온다.
김호근.
타율 0.329
출루율 0.411
17홈런 47타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바이킹스 타선의 핵심. 그리고 그런 김호근을 상대로 국민성의 선택은.
“볼넷!”
스트레이트 볼넷.
1, 2번 타자를 상대로 물어뜯을 듯 달려들던 국민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타자에게 투심-투심-체인지업으로 평범한 2루 땅볼을 유도해 이닝을 끝냈다.
최근 김호근의 타율이 4할에 달하고 1주일간 홈런 5개를 몰아친 것 때문에 일부러 볼넷을 내줬을지도. 그리고 리암 맥코넬이 슬럼프를 겪고 있으니.
방금 투구 내용에 대해 물어보자, 국민성은 별거 아니란 듯이 대답했다.
“제구가 약간 안 됐네요.”
놀라서 되물으려다가, 박의현 자료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투수를 이해하려 하면 나만 손해다!’
주상욱은 애써 무덤덤한 척 대답했다.
“그랬구나.”
“예.”
민승기라면 어땠을까. 덕아웃 한구석에서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던 민승기는, 무실점으로 첫 이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션스 선수들을 향해 흐뭇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만약 민승기 형님이 기가 죽을 것 같으면 더 크게 좌절해라! 승기 형님은 그런 상황에서 리더십을 보이고 싶어 하기에 날 다독이느라 자기가 기죽을 뻔한 사실을 잊을 것이다!’
그냥 바보 1, 2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보 2가 바보 1을 컨트롤하고 있었다…뭐 그런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주상욱은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민승기가 호통쳤다.
“주상욱! 방심하지 마라!”
“예…죄송합니다…”
풀죽은 척하자, 민승기가 화들짝 놀라며 다시 소리쳤다.
“기죽지 마라. 주상욱! 너는 대 명문 오션스의 선발 포수다!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건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 포수라는 포지션을 선택한 이후로 포수는 단순히 무거운 장비 차고 투수가 던져주는 공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는데,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