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47)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49화(249/385)
불같은 열정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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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승부가 승리보다 좋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바이킹스와의 그 무승부는 그렇게까지 나쁜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변명일 수도 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변명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모든 경기에서 이기고 싶어 한다. 사실, 그건 프로로서 무조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한 그 팀도 그런 최소한의 마음가짐을 가진 팀이었을 뿐이다.
뭐.
144경기 중에 고작 한 경기를 가지고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하는 것이 조금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한 경기를 우습게 생각하면 언젠가 그 한 경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될 수도 있다. 이건…음. 원래 뼈저리게 알고 있었던 이야기인데, 한동안 조금은 외면해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즌 절반 정도를 치르고 상당히 앞서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가 지금까지는 유리만을 위해서 야구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야구를, 오션스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야구 팬이자 극성 오션스 팬이 진지하게 내게 물어본 적이 있다.
‘건우야. 쟤네 이기고 싶어 하는 마음 없는 거 맞지?’
물론,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들은 말이다. 그때 내가 어떻게 대답했더라.
이랬던가?
‘알면서 오션스 경기를 왜 봐?’
유리는 내가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그때는 진심이었다. 무대는 다르지만, 야구 선수인 내가 보기에도 유리는 항상 욕만 해대고 있었다.
어쩌면 유리의 그 모습이 야구 선수인 내가 야구 팬들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과거라고 해야 할지 미래라고 해야 할지, 혹은 다른 세상의 유리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종종 헷갈릴 때가 있지만, 지금의 유리는 잡았던 승기를 놓치고도 그때만큼 분노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다.
“아, 이길 수 있었는데.”
“화나?”
“아니, 음…”
경기가 끝난 후, 유리는 내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더니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다들 열심히 해줬으니까…괜찮아. 이시욱도 수비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마지막에 호수비 하나 하고 포효하는 거 보고 마음이 좀 짠하더라.”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 때문인지, 유리도 꽤 너그러운 반응을 보였다.
“음. 건우야.”
“응?”
“오션스 정말 많이 바뀐 거 알아?”
“나도 느끼고 있어.”
엄청나게 바뀌었다. 그것도 단기간에.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내가 어떤 선수인 것과 관계없이 오션스 우승이 가능하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었으니.
도무지 답이 안 나와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모로 운이 따르기도 했고, 팀은 많이 바뀌었다.
“네 덕분이야.”
“응?”
얼마 전의 나라면 분명히 동의했을 이야기다.
“다른 선수들도 그러더라. 네 덕분에 분위기 많이 바뀌었고, 너 온 뒤로 모든 게 잘 풀리는 것 같다고. 다들 너한테 많이 도움받고 있대!”
조금 부끄러워서 대답을 못 하겠다.
그…
도움은 내가 받고 있어서.
내 생각도 모르고, 유리가 흐뭇한 얼굴로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 음. 괜히 메이저리그 갈 건데 잡아뒀나 생각하기도 했는데, 요즘 보면 너도 오션스에서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야.”
자기도 그렇게 말한 게 조금 부끄러웠는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유리에게 웃으며 대답해줬다.
“아냐. 내가 고맙지.”
“응?”
기회를 줘서…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이랑 만나게 해줘서도 있다.
“나 안 차고 계속 옆에 있어 줘서.”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유리가 살짝 굳었다. 내가 웃자, 유리는 날 꼭 안았다.
“우리 건우, 오늘 비겨서 많이 속상했어? 아까 뽀뽀 금지라고 해서 그래? 응?”
뭐든 관계없지. 난 유리를 같이 안았다.
좋은 냄새 난다.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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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스 3연전,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주상욱은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호세 킹과 호흡을 맞춘 첫 경기에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예전의 주상욱은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느낌이었는데, 조금 달라 보였다.
포수는 투수가 던진 공을 받는 사람이지만 거기에서 그치면 발전이 없다. 박의현은 메이저리그를 가겠다고 영어 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외국인 투수들과 간단하게나마 대화하려고 시간을 쪼개서 영어 회화 수업을 들은 것이다. 물론 영어 실력은 엉망이지만, 팀의 외국인 투수들은 박의현의 표정과 뉘앙스, 손짓 발짓과 함께 튀어나오는 어설픈 영어가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얼핏 들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그냥 킬 힘. 유어 패스트볼 베스트, 올라잇?”
메이저리그 진출 초반, 영어와 스페인어가 아직 안 됐을 때 말이 안 통해도 그냥 포수가 무작정 떠들어대고 있으면 못 알아 들었더라도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대충은 알아듣는다. 물론, 이해 못 하고 그냥 고개 끄덕이고 억지로 쑤셔 넣다가 만루 홈런 맞기도 했지만.
아무튼, 손짓 발짓을 해대며 소통했다. 타석에 서 있는 타자가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생각에는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그 타자가 알아챘을 거라 생각한다.
몸쪽 패스트볼을 던질 거라는 배터리의 계획을 말이다.
물론, 그건 저 배터리의 계획을 훔쳐보지 않아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다. 호세 킹이 우타자에게 몸쪽 패스트볼을 던질 거라는 건 동네 꼬마도 아는 사실이니까.
그래도 투수가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이 코스를 던질 건데, 자신 있으면 쳐 봐. 타자야 당연히 그걸 노리겠고, 그 뒤는 둘 중 하나다.
존 안에 들어온다면 삼진이거나, 혹은 인플레이가 되거나. 인플레이가 되면 야수들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스트라이크! 아웃!”
대전 팬들이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2사 2, 3루 찬스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호세 킹은 마치 완봉승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낸 것처럼 기뻐했다.
겨우 1회 말인데도.
“Yeah!”
너무 기뻐서 나마스테를 잊었나보다. 주상욱도 주먹을 불끈 쥐며 호세 킹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별 것 아닌 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냥 공 받아주는 사람에서 포수가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팀이 조금씩 흥미로워 지고 있다.
음.
이상한 짓만 안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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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 올스타전, 이스턴 올스타 선발 투수 부문 1위 민승기와 웨스턴 올스타 선발 투수 투표 1위 박용재의 맞대결.
4회가 끝날 때까지 팽팽한 0대 0의 승부를 펼치던 이 투수전에서, 먼저 흔들린 것은 민승기였다.
“형.”
“…주상욱.”
1사 만루.
타석에는 장태영과 트레이드되어 메테오스 유니폼을 입은 외야수 김지호.
“안 맞을 거죠?”
“뭐?”
“전 형 믿습니다. 그냥 던지고 싶은 거 던져요. 할 말 했으니 들어갈게요.”
뭐하러 마운드로 올라온 걸까. 민승기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주상욱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갔다.
민승기는 예전 주상욱을 떠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오면 자기가 더 당황해서 횡설수설할 때도 있었다. 혹은, 그냥 마운드로 오는 것 자체를 싫어하거나.
어쨌거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상욱…’
민승기가 코웃음 쳤다.
‘드디어 성장했나 보군.’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야구장에는 믿어도 되는 사람이 있고 그래선 안 되는 사람이 있지.’
바로, 형 믿습니다 라고 한 말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 민승기는.’
메테오스 팬들의 열띤 응원을 정면에서 받아내며, 민승기가 가슴팍에 쓰여있는 오션스라는 글자를 힐끔 바라보았다.
‘누군가 한 명만 믿어야 한다면 유일하게 믿어야 할 한 남자…’
주상욱은 자기 자리에 돌아가 앉으며 박의현의 노트를 떠올렸다.
-민승기 형님은 어차피 말 안 들으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게 낫다!
-그 형님에게는 그냥 아무 말로 칭찬해줘도 된다! 설사 득점권에서 그렇게 하고 안타를 맞더라도 워낙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 어떻게든 정신 승리를 한다!
그리고 민승기는.
‘큭큭큭…그래. 주상욱. 네 믿음에 보답해주지.’
주상욱의 말대로 대충 싸인을 내고, 투구 동작을 시작했다.
‘그리고.’
공기가 멈춘 듯하다. 그렇다. 주인공이란, 이런 것이다.
‘날 믿고 있을 오션스 팬들에게도.’
존 살짝 낮은 곳으로 투심을 힘껏 던졌다.
오션스에서는 자리가 없었지만 메테오스로 트레이드된 후, 빠른 발을 앞세워 외야에서 플래툰 한 자리를 차지한 김지호가 배트를 휘둘렀다.
딱!
김지호는 의외로 컨택 능력이 좋은 타자다. 다만, 처참할 정도의 장타력을 가졌다. 공이 뜨는 경우가 거의 없다.
거기에 선구안도 좋지 못하다. 그 약점을 아는 투수들이 작정하고 변화구만 던지곤 했다.
패스트볼이면 꽤 잘 때린다. 하지만 투수가 패스트볼을 던져주지 않는다. 그게 이 선수의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데 민승기가 투심을 던져줬다. 그것도 존 안으로.
타구는 2루 방면으로 가는 땅볼이다. 상황은 1사 만루다. 어떻게든, 1루 베이스에 공보다 먼저 도착하기만 하면 1점은 낼 수 있다. 공보다 느리면 기회를 날려버리게 된다. 순수 주력만 따지면 KBO에서도 탑 레벨에 속하는 김지호는 헬멧이 벗겨질 정도로 뛰었다.
하지만.
강건우는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2루 베이스를 향해 재빨리 움직였다. 타구를 기다리지 않고 전진하는 것은 안정적인 플레이는 아니다. 상체를 잔뜩 숙이고 공을 잡아낸 강건우는 유연성을 발휘해 오른발 끝으로 2루 베이스를 툭 터치한 후.
“아웃!”
중심이 무너진 상태에서도 언더스로로 송구했다.
김지호는 마지막 한 발을 강하게 내밀며 세이프라고 어필하기 위해 양팔을 들었다.
“아웃!”
김지호는 크게 아쉬워했다. 양대근의 긴 팔이 원망스러웠다. 저 팔이 조금만 짧았더라도 세이프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보다는, 관중들을 침묵시키는 수비를 보여준 강건우가 더.
민승기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준 강건우에게 말했다.
“봤나. 강건우. 이것이 바로…에이스의 위기관리 능력이다. 1사 만루에서 병살을 유도해 위기를 스스로 마무리하는…”
송구 후 바닥을 굴러 흙투성이가 된 유니폼을 털어대던 강건우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대답했다.
“나 아니었으면 최소 2타점인데요.”
민승기가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모든 게 내 계산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덕아웃으로 향했다. 들으라는 듯 말하면서.
“큭큭큭…좀 더 날 믿어도 된다, 강건우. 큭큭큭…”
노경우가 강건우를 일으켜주며 말했다.
“야. 저 형 저러는 거 하루 이틀이냐? 너도 어? 맨날 그렇게 반응해주니까 더 재밌어서 저러는 거잖아.”
강건우는 두 번 충격받았다.
첫 번째는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급수비에 대한 민승기의 반응.
그리고 두 번째는, 노경우에게 인생의 충고를 들었다는 것.
“오늘 진짜 골 때리는 날이네…”
“가끔 그럴 때도 있는 법이지. 야. 살다 보니 내 맘대로 되는 건 잘 없더라. 너도 알게 될 거다.”
강건우는 오른손으로 자기 얼굴을 비비며 회한에 빠졌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마. 느그 뭐하노. 경기에 집중해라 집중. 드가자.”
게다가, 이시욱이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일침까지.
강건우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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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아아아아악-!
-나왔습니다! 예! 나왔습니다! 쭉쭉 뻗습니다! 쭉쭉! 쭉쭉! 아! 날아갑니다!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의-! 예! 넘어갑니다! 강건우의 시즌 35호 포! 경기를 오션스 쪽으로 가져오는 강건우의 홈런! 비거리 133m! 초대형 홈런이 나옵니다! 스코어 2대 0! 박용재에게 마운드를 이어받은 이도윤이 내주고 말았습니다! 경기 후반! 오션스가 주도권을 잡습니다!
-방금, 착각인지 유독 스윙이 파워풀하게 느껴지는데요. 하하. 원래 저런 선수가 아닌데 엄청나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포효네요.
-예, 메테오스 팬들에게 침묵을, 그리고 오션스 팬들에게 환호를 끌어낸 강건우! 어디 한이라도 맺힌 듯 포효하며 베이스를 돕니다! 평소에는 하트 하나 그리고 웃으면서 뛰었는데요.
-그렇죠? 아직 전반기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35호라니요. 이거 아무래도, 강건우 선수가 두 번째 시즌에 역대 KBO 최다 홈런을 기록할 가능성이 확실히 커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2003년 이후 견고했던 그 기록을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홈을 밟고 다시 한번 포효하는 강건우! 무슨 일이라도 있었을까요?
-글쎄요. 뭐, 홈런 맞은 메테오스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좋아 보이네요. 사실 저 선수가 꽤 냉정한 편이거든요.
-그런가요?
-예. 약간 뭐라고 해야 하나, 야구를 정말 잘 하는데 마치 기계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오늘은 아주 열정적이고 보기 좋네요, 예.
-하하. 포효하더니 바로 불펜으로 뛰어가는데요.
-자기 손으로 승기를 잡고, 자기 손으로 경기를 마무리하고 싶은가 봅니다. 보기 좋아요. 저게 바로 승부욕이죠. 아무리 팀이 잘 나가고, 자기가 한국 야구의 역사를 쓰고 있다 하더라도 더 이기고 싶어 하는 마음, 진정한 프로의식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