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54)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56화(256/385)
불같은 열정으로 -8-
#
51승 33패. 창원 파이러츠의 올 시즌 성적이다.
2029시즌 2위를 달리고 있고,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10경기에서 7승 3패로 기세를 올렸다.
다만 후반기 첫 경기에서 패배한 것은 아쉬웠다. 그것도, 상대가 오션스라서 더더욱.
승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어떻게든 반격의 기회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 패배로 9.5게임 차이가 되어 버렸다.
서창원 감독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벌써부터 총력전을 펼치자니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았다. 그런데 오션스 전은 다르다. 만날 때마다 총력전을 펼쳐야 할 지경이다. 9.5게임 차이라니. 여기서 스윕이라도 당한다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말이야.”
코치들도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게 총력전을 펼쳐서 잡을 수 있느냐, 그거지.”
하다못해 강건우에게 강한 투수가 하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선발진의 에이스급 투수나 하위 선발, 필승조, 추격조 너나 할 것 없이 강건우에게 두들겨 맞았다.
물론 다른 타자들도 우습게 볼 수 없다.
“그냥 고의사구 볼넷으로 피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 엔진스가 그렇게 하고 있지. 그래서, 결과는?”
“…”
“오션스가 7번 이기고 엔진스가 1번 이겼다. 엔진스가 오션스만 좀 잘 잡았어도 우리 더 힘들었을 거다. 안 그래?”
“맞습니다. 강건우가 특히, 일부러 볼넷 내주면 도루를 기가 막히게 해가지고…엔진스 전에만 도루 아홉 개를 해 먹었습니다.”
“상식을 조금 벗어난 친구니까 말이야. 어렵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좋은 방법 떠오르는 거 없나?”
코치들은 생각했다. ‘걔 우리 팀으로 데려오면…’
물론, 입 밖에 꺼내지는 못했다. 그런 말을 했다간 분명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서창원을 덕장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런데 서창원 감독이 한숨을 슬쩍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데려올 방법 없나?”
“…”
“…”
“보자. 조준이, 용기, 지용이 주면 내주려나?”
시즌 MVP 출신의 천재 타자.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토종 에이스. 거기에 시즌 30홈런 잠재력이 있는 데다가 3루 수비력 하니만큼은 최고인 군필 25세 3루수?
“…”
침묵이 흘렀다. 서창원 감독이 펜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안 주겠지?”
“…예. 그, 대양 회장이 그렇게 총애한다고…”
“나도 안다. 그냥 해본 말이다.”
KBO는 실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파이러츠 구단주도 단장이 저 셋을 내주려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총력전 준비해. 투수 다 쏟아부어서라도 오늘 경기 잡는다. 내일까지.”
“예. 감독님.”
어처구니없지만, 후반기가 시작하자마자 벼랑 끝이다. 불펜을 총동원했다가 말려서 패배하기라도 하면 차후 일정에도 영향이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서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오션스가 민승기-이휘은-강건우로 간결하게 끝낸 것과는 다르게 어제도 불펜 소모가 좀 있었다.
어쨌거나 잡아내야 한다.
물론.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
경기 전, 분위기가 조금 묘했다.
파이러츠 선수들의 훈련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파이러츠 유격수가 이를 악물고 있었고, 파이러츠 코치가 수비 훈련 중에 소리를 빽 질렀다. 불펜 투수들은 일렬로 서서 열중쉬어 자세로 투수 코치의 일장 연설을 듣고 있었으며, 조준이 형이 캐치볼 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아직 그라운드가 축축하다. 이런 날은 투수가 발을 내딛다가 미끄러질 수도 있다. 체중 이동에 방해를 받으면 평소 같은 공을 던지기 힘들다. 수비할 때도 잔디나 흙이 젖어 있으면 타구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일정 부분 타고난 감에 의존하거나 민첩성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노루 형과 노경우에게 말했다.
“너무 무리해서 처리하는 것보단 오늘은 안전하게 가죠.”
그때 대근이 형이 그 커다란 덩치를 슬쩍 내밀며 말했다.
“얘들아. 나도 끼워줘.”
“햄은 왜요.”
“나도 내야수잖아.”
“아니 뭐 1루수 그게 뭐 내야수가?”
“내야수지.”
“내야의 꽃은 3루숩니다 행님.”
“넌 내야의 꽃이 아니라 내야의 불꽃 아니냐?”
“와 이 행님이 후배들 앞에서 내 무시하네.”
“후배들 앞에서 1루수는 내야수도 아니라고 무시한 거 누구?”
“내가 은제요!”
아무튼, 내야수들은 경기 전에 짧게라도 이런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라운드 상태, 상대 타자들의 컨디션, 우리 투수의 구종과 로케이션이 어떨지 등등.
대근이 형은 이런 부분에 대해 꽤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앤디는 땅 젖어 있으면 직구 위주로 던지거든.”
“행님. 직구가 뭡니까. 속구지.”
“아무튼, 싱커 비중 좀 줄어들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싱커는 기본적으로 손을 비틀어 던지는 구종이고, 하체 중심 이동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이런 날이면 앤디는 주 무기의 비중을 줄이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안 던지는 것은 아니다.
“아쉽네. 싱커로 조져야 땅볼 많이 나와서 메가 노루 다이빙 보여줄 수 있는데.”
“형. 아무 타구에나 다이빙 하는 거 안 좋은 습관이에요.”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다. 노경우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내게 들은 말이고, 그 말을 이번에는 노루 형에게 했다.
노루 형이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으로 받아쳤다.
“마. 갱우, 니는 뭐 다이빙 선수 출신 아이가?”
“솔직히 제가 다이빙 하는 건 멋있잖아요.”
“돌았나.”
예전 같았으면 ‘바보들…’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한숨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테지만.
그냥 뭐, 재밌는 일상이다.
#
1, 2위 팀의 외국인 투수가 맞붙었다.
시즌 7승 4패에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하고 있는 특급 외인 투수 앤디 가필드.
그리고 8승 4패 3.11의 말콤 게일.
시즌 초반에는 에드손 타바레즈가 에이스인 줄 알았는데, 시즌이 진행되면서 말콤 게일이 더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 종류의 패스트볼과 커브를 던지는 에드손 타바레즈가 긴 이닝을 먹어주는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서였다. 5회부터 흔들리는 모습이 잦았다.
말콤 게일은 포심과 너클커브의 두 구종으로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이닝 소화 능력도 좋은 편이었다.
서창원 감독은 2차전에 에드손 타바레즈를 내서 4~5회에 교체한 후 불펜을 몽땅 쏟아부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정석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오늘이다.
그라운드 사정도 어느 정도 고려했다. 탈삼진 능력이 좋은 말콤 게일이, 그라운드볼러인 에드손 타바레즈보다 오늘 더 유리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어떤 선택이든 결국에는 결과와 마주 보게 된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1회 초, 앤디 가필드가 포심 위주의 피칭을 가져갔다. 타구 하나가 상당히 길게 뻗었지만,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히고 말았다.
“바람처럼 스쳐 가는! 정열과! 서! 창! 열!”
“소름 돋았다, 소름! 우와!”
오션스는 과거 몇몇 포지션에 심각한 갈증이 있던 팀이다.
유격수나 포수? 그건 너무 오래되어 갈증이 아니라 유격수와 포수는 원래 야구를 못 하는 포지션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을 정도였다.
굳이 따지자면 선발 투수나 불펜 투수, 마무리 투수에 대한 갈증이 중견수보다 더 컸겠지만 수비 잘 하는 외야수가 거의 없었던 팀이기도 했다.
그런 오션스 팬들에게, 서창열은 얼마나 눈이 호강하는 선수겠는가.
오션스 팬들에게 외야수의 다이빙 캐치는 두 베이스를 더 내주고 안 줘도 될 점수를 내주는 플레이였다. 그런데 서창열은 달랐다.
오션스 팬들이 싫어하는 선수를 꼽자면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선수였지만, 워낙 또 이런 스타일의 선수들이 상대할 때는 짜증 나도 같은 팀이면 든든한지라.
서창열의 호수비에 힘입어 1회를 무실점으로 마친 앤디 가필드는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 보였다.
팀이 여기 처음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앤디는 흐뭇하게 웃으며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1회 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말콤 게일은 강건우를 맞이해 너클 커브를 3구 연속 던졌고, 볼 카운트는 2볼 1스트라이크. 그리고 4구로 허를 찌르는 슬라이더를 선택했다.
따아악-!
밖으로 달아나려던 슬라이더를 억지로 잡아당긴 강건우의 타구가 크게 날았다. 파이러츠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안 돼!’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겠지만.
‘씨발 또!’
그렇지만 조금 멀리 나가는 타구를 억지로 잡아당겼기에 펜스를 넘기기에는 약간 부족했다. 그래도 펜스 가까이 날아가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파이러츠 좌익수 정조준이 펜스에 부딪히며 몸을 아끼지 않는 호수비를 선보였다.
“마!”
“좆준이 이 새끼야!”
“눈치 없나!”
수비가 그리 좋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물론, 지금도 수비력이 리그 탑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팀 대 팀으로도 그렇고, 강건우에게도 그렇고.
물론, 좌익수와 유격수라는 포지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강건우의 타격 성적이 훨씬 좋은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강건우는 타격뿐만 아니라 투수로서도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양쪽 모두에서 탈 KBO 급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비교해도 강건우보다 우위에 서기는 힘들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패배의식에 젖을 생각 따윈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모험적인 수비에 성공한 후, 포효하며 일어섰다.
“마! 강건우! 이게 바로 수비다!”
빽 소리를 지르며 투지를 불태웠지만.
강건우는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야! 강건우!”
사실, 들릴 리가 없다. 정조준이 혼자 씩씩대는 걸 본 중견수 박근수는 시선을 피하며 천천히 걸었다.
#
양 팀은 투지를 보여주는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물에 젖은 그라운드는 수비를 힘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디 가필드와 말콤 게일의 치열한 투수전.
결국, 두 팀의 야수들이 수비 집중력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다.
오션스 하면 수비와는 거리가 먼 팀이다.
강건우와 서창열, 그리고 박의현의 센터라인이 견고한 수비력을 갖추긴 했지만 다른 포지션에서 수비가 막강하다고 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숨은 핵심인 박의현은 아직도 팀에 돌아오지 못했다.
파이러츠 또한 수비력이 가장 좋은 팀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옥시경이 리그 상위권의 수비력을 갖춘 유격수고 포수 강태오도 꽤 괜찮은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타격과 투수력에 비해 수비력은 조금 부족하다.
-오늘, 양 팀 야수들의 수비 집중력이 엄청납니다!
-어쩌면 미리 보는 한국 시리즈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1, 2위 팀 간의 맞대결이니까요. 물론 시즌은 많이 남았고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긴 합니다.
앤디는 싱커의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건 야수들이 보여준 수비에서의 투쟁심을 믿은 결과.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앤디.’
이시욱이 실책은커녕, 실책성 플레이조차 하지 않고 있다. 밀어치는 좌타자를 상대로 바깥쪽 낮은 싱커를 자신 있게 던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말콤 게일도 마찬가지였다. 홈런을 때릴 능력이 충분한 오션스 타자들을 상대로, 과감하게 하이 패스트볼을 활용했다. 정조준은 파울 라인으로 벗어나는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고 포효하기도 했다.
[(Live) 창원 파이러츠 0 : 0 부산 오션스.]└이 새끼들 오늘 왜 이럼
└오늘 수비 구멍들 왜 난리냐
└노리스 스트릿 노루 몸에서 나가!!!
└노루스 스트릿 ㄷㄷㄷㄷㄷㄷㄷㄷ
└오늘 정조준도 거의 서창열급 수비네
└저새끼들은 메이저리거 데려오는데 우린 왜 서창열임
└그럼 우리도 웨스 아델만 붙이자
└웨스 조준만 ㄷㄷㄷㄷㄷ
└그냥 좆스 아델만이 더 착 붙지 않음?
스코어 0대 0의 승부가 이어졌다. 양 팀 다 선발 투수가 내려갔다. 파이러츠가 동점 상황에서 필승조를 올리자, 휴 브레드먼도 필승조를 등판시켰다.
8회 말, 오션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황석규의 몸에 맞는 볼.
그리고 도루.
거기서 끝나지 않고, 주상욱의 희생 번트.
이어진 노경우의 적시타까지.
1대 0으로 앞선 오션스가 분주해졌다. 볼넷으로 출루한 강건우가 8회 말이 끝나자마자 불펜으로 뛰어가 몸을 풀었다. 정예성이 유격수로 투입됐고, 울프팩이 경기에서 빠졌다.
강건우는 지금까지 블론 세이브가 없다.
하지만 강건우를 마무리 투수로 투입할 때는 이런 리스크가 따른다. 지명타자가 소멸되어 울프팩이 경기에서 빠지게 되고, 그 자리에 유격수 정예성이 들어가야 한다.
정예성이 괜찮은 수비력을 가졌지만 강건우에 비교하기는 힘들다. 타격은 울프팩과 비교해도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경기를 끝내지 않으면 구상이 꼬이게 되는 것이다.
“강-건-우우우우! 강-건-우! 강건우! 오션스 강건우-!”
“갱! 건! 우!”
“건우야! 조지뿌라!”
그럼에도, 그 누구도 강건우가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직 야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다시 승리를 거두며 2위 팀 파이러츠와 격차를 벌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그 믿음에 부응이라도 하듯, 강건우가 대타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주상욱이 마스크를 고쳐 쓰며 눈에 힘을 줬다.
여기서 팬들이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파이러츠 1번 타자 박근수가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한 것이다.
팬들은 타자가 고의로 맞았다며 야유했지만, 1사 1루.
서창원 감독은 아웃 카운트가 하나 있는데도 번트를 지시했다.
‘조준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저놈한테 홈런을 친 타자다.’
홈런이 아니더라도, 한 방이면 동점을 만들 수 있다.
강건우를 무너뜨린다면 오션스에게 충격을 줄 수도 있다.
정석은 아니다. 그냥 2번 타자에게 강공을 지시할 수도 있겠지만, 짧은 안타로도 동점을 노리고 싶었다.
발 빠른 주자로 교체하고 번트.
“마!”
“쫄았나!”
“서창원이 창원으로 따라온나!”
이제, 2사 2루.
마운드에는 강건우.
타석에는 정조준.
2년 전 리그 MVP와 작년 MVP의 맞대결.
정조준은 눈에 힘을 잔뜩 줬다. 저놈은 특히 자신을 상대로 이상한 공을 던지는 것을 즐긴다. 어쩌면, 홈런을 맞은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구.
이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 수많은 야구팬들의 이목이 강건우의 손끝과 정조준의 배트 끝에 몰렸다.
“스트라이크!”
존트론이 볼 판정을 해줌에도, 심판이 신중하게 외쳤다.
정조준은 후회했다. 너무 생각이 많았다.
바깥쪽 낮은 코스로 정확하게 깔려 들어오는 포심. 구속은 156km/h.
차라리 그냥 휘둘러 볼걸. 때린다고 해서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기 쉬운 코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 미친놈을 상대로 볼 카운트 하나는 크다.
확실히 골치 아프다. 다른 타자들한테는 140km/h대의 포심을 던지다가 자신에게만 160km/h를 훌쩍 넘기는 공을 던지기도 하고, 너클볼을 던지기도 했다.
강건우가 너클볼을 던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배트를 쥔 손에 힘을 꽉 줬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때려 볼 생각이다.
생각이 많아져봤자 답이 없다. 특히 자신에게만 더 어렵게 승부해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나쁘다기보다는 자신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거로 생각했다.
강건우가 2구를 던졌다. 본능적으로 배트를 내민다. 그런데, 공이 약간 붕 뜨는 느낌이 든다.
아직 공이 존 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배트가 완전히 나간 것도 아니지만, 정조준은 이 2구째의 승부도 자신의 패배임을 직감했다.
“스트라이크!”
포수가 허둥지둥하며 공을 찾았다. 느린 구속으로 높은 곳으로 들어오다 뚝 떨어졌다.
전광판에 찍힌 114km/h 하는 구속이 정조준을 미치게 만들 지경이었다.
‘슬로우 커브?’
친하지만 않았어도 마운드로 달려가 배트로 머리통을 후려쳤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인정한다는 생각이 잠깐 사라지고, 저놈이 자기한테만 더럽게 던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준아! 집에 가자!”
오션스 팬의 외침이 들렸다. 타석에서 잠시 물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호흡했다.
‘다음 공은 무조건 168짜리다.’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물론 다른 공이 올 수도 있지만, 그냥 그 공을 노리기로 했다.
마음먹고 나면 그것뿐이다. 사실, 다른 공을 생각한다고 한들 답은 없었다. 그걸 칠 수 있느냐도 문제고, 강건우는 모든 공을 던질 테니까.
정조준은 그게 가장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폐에 공기를 가득 채우고 숨을 멈췄다. 순간 폭발력을 낼 것이다. 나는 정조준이다. KBO MVP고, 강건우한테 홈런을 때린 적도 있다.
강건우?
그래 봤자 사람이다. 167, 168은 던져도 200은 못 던진다. 공이 거꾸로 치솟아 오르는 것도 아니다.
‘준비됐다.’
기다리기라도 한 듯, 강건우가 투구 동작을 시작했다. 2루 주자가 리드 폭을 큼직하게 잡는다.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전력 질주할 것이다.
공이 강건우의 손끝을 떠났다. 정조준도 망설임 없이 스윙을 시작했다.
그리고.
부우웅-
배트가, 공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헛돌았다.
참았던 숨이 터져 나온다.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160km/h다. 너무 빨리 휘두른 걸까. 아니면, 설마 투심을 저 속도로 던진 건 아닐까. 제대로 공을 보지 못 했던 느낌이다.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했다. 그냥, 승부에서 진 것 자체가 분했다.
강건우가 주먹을 번쩍 들어 올리며 승리를 축하하고 있었다. 관중들이 환호성을 질러댔고, 포수가 펄쩍 뛰어오르며 외쳤다.
“이야아아아아아!”
씁쓸하다. 이기고 싶었는데.
뭔가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솟아오른다. 다음번엔, 반드시 이기고 말 거다.
그렇게 패배를 곱씹고 있을 때.
강건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우! 오늘 한우 회식입니다! 조준이 형이 삼진당하면 사기로 했어요!”
‘어?’
그런 내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오션스 선수들이 승리에 기뻐하며 소리쳤다.
“오! 한우!”
“한-우! 한-우! 한-우!”
“회-식! 회-식!”
“한우 파티이이이이!”
정조준이 멍청한 얼굴로 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술 사이로 목소리가 작게 새어나왔다.
“이런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