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56)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58화(258/385)
안 친한 형제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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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84경기를 치렀고, 비로 인해 취소된 경기의 수는 8게임이다.
비가 많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는 가운데, 오션스 야구단 사장이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어지간하면 경기를 진행하게 해 달라고.
뭐, 그거야 경기감독관 재량이니 별로 할 말은 없다. 우천취소 여부는 대체로 홈 팀의 의사를 많이 반영하는 편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우리 다음 일정인 아이언스전 1차전이 비로 취소됐다. 지난 새벽부터 비가 약하게 계속 내렸는데, 경기 시작 시각까지 그게 계속됐다.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와서 못 한다기보다는 그라운드 상태가 엉망이라 그렇게 됐다.
강수량을 보고 경기를 하겠다 싶어서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항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야구를 못 보면 입에 가시라도 돋치는 것 같다. 유리가 말하기를, 못 할 때는 비 오기만 바라는데 잘 하고 있으니 야구 못 보는 게 그리 억울할 거라고 한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팬들 앞에서 노루 형이 물기로 가득한 방수포 위에 슬라이딩하며 환호를 끌어냈다. 노경우가 따라 올라가 방수포 위에서 문워크를 췄고, 나는 분명 구장 관리인들의 수심 어린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김선준 트레이너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형 수건을 챙기며 이렇게 말하는 것도 들었다.
“저 김선준, 선수님들 감기라도 걸리면 모가지가 왔다 갔다 하는 남자…”
나름대로 극한 직업인 걸까.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김선준 트레이너가 한숨을 살짝 쉬며 말했다.
“다른 선수님들이 강건우 선수님만큼만 몸 관리를 해준다면…”
“예?”
“…제가 실직자가 될 수도 있겠네요. 아닙니다.”
은근 재밌는 사람이다. 조금 힘없어 보이는데 꼼꼼하고, 다른 사람 성대모사를 즐겨 한다.
어쨌거나, 이걸로 취소 경기가 9경기로 늘어났다. 아이언스 선수단은 별 반응 없이 철수했고, 우리는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실내 훈련장에서 가볍게 훈련을 진행하기로 했다.
체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겠지만,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아무튼, 실내 훈련을 준비하는데 김정용 선배가 말을 걸어왔다.
“야. 건우야.”
“예.”
“너 왜 나한텐 형이라고 안 부르냐?”
“예?”
그…
나는,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는 사람에게 선배라고 불렀다. 아니, 겉으로는 그냥 선배님이라 부르더라도 속으로 부르는 호칭이 달랐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그렇게 거리 둘 거야?”
나와의 나이 차이는 13살이다.
거, 뭐.
전부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으니까.
“형이라고 부를게요.”
“오. 진짜?”
“네. 정용이 형.”
“야! 건우가 이제 나한테 형이라고 하기로 했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신나서 소리치는지……몰랐는데, 실내 훈련을 준비하던 다른 선수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치사하게 정용이 형만?”
“건우야! 나도 형이라고 불러봐!”
“야! 나부터!”
“존나 섭섭했다. 빨리 형 해봐.”
뭔데 이거.
이 사람들 대체 뭐냐고.
나한테 형 소리 그렇게 듣고 싶었던 거냐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형 소리를 안 붙여도, 부를 때는 형이라고 부르기는 했다.
뭐…자주는 아니었지만.
사실 사람들이 모를 리가 있나.
나는 한숨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원하는 대로 한 사람씩 불러줬다.
“예…석규형…휘은이 형…정혁이형…영한이 형…”
이게 뭐라고.
그래. 진짜 형 취급해주자. 실제 나이가 어쨌든, 난 나잇값 못 했으니까.
선수들은 다들 이상한 거로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옆에서 뭔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어휴.
“…훈이 형.”
“우와.”
우와는 또 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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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ni1102
-(사진)
-오늘도 열심히
#실내훈련 #건우동생과함께 #훈이형해봐
└꼴갤간판이훈 : ㅎㄴㅎㄴ
└myhoon77 : ㅎㄴㅎㄴ
└국대1선발후니 : 퍼펙트 가즈아아아아아아아
└오션스V3 : 강건우 선수랑 사이 좋아 보이네요!
└hooni1102 : ㅎㅎ제가 아끼는 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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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 형들한테 인기 많더라?”
유리가 흐뭇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형이라고 불렀더니 다들 나랑 셀카를 찍었고, SNS에 #건우동생과함께, #ㅇㅇ형해봐 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사진과 글을 올렸다.
“아니 그게 뭐라고…”
유리가 시원하게 웃었다.
“너한테 거리감 좀 느끼는 선수들 많았을걸?”
“그래? 난 그런 적 없는데.”
“뭐, 원래 가해자는 잘 모르는 법이지.”
“나 가해자야?”
유리는 이번에 더 크게 웃었다. 뭐, 유리가 웃으면 됐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이상한 부분에 집착하는 것 같다.
-조용한 : 야 우리도 강건우 챌린지 하자
-백준섭 : 그래 나도 SNS에 건우 동생 한번 써보자
-정조준 : 아직 건우한테 형 소리 못 들어본 사람 있어?
-정조준 : 설마 ㅎ
-송병재 : 야 조준이는 좋겠다
-송병재 : 한우 털어가는 동생도 있고
-정조준 : 형 그거 제가 져준건데요
-박용재 : 뭣이여 승부조작이여?
-정조준 : ;;;;;;
-정조준 : 아니 승부조작이 아니고;;;
-서우주 : 뭐라고 승부조작이라고?
-정조준 : ;;;;;;;;;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일부러 져준 거라고 우기면 승부 조작이고, 그렇다고 저 형 자존심에 실력으로 진 거라고 말할 것 같지도 않고.
나는 국가대표 단톡방 알림을 꺼버렸다.
후.
한동안 피곤해질 것 같다.
출근 직후, 유리는 꽤 바쁘다.
“우리 건우 오늘도 파이팅!”
“누나도 파이팅!”
어리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으니, 유리가 좋아하는 행동을 해주며 인사했다.
두 손으로 하트를 날리자 유리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건우 안녕.”
“아. 훈이 형. 안녕하세요.”
이훈…아니, 훈이 형이 싱글벙글 웃고 있다.
나한테 형이라고 불리는 게 그렇게 좋은가 보다. 전에 그렇게 부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진심을 담아서 형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그렇게 안 들리는 뭐 그런 걸까.
그건 그렇고, 하는 걸 보고 귀엽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형이라고 부르기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봐야지.
“오늘도 잘 부탁할게. 형 좀 도와주라.”
“아, 예…”
원래는 어제 호세 킹이 선발 등판 예정이었는데, 우천취소로 오늘 선발이 이 사람이고 내일이 호세 킹이다.
“오늘 형 컨디션 좋다?”
“잘됐네요.”
그리고 말할 때마다 ‘형’이라는 단어를 넣는다.
지금까지 전혀 안 어색했는데 갑자기 어색해진 느낌이 든다.
음.
그냥 적당히 거리감 있게 지낼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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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은 마운드에서 1회를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오션스 타자들은 1회 말에 1점을 먼저 냈다. 서창열이 최근 열렸던 올림픽에서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지는 못했었지만, 전․현직 국가대표 타자로 구성된 오션스의 1~4번 타자들은 확실히 위력적이었다.
물론 하위타선도 만만치 않다.
어쨌거나, 2회도 삼자범퇴로 만만치 않은 아이언스를 잠재웠다.
아이언스는 외국인 타자를 잘 뽑았고, 젊은 유격수 정종훈이 포텐셜을 터뜨렸다.
거기에 뜬금없이 어린 거포 외야수 지형욱이 나타났다.
제이크 웰치가 타율 0.301에 17홈런, 정종훈이 타율 0.335로 리드오프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으며, 지형욱은 타율은 0.244로 약간은 부족하지만, 시즌 중간에 주전 자리를 꿰찼음에도 홈런을 12개나 때렸다.
외국인 투수들도 괜찮고 최철도 건강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FA로 데려온 수준급 불펜 투수 고준수도 든든하게 제 역할을 해주고 있어 꾸준히 포스트시즌 진출권에서 싸우고 있는 몇 개 팀 중 하나다.
2회 말, 오션스 선두타자 이시욱이 안타를 때려내며 출루했지만 후속타가 터지지 않았다.
그리고 3회 초, 바이킹스에서 트레이드되어 온 포수 정현덕의 타구가 날카롭게 라인을 타고 날아가 파울라인 안에 떨어졌다.
“작년에! 왔던!”
주상욱이 버럭 소리쳤다.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이훈이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받아쳤다.
“각설이가아아아앗!”
다음 타자는 장타력을 증명하고 있는 지형욱. 이훈이 침착하게 공을 던졌고,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
“마! 이훈! 죽고 싶나!”
“이 새끼 오늘 잘 던진다 했드만 또 볼질이네!”
“훈이한테 뭐라 하지 마소!”
“잘 한다 해줘야 잘 한다! 훈이 기죽이지 마라!”
“개코빠는 소리 하지 마라! 못하니까 못한다고 하지!”
늘 그렇듯, 이훈이 던질 때면 사직은 소란스러워진다. 이훈은 다시 기합을 넣고 던졌다.
탁!
희생번트가 나왔다. 포수 주상욱이 침착하게 앞으로 나와 1루로 던졌고, 1사 2, 3루가 됐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괜찮다. 점수를 좀 내주더라도 믿음직한 타자들이 힘을 내줄 것이다.
침착하게. 괜찮아. 자신 있게 던지면 돼.
“악!”
이훈의 머리가 멍해졌다. 분명 잘 던지고 있었는데.
공이 타자의 정강이 보호대에 맞아버렸다.
함성이 더 커진다. 욕설과 응원이 섞여 있다. 정신이 살짝 멀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다음 타자가 박정신이다.
박정신.
타율 0.322, 출루율 0.431.
홈런 10개, 도루 11개.
이번 시즌 2번 타자로 나서고 있지만, 득점권 타율이 무려 0.439.
기록뿐만 아니다. FA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같은 팀에서 뛰었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다. 저 사람은 못 이겨낼 것 같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아까는 아웃 카운트를 따냈지만, 지금은 1사 만루다.
턱 각도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더라?
무슨 공을 던져야 하지?
피해가고 싶다. 그런데 선구안이 워낙 좋은 타자다. 병살을 유도하겠다고 볼을 던지다가 밀어내기 볼넷이라도 주면?
그렇다고 정면승부 하다가 홈런이라도, 아니 안타라도 맞으면?
자칫하면 3타점 싹쓸이다. 1루 주자 발이 꽤 빠른 편이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손에 땀이 차서 바지에 쓱 닦아냈다. 그때, 뒤에서 강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훈이 형. 병살 잡으려고 일부러 만루 채운 거죠?”
갑자기 떨림이 잦아들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이훈의 허리가 똑바로 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타석에 선 타자가 넘어설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었다면, 지금은 그냥 좀 치는 타자로 보인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었다.
이 감정은 그런 것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동생들 앞에서 못난 모습은 보여주기 싫다.’
등 뒤에 서 있는 키스톤 콤비는 이제 21살인 어린 동생들이다.
어린데도 제 몫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형으로서 뭔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훈이 뒤로 고개를 돌려 씩 웃었다. 그리고 투구 동작을 취했다.
주상욱이 현란하게 싸인 보낼 준비를 한다. 이훈은 싸인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던지라는 대로 던질 생각이었다.
주상욱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지만, 정석대로 싸인을 냈다. 바깥쪽 낮은 투심.
이훈이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물론, 이훈은 제구가 좋은 투수가 아니다. 여러모로 교정을 거치고 있음에도 그렇다.
이게 오히려 허를 찌르는 투구가 되었다. 바깥쪽 낮은 코스를 노리던 박정신은 몸쪽으로 꽉 차게 들어오는 공에 배트를 내지 않았다.
때리더라도 제대로 된 타구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2구.
따아아아악!
“파울!”
큰 파울 타구.
약간은 등골이 서늘한 타구였지만, 그래도 2스트라이크다. 볼이 없다.
3구.
“볼!”
4구.
“볼!”
볼 카운트가 순식간에 2볼 2스트라이크가 됐다.
파울 두 개가 더 나왔다.
타자도 공격적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6구째는 내버려 뒀다면 볼이었을 것이다.
“훈이 형. 제일 자신 있는 거 던져서 끝내요.”
이훈의 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제일 자신 있는 거?
포크볼이다.
투심을 장착해 재미를 보고 있지만, 이훈은 기본적으로 꽤 수준 높은 포크볼을 던질 줄 아는 투수다.
전 투수 코치는 이훈의 멘탈을 어떻게 해주진 못했지만 포크볼의 완성도 만큼은 괜찮게 끌어올렸다. 이훈은 주상욱의 싸인에 두 번 고개를 흔들었고, 세 번째로 포크볼 싸인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
심호흡하고.
‘난 강건우 형이니까.’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강건우가 어떤 선수인가.
강건우에게 형이라고 불렸을 때는 굉장히 기뻤다.
뭔가,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
잡념이 사라지고, 이훈의 손끝에서 공이 떠났다.
약간 밋밋하게 날아가고 있다. 이훈의 포크볼이 위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의도치 않게 밋밋한 포심과 궤적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떨어지는 각도 괜찮다. 그리고 이번 포크볼은,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하나인 박정신마저 속여넘겼다.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평소 침착한 스타일인 박정신도 당황한 듯 입을 살짝 벌리고 이훈을 바라보았다.
관중들이 일시에 소리 질렀다.
“이-훈! 이-훈! 이-훈!”
“훈아! 니만 믿고 있었다!”
“마! 이훈! 할 수 있으면서!”
“진작에 그래 던졌어야지! 잘했다, 마!”
그리고 이훈은, 심판의 삼진 콜을 듣자마자 펄쩍 뛰어오르며 환호했다.
“우와! 우와! 우와아아아아!”
너무나도 기뻤다. 득점권에서 강한, 그 괴물 같던 박정신을 상대로 만루 상황에서 삼진이라니.
뒤에서 강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형. 아직 2아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