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59)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61화(261/385)
안 친한 형제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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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승기는 등판을 준비하면서, 어딘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작년의 그 팀이 아니다.’
작년에도 오션스는 분명 강했다. 최근 수년간 함께 손잡고 최하위권에서 따로 놀던 오션스와 메테오스가 역습을 이뤄낸 지난 시즌이었다.
메테오스도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그에 반해 오션스는 끝까지 싸우는 저력을 보여줬다.
‘내 손으로 멈춰 세워야만 했었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오션스의 선발 야구.
그리고 힘이 붙은 타선. 진일보한 수비.
시즌 최종전. 운명 같은 경기. 다이아몬즈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경기에서, 민승기 본인의 손으로 오션스를 막아냈다.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운명이었다.’
민승기는 그때, 자신의 손으로도 막을 수 없다면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절대 쉽게 보내줄 수는 없었다.
‘뼈를 깎는 아픔.’
죽을 각오로 던졌다. 자신의 손으로 우승시킬 수 없다면, 최소한 자신을 꺾고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결국, 이것이 바로 세계의 의지. 이 세계는 민승기 없는 오션스의 우승을 원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민승기는 진지하게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민승기가 합류한 이번 시즌.
오션스는 말 그대로 막강하다.
역대 최고 승률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로 달려가고 있다.
‘한 사람의 에이스가 어떻게 팀을 바꿀 수 있는지, 이 민승기가 증명한다.’
상상하던 그림이었다. 민승기라는, 최후의 한 조각이라기보다는 최고의 한 조각을 찾은 오션스의 대약진.
‘존재 자체만으로도 팀을 변화시키는 존재…그게 바로 나.’
심호흡했다. 비록 사직 야구장은 아니지만, 잠실도 꽤 괜찮은 무대다.
야구의 냄새가 코끝을 찾아온다. 그래. 나는 민승기. 오션스의 에이스. 야구 그 자체.
민승기가 슬쩍 웃었다. 경기 준비 훈련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가. 아마도, 강건우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강건우뿐일지도 모른다. 오늘 선발 투수가 누구인지 의식이라도 하듯 훈련에 열중하는 모습이라니. 다른 선수들이 옆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의욕을 폭발시키지 않았는가.
“큭큭큭…”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강건우는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지.’
비록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
오션스 왕조를 이룩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그 신념만큼은 똑같다. 영혼이 이어져 있다, 민승기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강건우에게만큼은 본인의 숨겨져 있던 진실된 모습이 나오는 걸지도 몰랐다.
주상욱도 자신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사람이니까.
물론, 이건 그냥 민승기의 몹시 주관적인 견해이다. 두 사람의 의견은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다.
경기 전의 명상을 마친 민승기는 고개를 들었다. 기다리라고 했더니 군말 없이 기다리고만 있었던 주상욱이 코를 후비며 준비된 자료를 읽고 있었다.
“…주상욱.”
“어, 예.”
그래도 이 녀석도 많이 성장했다. 거둬주고 꾸준히 성장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더니, 드디어 결실을 보는 것 같았다.
뿌듯하다. 민승기가 흐뭇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를 더는 왕자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예?”
주상욱은 조금 당황했다.
최근에는 완댜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왜?
“이제부터 그런 식으로 날 부르려거든…”
주상욱이 눈을 굴렸다. 이 양반이 또 뭘 잘못 잡쉈나. 혼자 이런저런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이상하게 웃더니, 뜬금없이 자기가 놀린 것이 생각나기라도 한 걸까.
민승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왕자님이 아니라 왕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예?”
“큭큭큭…”
“…뭐라고요?”
“나는 이제 오션스의 왕자가 아니라 왕이 될 테니까…”
“…저기…”
“큭큭큭큭 주상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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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야.”
“상욱이 형.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승기 형이 이상하다…”
난 또 뭐라고.
별일도 아닌 것 같은데.
“그 형 원래 좀 많이 이상하지 않아요?”
“그건 그런데.”
“솔직히 제가 본 사람 중 이상하기로는 투톱인 것 같아요.”
“한 사람은 누군데?”
솔직히,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진다. 당연히 한 사람밖에 없지 않나?
“의현이 형이요.”
“음.”
상욱이 형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진다.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뭔가 수긍하는 것 같은 얼굴이 됐다.
“하긴…”
“근데 오늘은 뭐 특별하게 이상해요?”
“갑자기 자기를 더 이상 왕자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더라.”
“왜 그러지? 왕자 별명 은근 좋아하던 거 같던데.”
“이제는 왕으로 불러달라고…”
“음.”
나는 바로 다시 말했다.
“걱정할 만큼 특이한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상욱이 형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건우야…”
“예.”
“니가 영의정이라더라…”
영의정?
전에 지나가듯 그런 말을 했던 거 같은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평소대로 하시면 될 거에요.”
“그렇지?”
나는 상욱이 형을 안심시켜 돌려보냈다.
후.
나라도 정신 차려야지. 지난 경기에서 대패했으니 분위기를 확 바꿔줄 필요가 있다.
경기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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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됩니다! 오션스 대 불도저스! 불도저스 대 오션스의 시즌 9번째 경기! 잠실 야구장에서 중계를 보내드립니다!
-예. 오션스는 지난 경기에서 아이언스에 대패했고, 불도저스는 다이아몬즈를 스윕하며 기세를 올리며 홈으로 돌아왔습니다. 전력을 봤을 때 승률만 봐도 오션스가 전력에서 우세한 것은 사실이긴 해도, 야구는 또 모르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초반 분위기가 중요할 듯합니다. 오션스가 분위기를 반전시키느냐, 불도저스가 좋은 분위기를 끌고 나가느냐. 그런 면에서 양 팀 선발 투수의 역할이 클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봐야죠. 오션스 선발은, 예. 민승기입니다. 올 시즌 민승기는 거의 괴물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에 맞서는 불도저스 투수는 황보경태인데요. 예. FA 계약 후 과거보다 훨씬 나아지고 있는 두 투수의 명품 투수전이 기대됩니다.
“음.”
복귀를 위한 재활 훈련 막바지에 돌입하고 있는 박의현이 TV를 켰다.
“오. 다들 표정이 좋다.”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의 박의현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처럼 그렇게 말도 안 될 정도로 떠들지는 않았다.
아까 다른 선수들과 통화한 것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박의현이 통화한 것은 강건우와 주상욱.
강건우를 생각하면 더 웃음이 나온다. 특히, 약간 머뭇거리다가 ‘형’이라고 불러준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벽이 허물어진 것 같아서 기뻤다.
특별한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강건우 쪽에서 먼저 전화가 온 것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주상욱과 통화했을 때, 강건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건우가 스트레스 좀 받는 것 같은데. 이유는 잘 모르겠네. 요새 좀 달라졌는데 그거 때문인가?
박의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가지 솔루션을 내놓았다.
건우는 민승기와 어딘가 닮은 부분이 있다. 한 번 비슷하게 접근해보자. 그간 관찰한 결과, 강건우는 주변 사람들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 뭔가 자기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앞에서 바보짓이라도 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러면?
“승기 형을 흉보면 될 것 같다!”
-뭐라고?
“물론 조금 꺼려질 수도 있겠지만! 승기 형은 이상한 짓을 많이 하니까! 그냥 아무 말이나 하고 걱정된다고 하면 강건우의 주의를 돌릴 수 있을 거다!”
주상욱이 실제로 그걸 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카메라가 오션스 선수들을 비춰줄 때 확인한 바로는, 강건우의 표정은 꽤 좋았다.
물론 강건우는 어떤 컨디션일지라도 제 몫을 해내는 선수다. 하지만 표정이 괜찮을 때의 강건우는 말도 안 되는 수비까지 해내곤 한다.
어쨌거나, 불도저스의 선공.
마운드에 먼저 오른 것은 민승기.
볼수록 감탄이 나오는 투수다. 저런 투수와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은 행운이라고 여겨졌다.
박의현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타격 자세를 취했다.
타자 입장에서 민승기를 상대한다고 생각했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리려 할지를 예상해보기 위해서였다.
민승기가 초구를 던졌다. 타석에는 국가대표 중견수 예지호.
불도저스는 FA 유출로 곤란을 겪었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그 구멍을 잘 메꿔내고 있다.
물론 이번 시즌에는 조금 고전하고 있긴 해도, 새 얼굴들이 자리를 잡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올라올 것이다.
-초구 파울. 예지호 선수, 굉장히 아쉬워하는데요.
-154km/h 포심이었죠. 잘 제구된 공인데, 예지호 선수 역시 요즘 타격감이 살아 있어요.
박의현은 심호흡했다. 상대 타자의 마음을 읽어보기는 무슨. 아마 자기였더라면 저 공에 스윙조차 하지 못 했을 것이다.
확실히 자신이 가진 타격 재능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니,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자면 예지호의 타격감이 좋을 때 오른쪽 무릎이 조금 일찍 열리는 걸 발견하는 것.
박의현의 관찰력이 그걸 캐치했다. 정말 감이 좋을 때는 저 타자를 상대로 오프 스피드 피치 위주로 던져야 한다. 그것도, 속도를 최대한으로 줄인. 내야수들이 집중해준다면 그라운드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발이 빨라서 집중력을 발휘해야겠지만.
타격감이라는 것은 올라갔으면 내려오게 되어 있다. 강건우에게도 그런 싸이클이 있다.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안 그래 보일 뿐이다.
어쨌거나, 타격감이 조금이라도 하락세를 보이는 순간 브레이킹볼의 먹잇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릎이 일찍 열리면 스윙을 중간에 멈추기 힘들다. 박의현은 즉시 메모했다.
-예지호 : 타격감이 좋을 때는 포심으로 속여서 가장 느린 공. 조금 나빠질 때 제일 각 큰 변화구로 승부.
이런 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의현은 동료 선수들뿐만 아니라 리그의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무언가 눈에 띄면 기록해두는 것을 습관화하고 있었다.
컨디션 좋은 예지호는 민승기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풀카운트 승부 끝에,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지만, 양대근이 육중한 몸을 날려 타구를 잡아냈다.
-양대근! 양대근의 호수비! 저걸 잡아냅니다!
-이야. 정말 날렵했어요. 이야. 하하. 오션스 선수들의 수비력이 날로 좋아지네요. 저걸 잡네요.
포수 입장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모습이다.
박의현이 보기에 양대근은 가장 이상적인 타자 중 한 명이었다. 강건우가 있지만, 그쪽은 자신이 절대로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물론 양대근도 그렇긴 한데, 박의현은 양대근의 타격 스타일을 닮고 싶어 했다.
그런데 수비까지 저렇게 잘 해준다면 계산이 좀 더 명확해진다.
자신이 없을 때 이렇게 잘 해주는 동료 선수들이 너무 고마웠다. 한국 시리즈에서 못 뛴 것이 항상 마음속에 짐으로 남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 이야기는 일부러 입에도 담지 않았다. 사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때의 일을 아쉬워만 하고 있으면 지금의 오션스는 없을 것이다.
민승기는 최연제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그리고 여전히 불도저스에서 가장 까다로운 타자인 서우주를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했다.
“음. 좋아. 좋아. 좋아.”
박의현도 아까 해설자들이 말한, 초반이 중요하다는 말에 완전히 동의하고 있었다.
민승기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불도저스의 최근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순위표와 무관하게 불도저스는 지난 시즌 한국 시리즈에서 오션스에 일격을 가한 팀이고, 순위표 상단이 익숙한 팀이다.
잠시 광고가 나왔다. 박의현은 가볍게 스트레칭하며 1회 말을 기다렸다.
서창열이 나왔다. 보고 있으면 정말 웃음이 나오는 선수다. 상대할 때는 무섭지만.
여러 의미로 무섭다는 뜻이다. 투수를 자극하려는 듯한 과장된 연습 스윙, 야구장보다는 다른 곳에 훨씬 어울릴 것 같은 더러운 눈빛, 자연스럽게 포수를 향해 흙을 발로 차는 동작,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식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은 입 모양.
황보경태는 만만치 않았다. 여러 변화구로 그라운드볼을 유도해내는 팔색조 스타일의 이 투수는, 네 가지 각기 다른 공을 던져 서창열을 땅볼로 잡아냈다.
다음 타자는 배영한. 건들건들하게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이 어딘가 믿음직하다. 불도저스 출신의 이 타자는 불도저스 팬들에게 무언가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좋은 타구를 날렸지만, 예지호의 다이빙 캐치. 감탄이 나오는 수비였다.
그리고 경기장의 공기가 약간 변한 느낌이었다. 박의현은 경기장에 없지만, 경험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강건우가 나오면 항상 그랬다.
-다음 타석은 강건우. 예. 강건우 선수가 나옵니다.
해설자가 침을 꼴깍 삼킨다. 시끌벅적하던 관중들도 조용해졌다. 박의현은 펜도 연습용 배트도 잡지 않았다. 그냥 강건우의 타석은 즐기면 된다.
투수의 표정도 볼만하다. TV로는 안 보이지만, 아마 포수는 죽을상을 짓고 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내가 포수고, 상대 타자가 강건우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이건 강건우를 처음 봤던 그때부터 해온 고민이다.
박의현이 내린 하나의 해답은 이거였다.
그냥 강건우가 같은 팀인 것에 감사한다.
뾰족한 해답이 없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강건우는 황보경태가 초구로 선택한 슬라이더를 잡아당겼다.
따아아아아아악-!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공이었다. 그런데 강건우는 마치 그걸 예상이라도 한 듯,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당겨 그대로 날려버렸다.
-아! 강건우! 초구 스윙! 강건우우우! 강건우! 아직도! 타구가!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강건우! 강건우! 타구가! 저 타구는! 네! 넘어갔습니다! 넘어갑니다! 강건우! 홈런! 선취점을 올리는 솔로 홈-런! 예! 강건우입니다!
재활 중인 걸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박의현은, 가벼운 불편함을 느꼈지만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강건우의 응원가를 크게 불렀다.
“강-건-우우우우! 강-건-우! 강건우! 오션스 강건우우-!”
마치 경기장에 있는 것처럼.
거기에 추임새까지.
“유리 누나가 시키드나아아아아!”
오션스의 원정 팬들이, TV 속에서 박의현처럼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