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62)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64화(264/385)
커피 프린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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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으로 ‘나도 이 팀의 일원이 되어야지’라고 한 것만은 아니었다. 유니폼만 입는다고 해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어떻게든 팀의 일부인 것은 맞지만,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계약서에 기반한 이야기가 아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팀 밖에 위치하면서도 한 팀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 그런 걸 아주 많이 봤었다.
사실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은퇴했음에도, 직업을 야구 선수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바꾸었음에도 자신이 그 팀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다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함께 했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
과거 소속팀의 몰락에 충격받은 OOO의 애정 어린 충고 같은 것을 말하는 거다.
나는 야구 선수는 야구만 잘 하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에슬레틱스에서 양키스로 팀을 옮기기 싫어했던 것은 에슬레틱스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생활권을 옮기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메이저리그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을 이곳 KBO에서 배우고 있다.
승기 형은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분명히 팀의 일원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2군 경기장에 가서 2군 선수들과 2군 경기를 보러 온 팬들에게 커피를 샀다는 뉴스에 달린 댓글들은 날 조금 걱정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 다른 이야기에는 몰라도 팬들의 말에는 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
국가대표팀에서 친해졌었고, 친해진 계기는 오션스였다. 미국 야구계에서 유명세를 탄 유리가 오션스 팬이란 것을 들은 승기 형이 날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은퇴 전에 꼭 한 번이라도 오션스에서 뛰어달라는 말도 했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말 중 하나는, 이적 후 다이아몬즈 팬들의 말에 조금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데뷔 때부터 날 응원했던 내 열성 팬이 왜 가도 하필 그딴 팀에 갔냐고 하더라.”
꽤 쓸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속으로는 나도 그 팬의 말에 동의했다.
왜 하필 오션스에 가서.
“기왕 나간 거 좋은 팀 가서 우승도 하고 대우도 받지 그랬냐고.”
그러고 보니 그때는 말투가 지금처럼 그렇지 않았던 거 같다. 나 없는 오션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초점이 안 맞는 흐릿한 눈을 하고 있는 승기 형은, 그래도 오션스를 사랑했었던 것 같다.
“마음이 아프더라. 팬들은 선수도 한 팀의 팬일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 뭐…응원에 보답하려면 오션스를 이끌고 우승 한 번 해야지.”
물론, 그 도전은 실패했었다. 성공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내 마음이 좀 더 편했을까. 과거로 돌아와 오션스 우승에 도전하면서, 막막함을 그나마 덜 느꼈을지도.
승기 형이 오션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여러모로 표현하면서 일부 다이아몬즈 팬들이 서운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괜한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그…승기 형이 조금 신경 쓰였다.
굳이 오션스 우승을 위한 중요한 선수라서라기보다는, 그러니까…
같은 팀, 오션스 동료로서.
다른 사람들이야 승기 형이 어떤 사람인지 잘은 모를 테니 딱히 신경 쓰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난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들은 말도 있으니.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승기 형은 꽤 밝은 목소리였고, 감독님에게 미쳤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게 다 애정이라며 혼자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다이아몬즈 팬들이 서운해하던 것 같던데요.”
승기 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기도 인터넷에서 봤다고 했다. 그리고 하는 말이…
하.
-큭큭큭. 강건우. 내 걱정을 해주는건가…그래. 이 말 한마디는 해줘야겠군.
“됐어요.”
-내일, 두 대의 커피 트럭이 어딘가로 향할 거다.
“끊을게요.”
-마산 야구장에서 파이러츠 2군과 다이아몬즈 2군의 경기가 있더군.
“…”
-나는 다이아몬즈 팬들을 잊지 않았다.
“후…”
-다만. 마음 아프게도 내 안에서 오션스라는 존재가 너무 클 뿐…
“그러시군요…”
-너에게도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엄청난 고민을…
“저는 유리 누나뿐이라서요.”
-정말 불가피한 사유로 다른 사람을 잠깐 만났더라면…
“그런 일 없는데요.”
-나도 그럴 줄 알았다, 강건우…
왜 아련하게 말하는 건데.
그냥 괜히 전화해서 오지랖 부리려다가, 승기 형이 오션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다이아몬즈 팬들에게 느끼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1시간 가까이 들어야 했을 뿐이다.
중간에 몇 번이나 내 맘대로 말하고 싶은 걸 참아야만 했다.
그러게 고등학교 때 좀 더 잘해서 애당초 오션스에 지명받을 것이지.
나보다 야구도 못 하면서.
그 정도로 오션스에 가고 싶었으면 지명 거부하고 대학 갔다가 다시 드래프트 나오지 그랬냐.
등등등.
그런데 참았다.
이유는 뭐…
그냥.
나도 이 팀이 좋아져서.
“아, 알겠으니까 우리한테도 커피 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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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들은 어느 정도 미친 족속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아. 물론, 나는 빼고.
어쨌거나, 그런 과정을 거치면 라커룸에서 하는 선수들의 행동을 참아낼 수 있게 된다.
징크스나 경기 준비 루틴 같은 것들. 그래도 메이저리그 시절에 비하면 여기서는 그런 것들이 그렇게까지 심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어떤 메이저리거들은 징크스를 만드는 것이 취미 생활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오늘 등판인 호세 킹은, 지난 경기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징크스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좋아, 호미. 내가 설명해주지. 네가 그렇게까지 궁금해한다면 말이야.”
사실, 징크스를 지킨다고 해서 항상 좋은 활약을 한다면 세상에 야구 못 하는 놈이 어디 있겠는가.
이건 그냥 경기 전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장난일 뿐이다. 거기에 지나치게 몰입하다가 정작 경기 준비를 소홀히 하는 멍청이들도 분명히 있지만 말이다.
호세 킹의 원정 라커에 걸려 있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개의 팬티.
그리고 저게 또 뭐 하는 미친 짓인가 하고 바라보던 노경우.
거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노경우의 눈빛.
“일곱 빛깔 무지개 팬티에 관해 설명해주겠다고 하네.”
“안 궁금한데.”
“그럼 왜 보고 있었냐.”
“궁금하다기보다는 또 무슨 짓 하는가 싶어서 봤지.”
“나는 말이지. 이제부터 요일별로 팬티 색깔을 다르게 입을 거야. 월요일엔 빨간색, 화요일엔 주황색, 그래. 이제 눈치챘겠지만, 오늘은 남색 팬티를 입어야 하는 날이지.”
호세 킹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노경우에게 말해주자, 노경우가 이상한 눈빛으로 호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월요일엔 경기도 안 하는데 빨간 팬티는 뭐하러 가지고 온 거야.”
아주 가끔은 노경우도 날카로운 날이 있다.
뒤늦게 우리 근처로 온 울프팩은 그 팬티를 보며 말했다.
“헤이, 이건 뭐야? 흠. 퀴어 축제라도 나가려는 거야? 다양성은 좋은 거지. 하지만…그래. 난 내 라커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어. 오해하진 마. 난 네 모든 걸 존중하려고 노력 중이야.”
울프팩의 그 말 때문에 호세의 요일별 깔맞춤 팬티 계획은 철회되었다.
그리고 노경우는 선물 받은 새 팬티 세트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팬티야…”
하긴.
노경우가 입긴 너무 크지.
노경우도 키가 180cm는 넘는데, 호세가 2m가 넘는 거인이다 보니.
게다가…
음. 뭐. 어쨌든.
호세는 신무기를 준비했다. 당연히 팬티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새 구종이다.
드래그라인을 수정하고 밸런스를 찾는 작업은 당장 완벽하게 진행되지는 않고 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투구 메커니즘 전체를 수정하는 일이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은 힘드니까.
호세가 준비한 새 구종은 싱커다. 올림픽 브레이크에 이어 지금까지 꽤 열심히 준비한 듯한데, 연습 투구에서 던지는 걸 봤다.
솔직한 감상은, 구종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위력적인 건 아니다.
앤디의 싱커가 워낙 완성도가 좋은 편이라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싱커의 무브먼트나 구위는 둘째 치고.
“어땠어?”
다소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는 호세의 질문에 대답해줬다.
“좋네. 정말이야. 우타자 몸쪽에 포심 하나 꽂고 바깥쪽 낮게 싱커 던지면 정신 못 차리겠는데?”
“나마스테.”
빈말은 아니었다.
특정한 구종의 마스터 정도가 된다면 그 공 하나만으로도 메이저리그 상위권의 투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수는 그렇지 않다.
가진 몇 가지 구종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좌타자에게 포심과 슬라이더, 우타자에게는 포심과 체인지업 위주로 던졌지만, 체인지업의 위력이 그다지 좋지 못했으니.
제대로만 꽂히면 아파트 3층에서 던지는 것 같은 호세의 구위를 생각해보면 살짝 밋밋해 보이긴 해도 저 싱커는 꽤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왔다, KBO. 이제 시작이라고.”
자신감 넘치는 저 표정. 음.
제구가 어느 정도 된다는 가정하에, 실전에서 잘 먹히기만 하면 우리는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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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욱은 이제 자신이 매일 경기에 나설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박의현의 복귀가 다가온다. 빠르면 이번 주말 시리즈가 끝나고 다음 주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래도 주상욱은 지금 당장 눈앞의 과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1회 말, 수비에 나서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전 소속 팀과 경기 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벤치 클리어링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전 동료 선수에게 폭언을 듣기도 했다.
다이아몬즈 선수들과 사이가 엄청 좋지는 않아도 그리 나쁘진 않았었는데.
주전 포수 경쟁을 하던 다른 두 포수는 나이도 비슷했고, 다들 자기가 주상욱보다 낫다고 생각했기에 은근히 견제하곤 했지만.
다이아몬즈의 1번 타자는 전 오션스 소속이었던 김성호다. 강건우 입단 직전에 FA로 떠난 우투좌타 외야수.
함께 뛴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꽤 인상이 좋았으나,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본성을 드러냈다. 그런데 다이아몬즈에서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2루수 김태훈에게 들은 바로는, 자신이 오션스 유니폼을 입은 그 트레이드 이후 오션스 출신 선수들이 늘어나자 더 심해졌다고 한다.
애당초 민승기의 욕을 하다가 주상욱과 충돌이 있었던 그 선수가 바로 김성호다.
피차 반갑게 인사할 사이는 아니다. 호세 킹이 좌타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몸쪽 포심과 바깥쪽 슬라이더. 호세는 허를 찌르는 타입의 투수가 아니라 크게 머리 굴릴 필요는 없다.
“볼!”
몸쪽 포심이 조금 깊숙하게 들어왔다. 구속을 조금 낮춰서 몸쪽을 공략하곤 하지만, 낮춘 구속도 150km/h를 넘긴다. 김성호가 다급하게 물러나며 주상욱을 노려봤다.
“나이스 볼!”
이제 저런 건 개의치 않는다. 겁먹을 필요가 있나? 1루 베이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덩치가 보인다.
‘저 손바닥에 한 대 맞으면…’
상상만 해도 척추가 뒤흔들리는 느낌이다.
그건 그렇고, 호세 킹이나 이훈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오히려 더 재밌다는 느낌이 든다.
민승기는 그나마 익숙하긴 하지만 그래도 긴장된다. 앤디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섬세한 스타일이라 신경 쓸 것이 많다.
국민성과 호흡을 맞출 때면 정말 그냥 공 받는 기계가 되는 느낌이다.
물론 재미로 야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의외성 있는 두 투수와 함께할 때는 쫄깃한 즐거움이 있다.
다이아몬즈에 있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두 번째 싸인을 바깥쪽 슬라이더로 냈다.
“악!”
그리고 슬라이더가 타자의 옆구리에 꽂혔다. 호세가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김성호는 겨우 화를 참으며 1루로 걸어갔다.
무사 1루. 게임 선두타자를 내보내며 영 좋지 못한 출발이지만, 주상욱은 오히려 즐거워졌다.
2번 타자는 잡아냈다. 첫 타자에게 제구가 고장 난 것 같았지만 유현승은 연속 번트 실패 후 크게 헛스윙하며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3번 타자 정철준의 타석. 초구 몸쪽 포심으로 파울을 끌어냈고, 2구 슬라이더는 존 밖으로 벗어났다.
손끝의 감각이 즐겁다. 준비했던 것을 던져 보기로 합의를 봤다.
싱커.
우타자 바깥쪽 낮게. 계획대로만 된다면 타자를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연습 때 보다 조금 더 밋밋하게 공이 들어온다. 쑥 가라앉아야 하는데 흐릿하게 떨어진다.
따악-!
싱커가 덜 가라앉으며 낮고 강하게 날아가는 직선 타구가 됐지만, 양대근이 제자리에 선 채로 잡아낸 후 1루 베이스를 밟으며 이닝을 끝내버렸다.
“하.”
정철준이 입맛을 다셨고, 주상욱은 기분 좋게 웃으며 일어나 양대근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양대근은 손을 들어 화답한 후, 이시욱에게 소리쳤다.
“이게 내야 수비다! 시욱아!”
제구가 어쨌든, 혹은 새 무기의 무브먼트가 어쨌든.
어떻게든 경기는 풀릴 것 같았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