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64)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66화(266/385)
커피 프린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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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흐름은 언젠간 꺾이고, 내려가는 흐름은 언젠가는 다시 올라온다.
사실 이건 인디언식 기우제나 마찬가지다. 시즌 내내 이길 수도, 시즌 내내 질 수도 없는 것이 야구니까.
강팀의 연승은 길고, 약팀의 연승은 짧다.
그리고 우리는, 오션스는 분명히 강팀이다. 과거가 어쨌건 이번 시즌에 한정 지으면 명백하게 그렇다.
[김정용, 79일 만의 선발 등판에서 퀄리티 스타트!]└역시 김퀄 ㄷㄷㄷㄷㄷㄷ
└그냥 선발로 쭉 뛰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짬밥 어디 안 가네
└롱릴리프나 대체 선발로 잘해줘서 너무 고맙다 ㅠ
사실, 한국 나이로 34살이면 불펜으로 밀려나서 뒷방 늙은이 취급받을 나이는 아니다. 몇 가지 요소가 작용해서 그렇게 뛰고 있는 것뿐이다.
정용이 형은 좋은 사람이자 베테랑이며, 오션스의 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승리를 거두고 정말 행복해했다.
또 다른 비밀이 있긴 하다. 선발 투수로 계속 뛰고 싶은 욕심이 있기는 하지만, 자기가 꼭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아진 투수진에 만족하는 다른 이유.
오랫동안 오션스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온 사람이다. 몸 여기저기에 통증이 있다고 들었다.
“선발로 등판하면 몇 경기는 괜찮은데, 하다 보면 팔이 돌처럼 굳거든. 와이프랑 애가 아파하는 거 보면서 얼마나 마음 아파 하는지…야구 그만둘까 생각도 했는데, 나 대신 선발로 뛰어줄 애들 많아서 참 좋다. 요샌.”
“정말로요?”
내 질문에 정용이 형은 그 사람 좋은 미소가 살짝 굳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그래. 마음 같아서는 그냥 아프거나 말거나 팔 작살날 때까지 던져보고 싶은데. 지금 큰 수술 하면 그대로 은퇴 각이야. 가늘고 길게 팀에 눌러앉아서 애 학비라도 벌어야지.”
낭만을 좇는 투수들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건 개인의 몫이다.
“이미 많이 벌어놓지 않으셨어요?”
어쩌면 어린 선수의 배려 없는 농담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지만.
무심결에 베테랑들끼리 하는 농담을 꺼냈다.
‘빌어먹을. 한 번만 더 이렇게 던지면 날 방출해버릴지도 몰라.’
‘차라리 방출당하고 그 돈을 다 수령한 다음에 은퇴해서 편하게 놀고먹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뭐, 이런 거.
정용이 형이 웃으며 말했다.
“야. 애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냐?”
“제가 안 키워봐서…”
슬쩍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가, 진지하게 말했다.
“애 키우는 노하우 나중에 전수 좀 부탁드립니다.”
정용이 형이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쳤다. 물론, 왼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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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수원에 이어 대구 원정길에 나섰을 때, 승기 형은 계속 메시지로 쓸데없는 소리를 해댔다.
-민승기 : 강건우
-민승기 : 홈런을 아껴둬라
-민승기 : 이 불세출의 에이스 민승기가 선발 로테이션에 복귀하는 그 날
-민승기 : 축포를 쏘아 올려야 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엔진스 3연전 첫 경기에서 시즌 38호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날은 트레이드 데드라인이었다. 엔젤스 같은 팀들이 마지막까지 트레이드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고 하는데,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엔젤스 전력이 꽤 좋아졌다. 봉재석, 김대현, 정기백이 이번 시즌 트레이드로 팀에 합류한 선수들이다. 곧 FA가 되는 봉재석을 데려와 뒷문을 단단히 했다.
봉재석을 받아온 5인 트레이드는 호불호가 갈리는 트레이드였다. 트레이드의 메인은 봉재석과 정현철이었는데, 중견수 정현철이 트레이드 이후 연일 장타를 때려내고 호수비를 보여줬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박은도가 선더버즈의 내야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트레이드는 결과에 따라 여러 사람의 일자리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간 선수들이 잘 해서 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윈 나우로 우승을 달성한다면 그런 불만은 사라질 것이다. 엔젤스도 우승에 꽤 목마른 팀이다 보니.
물론, 우승을 양보할 생각 따위는 없다.
그리고 엔진스와의 두 번째 경기.
나는 볼넷만 네 개를 얻어냈다. 뭔가, 기를 쓰고 도루를 저지해내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채지성의 투구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파악해낸 지 오래다.
-백준섭 : 강건우 다리몽둥이 분질러 줄 사람 구함
-정조준 : 저요
-백준섭 : 넌 니 다리나 간수 잘 하시고요
-정조준 : 아니 형 저 말고 누가 강건우 잡습니까???
-조용한 : 너 건우한테 삼구삼진 당하고 쏜 한우가 아직 이빨에 껴 있다 조준아
-정조준 : 형 양치질 좀 해요
-조용한 : 딱 기다려라
-조용한 : 권종이 데려온다
-정조준 : 저 펑고 받으러 갑니다
-정수호 : 지성이 오늘도 건우한테 개발렸대매?
-채지성 : 형 저 말고 준섭이 형이 개발렸어요
-백준섭 : ;;;
-백준섭 : 내가 뭐라 할 말이 없다…
볼넷은 투수의 실수인가, 타자의 실력인가.
도루를 허용하는 것도 누구의 탓인가.
뭐, 볼넷 네 개를 얻어서 도루 네 개를 해버렸다. 원래는 포스트시즌을 위해 조금 자제하다가 백준섭이 오늘 또 뛰면 후회할 거라고 호언장담해서 질러봤다.
우리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으면 한국 시리즈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인 에이스를 제대로 묶어버릴 수 있다. 그런 자신감만으로도 몇 수는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다음 날에는 비가 왔다. 5연승을 달리고 있었기에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대구 날씨가 보통이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반가운 느낌도 들 정도였다. 미친 듯이 습하고 후끈거린다. 사람 진을 쏙 빼놓는 날씨다.
“민승기 무슨 일 있나?”
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유리와 둘이 있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란 뜻이다.
그 형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인데 이럴 때 승기 형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거로 유리 말을 끊을 수는 없지.
“왜?”
“아니, 간만에 홈 경기하잖아. 그래서 3연전 첫 경기에 등판하겠느냐고 했더니 두 번째 경기에 등판하겠다고 했대.”
“그래?”
“꼭 그렇게 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던데?”
스마트폰을 열어 달력 앱을 켰다. 왜 그러는 걸까. 나한텐 별 이야기 없었는데.
“그냥 토요일 경기에 등판하려고 했나? 팬들 많으니까.”
“요새 금요일도 거의 매진인데…”
보자. 음.
한참이나 달력을 뚫어지라 보고 있는데, 정작 이 이야기를 꺼낸 유리는 왜 그러는지 생각하기를 멈추고 핸들에서 손을 놓고 소리 질렀다.
“오랜만이야! 잘 있었지? 누가 와서 해코지하거나 하진 않았어? 너도 누나 보고 싶었던 거 다 알아!”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우리 예비 신혼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좋으면 하루 자고 갈까?”
“어디서 개수작이야!”
음. 들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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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승기는 철저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박의현도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두 선수의 선수단 복귀 날짜가 같았다.
둘 다 선발로 나서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라커룸에 돌아올 수 있게 됐다.
박의현은 혼자 사는 집의 거울을 보며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박의현입니다! 고향의 요람 같은 사직 야구장에 돌아오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예! 저는 박의현!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직 야구장은 제게 그런 곳입니다! 정신적 요람! 신체적 무덤! 예! 사직이 너무나도 그리웠습니다!”
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오션스 팬이라면 안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하필 옆집 사람은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아아앗!”
다시 쿵 소리가 났다.
아무튼,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다른 곳. 사직 야구장 앞의 고층 아파트.
민승기 또한 준비를 마쳤다.
“예. 곧 내려가겠습니다.”
흰색 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네이비색 베스트까지 입었다. 그리고 두 객식구도 같은 차림이었다.
“승기 형. 이거 왜 입는 거예요?”
“잔말 말고 입고 따라와라.”
“…”
민승기의 머릿속은 마치, 꽃밭 같았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 찬 꽃밭.
주상욱과 정예성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쨌든 따르고 있었다.
사실, 이 집만큼 사직에 출퇴근하기 좋은 집이 어딨겠는가. 있기야 있지만 둘의 귀여운 연봉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민승기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리고 한 손에는 아무 문제 없다는 진단서가 들려 있었다.
반면, 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얼굴이었다. 또 무슨 미친 짓을 준비한 걸까.
아래로 내려가자, 커피 트럭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션스 에이스 민승기가 오션스 팬 여러분께 감사의 의미로 준비했습니다! 공짜 커피 한 잔씩하고 가시죠!’
“…형.”
“멋지지 않냐.”
“…설마, 저희 커피 트럭에서 커피 내려야 하는 거예요?”
“아니.”
“그러면요?”
“너희 같은 아마추어들이 내리는 커피는 맛이 없겠지…”
“…”
“서빙이다.”
“서빙요?”
“큭큭큭…많은 인파가 예상되니 팬들의 안전을 위해 애쓰도록…”
“…훈련은요?”
“당연히 훈련에는 지장이 없도록 해야지.”
“근데 형.”
“더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해라.”
“저희 어디 타요?”
개조된 커피 트럭에는 주상욱과 정예성이 탈 자리가 없었다.
민승기는 싱긋 웃으며 트럭 조수석에 올라탔다.
“사직 야구장 앞에서 기다리마.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출발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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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에 도착했을 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 트럭 뭐야? 민승기 아냐?”
트럭 옆면에 승기 형이 퍼펙트게임 후 마운드에 주저앉아 우는 사진이 랩핑되어 있었다.
“그러네. 승기 형 팬이 뭐 트럭이라도 보냈나?”
그런데 좀 심상치 않다. 그 옆에 문구가.
“오션스 에이스 민승기가 오션스 팬 여러분께 감사의 의미로 준비했습니다. 공짜 커피 한 잔씩하고 가시죠…?”
유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문구를 읽었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2군 구장에만 커피 돌리지 말고 1군 선수들한테도 좀 쏘라고 했더니.
설마.
“안녕하십니까. 오션스 에이스 민승기가 선사하는 커피…”
무표정한 얼굴로 상욱이 형이, 복장도 단정하게 갖춰 입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예성이 형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들 저기서 뭐 하는거야?
“…승기 형이 또 미친 짓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유리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누나 주차하고 올 테니 누나 커피까지 받아와.”
“네.”
“아이구 우리 건우 착하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알지?”
유리만 아니었어도 그냥 모른 척 했을 텐데. 나는 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다가갔다.
“형들 여기서 뭐 하세요…?”
날 발견한 두 사람의 눈시울이 붉어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건우야…”
“죽겠다 진짜…”
“승기 형이 강제로 시켰어요?”
“어…”
“얼른 도망가. 너까지 시킬라.”
“아니 커피를 대체 몇 잔이나 돌리려고 이걸.”
“글쎄…”
“커피랑 물이 감당된대요?”
“…오션스 홍보팀에서 지원해준대.”
아니, 돈도 별로 없는 사람이 뭐 이런.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큭큭큭 강건우…”
“…승기 형.”
“따스한 지중해의 커피 맛, 보러 왔나.”
“지중해에서는 커피 안 나지 않아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바로 이 민승기의 진심.”
“…”
“너도 나와 함께 팬 서비스의 진수를 펼쳐 볼 생각 있…”
“아뇨.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좋지. 커피의 왕, 민승기의 커피 맛을…”
“형.”
“그래.”
“형이 왕이면 팬들은 뭐예요?”
“뭐?”
“전에 팬들은 왕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건…”
“그리고 사직의 왕입니까, 커피의 왕입니까.”
“후. 강건우…”
“예.”
“좋다. 내가 양보하지.”
“뭘 또 양보해요?”
“나는 사직의 왕자…”
“완댜님…?”
“주상욱. 혀 짧은소리 내지 말고 저기 지나가는 분께 커피를 드려라. 그래. 팬들이야말로 사직의 왕. 내가 간과했었군. 왕자라 해도 충분하다.”
촉촉한 눈빛의 승기 형을 보니, 아무래도 괜히 말을 꺼낸 것 같았다.
“커피 안 줘요?”
“인내심이 부족한 녀석이군. 기다려라.”
승기 형이 뒤돌아서는 그 순간.
누군가의 반갑기는 하지만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돌아왔습니다! 제 인생의 등불! 민승기 형님! 그리고 나의 동반자 주상욱! 사직을 물 샐 틈 없이 막는 안동댐 정예성! 강-건-우우우우! 강! 건! 우! 강건우! 오션스 강건우우우! 저 박의현이 돌아왔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전한 수다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뭐.
오션스 전력이 100%가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