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69)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71화(271/385)
부산의 상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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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승기 햄은 이런 것도 받고…”
“시욱이 형 생일 때도 우리 파티하지 않았어요?”
“하기는 했지. 그날 병살 때리가 팬들 눈에 띄면 안 된다고 게임 끝나고 라커룸에서…”
선수들 사이에서 승기 형의 팬이 지하철역에 넣은 생일 축하 광고가 꽤 이슈였다.
저런 건 보통 연예인들 대상으로 하던데. 팀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걸 생각하면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긴 한가 보다.
“흠. 너희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가능할 지도 모르지.”
난 진심으로 어제 그 사진을 본 뒤, 누군가가 승기 형을 놀리려 들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왕자님이라는 별명 자체가 놀림거리라고 여기고 있었던데다가, 울고 있는 사진을 썼으니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이상한 건 아니지 않나?
대근이 형이 지나가듯 말했다.
“나는 시즌 끝나고 생일이니까 못 받은 거라고 정신 승리나 해야겠다.”
“행님은 홈런 40개 때리도 안 해줄걸요.”
“넌 4할에 40홈런을 쳐도 안 될 거다.”
“왜요?”
“못생겼잖아.”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행님한테 그 소릴 들을 줄은 몰랐네.”
“그걸 왜 몰랐냐?”
노경우가 갑자기 빵 터지며 웃었다. 노루 형이 눈을 부라렸지만 노경우는 웃음을 도저히 참아내질 못했고, 노루 형이 노경우의 뒷덜미를 잡자 대근이 형이 주장답게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우 좀 그만 괴롭혀라. 얘도 이제 막내도 아닌데.”
“그럼 저는요?”
“넌 뭐?”
“저도 막내 아닌데요.”
“넌 못생겼으니까.”
“와, 나 진짜.”
“왜. 계급장 한 번 떼? 한 번 붙어봐?”
“잘생긴 내가 참는다.”
어쨌든 승기 형의 일본인 팬이 돈이 꽤 많은 사람이란다. 그 팬이 주축이 되어서 진행했다고.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일까. 잘 우는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뭐 그런.
팬들의 관심을 다소 부담스러워 하는 편인 훈이 형은 승기 형을 신기한 사람 보듯 봤다. 좀 어폐가 있다. 저 사람은 분명히 신기한 사람이 맞긴 하다.
감독님은 언론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자기 생일이 언제인지 알려줬다고 한다. 당연히 흔한 일은 아니다. 상욱이 형은 약간 지친 표정으로 내게 넌지시 말해줬다.
“승기 형이 그 광고판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광고판 사진 찍는 팬한테 다가가서 우연히 만난 척 사진도 찍고 싸인도 해주고…”
정말 많이 기뻤나 보다.
안 해줬으면 어쩔 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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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이 형은 창원에 지하철이 있었으면 자기 얼굴이 붙은 광고가 1년 365일 걸려 있을 거라고 허풍을 떨어댔다.
“부러우면 지하철 있는 동네에서 뛰셔.”
“부산에서 뛸 바에 북한에서 뛴다.”
“왜? 부산에서 누구한테 맞았어?”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문득 생각났다.
“아. 난 가?”
나는 길길이 날뛰는 조준이 형을 뒤로하고 도망쳐야 했다. 아니 뭐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오늘 경기 도중에도 승기 형은 자꾸 감정이 복받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는 가지 않는다. 오션스라는 팀에게서 한두 발 떨어져서 보는 게 아니라, 이 팀에서 뛰는 걸 즐기기 시작한 지금 시점에서도 말이다.
경기 전에 영한이 형이 승기 형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 일본인 팬이랑 따로 만나고 그러는 거 아냐?”
승기 형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는 야구와, 오션스와 연애 중입니다.”
영한이 형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옆에서 비슷한 표정을 지었고, 창열이 형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오션스 애들 드립 이상하게 치는 거 아직도 적응이 안 되네…”
드립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 함정이다.
승기 형은 내일 등판인데 시간 날 때마다 스트레칭하며 몸을 풀었다. 몸이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누가 제발 민에게 오늘 불펜으로 등판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해줘!”
감독님이 그렇게 외칠 정도였다. 평소에는 오션스 야구를 즐기는 것이 자기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더니, 생일 케이크 촛불 끄기를 기다리는 유치원생 마냥 자기 생일을 하루 앞둔 오늘이 빨리 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오늘 우리는 패배했다. 조준이 형이 우리 불펜을 상대로 3점짜리 홈런을 터뜨리며 찬물을 끼얹었고, 1점 차이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9회 말 마지막 공격이 내 앞에서 끊겨버렸다.
승기 형은 심각한 얼굴로 자기가 내일 이 분위기를 뒤바꾸겠노라고 다짐하는 듯 보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오늘 경기 내용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다.
슬슬 지치는 선수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그건 변명거리가 안 된다. 우리만 시즌을 치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만 날씨가 더 더운 것도 아니다.
어쩌면 70%를 넘겨 여전히 역대 한 시즌 최고 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팀 성적 때문에 선수들이 자기도 모르게 부담을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여기서 뒤처지지 않게 더 달려야 한다는 그런 거.
물론, 대단한 시즌을 보낼 기회라는 것은 틀림없다.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는 승기 형이 내년에도 이런 성적을 낼 수 있을지 모르고, 앤디는 다음 시즌에 메이저리그로 돌아갈 수도 있다.
야구에서 불펜은 매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고, 갑자기 무너질 수도 있다.
지금 오션스 투수진은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 어디 한 군데가 삐끗하더라도 어느 정도 커버하며 굴러가겠지만,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 부상으로 잠시 이탈하더라도 연쇄 부상이 터지지 않았고 심각한 부상으로 길게 빠지지도 않았다. 또다시 이런 시즌을 보낼 수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패배로 살짝 처진 분위기에서 퇴근했다. 그래도 팬들은 나를 포함한 선수단에게 박수를 쳐줬다.
“내일은 이겨야 된다!”
내일 이기면 오늘 패배는 팬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질 것이다. 그런데 내일도 지면?
구단 홍보팀에서 승기 형 생일 축하 이벤트도 꽤 준비한 것 같은데, 분위기 좀 애매하지 않을까.
유리는 퇴근길에 손톱을 씹으며 좀 불안한 티를 냈다.
“불안한데…”
“왜?”
“아니, 오션스 전통이거든.”
“무슨 전통?”
“특별한 행사 같은 거만 있으면 지는…”
“그런 전통도 있어?”
내 질문에 유리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오션스를 우습게 보지 마라…”
“응?”
“별의별 안 좋은 징크스는 다 가진 팀이거든…”
하긴 원년 팀인데 2029년까지 정규 시즌 우승 한 번을 못 한 것만 봐도.
놀라운 팀이라는 것을 절대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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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이다. 민승기는 평소보다 15분쯤 일찍 눈을 떴다.
특별할 것 없는 천장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깥이 조금 소란스러웠다.
“어. 형. 일어났어요?”
나가보니 주상욱과 정예성이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두 후배가 생색을 조금 냈고, 민승기는 쓰레기통 안에서 보이는 미역국 밀키트 포장용지를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주상욱과 정예성은 아침 식사를 차려주며 준비한 작은 선물을 내밀었다. 둘의 보잘것없이 귀여운 연봉을 생각하면 조금은 무리했을 것 같은 브랜드의 신발과 작은 가방.
민승기는 내면의 늙은 아이가 돈을 허투루 쓰지 말라고 충고하려는 것을 억지로 막아냈다. 그리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 정말로.”
본인이야 밝게 웃은 것이지만, 주상욱과 정예성은 그 웃음을 보고 약간 소름이 돋았다. 민승기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승기 형 웃음 좀 이상하지 않았냐?”
“저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죠?”
“약간 그, 불쾌한 골짜기…?”
“맞아요. 그거. 딱 그거 같았어요.”
민승기도 사람이다.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꽤 긴장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사실, 민승기는 원래 종종 긴장하곤 했다. 작년의 FA 로이드와 올해 오션스에 합류했다는 기쁨 때문인지 그 단점이 거의 완벽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으나, 어딘가 숨어있던 것들이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렸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등판 전 몸을 풀고 박의현과 회의를 했으며, 자신의 컨디션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민승기는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명상도 했다.
사직 야구장은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홍보팀에서 케이크 모양의 모자를 만들어 오늘 입장하는 관중들에게 나눠준다고 들었다. 그 외에도 폭죽이나 특별 게스트 공연 같은 것도 준비되었다고.
‘이런 경기를 내가 망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일이 있어선 절대 안 된다. 자신의 생일에 등판시켜달라고 감독에게 강력하게 부탁하기도 했었다. 구단의 모두가 이날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겠는가. 이런 날 하필 컨디션이 안 좋아서 졸전을 보인다면 민승기는 은퇴 기자회견을 열지도 몰랐다.
오션스 프런트에서도 오늘을 꽤 신경 썼다.
마케팅 측면에서 상당히 좋은 소스이기도 했다. 오션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보여주는 에이스. 놓칠 수 없는 흥행 카드다. 게다가 모기업 회장님의 총애를 받는 선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 경기 시각은 다가온다. 대대적으로 홍보한 덕에 팬들도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고 있었다. 생일 케이크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입장하기 시작한 오션스 팬들이 민승기의 이름을 외쳤다.
민승기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이건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장대한 열망이자,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가장 큰 동기 중 하나였다.
“민. 오늘은 자네의 날이야. 마음껏 던지게.”
감독이 그렇게 말한 후 민승기의 손을 잡고 들어 보이며 선수들에게 외쳤다.
“생일 선물로 이 친구를 승리 투수로 만들어줘!”
선수들이 경기 시작 직전, 축하 케이크를 준비해서 작은 파티를 열어줬다.
이제 곧 시작된다.
오션스에서 맞는 첫 생일. 그리고 리그 2위 파이러츠와의 한판 대결.
민승기는 진지한 얼굴로 촛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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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하. 민승기 선수! 정말 기쁘겠는데요?
민승기가 결연한 표정을 한 채 마운드로 걸어올 때, 외야에서 관중들이 카드 섹션을 들었다.
‘민승기☆생일 축하해’
민승기가 걸어오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 감동받은 모양입니다. 살짝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데요.
-저 선수 별명 중 하나가 눈물의 왕자였던가, 그렇죠?
-예. 해외 팬들이 저 눈물에 반했다고 합니다.
-하하.
-하하.
소란스러웠다. 이런 경기에서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는 모습을 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팬들은 민승기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강건우는 민승기의 눈물을 보고 왼손 검지로 인중을 긁고 있었다.
오늘 선발 라인업은 평소와 조금 다르다. 2루에 정예성이 선발 출전하고, 3루에는 김세완이 들어갔다. 노경우와 이시욱에게 약간의 휴식을 주려는 조치였고, 그만큼 감독이 민승기를 믿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몇몇 팬들이야 하필 이런 날 주전 라인업으로 나서지 않는 데 불만을 표하기도 했지만, 민승기는 아무 불만 없었다.
파이러츠 선수들도 꽤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날 오션스 상대로 끌려가면 그냥 들러리가 된다. 위닝 시리즈와 루징 시리즈의 사이에서 1승이라도 더 따내고자 했다.
리그 1위 팀인 오션스도 부담스럽고 오늘 선발인 민승기도 리그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서창원 감독은 다소 약한 선발인 이민호를 내세웠지만, 불펜 총 대기 명령을 내렸다. 퀵 후크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 민승기 선수! 자신의 생일날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요! 경기 시작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만원 관중이 민승기 선수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고, 팀을 승리로 이끌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예. 14승에 평균자책점 1.87이죠. 어마어마한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민승기 선수. 자기 생일 정도는 자기 손으로 축하할 만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민승기가 초구를 던졌다.
그리고,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결과가 나왔다.
따아아아아아아악-!
-아, 초구, 강하게 때렸습니다! 박근수! 박근수! 박근수의 리드 오프 홈-런! 파이러츠가 찬물을 끼얹습니다! 박근수가 시즌 3호 홈런을 한 번의 스윙으로 뽑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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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하다. 실망감이 가득하다. 승기 형은 리드 오프 홈런을 맞았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상대 타자가 똑딱이 스타일이라고 할지라도, 잘 맞은 타구는 넘어갈 수 있다.
공이 조금 높았고 타자가 그것만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번 타자 김해근도 초구를 때려 백투백 홈런을 때린 것이다.
공 두 개 던지고 2실점.
승기 형의 창백한 얼굴을 봤다.
그리고 나는, 이 경기가 정말로 망쳐지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소리쳤다.
“아! 민승기! 정신 차려요!”
“뭐…?”
“1회 말에 역전 시켜 줄 테니까 정신 차리라고!”
“역전…?”
“형! 오션스 에이스잖아!”
승기 형은 조금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몇 분 전만 해도 축제 같았던 사직 야구장의 분위기가 싸해져 있다.
야수들의 몸이 조금 굳은 것 같았다. 박의현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아아아아앗! 9이닝 2실점 완투승 갑니다아아아앗!”
조금 어려웠지만, 추가 실점 없이 1회 초를 마무리했다. 이제 겨우 1회일 뿐이다. 고작 2점을 내줬을 뿐이고.
창열이 형과 영한이 형이 경험 많은 베테랑이라는 점은 다행이다. 두 베테랑 FA 선수들이 내게 말했다.
“야야. 승기 기절하기 전에 일단 동점부터 만들자.”
“맞아서라도 나갈 테니 네가 해결해주라.”
관중들이 악을 썼다. 그리고, 서창열은 자기 말대로 출루했다. 7구 승부 끝에 힛 바이 피치 볼로 출루.
나는 대기 타석으로 나가기 전에 승기 형에게 말했다.
최소한 동점 만들고 올 테니, 에이스가 뭔지 보여달라고.
배영한이 승부를 무려 10구로 끌고 갔다. 그리고 3유간 기술적으로 밀어친 타구를 보내 무사 1, 2루를 만들어냈다.
민승기를 외치던 팬들이, 이제는 강건우를 외치고 있다.
승기 형이 오늘 주인공이 됐으면 한다. 오늘 같은 날, 조금 충격적인 시작이었지만, 어쨌거나, 이럴 때 한 방 해줘야 옳지 않겠는가.
항상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하지만, 언제나 극도의 집중력으로 경기에 임할 수는 없다. 그런 긴장감을 한 시즌 내내 유지하면 제풀에 지치게 된다.
그래도 지금은 그래야 할 때다.
정신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아 집중력의 바다로 밀어 넣는다. 시끄럽던 사직 야구장이 조용해진다. 물론, 그건 내 감각이 느끼는 영역일 따름이다. 팬들은 목이 터지라고 내 이름을 외치고 있을 것이다.
들리는 것은 내 숨소리뿐.
보이는 것은 마운드에 선 투수뿐.
느껴지는 것은,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배트의 형체.
투수가 초구를 던진다. 궤적이 만져지는 듯하다. 볼.
이민호는 변화구가 약하다. 묵직한 공과 지저분한 볼 끝을 활용하는 변형 패스트볼이 특기다.
두 번째 피칭이 시작된다. 얼토당토않은 공에 집중의 바다에서 떠오를 뻔했다. 억지로 숨을 참아 그 공간에 남는다.
볼 두 개.
내가 평범한 타자라면 여기서 스트라이크 하나 정도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파이러츠도 날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배트는 언제든 달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단순한 짐작만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본다.
느낀다.
그리고.
움직인다.
시신경,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 미세한 흔들림.
모든 것을 컨트롤해내며 높게 들어오는 공을 향해 휘두른다.
내버려 두면 볼이다. 쓰리볼, 타자를 위한 카운트가 될 수 있지만, 칠 수 있는 공이다.
따아아아아아아악-!
감각이 돌아오기까지 짧은 시간이 걸렸다. 피가 급격히 머리에 도는 느낌. 심해에서 건져진 것처럼, 잠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몸이 이곳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ㅡㅡㅡㅡㅡㅡㅡ!”
“%#@% @!^%^!”
딱히, 배트를 집어 던진다거나 세레머니를 하고 싶지 않았다.
무심하게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관중들이 알 수 없는 괴상한 외침을 내뱉고 공기가 흔들린다. 한참을 돌았을 때, 홈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주자의 웃음을 보았다.
“존나 잘 치네 진짜.”
“와, 강건우 이 새끼. 치란다고 진짜 치네.”
그리고, 덕아웃에서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는 승기 형을 발견했다.
누가 보면 한국 시리즈 끝내기 홈런이라도 때린 줄 알겠네.
이제 겨우 1회 말인데, 그것도 아웃 카운트 하나 없는.
나는 선수들의 축하 세례를 받으며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소리 질렀다.
“역전 시켜놨으니까 이제 점수 주지 말라고요!”
승기 형이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오늘은 이제 시작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