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8)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0화(30/385)
천재 코치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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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세이버메트리션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정체성은 스포츠 과학자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이래저래 복잡한 개념이지만, 선수의 정확한 가치를 평가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하면 쉽다.
당연히, 가치를 산출해내는 걸로 끝이 아니다. 홈런왕은 저 선수지만 사실은 이 선수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데서 끝나는 개념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각 구단은 세이버메트리션을 고용해 선수의 가치를 책정한다. 그들은 폐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대중에 공개된 것보다 내부에 훨씬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 기밀들은 공유되지 않는다. 공유되는 순간 가치를 잃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실제 선수가 가지는 가치에 비해 적은 돈으로 그 선수를 데려오려고 세이버메트릭스를 연구하고 있으니까.
타율과 홈런이 아닌 출루율과 장타율에 주목해 성과를 냈던 머니볼의 경우에도, 출루율이 최고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타율이 높은 타자들에 비해 출루율이 높은 타자들의 연봉이 낮다는 점에 착안해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한 것이다.
어쨌거나, 스포츠 과학자는 세이버메트리션과는 다르다.
세이버메트릭스가 결과를 분석해 효율을 높이고자 한다면, 스포츠 과학자는 적극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해내기 위해 선수 개인의 변화를 추구한다.
유리는 그런 면에서 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아직 대학생임에도, 조금의 힌트만 있으면 자기 방식대로 소화해낸다.
“노경우 있잖아.”
“응.”
“레그 킥 동작을 좀 수정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노경우의 순발력이 좋다고 말해줬다. 그 순발력만 믿고 야구 한다고. 내가 말해준 정보는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노경우의 타격 영상을 보다가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언제 시간 날 때 노경우 스윙을 좀 봐달라 고 했더니 나름대로 연구한 듯했다.
“레그 킥?”
“어. 이거 봐봐.”
유리가 보여준 것은 노경우의 타격 영상 여러 개를 합성한 영상이었다. 엉덩이를 흔들어대다가 오른발을 들어 올린 후 강하게 찍으며 타이밍을 맞춘다.
“아.”
“눈치챘어?”
매번 발 드는 타이밍도 발 놓는 타이밍도 다르다. 그리고 발 놓는 위치도 다르고. 그러다 보니 타격할 때 턱도 좀 들리는 편이다.
얼핏 봐서는 별문제는 없어 보인다.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어찌 보면 신인 내야수치고는 타격 성적이 썩 괜찮은 편이기도 하니까 굳이 지금 당장 문제를 찾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고.
“개선할 방법 있어?”
“레그 킥 동작을 일정하게 유지하면 괜찮을 텐데. 균형이 안 맞으니까 상체가 팔로우 스윙할 때 바깥으로 쏠리는 거 같거든? 저거 해결되면 스타트 빨리 끊어서 내야 안타도 만들기 쉬울 거고. 발도 빠른 편이니까.”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긴, 실제로 선수랑 일해본 건 나뿐이니까 아직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건 코치가 잡아줘야 하는 부분일 텐데.
우리 팀 타격 코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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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좋아! 잘한다! 타구 크다아! 잘 뻗는다! 이야! 죽이네! 좋다! 경기에서도 그렇게만 치자! 크으으!”
…타격 코치인가 치어리더인가.
빈말로라도 코치의 수준이 높다고는 못 하겠다.
하긴. 수준이 높았으면 타자들이 저 모양일까.
내가 어찌할 부분은 아니지만, 코치들 대부분은 잘려도 할 말이 없을 거다.
뭐, 그래도 타격 코치는 투수 코치보다야 쓸모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수비 코치는 그나마 낫다. 창의력은 조금도 없지만 성실하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건 퀄리티 컨트롤 코치들인데, 이쪽의 문제는 단장 라인이라 그런지 아무 힘도 없다는 거다.
멍하게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경우 옆에 앉았다.
“야. 노경우.”
“왜.”
“너 타석에서 엉덩이 몇 번 흔드냐?”
노경우가 날 이상하게 쳐다본다.
“내 엉덩이 흔드는 거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냐?”
“몇 번 흔드는지 너도 모르지?”
“아니, 내 엉덩이가 뭐 어쨌다고.”
“모르냐?”
“아 그걸 누가 세면서 흔들어?”
“이제부터 세면서 흔들어.”
“뭔 개소리야 이 미친놈아.”
노경우한테 미친놈이라는 소리 들으니까 조금 빈정이 상하지만, 내가 어른이니까 참기로 했다.
“평균 6.7번 흔들더라.”
“아니 그걸 왜 세? 여친도 있는 놈이 내 엉덩이는 왜!”
“엉덩이를 투수 인터벌에 따라서 조절해. 오늘 상대 선발 황보경태지? 와인드업할 때는 여섯 번. 퀵모션으로 던지면 조금만 빠르게 다섯 번. 둥-둥-둥이 아니라 둥.둥.둥.”
노경우의 표정이 이상하다.
조금 설명이 부족했나.
“…”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봐.”
“…”
“…해봐.”
“…”
“아, 그냥 해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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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우가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 때 문제는, 엉덩이가 앞으로 왔을 때 무게 중심이 흐트러진다는데서 기인한다. 뒤로 갔을 때 레그 킥이 시작되면 타구 질이 괜찮다.
투수가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투구 리듬을 달리할 때 너무 쉽게 타이밍을 빼앗기게 될 거라는 뜻이다.
황보경태는 제구가 상당히 훌륭한 베테랑 투수다.
모든 구종의 투구 폼과 타이밍이 비슷하다. 타자 입장에서 구종을 솎아내기 굉장히 어렵지만, 노경우는 타고난 순발력으로 배트를 컨트롤해 갖다 맞히는 데는 상당히 재능이 있으므로 엉덩이만 컨트롤하면 타이밍을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안 되면?
음.
그럴 수도 있지.
망하면…?
유리 친구 중에 오션스 팬이 하나 있었던 거 같은데. 소개팅 한 번으로 퉁칠 수 있으려나. 별명이 뭐더라. 온천장 불닭볶음면이었나?
“노-경-우-! 노-경-우-!”
노경우가 타석에 나서고 있다. 그럭저럭 인기는 좀 있는 것 같다. 애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렇지, 막내 같아서 좋아하는 팬들이 좀 있다나.
나는 양대근 선배 복귀 후에도 3번으로 나서고 있다. 감독님은 내가 3번에서 잘 하고 있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울프팩부터 뒤로 한 타순씩 밀렸는데, 노경우가 엉덩이 컨트롤을 익혀서 감만 잡으면 리드오프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볼!”
아까 내 말을 듣고 날 이상하게 쳐다보긴 했지만, 방금 세 보니 엉덩이를 여섯 번 흔들었다.
효과가 있을까.
뇌피셜로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방법이 너무 단순한지라 어떨지는 모르겠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볼!”
대기 타석에는 박의현.
그리고 세 번째 공은 파울.
타이밍은 괜찮았던 것 같은데, 구종 예측이 잘못된 것 같았다.
황보경태는 포심은 비교적 약하고 각종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다. 내 첫 타구는 펜스 앞에서 좌익수에게 잡혔었다. 타이밍을 살짝 놓친 것 치고는 공이 크게 뻗었다. 묵직한 맛이 없었다.
제대로만 맞으면 넘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구력이 상당해서 쉬운 볼을 안 주는 타입이니 존 안으로 공이 들어올 때 놓치면 안 된다.
투수와 포수가 싸인을 주고받았다.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면서 노경우가 엉덩이를 여섯 번 흔들고 레그 킥을 시작했다.
오. 이거, 타이밍이 괜찮다.
따아아악-!
2볼 1스트라이크에서 카운트를 잡기 위해 들어온 포심을 노경우가 그대로 받아쳤다.
덩치가 그리 큰 편은 아닌데 손목 힘은 꽤 좋다.
타구가 펜스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외야수가 타구를 쫓아가고, 팬들도 선수들도 모두 일어서서 타구의 방향을 살폈다.
“어? 어? 어?”
“넘어가! 넘어가!”
“더! 더! 더! 더! 더!”
넘어갈 듯 안 넘어갈 듯 아슬아슬한 타구.
노경우는 전력 질주 중이다. 벌써 2루가 코 앞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경우야아아아아아!”
노경우가 2루를 밟았을 때, 사직 야구장이 함성으로 가득 찼다.
타구가 펜스를 넘어간 것이다.
대기 타석에 있던 박의현이 개다리춤을 추면서 노경우를 맞이했다.
“우와! 노경우! 직이네!”
“경우 잘한다!”
“경우야!”
선수들에게 헬멧을 두들겨 맞은 노경우는 얼떨떨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서 자기 팔을 내밀었다.
“야, 강건우. 야. 이것 좀 봐.”
노경우의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있었다.
“엉덩이…”
이시욱 선배가 노경우의 뒤에 서서 헬멧을 두구두구두구 두드리고 있는데, 노경우는 신경도 안 쓰고 말을 이었다.
“엉덩이가 진짜였어!”
음.
“뭐? 가짜 엉덩이도 있나? 엉덩이에 뽕 넣고 다니나?”
이시욱 선배가 여전히 헬멧을 두드리며 물었다.
노경우가 뒤로 돌다가 코를 맞았다.
“악! 선배님! 엉덩이! 엉덩이가 답이었습니다!”
“뭐라고?”
“엉덩이 여섯 번!”
“…”
“엉덩이 여섯 번 흔들면 됩니다!”
“미쳤나?”
노경우는 이시욱 선배한테 엉덩이를 맞고도 엉덩이를 외쳤다.
“엉덩이! 여섯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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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났음에도, 오션스 팬들은 사직 야구장을 떠나지 않았다.
“와, 요새 진짜 야구 볼 맛 나네.”
팬들이 바라던 즐거운 야구가 펼쳐졌다.
불펜은 여전히 엉망이었지만 타석에서의 끈끈함이 살아나고 있었다.
“우리 신인들 진짜 죽인다.”
“진짜 잘 뽑았지.”
“그 전에 뽑은 애들은 다 어디 갔어?”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오늘은 노경우의 맹활약 덕분에 8대 6으로 승리했다.
홈런 포함 3안타 3타점 2득점.
거기에 도루도 하나 추가.
“신인들 잘 키운 거 보니 스카우트 팀에 문제 있는 거 아닐까?”
스카우트 팀 복장이 뒤집힐 만한 소리였다.
-자! 여러분! 오늘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 오션스의 2루수! 노경우 선수를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노경우! 노경우!”
“경우야!”
-자, 노경우 선수! 이 자리는 처음인데요! 오늘 맹활약의 비결이 뭔가요?
조금 부끄러운지 마이크를 받아 들고 뒤통수를 긁어대는 노경우를 본 관중들이 계속 노경우의 이름을 불렀다.
노경우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엉덩이…엉덩이요.”
같은 시각.
오션스 갤러리 게시판.
[(속보)노경우 맹활약의 비결은 엉덩이.]ㄴ???
ㄴ엉덩이가 뭐 어쨌다고?
ㄴ직관왔는데 오늘 맹타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엉덩이라고 대답함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엉덩이가 뭐 어쨌단거임?
ㄴ모르겠는데;;; 그냥 엉덩이라고 함
ㄴ리포터도 당황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신인들 인터뷰 다 왜 이모양이냐;;;; 한놈은 누나 사랑해 하고 한놈은 엉덩이나 찾고
ㄴ또라이 같아서 좋네
자기가 생각해도 대답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노경우는 갑자기 목청을 가다듬고는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사직 야구장의 2루 베이스에 묻히고 싶은 남자 노경우입니다!”
[(속보)노궁댕이 사직 2루에 묻히고 싶다고 함]ㄴ뜬금없이?
ㄴ걱정마라 경우야 야구 못하면 묻히기 싫다고 해도 아재들이 묻어줄거다
ㄴ뭐임 갑자기 사직 납골당 분위기임?
ㄴ혹시 약 빨고 야구한거 아니냐?
ㄴ약은 박의현이 빤거 같던데???
ㄴ박의현이 마약 돌린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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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야.”
“왜.”
“천재 코치님 제발 한 번만 만나게 해주라.”
노경우의 집착이 심해졌다. 솔직히 될지 안 될지 나도 반신반의했는데, 진짜 엉덩이 흔드는 횟수 조절하는 거로 타격이 그렇게 살아날지는 몰랐지.
한 경기에서 잘 친 것뿐이지만, 노경우는 내 말을 들어서 잘 됐다고 생각했는지 내게 간절하게 매달렸다.
“원정 갔다 와서 시간 내 보자.”
“오늘은 안 되냐?”
“안된다.”
“왜!”
왜긴 왜야.
일요일 낮 경기가 끝나고 시간이 좀 남는다. 오션스는 다음 주 내내 원정 경기가 잡혀있고, 유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코치님 바쁘시다.”
“제발…잠깐만이라도…제발…”
노경우를 떨쳐내는데 십여 분을 소모했다. 다음 주 일정은 불도저스 원정 3연전 후 다이아몬즈 원정 3연전이다.
서울과 수원을 가야 하니 노경우랑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부산에서 유리와 데이트하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이미 노출될 대로 노출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데이트할 때 방해를 너무 많이 받는 건 별로다.
어쨌거나, 오늘도 택시 기사님과 실랑이를 벌였다.
“아! 그냥 내려요 좀! 돈 필요 없어!”
“안녕히 가세요!”
“강건우! 아니, 강건우 선수님! 제발 돈 가져가!”
오션스 팬들은 내게 돈을 안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부산 사람들 대부분은 오션스 팬이다.
현수가 그랬다. 잘 할 때는 공짠데 못 할 때는 돈 내고 눈칫밥도 같이 먹어야 한다고.
조금 걸어서 유리가 기다리는 곳에 도착했다.
동네의 조용한 카페다. 밖에서 바라보니, 유리는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려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유리를 좋아하게 됐더라.
그리고 왜 좋아했더라.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고 있었다. 이유는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랬던 것 같다.
뭐,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않나?
단 하나 확실한 건, 유리가 없다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날 괴롭게 했다는 거다.
부상으로 투수를 그만뒀을 때?
사기를 당해서 전 재산을 거의 날렸을 때?
그 정도야 뭐.
스포츠 과학자인 유리, 땍땍대는 유리,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유리, 손발이 차가운 유리, 운전하다 창문 내리고 욕하는 유리.
어떤 유리든 괜찮다. 유리는 유리니까.
굳이 부연 설명 같은 건 필요 없다. 유리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을 거다.
“야! 강건우! 누나 여깄어! 들어와!”
나를 발견했는지, 유리가 손을 세차게 흔들면서 소리쳤다. 카페 사장님이 갑자기 소리치는 유리 때문에 놀랐는지, 나와 유리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봤다.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누나.”
“건우야아.”
유리가 신난 얼굴로 날 반기고 있었다.
“나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