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85)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87화(287/385)
피땀 흘려 이루고 싶은 것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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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이라는 말은 좋은 뜻으로 쓰이는 편이지만, 때로 그 단어가 안 좋은 쪽으로 사용된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야구에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돌려 말하는 방식이다.
극성맞은 팬들을 이야기할 때, 야구계에 몸담은 사람이 그대로 말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보통 팬들이 열정적이라는 것과 같은 표현을 쓰곤 한다.
열정적인 팬의 대표 격인 사람들이 바로 오션스 팬이다. 물론, 다른 팀 팬들이 열정적이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한국에서 뛰면서 지켜본 결과, 솔직히 대부분의 팬이 열정적이었다.
굳이 더 그런 편인 사람들을 골라 보라면 엔젤스, 아이언스, 메테오스 팬들이 조금 더 그런 쪽에 속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승 오래 못 해본 팀 팬들이 좀 독기가 올라 있다고 해야 하나. 아이언스는 주기적으로 뜬금포 우승을 한다고 하는데, 난 겨우 한국에서 2년 차라 그게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아무튼, 아이언스를 제외한 세 팀의 공통점은 그거다.
21세기에 우승이 없는 팀들.
뭐…메이저리그에는 100년 넘게 우승을 못 했던 팀도 있긴 한데.
거기랑 여기랑 다른 점은, 팀 숫자가 10개뿐이며 하위권 팀이라도 외국인 선수를 잘 뽑으면 갑자기 포스트시즌 진출권에 발을 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선수 풀과 리그가 함께 좁다 보니, 어느 한두 선수가 소위 말하는 하드 캐리가 가능한 환경이다.
음.
작년에 팀 우승도 못 시킨 내가 뭐라 할 말은 아니긴 하다.
솔직히 입단 전에는 가능할 거로 생각했었는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까 메이저리그 MVP고 뭐고 혼자선 안 되겠더라고.
사실 메이저리거 시절 유리가 하도 오션스 오션스 노래를 부르길래 코웃음 치면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KBO 팀 정도야 나 하나만 가도 우승일 거라는 그런 착각을.
신인으로 입단하는 것보다 상황은 나았을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 MVP 출신이 팀에 합류한다?
주변의 기대치는 더 클 테니 설마 나 하나만 데려오진 않지 않았을까. 여러모로 투자도 했을 테고.
근데 또 그렇게 생각하니 더 답답한 부분도 있다. 오션스가 FA에 투자를 안 해서 바닥을 친 것도 아니니까.
차라리 신인으로 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우리의 열정적인 팬들은 내 홈런 기록이 끝난 다음 날, 연승 기록도 끝났지만, 화를 내진 않았다.
이제부터 일정은 꽤 자유분방하다. 중간중간 휴식일이 꽤 끼어 있어 선수단 체력 보전에 도움이 될 듯하다.
“이럴 때 지면 패배한 느낌 하루 이틀 더 가서 기분 더러운데…”
물론 그건 선수단의 입장이다. 야구팬들의 입장이란, 유리의 말대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냥 하루 정도 야구 잊고 일상생활하다가 야구 보면 좀 재충전도 되고 괜찮지 않을까?”
“건우야.”
“응.”
“야구는 잘하면서 야구는 잘 모르는구나…?”
나는 순식간에 야알못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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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 선발 로테이션의 1, 2, 3선발은 이미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고, 호세가 8승이며 훈이 형이 9승이다.
오션스 역사상 처음으로 5명의 선발 투수가 전원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할 기회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많은 기록이 걸려 있다.
하지만 호세는 1승을 추가할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엔젤스의 좌타자들이 호세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고, 하루 휴식 후 서울 원정길에 오른 타선은 어딘가 몸이 무거운 느낌이었다.
2연패도 연패는 연패다. 오션스 팬들은 팀의 성공보다는 실패를 함께 겪는 것이 훨씬 익숙한 사람들이고, 승리보다는 패배를 더 많이 본 사람들이다.
메이저리그의 유서 깊은 팀들은 10,000번 이상의 패배를 기록한 경우도 있지만, 그쪽은 역사의 길이가 다르다.
오션스는 KBO에서 최초로 2,000패와 2,500패, 그리고 3,000패를 달성한 팀이다.
아. 이건 내 말실수다.
역대 최초 3,000패는 KBO가 아니라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구단 역사상 최초다.
오션스 슬픔의 역사를 읊자면 끝도 없다. 1980, 1990, 2000, 2010, 2020년대 모두 최하위를 기록한 유일한 팀이며 다른 그 어떤 팀도 이 기록만큼은 깰 수 없다.
작년 한국시리즈 진출이 21세기 들어 첫 한국시리즈였으며, KBO 역사상 유일하게 2년 연속 2할 승률 팀이며, 라이브볼 시대 이후 세계 최초로 한 시즌에 100개 이상의 폭투를 기록한 팀이기도 하다.
100개 이상의 폭투?
사실, 그 기록은 전 세계 프로 야구팀을 통틀어 두 번 나온 기록이다.
두 번 모두 오션스고, 2년 연속이다. 그걸 라이브로 지켜봤던 오션스 팬들은 의현이 형이 득점권을 두 번 연속 말아먹어도 욕을 퍼붓지 않는다.
세 번 연속이면 이야기가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우리가 엔젤스에 연패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이훈, 4.2이닝 6실점.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기회 다음으로 미뤄져.] [오션스의 3연패. 너무 달려온 탓일까.] [오션스는 어쩌다 동네북이 되었나.]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자들의 저 상도덕 없는 헤드라인이 오히려 우리 팬들에게 반발심을 불러온 것 같기도 했다.
2번은 웃으며 넘겨도 3번은 용서치 않는 것이 내가 겪어온 오션스 팬들의 모습인데, 3연패에도 불구하고 오션스 팬들은 팀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기자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다른 팀 팬들과 싸우고 있었다.
└아니 ㅋㅋㅋㅋㅋ기자양반 처도르신? 84승 2무 32패인데 3연패 했다고 동네북은 씨발 ㅋㅋㅋㅋㅋㅋ
└오션스 망했다고 하는새끼들특)좆망팀 응원 중임
└오션스 팬특)수십년간 좆망팀 응원하던 거 벌써 까먹음
└대근이 형이 팀에 있을 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는데…
└양대근 왜? 어제 뛰던데 무슨 일 있었음?
└조용히해라 그 새끼 대근이 아니고 돼근이니까
└돼근? 돼지가 우습게 보이냐?
대근이 형이 3연패 기간 동안 10타수 1안타에 그치긴 했다. 그래도 죽은 사람 취급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엔젤스는 우리를 상대로 연승을 거두고 3위로 올라섰다. 3위에서 4위로 밀려난 엔진스 선수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백준섭 : 야 건우야
-백준섭 : 우리한테 스윕하더니 엔젤스한텐 왜 그러냐 대체
물론, 엔젤스 선수들도 있는 국가대표 단톡방이 아닌 개인 메시지로 왔다.
-나 : 그냥 좀 안 풀렸네요
-나 : 대구 가면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백준섭 : 하지 마라
-백준섭 : 아무튼 아무것도 좀 하지 마라
그리고 이 뜻밖의 연패는, 누군가의 전의를 들끓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누군지는 뭐 딱히 말 안 해도 될 것 같긴 하다.
“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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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승기 님이 대화방에서 나가셨습니다.
-조용한 : ?
-조용한 : 쟤 또 경기에 집중하겠다고 단톡방 나간 거냐?
-강건우 : 예 그런 것 같네요
-조용한 : 아니 왜 우리랑 할 때 또 저러는 거냐고
-조용한 : 보기 싫으면 알람을 끄면 되는 거 아니냐???
-강건우 : 저 형 관종이잖아요…
-김권종 : 응?
-김권종 : 아
-김권종 : 나 부르는 줄 알았네 ㅎㅎ
-정조준 : 형 부른 거 맞아요
-정조준 님이 대화방에서 나가셨습니다.
-조용한 : 시즌 끝나가서 그런지 다들 가지가지하네 진짜
-김권종 님이 정조준 님을 대화방에 초대하셨습니다.
-김권종 : 난 관종 아니고 권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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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승기는 20승을 목표로 하고 있고, 앞으로 5~6번의 등판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등판은 개인적으로 동기 부여가 되는 편이기도 했다. 상대가 민김박의 ‘김’이다.
김권종은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메이저리그에서 관심을 가진다는 기사가 활발하게 나오고 있었다. 올 시즌 성적은 14승 7패 평균자책점 2.89.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바이킹스에서도 톡톡히 자신의 역할과 이름값을 해내고 있었다.
김권종은 2003년생으로 27세다. 아직 젊은 데다가 국제대회에서 존재감도 보여줬다. 한국에서 꾸준히 훌륭한 활약을 펼쳤고, 크게 부상을 당한 적도 없다. 특이한 투구 폼과 훌륭한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거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게다가, 좌완이기도 하다.
민승기는 메이저리그가 아닌 오션스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었다. 다만, 실력이 안 되니 메이저리그에 도전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싫었다.
한국에 남은 것은 온전히 오션스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이 있긴 했지만 오션스 사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민김박 논쟁은 몇 시즌째 끝없이 이어지는 중이다.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다. 대중의 평가는 김권종과 박용재 아래 민승기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올 시즌은 민승기가 그 둘에게 확실히 앞서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민승기는 대부분 지표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고,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박용재와는 명승부를 펼치며 우세를 점한 바 있다. 오늘이야말로, 방점을 찍을 차례다.
“김권종…”
민승기는 야구공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메이저리그에 가서 성공하게 된다면…”
히죽 웃었다.
김권종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대성공을 거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더 우수한 내가 선택한 오션스는…큭큭큭…”
김권종과 박용재는 그간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는 민김박의 시대에서 민승기의 시대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즌이 될 것이다.
조금 양보해서, 민승기와 강건우의 시대.
‘내 공은 세상 무엇보다 묵직하다.’
민승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건우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강건우를 만나서 이번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줄 것이다.
“강건우.”
강건우는 정유리와 함께 있었다. 4경기 연속으로 홈런이 없다. 타자와 투수가 다르긴 하지만, 자신에게 4경기 연속 승리가 없다면?
아주 끔찍한 상상이었다.
“왜요?”
민승기는 웃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승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마 아주 잘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건, 타고난 승리자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있을 그런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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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큭 강건우…”
승기 형이 한참 헛소리를 하고 자리를 뜨자, 눈을 껌뻑이던 유리가 날 보며 음침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젠 그냥 포기했다.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떠들어대길래 태클 안 걸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는 말이라고 해줬더니 몹시 흡족한 표정을 한 채 떠나갔다.
사실은, 포기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유리가 신호를 보냈다. 오늘 선발이니 그냥 대충 맞춰주라는 뭐 그런.
어쨌든 연패가 처음도 아니고, 그게 엄청나게 길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연패는 길어서 좋을 게 없다. 우리가 못 했다기보다는 엔젤스가 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내 느낌이긴 하지만, 짧은 원정 후 돌아온 사직의 금요일 경기, 경기장을 채우기 시작한 오션스 팬들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김권종이 아마 오션스 킬러 포지션이었지.
유리가 김권종 한 대만 때려달라고 했을 때 벤치 클리어링을 원하느냐고 물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결국 홈런을 때리며 유리의 소원을 들어주긴 했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김권종에게도 동기 부여가 잘 되어 있는 경기일 듯하다. 어쨌거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테니.
날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문도 있다.
물론 그게 평가 항목에 들어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종종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서 컨택이 오기도 하는데, 나는 만남에 응하지 않고 있다.
당장 올해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몇 시즌 후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딱히 욕심도 없고.
바이킹스 타자들은 경기 시작부터 강하게 달려들었다. 바이킹스는 성적이 어쨌든 만만한 팀이 아니다. 그리고 그냥 저렇게 경기할 선수들도 아니다.
승기 형이 워낙 공격적인 피칭을 즐기니 투구 수를 늘려서 선발을 빨리 내리겠다는 작전 대신, 우선 출루해서 점수를 짜내는 방식을 택한 느낌이다.
나는 바이킹스 리드오프 성현의 당겨친 타구를 높게 점프해 잡아냈다.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들려온다. 내 점프력이 조금만 부족했더라면 상대의 경기 첫 타자를 출루시킬 뻔했다.
그리고 2번 타자 염운석의 3유간으로 향하는 타구.
몸을 날려서 잡아냈고, 중심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대로 글러브에서 공을 빼내 1루로 강력하게 송구했다.
3번 타자 김호근의 타구는 내야를 살짝 벗어나며 예상치 못하게 휘었다. 3루수 노루 형의 수비를 기대하긴 힘들고, 좌익수 석규 형이 공을 보면서 달려 내려와 잡기에는 짧은 타구.
공을 응시하며 뛰기에는 타구의 스핀이 너무 심하다.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 타구의 궤적을 넣고, 파울라인 가까이 까지 전력 질주해 마지막 순간 공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이빙 캐치.
“우와아아아아아아!”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건우야! 니 땜에 돌아삐긋다!”
“나는 벌써 돌았다! 건우야!”
내 기준에서도 굉장히 어려운 수비였지만, 그래도 모험에 가까운 수비에 성공했다. 1회 초의 아웃 카운트 세 개를 모두 내가 잡아냈다.
이래도 승기 형은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할지도…
“강건우…”
그런데 인류라면 응당 가져야 할 정말 최후 최소의 양심만큼은 남아 있었는지, 승기 형이 내게 먼저 다가와 하이파이브를 시도했다.
“존나 멋있었죠?”
“너라면 내 말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 믿음에 부응하다니. 역시…”
…?
뭔가 조금 이상한 것 같기도 한데…?
“나와 함께 역사를 만들어나가자, 강건우.”
이 사람 이상한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긴 하지만.
이번 이닝은 내가 다 해 먹은 것 같은데, 왜 함께가 되는 거지?
“저 혼자도 충분한데요.”
“큭큭큭…부끄러워하지 마라…”
“저는 형이 부끄러워요.”
“그 어떤 야구 선수라도 날 보면 부끄러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18승 거두기 좋은 날이로군…”
“18…”
“…”
“…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