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88)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90화(290/385)
피땀 흘려 이루고 싶은 것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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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야구 하냐?”
누구에게 들은 질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에 들었던 것 같긴 한데. 누구더라.
아무튼, 나는 그 당시에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그냥 그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야구를 왜 하냐니.
그때 생각해서 나온 결론은 이거였다. 어린 시절이었으니 그때 딱 맞는 수준인 것 같긴 하다.
‘야구를 존나 잘 하니까.’
생각해보면, 야구를 하는 이유는 때에 따라 바뀌었던 것 같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내가 야구를 시작한 이유는 유리 때문이었다고 한다. 유리가 야구를 좋아하니까. 그런 단순한 이유였지만 쥐방울만 한 시절의 나에게는 그거면 충분했었을 거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나라면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내게 그거면 충분하다.
아니…뭐. 물론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그냥 할 줄 아는 게 이거뿐이라거나, 혹은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이 야구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하지만, 때로 야구에 몰입하게 되면 다른 이유가 생겨나게 된다.
야구를 하는 이유가 없어도 야구 하는데 지장은 없다. 다만, 무언가 이유를 가지고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는 상태에 더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지고 보면 야구를 시작한 이유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야구를 좋아해서일 것이다. 어릴 때 어느 팀의 팬이 되고, 그 팀의 경기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구를 하게 되는 거.
물론, 승기 형처럼 ‘내가 저 팀을 우승시키고 말겠다…큭큭큭…’과 같은 레벨의 생각을 하는 어린아이들은 별로 없겠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시작해서, 또 대부분의 선수가 비슷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내가 정말 프로를 노릴 수 있을까?’
난 모르는 이야기다. 그냥 주변에선 다 그런 고민을 했더라고.
지금이라도 때려치우고 공부를 시작할까, 야구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다.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더라도 그냥 때려치우는 사람도 많았다. 운동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하다 보면 짜증 나는 게 너무 많다.
내가 아마추어 시절을 버텨낸 원동력은, 그래.
두 가지가 있었다.
환호와 원망.
나는 날 야구 천재라고 떠받들어 주는 게 좋았다. 거기에 취해 있었고 조금씩 변해갔던 것 같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내게 당한 상대 선수들의 표정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까지 가서도 내 동기부여의 대부분은 저 두 가지였다.
사람마다 야구에 대한 동기부여는 다를 수 있다.
꽤 많은 메이저리거가 돈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야구를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삼는 선수도 많았다. 야구 선수가 아니었더라면 어떤 사람이 됐을까. 야구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연봉을 받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런 건 개인적인 이유고, 종종 팀이 동시에 불타오를 때가 있다.
내부 구성원이 아니라면 조금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위해서, 라는 거.
첫 타석에서 볼넷을 얻어 1루로 나갔다. 그 상태에서 갑자기 그라운드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난입해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다.
그때 잠깐 윤태호와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
“잘 지내셨죠?”
윤태호는 글러브로 입을 가리곤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미안해, 건우야. 지금 팀 사정이 다른 팀 선수랑 웃으면서 안부 묻기엔 좀 그래서.”
우동기 감독의 거취에 관한 기사가 요새 계속 나왔던 것 같다. 선더버즈를 최초로 우승시킨 사람이지만, 부진이 길었으니 이제 다른 선택을 할 때가 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냥 팀 성적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분위기가 좀 다르다. 전에 대화할 때 우동기 감독이 자기 은인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윤태호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눈에 날이 서 있는 느낌이다.
후속타는 불발됐고, 선더버즈는 몸을 날렸다. 수비에서도 주루에서도. 어쩌면 노경우의 그 방정맞은 세레머니가 조금은 더 불을 붙인 걸지도 모른다. 2회 초에 주자 한 명이 출루하자 바로 번트가 나왔고, 앤디의 송구 미스로 무사 1, 2루가 만들어졌다.
약간은 기세에 눌린다는 느낌이다. 앤디는 가끔 멘탈이 터지긴 해도 영리한 투수고, 내줄 점수를 내줘야 하는 것을 안다.
싱커로 억지로 틀어막았다. 그 와중에 1점을 내주긴 했지만, 선더버즈 타자들이 몸쪽 공에 몸을 들이밀어 버리면서 맞고 나가려고 하는 것 치고는 잘 막아냈다.
싸우자고 달려들면 그냥 몸쪽 막 던지면서 벤치 클리어링도 한 번하고 할 법도 하지만, 경기하다 보면 이럴 때도 있다.
상대를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 하는 그런 경기라고 해야 하나. 오늘 못 이기면 그냥 여기서 죽으련다 하고 달려들 때, 그냥 져주자는 분위기라기보다는 살짝 숨죽이고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선더버즈에게 졌다.
앤디는 6이닝 3실점. 그런데 태영이 형이, 1사 1, 2루 상황에 구원 등판해 볼넷 하나를 내주고 홈런을 맞아버리고 말았다.
볼넷 아니면 삼진이라는 이미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원래 안정성은 떨어지는 편이긴 하지만, 공을 터뜨려버리겠다는 느낌으로 나온 윤태호의 풀스윙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태영이 형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태영이 형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기대치를 생각해보자면, 필승조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만루 홈런을 때린 윤태호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선더버즈 우동기 감독의 앞에서 눈물을 살짝 흘렸다.
아무래도 감독을 위해서 결의를 불태운 것이 맞는 듯하다.
나는 이 경기에서 시즌 54호 홈런을 때렸다. 하지만 승패를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홈런은 아니었다.
그나마 외야에서 내 홈런을 기다리며 잠자리채를 들고 대기하던 팬들에게 즐거움을 준 것은 위안거리긴 하다.
어쨌거나, 감독의 일자리가 위태로울 때.
어차피 잘릴 건데 훈련도 대충 하고 경기도 대충 하자는 마인드라면 팀은 더 나락으로 간다.
그런데 어떻게든 감독을 위해서, 감독 잘못이 아니라고 한 마디 어필이라도 하려고 용쓰는 상대는 정말 까다로워진다. 물론 정신력만으로 경기력을 뒤집을 수 있는 종목은 아니긴 한데.
[멀티 홈런 윤태호,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우동기 감독님을 위해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더버즈 선수들의 무력시위. 선두 오션스를 침몰시키다.]그래도 좋은 감독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선수가 감독을 위해 경기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단 쉽지 않다.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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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우랑 유준이랑 완전 불붙은 거 같은데?”
훈련 모습을 본 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제 경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노경우는 홈런 하나를 포함해 멀티 안타를 쳤고, 유준은 안타 하나에 그쳤지만, 도루를 성공시키고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
“노경우가 사실 훈련할 때 종종 집중력을 잃어서…”
유리가 조심스레 말했다. 원래 성격이 그렇다. 끊임없이 옆에서 잡아줘야 한다.
“유준은 한동안 조금 현타 온 것 같더니, 이제 정신 차렸나 싶기도 하고.”
허무할 수 있다. FA 영입과 포지션 변경으로 인해, 어찌 보면 자신이 희생자라고 여길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해도 안 될 거라는 잡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집중력 유지가 쉽지는 않다.
“다들 열심히 하면 좋지.”
“그건 그래. 아. 선더버즈 선수들이 구단에 감독 재계약 강력하게 요청했다던데?”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들었어?”
“이 바닥 좁더라. 무슨 소문이 그리 빨리 퍼지는지.”
호사가들 많은 바닥이긴 하다.
“그런데 요청한다고 들어줘?”
“글쎄.”
유리가 입을 삐죽댔다. 뽀뽀해달란 말인가?
“선더버즈 구단 측에서는 아직 확답은 안 줬다더라.”
“너희 하는 거 봐서, 라는 대답인 거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오늘 경기도 힘들겠네.”
“아. 어제 진짜. 어쩐지 선더버즈 선수들 힘 빡 들어갔더라니.”
유리가 한숨을 쉬었다. 최근 다섯 경기 성적이 1승 4패다. 최근 패배들이 우리가 못 해서라기보다는 상대가 잘 한 경기였다는 점에서 위안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그런 걸 다들 이해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 팀 선수들은 감독이 그렇게 좋은가 봐.”
“주축 선수들을 다 우동기 감독이 키웠으니까.”
유리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나도 선수들 키우기 열심히 하는 중인데…”
주변에 아무도 없다. 있어도 상관없었을 테지만, 나는 유리를 덥석 안으며 말했다.
“누나가 젤 잘 키운 거 누구?”
“응? 건우?”
“맞아. 누나 제일 좋아하는 건?”
유리가 대답하지 않고 히히 웃었다.
“오늘 지면 누나 잘린다는 각오로 열심히 할게.”
“야. 누나 안 잘려.”
“맞아. 누나 잘리면 난 은퇴하려고.”
“진짜?”
“당연하지. 누나 아니면 내가 왜 야구를 해?”
그것도 오션스에서.
유리는 농담인 걸 아는지 그냥 웃어넘겼다.
그리고 나는, 라커룸에 가서 선언했다.
“저 오늘 지면 은퇴합니다.”
“뭐?”
“쟤 또 뭔 소리냐?”
대부분 시답잖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어제 져서 그런지 왁자지껄하진 않지만.
“아니, 오늘 경기에 뭐라도 걸렸냐?”
“오늘 지면 정 코치님이 결혼 안 해준 대냐?”
다들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비장하게 외쳤다.
“오늘도 지면 유리 누나가 슬퍼합니다!”
“…”
“…”
“미친놈…”
침묵 속에서 누군가가 욕을 했다.
“유리 누나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싫습니다!”
“시발.”
“야. 누가 저 새끼 입 좀 막아라.”
“진심입니다. 지금 당장 기자들을 불러 이 선언을…”
“마. 헛소리하지 말고 이거나 무라.”
노루 형이 내 입에 억지로 초코파이를 쑤셔 넣었다.
아니 뭐. 진짜 그러겠다는 게 아니라, 라커룸에 활기 한 번 불어넣어 보고자…
“건우야.”
“예.”
“지면 나도 은퇴하련다.”
“아니, 대근 햄은 또 왜요?”
“요새 좀 지니까 다시 돼근이 소리 들려가지고…”
“그게 왜요? 돼근이가 뭐 어때서. 귀엽기만 하구만.”
“마누라가 돼지 김치찌개 끓이면서 슬퍼하잖아…”
“아니 그게 뭔 소립니까?”
라커룸은 혼돈에 빠졌다. 그리고 유준 형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진짜 은퇴하겠습니다.”
“응?”
“넌 또 왜?”
“제가 주전으로 나오자마자 지는 것 같아서…”
태영이 형은 자기 때문에 졌으니 그냥 지금 은퇴하겠다고 했다. 정용이 형이 기가 막힌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1등이다, 이 미친 사람들아. 너네 말대로면 10위 할 때 난 총대 메고 은퇴했어야 했게? 야. 그냥 이겨. 오늘 무조건 이겨. 야! 이기면 형이 오늘 고기 쏜다! 그냥 이겨! 몇 명이나 은퇴하려고 그래?”
“행님.”
“시욱이 너도 은퇴하게?”
“무슨 고기요.”
“뭐?”
“한…우?”
“아. 한우 먹어. 먹어. 먹으라고.”
“…”
“또 왜?”
“…투뿔?”
정용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웃고는 선언했다.
“이기면 이겼으니까 쏘고, 지면 그냥 다들 은퇴하는 거로 하고 은퇴식 쏜다. 시욱이가 투뿔 맛있는 데로 지금 예약해놔.”
“옙! 당장 전화하겠습니다!”
창열이 형은 이 모습을 보고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조용히 배트를 닦았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난 돈 다 받을 때까지 은퇴 안 할 거다. 절대 안 한다. 미친 오션스놈들. 누구 맘대로 은퇴야. 하.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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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오션스!”
“화이티이이이으아아아아아악!”
오션스 선수들이 악을 썼다. 정유리는 그나마 기분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요즘 좀 잘 나가니 독기가 빠진 것도 사실이다. 야구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정신론도 싫어하진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션스에 한정된 이야기다. 기를 쓰고 악을 쓰고 이기려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선발 투수는 국민성.
호세 킹과 연달아 던지게 붙여놓고 싶지만, 휴식일이 잦고 짧게 경기가 있는 후반기 일정의 특성상 쉽지가 않다. 오늘 경기가 끝나고 나면 하루 쉬고 광주 원정을 떠나야 한다.
그래도 최근 안 좋은 분위기를 끊어놓는 게 우선이다. 어지간히 져도 1위를 뺏기지 않을 정도로 승리를 벌어놓기는 했지만, 막판에 기세를 살리고 안 살리고는 느낌이 다르다. 안 그래도 정규 시즌 일정이 끝나고 한국 시리즈가 열릴 때까지 시간이 좀 있는데, 안 좋은 분위기로 넘어가는 것은 찝찝하다.
국민성은 선더버즈에 강하다. 선더버즈 타자들은 대체로 공격적인 편이기에 국민성의 꼬드김에 잘 넘어오는 편이다. 물론, 잘못 걸리면 그대로 넘어갈 수 있기에 위험하다는 점은 어제 경기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국민성은 1회 초를 가볍게 마무리했다. 까다로운 정현철-천제현-윤태호를 11구로 삼자범퇴.
기선제압이 중요한 경기다. 선더버즈 타선이 어제 완전히 불붙었고, 국민성이 초반을 스무스하게 넘겼지만 언제 터져버릴지 모른다.
마운드에는 부상에서 갓 복귀한 여태훈이 올라왔다. 포심-슬라이더의 투 피치 투수. 불펜이 맞는 옷이지만 이번 시즌 선더버즈는 선발 투수가 부족한 편이다.
서창열이 2구째 슬라이더를 기술적으로 밀어 때렸다. 3유간 정확하게 빠지는 안타.
‘우리 편이니까 진짜 든든하네.’
얼마나 꼴 보기 싫었는지 모른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인데 인상만 잔뜩 쓰고는 투수 공을 툭툭 건드리고, 결국 저 코스로 출루한다. 시프트를 걸어도 별 효과가 없었다. 서창열은 오션스가 10위를 기록했던 2025년에 2루타를 45개나 때리며 2루타 시즌 1위에 올랐는데, 그중 18개를 오션스 전에 때렸다.
시프트 거니까 잡아당겨서 빈 공간으로 날려 보내고 죽어라 달려서 2루에 가버리는데.
그때 오션스 감독이 서창열의 2루타를 보고 쌍욕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었다.
노경우는 번트 모션을 취했다. 그런데 번트가 아닌 타격. 번트에 대비해 3루수가 전진한 빈 공간을 향해 강하게 때려냈다.
선더버즈 3루수의 수비 약점에 대해 알려줬더니 그걸 활용한 모습이다. 물론 실수했더라면 병살 코스겠지만, 성공했으니 됐다.
야구만큼 결과론적인 스포츠는 없다.
그리고 결과만 따지자면, 더없이 완벽한 선수가 타석에 섰다.
입단 직후에 타격 코치가 무슨 신인 타격 폼이 이따위냐며 뜯어고치려 했던 타격자세를 가진 타자.
솔직히 말하자면, 저 타격 폼으로 출루율 5할 중반에 가깝다는 것이 황당할 정도인 선수.
정유리의 남자 친구.
따아아아아아아악-!
“건우야아아아아아!”
자기도 모르게 폴짝 뛰어올랐다. 테이블에 손을 올리고 마구 뛰어댔다. 냅다 분석실 창문 쪽으로 달려나가서,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날아가는 타구를 찾으려 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직이 들썩인다. 타구가 안 보인다. 구름이 좀 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린 걸까.
워낙 큰 타구를 날리는 편이다 보니, 한 번 놓쳐버리면 찾기가 힘들다.
정유리의 눈이 외야 관중석을 훑었다. 전광판 왼쪽의 관중들이 든 잠자리채가 파도를 친다.
오늘은 저기구나.
반대쪽의 관중들이 조금 아쉽다는 듯 서 있고, 야구공을 쟁탈하기 위한 관중들의 경쟁이 벌어졌다.
‘아. 맞다.’
강건우가 홈런을 칠 때마다 카메라가 자꾸 이쪽을 비추는데. 유리창에 얼굴을 붙이고 외야를 바라보는 모습이 좀 웃기진 않았을까.
그 걱정도 잠시, 정유리는 환하게 웃었다. 1루 베이스를 밟는 강건우가 이쪽을 향해 손가락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시즌 55호 홈런이다. 역대 2위. 어제 경기에서 역대 공동 3위가 되는 54호를 날렸는데 팀 패배 때문에 약간 묻힌 감이 있었다.
“진짜 실화 맞냐…”
앞으로 경기도 꽤 남았다.
이건 무조건 KBO 기록 경신이다.
정유리는 입을 헤 벌리고 베이스를 도는 강건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때 이게 꿈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이제 강건우는 정유리의 꿈을 이뤄주고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