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90)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92화(292/385)
끔찍한 농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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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뿐만 아니라 감독에게도 뚜렷한 색깔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런 색깔은 어느 정도 팀 성적이 뒷받침되어야 드러나기 마련이다. 감독 개인에게 야구에 대한 어떤 철학이 있다 한들 선수들을 통해서 발현되지 않으면 말짱 꽝이고, 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그냥 단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최근 교체된 3명의 감독을 보자면 오션스, 아이언스, 다이아몬즈다.
오션스는 사실 운이 좋았다. 강건우가 아니었다면 올해 또 새로운 감독으로 시작했을 것이고 이 시기쯤 되면 다시 감독 교체설이 솔솔 피어났을 것이다.
다이아몬즈는 최근 성적이 급락했기에 단장과 감독이 모두 바뀌었다. 대학 야구팀 감독을 데려오며 분위기 쇄신을 꾀했지만 아직은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 물론 다이아몬즈의 하위권 추락은 감독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언스가 팀 레전드 출신의 오대서 감독을 데려온 것은, 아무래도 호불호가 갈리는 일이었다.
팀에서 맹활약하다 은퇴하고 지도자 연수를 받고 돌아온 젊은 지도자가 아니다. 한동안 프로 무대를 떠나 있던, 현재 KBO 10개 구단 감독 중 최연장자다.
아이언스 팬들은 반신반의했다. 사실, 아이언스 선수들도 조금은 그랬다.
현재 아이언스는 5위 자리를 두고 메테오스와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4위 이상으로 치고 나갈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리하게 4위 혹은 그보다 높은 순위를 목표로 하는 것보다는 5위 싸움에 집중하며 기회를 엿보는 포지션이었다.
당연히 모든 경기에서 이기면 좋겠지만, 그런 것들이 선수단의 준비 상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어쨌거나, 지금까지는 아이언스가 오대서 감독을 선임한 선택이 나쁘진 않아 보였다.
성적만 놓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대서 감독은 부임 첫해에 8위에 그쳤다. 전 감독이 해고된 것과 같은 순위.
하지만 선수단 부상이라는 불운 요소가 있었고, 올 시즌은 가을 야구 참가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고 올드 아이언스 팬들을 자극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PHOTO) 아이언스 선수단, 오늘도 삭발 투혼!] [(PHOTO) 이제 까까머리가 편해 보이는 박정신 선수.]이제 곧 2030년대가 온다. 80년대풍이라고 하기에는 오대서 감독도 90년대에 활약한 스타다.
팀 분위기 망치는 선수는 아무리 잘 하는 선수라 하더라도 불호령을 내리고 2군으로 쫓아버리고, 성적이 조금 부족해도 열정과 의욕 넘치는 선수에게 기회를 준다.
물론 이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이기는 했다.
만 24세 3할 외야수 구건석 건만 해도 그렇다. 덕아웃에서 그렇게 호통을 치고 2군에 처박아버리는 대신, 적당히 포장해서 트레이드 매물로 썼더라면 어땠을까.
혹은, 그래도 구건석이라면 지역 출신의 차기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재목인데 살살 어르고 달래서 계속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선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앞길을 막아 버리는 구식 야구. 이대로 괜찮은가.]오대서 감독은 자신을 저격한 이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코웃음을 치고는 수석 코치에게 말했다.
“할 말 있으면 직접 하라고 해라. 이딴 장난질 치지 말고.”
“예, 감독님.”
“어디 에이전트인지 뭔지 끼고 언론 가지고 장난을 해?”
“대응은 하지 말까요?”
“기자 불러라.”
“뭐라고 하시려고…”
“구건석이 자리 없으니 뺀 거라고 말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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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 생각인데, 모든 팀은 어떤 형태라도 크고 작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아무 문제가 없는 팀은 없다.
우리 팀에도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들은 현재 팀의 좋은 성적과 분위기에 가려져서 튀어나오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또, 어떤 감독들, 혹은 단장들은 그런 것들을 가지고 모험을 하기도 한다. 아이언스 오대서 감독이 그런 사람으로 보인다.
경기 직전, 오대서 감독의 인터뷰 기사가 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1. 난 머리 삭발하라고 시킨 적 없다. 선수들이 알아서 한 거다. 애들이 사회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2. 구건석은 자리 없어서 빠진 거다. 불만이면 야구를 잘 하면 된다.
3. 선수들은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찾아오면 된다. 제삼자가 중간에 끼면 역효과만 난다.
유리는 그 인터뷰 기사를 보고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우와…꼰대같은데 멋있어…”
어느 정도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확실히 화법은 유리의 말대로 꼰대스럽긴 하지만, 또 스포츠에서 저렇게 마초적인 발언은 때로 속 시원함을 느끼게 하기도 하니까.
그냥 그런 말이다. ‘에이전트 끼고 언플 하지 말고 알아서 기어라.’
자리가 없어서 빠졌다기에는, 지금 아이언스 중견수는 타율이 0.184에 불과하다. 물론 수비력과 주루 플레이, 그리고 작전 수행에서 공헌하고 있기는 하지만 3할 타자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무리 수비와 주루 툴이 좋다 한들 3할 타자보다 고평가를 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타율이 2할 초중반이라도 홈런이 30~40개라면 자기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
“누나도 나중에 오션스 감독 되면 꼰대 감독할 거야?”
“응? 내가? 오션스? 감독? 꼰대?”
유리가 조금 놀란 듯 물었다.
하긴, 농담으로라면 몰라도 진지하게 어디 프로팀 감독을 맡겠다거나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기는 하다.
인스트럭터로 살아가는데 엄청 만족도가 높기도 했었고.
“왜? 감독은 하기 싫어?”
내 질문에 유리가 히죽 웃고는 대답했다.
“응.”
“왜?”
“글쎄. 봐봐. 건우야.”
“응. 듣고 있어.”
“감독은 파리 목숨이야. 언제 잘릴지 모르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난 가늘고 길게 가고 싶어.”
“오션스 감독도 별로야?”
유리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감독은 욕하는 맛이거든. 내가 감독 되면 오션스 감독 욕을 못 하잖아.”
“…요새는 해?”
유리가 슬쩍 웃으며 날 쿡 찔렀다.
“오션스에서 욕 안 해본 건 너뿐이야…”
아직도 오션스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겠다. 뭐, 별 상관없나.
나만 아니면 되니까.
“사실 그냥. 난 선수 하나 붙잡고 업그레이드 시키는 게 더 좋아. 감독은 팀을 총괄해야 하잖아. 음. 단장이면 괜찮을지도.”
“좋아.”
“뭐가?”
“오늘부터 내 목표는 유리 누나 오션스 단장 만들기다.”
유리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내 팔을 쿡 찔렀다.
“뭐, 계약할 때 정유리 단장 선임 조건이라도 넣게?”
“그런 거 안 되나?”
“안 돼!”
“왜?”
“어휴. 진짜.”
유리가 날 철부지 보듯 바라보더니 슬쩍 웃으며 날 꼭 안았다.
애 취급받는 것도 꼭 나쁘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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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에서 외국인 투수에게 요구되는 것은 많은 이닝, 다승, 에이스로서의 역할이다.
외국인 선수 구성이 잘 되면 하위권 팀도 단숨에 가을 야구 진출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리그 특성상 어쩔 수 없다. KBO 구단들은 종종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인내심을 빠르게 잃곤 한다.
아이언스의 오늘 선발인 로니 트루먼과 오션스의 선발인 호세 킹은, 그런 쪽에서 보자면 시즌 초반 보여준 실력에 비해 비교적 길게 믿음을 받은 편이었다.
로니 트루먼은 시즌 초반에는 괜찮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며 투구 버릇을 간파당해 곤욕을 치렀다. 구단 측에서는 교체를 검토했으나 감독이 반대해 더 기회를 받게 됐고, 슬라이드 스텝을 연마해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안정적인 선발 투수로 변모했다.
호세 킹도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며 최근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두 투수의 공통점은, 외국인 투수임에도 팀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는 부분이다.
둘 다 한국에서 뛸 때 비교적 빠르게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단에서는 손쉬운 해결책을 찾는 대신, 선수를 도우려 했다.
이제 더는 로니 트루먼이 체인지업을 던지려고 한다는 사실을 던지기 전에 알지는 못한다.
호세 킹이 던질 때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공짜 출루를 얻어낸다는 인식도 사라져가고 있었다.
오늘 맞대결을 펼치게 된 투수들은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려 했다. ‘팀에 도움이 되어야 해.’
아이언스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달려 있다. 오션스와의 경기는 오늘 포함 세 경기가 남았다. 올 시즌 오션스 상대전적은 별로지만 선수들은 오션스 전에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1회 초에 마운드에 오른 로니 트루먼은 신중하게 승부했다. 팀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다른 용병 투수 벤자민 킴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면서.
‘오션스의 1번 타자는 바깥쪽 낮은 공을 때려서 안타로 만들어내는데 능해. 대응 방법? 글쎄. 난 그냥 몸쪽으로 던진 후 주님을 찾지.’
벤자민 킴의 조언대로 던졌다. 몸쪽에 포심 하나, 체인지업 하나, 포심 하나, 체인지업 하나.
딱!
“아웃!”
1루수 앞으로 굴러가는 땅볼. 이제 오늘 경기의 아웃 카운트는 26개 남았다.
2번 타자 노경우가 타석에 들어온다. 다시 조언을 떠올린다.
‘기존 2번 타자보단 약하지만, 스타일은 비슷해. 타구 속도가 빠른데 발도 빠르지. 툭 가져다 맞히고 2루까지 뛰어버리기도 해. 게다가 감이 좋은 날이면 안타를 마구 만들어내고. 가능하면 낮게 던지고 기도해. 안 좋은 공이라도 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배트가 나오거든.’
헛스윙 비율이 낮고, 루킹 삼진이 거의 없는 타자.
낮게 컷패스트볼을 던졌다. 오션스 타자들은 커뮤니케이션이 꽤 활발해 가능하면 다른 패턴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딱!
“아웃!”
3루수 박정신이 호수비를 선보였다. 로니 트루먼은 박수를 쳤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어느 정도 해줄 선수라는 생각이 든다. 전형적인 라커룸 리더는 아니더라도, 항상 솔선수범하고 깔끔한 편이다.
2아웃까지 잘 잡아낸 후, 경기장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열정적인 아이언스 홈 팬들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건장한 체구의 유격수가 타석으로 들어오고 있다.
며칠 후에 만 20세가 된다고 했던가. 지금 성적만 봐도 안다. 저건 괴물이다.
벤자민 킴이 강건우에 대해 해준 조언은 딱히 떠올리려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벤자민 킴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멘.’
로니 트루먼은 입맛을 다셨다.
오늘 두 번의 기도가 통했으니 혹시 세 번째 기도도 통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마음은, 강건우가 타석에 선 모습을 보자 사라져버렸다.
굳건하게 자리 잡은 두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경기 전 분석 영상에서 봤던 강건우의 풀스윙이 머리에서 맴돈다.
“볼넷!”
일부러 스트레이트 볼넷을 주려는 의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지레 겁을 조금 먹은 것뿐이었다. 제구가 갑자기 날렸다. 이제 다시 안정을 찾고 다음 타자를 상대해야 한다.
“마!”
“쫄았나!”
원정 응원석에 자리 잡은 오션스 원정 팬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홈 팬들이 질세라 박수를 쳐줬다.
다음 타자에 대한 벤자민 킴의 조언이 떠올랐다.
‘덩치만 보면 홈런 50개는 칠 것 같은데, 기술적인 타격을 하지. 만약 베이스에 주자가 나가 있다면 그냥 볼넷을 줘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던져도 돼. 보이는 것처럼 엄청 느리거든. 그냥 내보내고 다음 타자를 노리는 거지. 아. 절대 몸에 맞는 공을 던지진 마. 저 친구의 손바닥은…지져스 크라이스트. 저 덩치는 종목을 잘못 골랐어.’
어쨌거나, 신중하게 던져야 한다. 꼭 7이닝 이상을 던지지 않아도 된다. 한국 국가대표 불펜 투수인 용종혁과 작년 홀드왕 고준수, 그리고 젊은 마무리 이세찬을 믿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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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리는 오늘 상대 투수인 로니 트루먼에 대한 자료에 이렇게 써넣었다.
‘도루는 쉽지 않을 것 같음!’
한때 9개 구단이 로니 트루먼의 체인지업 버릇에 대해 알아냈다. 타자들은 체인지업을 노렸고, 주자들은 체인지업을 던지려 할 때 뛰었다.
악순환이 나왔다. 체인지업이 공략당하니 포심과 컷패스트볼 위주의 투구를 펼쳤고, 타자들은 패스트볼만 노렸다.
그리고 지금 로니 트루먼의 슬라이드 스텝은 상당히 훌륭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게다가 바이킹스에서 트레이드해온 포수 정현덕의 어깨도 보통이 아니다.
주자는 1루에 강건우. 타석에는 양대근.
조금 아쉽긴 하다. 강건우가 2루에만 가준다면 양대근의 기술적인 타격으로 선취점을 뽑아낼 수 있을 텐데.
강건우는 그린 라이트를 가지고 있다. 언제든지 자기가 뛰고 싶을 때 뛴다. 그런데 도루를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먼저 낸 것이 강건우다.
올 시즌 양대근은 22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30개 한 번만 쳐주면 좋겠는데, 홈런만 노리는 타자가 아니다 보니.
로니 트루먼의 초구는 볼이었다. 존 살짝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컷 패스트볼.
변화 각이 엄청나게 좋진 않지만, 구위가 좋아서 우타자들에게도 잘 먹히는 공이다.
최근 아이언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떻게든 기선제압을 좀 해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강건우가 2루를 향해 달려버렸다.
예상치 못 한 일이 벌어졌다. 로니 트루먼이 공을 던지다 밸런스를 잃어버렸고, 공을 땅에 패대기쳐버렸다.
포수가 사색이 되어 달려 나와 공을 잡긴 했지만, 강건우는 서서 2루 베이스에 들어갔다.
강건우가 씩 웃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반응이 폭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정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우와…”
혼이 빠진 것 같은 얼굴로.
“우리 건우 진짜 존나 멋있네…”
그리고 입을 탁탁 때렸다.
“예쁜 말, 고운 말, 좋은 말.”
경기 분위기가 아주 살짝 바뀌는 것 같다. 겨우 도루 하나지만, 주루 플레이는 그런 역할을 해낼 때가 있다.
하지 말라고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절묘한 타이밍에 뛰어버리다니.
모르긴 몰라도, 뭔가 자신이 있으니까 도루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