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91)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93화(293/385)
끔찍한 농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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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
야구장에서 발 빠른 주자가 2루에 있을 때, 경쾌한 타격음이 들리면 희비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방금 이 소리에, 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야구 팬의 대부분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 질렀다.
“시발!”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이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대근아아아아!”
“고마 진짜로 쌔리뿟네!”
누구나 그렇다. 자신이 절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 있던 부분에서 한 방 맞는다면 어느 정도라도 충격을 받기 마련이다.
로니 트루먼은 후반기에만 견제 아웃을 세 번이나 잡아냈다. 아직 표본이 적기는 하지만 새 포수 정현덕과 합을 맞췄을 때 도루 저지율 55%를 기록하며 상대 팀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대체로 시즌 도루 저지율은 40%대가 최상위권이다.
강건우에게 이상한 타이밍에 도루를 허용해서 그런지 투구 밸런스가 미묘하게 어긋났다. 아마도, 강건우가 도루해서 득점권에 나갔을 때 양대근의 타율이 5할에 육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양대근의 당겨친 타구는 펜스를 넘길 만큼 높게 날지는 않았지만, 정상 수비 위치에 서 있던 중견수와 우익수의 사이를 꿰뚫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강건우가 미끄러져 홈 플레이트를 터치하기에도 충분했다.
“아이고! 대근아! 그래 치고도 1루밖에 몬 가나!”
“괘안타! 건우 홈 들어왔다 아이가!”
보통 주자라면 충분히 2루에 들어갈 안타에도 1루에 멈춰 서서 뻘쭘하게 아이언스 야수들이 중계 플레이를 펼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양대근이었다. 양대근이 강건우가 홈을 밟는 것을 보고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홈을 밟고 돌아오는 강건우에게 하이파이브해주던 이시욱이 말했다.
“으이그. 저 행님 봐라. 저걸 2루로 몬 뛰네. 저 덩치로 똑딱이나 하고 잘 한다. 안 그렇나 건우야.”
강건우는 박의현과 팔꿈치를 맞부닥치며 대답했다.
“형도 못 뛰잖아요.”
“마. 햄이 오늘 호타준족이 뭔지 보여준다.”
로니 트루먼은 살짝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보더라인 투구를 할 생각이었는데 안쪽으로 살짝 말려 들어간 공을 여지없이 기술적으로 때려냈다. 욕심내지 않고 정확한 타구를 날리는 타자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주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견제구를 던질 걸 그랬다. 견제구를 던질까 말까 하는 사이 무게 중심이 살짝 흐트러졌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현재 리그에서 도루 1위인 강건우를 너무 의식해 시선을 조금 더 주자 쪽에 뒀다는 것이었다.
주자가 뛰는 것까지 눈으로 봐 버렸다. 투구 동작을 시작한 지라 던질 수밖에 없었고,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가 공을 패대기쳐버렸다.
밸런스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잘 풀릴 때는 그 밸런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한 번 흐트러지면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해내야 한다. 아직 1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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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부족하고 혈기만 왕성하며 빠른 공만 믿고 있었을 때, 브랫 힐먼이라는 놈은 날 항상 거슬리게 만들었다.
타율은 2할 중반대. 시즌 홈런은 한 자릿수.
다만,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중견수 수비 능력과 20개 정도의 도루를 하는 동안 실패가 거의 없는 주루 플레이 실력을 갖췄던 선수다.
그놈은 베이스에 나가면 날 죽어라 쳐다봤다. 난 우완이니 1루 베이스의 주자를 똑바로 바라보긴 힘들다. 그런데 그놈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날 상대로 미친 듯이 도루를 해댔다. 나는 슬라이드 스텝을 거의 쓰지 않는 투수였고, 타자와의 승부에만 집중하는 타입이었다.
처음 몇 번이야 괜찮았지. 그런데 의식을 하기 시작하니까 점점 나만 힘들어졌다.
출루시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수록 볼이 늘어났고, 어설프게 견제하려다가 실수를 하기도 했고. 같은 지구 소속이라 비교적 자주 만나다 보니 더 그렇긴 했는데.
아무튼, 아무리 잘 던진다 하더라도 궁합이 안 맞는 상대는 있다. 어렸던 나는 그 선수의 심리전 같지도 않은 심리전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로니 트루먼의 눈빛에서 그때의 나를 본 것 같다…라는 이유로 도루를 시도해봤고,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
때로는 감이 노력을 이길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수석 코치님에게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도루하는 척하고 안전하게 귀루할 수 있을 정도로 리드 폭을 늘리면 효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의견은 곧장 감독님에게 전달됐다. 대근이 형에게 그런 플레이를 기대하는 것은 조금 그럴 테니까 다른 기회가 오면 투수를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내 의견을 듣더니 벌떡 일어나서 싸인을 보냈다.
대근이 형이 벤치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투수는 그 모습을 보고 도루 싸인이 나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투수는 1루에 견제구를 던졌다. 그것도 두 번이나. 대근이 형은 그 큰 덩치를 이끌고 끙끙대며 두 번이나 1루 베이스로 돌아와야 했고, 처음에는 ‘마!’라고 소리치던 오션스 원정 팬들이 급기야는 이렇게 소리 지르고 있다.
“호-타-준-족 양대근!”
뭐.
원래 메꿨다고 생각한 약점을 공격당하면 강박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
투수들이란 원래 좀 그런 종족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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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 타자들은 출루할 때마다 리드 폭을 평소보다 길게 가져가며 투수의 신경을 긁어댔다. 평소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았을 테지만, 이건 로니 트루먼에게 꽤 중요한 문제였다.
이걸 해결하고 나서야 안정감이 생겼다. 그런데 만약 이 문제가 다시 생겨나고 점점 커진다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비슷한 시각.
오션스 박준기 단장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차에 타며 가방을 집어 던졌다.
“이 미친 새끼들이 진짜.”
단장 회의를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딱히 중요한 안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포스트시즌 일정이나 잔여 경기 중 취소 경기가 나올 시의 일정 배분 등에 관련된, 그리 특별한 회의는 아니었다.
그런데 다이아몬즈의 새 단장이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저출산 시대 아닙니까? 뭐, 근래에 이슈가 된 것도 있고…선수들도 출산 휴가나 육아 휴가 이런 걸 받아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이없는 소리다. 분명 강건우가 그런 소릴 하기는 했다. 하지만 설마, 정말 설마.
물론 강건우가 정유리 코치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는데 그런 문제가 생긴다면 구단에서는 최선을 다해 지원할 계획이었다.
정유리 코치가 원하는 대로.
팬들이 인터넷에서 강건우와 정유리의 육아에 대한 그룹 차원에서 지원을 요구했다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사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그런 준비를 하는 것도 웃긴 일이기는 하다.
게다가 다이아몬즈 단장은 육아 휴가 기간 FA 일수를 인정해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는 말까지 했다.
당연히 저런 안건이 통과되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오션스를 저격하는 뉘앙스의 말을 단장 회의 자리에서 한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야구 선수 개인은 개인 사업자나 마찬가지다. 아마 정말 육아 휴직을 공식화한다고 해도 그걸 선택하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강건우라면?
어쩌면…?
그러니까 그 말은, 강건우 날뛰는 꼴이 보기 싫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단장들은 그냥 웃어넘겼는데, 박준기 입장에서는 히죽거리며 남 놀리는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정해준 전 단장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냥 저 양반이 독기가 많이 올랐구나 하겠는데.
박준기 단장은 차에 앉아 스마트폰을 켜서 경기 중계를 켰다.
-아, 로니 트루먼. 황석규 선수에게 벌써 네 번째 견제구를 던집니다. 세이프.
-견제구도 결국 공 던지는 거거든요. 뭔가 표정도 안 좋아요. 저렇게 집착할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뭔가 아이언스 벤치에서 조처를 해줘야 할 것 같아요. 게다가 황석규 선수는 도루할 생각이 없어요. 지금. 그냥 리드 폭 조금 넓게 잡고 투수 신경을 긁어대려는 걸로 보이거든요.
박준기 단장의 표정이 풀렸다. 아까 다이아몬즈 단장이 헛소리할 때, 아이언스 단장이 ‘재밌는 아이디어네요.’라고 맞장구치던 것이 떠올랐다.
-로니 트루먼, 다시 견제구! 아! 공이 빠집니다! 2루로 달리는 황석규! 세이프!
-아이언스 입장에서는 큰일이에요. 멘탈을 좀 어떻게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오션스는 주로 당하는 입장이었다. 안 그래도 약한 투수력을 가졌는데, 맞붙는 상대마다 흔들고 괴롭히고.
이제 오션스가 저런 플레이도 한다. 절로 미소가 나온다.
올해 성적을 보면 재계약은 자동으로 딸려 올 것 같다.
원년 팀 오션스의 첫 정규시즌 우승 단장.
역대 최고 승률 팀을 만든 단장.
얼마나 달콤한 수식어인가.
잡아 오는 FA마다 돈이 아깝지 않은 활약을 하니 다음 FA 시장에서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회장님은 농담으로 말씀하셨다.
‘그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친구, 놓치면 영 심기가 불편할 것 같아.’
어쩌면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회장님은 아무래도 그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친구가 외모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가정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드신 것 같았다. 물론, 요새 스포츠 기사들이 양대근이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생산성에 집중하며 칭찬을 늘어놓은 것을 보신 것 같긴 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박의현이 볼넷을 얻어 나갔고 유준이 안타를 때려냈다.
황석규는 호타준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수다.
그리고 박의현은 빠르진 않지만 성실하고 영리한 주자다. 타구가 안타가 될 거라고 판단했는지 3루까지 쭉 내달렸다.
그리고 유준. 요즘 열정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팀의 네 번째 외야수는, 살짝 짧은가 싶은 타구에도 미친 듯이 내달려 2루에 도착해 세이프 판정을 얻어냈다.
아이언스 측에서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지만, 결과는 원심 유지.
박준기는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그래. 그거라고.”
밖에서 누군가가 자동차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엔진스 단장이었다.
“박 단장. 뭐해? 시간 있으면 식사나 같이 어때?”
평소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엔진스 단장이기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 무슨 일이야? 밥? 나 아까 빵 많이 먹어서 배 안 고픈데. 왜?”
“아니 뭐. 우리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같이 밥 먹나?”
예전이 떠오른다. 전에 몇몇 단장 놈들이 자기만 쏙 빼놓고 골프를 치러 가기도 했었는데.
박준기는 괜히 바쁜 척 손목을 들어 시계를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커피 한 잔 정돈 괜찮겠네.”
“그래? 가자. 내가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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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차이가 완전히 벌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 경기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호세 킹이 아이언스 중견수 조현원을 견제구로 잡아낸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언스 선발이 내 도루를 막지 못한 뒤로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여가며 주자에게 과민반응한 것과 완전히 상반되는 플레이.
최근 5이닝 정도를 소화해냈던 호세는 7이닝 동안 든든히 마운드를 지켰다. 기세는 쉽게 꺼지지 않았고, 3실점을 하긴 했지만 호세가 시즌 9승째를 올리기에는 충분했다.
관중석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것이 그라운드에서는 느껴진다. 견제사를 잡아냈을 때 호세는 포효했고 조현원은 주먹으로 땅을 쳤다.
도루로 당했을 때 도루로 갚아주면 그 위력은 더 좋아진다. 도루로 갚아주려다가 역으로 당하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다.
나는 이 경기에서 기세를 타서 도루 하나를 더 추가했다. 아이언스 선수들의 조심성이 높아져서 뭔가를 더 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수치를 제외하고, 1회부터 내 주루 플레이와 작전으로 경기를 휘어잡았음은 분명하다.
“도루하지 말자고 하더니 왜 뛰었어?”
유리는 경기 후에 신나 보였다. 상대 투수를 완전히 잡아먹었다. 홈런이 아닌 도루 하나와 말 한마디로.
어쩌면 이런 것이 야구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투수 눈이 흔들리더라.”
스포츠 과학자이자 야구 팬이다. 정신론적인 접근은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야구 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유리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때부터 경기 흐름 완전히 넘어온 것 같았어. 눈빛만 보고 딱 안 거야?”
메이저리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동공이 막 흔들리는데.”
“정말? 그게 보였어?”
“투수 눈은 흔들리고 누나 눈은 예쁘고.”
“응?”
맥락 없는 말에 유리가 조금 당황했다. 동공이 흔들렸다. 순식간에 유리 얼굴을 잡아서 입을 맞추자, 유리의 반응이 재밌다.
“응? 응? 응?”
난 그냥 웃었다. 동공이 흔들려서 빈틈을 한 번 노려봤다고 말할까 했는데, 너무 유치하게 들릴 것 같아서.
뭐 어때. 뽀뽀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