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292)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294화(294/385)
끔찍한 농담 -4-
#
다이아몬즈 시절의 민승기는 언제나 진지한 태도로 훈련과 경기에 임하는 사람이었다.
몇몇 선수들은 괜히 민승기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그런 민승기를 보고 배운 선수도 꽤 있었다.
주상욱과 정예성은 다행히도 후자에 속하는 선수였다. 물론, 민승기에게 가장 많은 갈굼을 당한 선수들이기도 했다.
민승기는 항상 말했다.
‘실수는 훈련장에서 해라!’
그래놓고 훈련장에서 실수하면 잔소리를 퍼부어댔지만.
어쨌거나, 주상욱과 정예성에게 오션스 민승기는 꽤 색다른 느낌이었다.
어제 경기에서 민승기는 연신 웃고 있었다. 첫 두 타자가 아웃당했을 때는 살짝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강건우가 도루에 성공했을 때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멍청해 보일 정도로 웃었다.
도루할 때는 물개 박수를 치며 웃었고, 양대근의 타점이 나왔을 때는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가만 생각해보면, 승기 형 작년이랑 완전 다른 사람 같지 않아요?”
주상욱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이상하지만 보고 배울 점이 많은 선배였는데, 지금은 배울 점이 여전히 많긴 해도 어딘가 나사가 몇 개 정도는 빠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리고 아이언스 원정 두 번째 날.
오늘도 벤치에서 시작한 두 선수는, 민승기를 곁눈질로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이 경기의 선발 투수는 이훈. 아이언스는 벤자민 킴.
이훈은 시즌 10번째 승리에 도전하고 있었고, 벤자민 킴은 어제 경기의 패배를 만회해 팀 분위기를 살려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민승기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강건우에게 호통을 쳤다.
“팀의 연승을 이끌어라! 나를 대신해서!”
강건우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거 아세요?”
“오션스에 대한 거라면 뭐든지.”
“아, 예. 됐습니다.”
“큭큭큭…”
뭘 말하려고 했는지 조금 궁금했지만,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오늘 선발 투수 이훈은 민승기의 뒤를 꽤 쫓아다니는 편이다.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주상욱과 정예성은 자신들이 투수였더라면 좀 더 민승기에게 배울 것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훈은 민승기에게 조언을 듣고, 강건우에게 가서 ‘형만 믿어.’라고 말했다.
물론 이훈이 네 살 많지만 어떻게 봐도 동생으로 보인다. 외모가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가 그렇다. 비공식적으로 투수조 마스코트인 이훈은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대상이다.
벤자민 킴은 최근 아이언스를 이끌어 나가는 투수답게 1회 초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했다. 강건우를 상대로 외야 플라이를 끌어낸 후 글러브를 옆구리에 끼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어딘가 인상적이었다.
이훈에게는 조금 가혹하지만, 오션스를 상대하는 팀들이 이훈을 상대로 에이스 혹은 그에 준하는 투수를 내보내고 타선에도 힘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훈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이 이루어진다. 사실 어제 등판한 호세 킹에 대해서도 비슷하긴 하다.
민승기-앤디 가필드-국민성의 3인방이 너무 강력하다. 18승 3패, 11승 5패, 13승 6패.
굳이 호세 킹(9승 6패)이나 이훈(9승 7패)의 승패를 참고하지 않더라도, 비교하기 힘든 구위의 차이가 존재한다.
아이언스는 준비를 철저히 한 것처럼 보였다. 신중하게 타석에 나서서 이훈의 투심을 노렸다.
박의현은 그걸 눈치채고 포심-포크볼로 패턴을 조정했지만, 아이언스 타자들이 어제의 패배를 만회하겠다는 듯 집중력을 선보였다.
“…”
그때, 민승기의 얼굴은 꽤 복잡해 보였다.
“저 형 지금 무슨 생각하는 것 같냐?”
주상욱의 질문에 정예성이 입맛을 다신 후 대답했다.
“오션스가 이기면 좋겠고 훈이 형이 잘 하면 좋겠지만, 이게 또 다음 등판이 승기 형이니까…”
“…자기가 돋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럴지도 모르죠.”
“…음.”
다이아몬즈에서 몇 시즌을 함께 했고, 심지어 이제는 같은 집에서 지내고 있다.
얼마 전에 주상욱이 물어본 적 있었다.
‘형, 혹시나 연애하시면 부담 없이 말씀해주세요. 저희 이제 앞가림 정도는 해요. 저희도 계속 신세만 질 수는 없으니까 따로 지낼 곳 구하면 되니까요.’
그러자 민승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애?’
‘전에 그 일본인 여자 분이랑 분위기 되게 좋으시던데…’
‘큭큭큭…’
‘왜 그러세요?’
‘나는 오션스와 28년째 연애 중이다, 주상욱.’
‘…’
분명 그 여자 팬과 개인적으로 종종 연락도 주고받는 것 같은데.
“어쩌면 저 형, 뇌가 야구공 모양일지도 몰라…”
“에이 설마요…”
“뇌 주름도 야구공 실밥 모양으로 잡혀 있고…”
“아. 상상했더니 진짜 끔찍한데요.”
주상욱은 생각했다.
닮고 싶은데, 닮아선 안 될 것만 같은 사람이라고.
정예성은 자신의 상상력을 비난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민승기가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몸이라도 제대로 풀어둬라. 그렇게 놀고만 있지 말고!”
두 사람은 조금 억울했지만, 군말 없이 덕아웃 밖으로 나가 몸을 풀었다.
#
“난 버러지야…”
자기 혐오가 때로는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패전 투수가 된 훈이 형의 저 말을 듣고는 조금 헷갈렸다.
돌이켜보면, 처음 봤을 때부터 자기 혐오와 자기 비난에 갇혀 있던 사람이었다. 왜 야구를 하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었다.
9승을 거두고 2경기 연속 패전 투수가 된 훈이 형은 꽤 좌절한 것 같다.
“투심도 안 먹혀, 각설이도 안 먹혀, 포크볼도 안 통해…난 대체 왜 프로 야구 선수가 된 걸까…”
오션스라는 팀을 좋아하게 된 것과는 또 별개로, 이 사람은 어딘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다.
“형.”
“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해지길 원한다. ‘넌 더 잘할 수 있어’ 같은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넌 충분히 잘 하고 있어’가 나을 수도 있다.
예전의 나라면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줄게’라는 말이 나왔을 것 같긴 한데.
오션스 선수들에게 마음을 열고 관찰한 결과, 훈이 형은 특별해지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냥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자신이 우리, 그러니까, 오션스 선수들과 같은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 같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독심술사가 아니니까.
“전 그래도 형이 있어서 좋은데요.”
“뭐라고?”
“사실 투수가 항상 안 맞을 수는 없잖아요. 뭐, 타자들이 점수 더 많이 뽑아줬으면 10승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형 혼자만 패전을 떠안을 필욘 없어요. 우리 모두가 진 거잖아요.”
내 말에 훈이 형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아니, 이런걸 원한 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좀 징그럽잖아.
훈이 형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고맙워.”
고맙다라고 말하려 한 걸까 고마워라고 말하려 한 걸까.
이상하게 이 팀에는 손 많이 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프로라면 자기 앞가림도 좀 하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훈이 형은 고개를 위로 치켜든 채 자리를 떴다. 그래도 내 앞에서 안 울어서 다행이다.
“네가 울렸냐?”
마침 휴게실로 들어오던 노경우가 날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냐.”
“뭐, 저번 경기에서 좀 못 던졌다고 혼내고 그런 거 아냐?”
“난 그런 사람 아니거든.”
“넌 충분히 그런 나쁜 새끼잖아.”
아니라고 말했지만, 노경우는 나를 공격했다.
“시욱이 형 실책 했다고 노루 새끼라고 하질 않나.”
“새끼는 안 했는데?”
“어휴. 인성.”
“…”
“그리고 어? 원정 숙소 복도에서 뽀뽀를 하질 않나.”
“봤냐?”
“와. 미국인 줄. 진심.”
“부럽냐?”
“…”
“부러우면 너도 여친 오션스에 취직시켜라.”
“나쁜 새끼…”
“이건 또 왜?”
노경우가 입을 오물거리더니 억지 코웃음을 쳤다.
유리 누나면 몰라도 노경우 입 오물거리는 모습은 영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혹시…?”
“혹시 뭐.”
“여친 여기 취직하면 자유를 잃을까 봐?”
“아니거든.”
“비밀 지켜줄게. 솔직히 말해.”
“아니라고.”
“오케이.”
“아니라고…”
입만 안 오물거렸어도 그냥 적당히 넘어갔을 텐데.
#
광주에서 아이언스와 1승 1패를 거둔 오션스는 대전으로 이동했다. 메테오스 원정 3연전 일정이다.
이 일정이 끝나면 대구를 들러 엔진스와 한 경기를 치른 후 부산으로 이동한다. 부산에서는 불도저스와 한 경기, 엔진스와 두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이동은 잦지만, 중간중간에 휴식일이 적절히 끼어 있는 일정이다.
다이아몬즈를 상대로 연승을 거두고 홈구장 대전으로 돌아온 메테오스는 아이언스에 0.5게임 차로 앞선 5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메테오스 팬들은 11년 만의 가을 야구 희망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불안감도 있다. 거기에 불만도 있다.
[시발 오션스 왜 아이언스한테 지고 온거임?]메테오스 팬들에게는 오션스의 승리가 기본값이었다. 최근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싹쓸이 승리가 당연하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후 메테오스와의 경기에는 다시 분위기가 처져야 했다. 지난 경기에서 아이언스를 잡아만 줬어도 조금 더 여유가 있을 텐데.
그런 마음이었다.
[저 새끼들은 진짜 도움이 안 되네]8월 25일과 26일, 오션스가 아이언스와의 두 경기에서 모두 이긴 것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졌었다. 야구 팬들은 원래 그렇다. 당장 오늘이 중요하다. 혹은 어제, 또는 내일 정도까지만.
[근데 우리 오션스랑 왜 이렇게 많이 남음?]메테오스와 오션스의 잔여 경기는 5게임.
이번 3연전을 치르고 나면 두 팀의 남은 일정은 시즌 최종전 사직 구장 경기다. 그것도 2연전.
일말의 희망을 갖자면 오션스가 선수단의 체력 보전을 위해 비주전을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걸리는 것은 있다.
민승기의 다승 기록이나 강건우의 최다 홈런 도전 같은 이슈가 걸린다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 오션스 단장은 최근 대외적으로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 시즌’을 노리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정규 시즌 우승이 확정되고 한국 시리즈에 직행한 상태라도 더 많은 승리와 더 높은 승률을 위해 온전한 전력으로 최종전에 임할 거라는 메테오스 팬들의 불안감이 컸다.
[오)져줄까?]└제발
└한번만 봐주라
└자연재해 동맹 동반 포시 진출 크
└봐주긴 뭘 봐줘 씨발 꺼져
└꼴션스 족밥새끼들 다 털어버릴라니까 짜지셈
순위표가 복잡하면 여기저기서 관광객이 몰리기 마련이다.
오션스 뿐만 아니라 아이언스 팬들도 왔다.
[아) 돌땡쓰들 꼴션스한테 줫나 처맞고 밑으로 꺼질듯ㅋㅋㅋ]└딱대라 고철새끼들 뒤진다 진짜
[아)양심적으로 너네가 포시 가는건 좀 아니지 않냐?]└솔직히 오션스가 가는 것도 좀 아니긴 함
└꼴션스 코시 직행 존나 아닌건 ㅇㅈㅋㅋㅋ
[아) 돌멩이 선발진으로 5위 싸움 하는거 이해 안되면 추천좀 ㅋㅋㅋㅋ]└3할 타자 2군에 처박고 5위 싸움하는 너희는 이해 되고?
└구건석 팝니다 제시좀
└송태웅 어떰
└아이언스 십새들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지랄났네 구건석에 송태웅?
[메테오스 10년차 팬인데 박용재 잘하는지 모르겠음 지가 그리 잘났으면 팀 우승 정도는 시켰어야지]└메테오스 10년차 팬이 박용재 잘하는지 모른다고? 분탕새끼야 제발좀
└박용재의 눈물 아이언스가 닦아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언스? 시팔 거기가서 피눈물 흘릴 일 있냐 ㅋㅋㅋ
└눈물은 소금물 아니냐? 오션스가 딱이네
└용재는 즙 안짜니까 다 좀 꺼져라
시즌 막판의 팀 갤러리는 세기말이나 마찬가지다. 오션스 팬이 아이언스 팬을 자처하며 싸움을 붙이기도 하고, 아이언스 팬이 메테오스 팬인 척하며 박용재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팬들의 싸움과는 관계없이, 어차피 경기는 선수가 한다.
오션스는 메테오스 3연전의 선발로 민승기-국민성-호세 킹을 예고했다.
원래 민승기 다음에 나서야 할 앤디는 대구에서의 엔진스 경기로 밀렸다. 중간 휴식일로 인해 민승기는 6일 휴식, 국민성은 5일 휴식 후 등판이다. 호세 킹은 4일 휴식 후 등판이 되는데 호세 킹의 강력한 요청과 국민성 다음 날 호세 킹의 위력이 배가 되는 것을 노린 감독의 로테이션 조정이 있었다.
어찌 됐거나 메테오스 에게는 악재였다.
몇 시즌 동안이나 최하위권에서 원치 않은 동거를 하며 묶였던 두 팀의 맞대결.
조롱 섞인 동맹 소리를 들으며 이상한 동지의식을 느꼈던 두 팀의 3연전 중 첫 경기에서 그 동지의식이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민-승-기이이이이잇!”
야구에서 그런 일은 항상 벌어지곤 한다. 어제는 친구고, 오늘은 원수가 되는.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민승기가 7회 2사 만루 위기를 벗어나는 삼진을 잡아낸 후 메테오스 홈구장 마운드에 무릎 꿇고 포효하는 것이 트리거가 됐을지는 몰라도, 그냥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었다.
게다가 경기가 온전히 끝난 후, 민승기는 자신이 무릎 꿇었던 마운드 사진을 SNS에 올리며 이렇게 썼다.
-도저히 질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