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4화(4/385)
사직 아이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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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앞으로 다가온 드래프트 회의가 한창인 부산 오션스 스카우트팀 회의실.
드래프트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분주한 이유는 단장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신인 드래프트 전략을 전면 재수정합니다.”
원래 목표였던 강건우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후, 오션스는 1라운드에서 유격수 유병성을 뽑기로 했었다.
이견이 없는 선택이었다. 강건우가 투타 모두에서 말도 안 될 정도로 빼어나서 그렇지, 유병성이라면 전체 1순위로 이름을 불리기에 손색없는 선수다.
전면 드래프트가 아닌, 지역 연고 우선지명제도로 드래프트가 열렸다면 둘 다 오션스가 구경도 못 할 선수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갑작스러운 단장의 회의 소집에 급하게 모인 프런트 직원들은 저 양반이 왜 이러나 했지만.
“단장님, 유병성 말고 다른 복안이 있으신지…”
자신감 넘치는 단장의 답변에 다들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션스는 전체 1순위 지명자로 강건우 이름을 부를 겁니다.”
“강건우요?”
“정말입니까?”
“성공하셨군요, 단장님!”
다른 단장들 사이에서 물단장으로 소문난 박준기였다.
외부에서의 평가도 그랬지만, 단장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부하 직원들도 많았다.
그런데 강건우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니.
사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단장은 잠시 말을 끊어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새선 안 됩니다. 원래는 당일까지 여러분께도 비밀로
하려 했지만, 믿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강건우를 뽑을 수 있다면, 다시 처음부터 전략을 짜는 게 맞는 일이었다.
강건우는 에이스이자 모든 수비 포지션에서 준수한 수비력을 보여주며, 현 아마추어 최고의 강타자이기도 하다.
모든 스카우트가 꿈꾸는 선수.
메이저리그 모 팀이 200만 달러 이상을 제시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우리가 강건우를 뽑으면 메테오스가 유병성을 뽑을까요?”
스카우트팀 직원의 말에, 회의실에 모인 모든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오션스가 강건우를 호명하는 순간 드래프트 회의장에는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즉시 전력감 대졸 좌완 이민호를 뽑을 가능성이 컸던 대전 메테오스는 유병성과 이민호를 짧은 시간 내에 저울질해 선택해야 한다.
그대로 이민호를 뽑을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팀은 기존에 정해둔 선수가 아닌 다른 선수를 뽑게 될 것이다.
어딘가에서 한 번 꼬이면 그 뒤로는 더 혼돈에 빠지게 될 터.
“이거 잘 하면…”
드래프트에서 정보는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다.
그런데 그걸 우리만 가지고 있다?
그날 드래프트 회의장에 모인 10팀 중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는 팀은 오션스 뿐일지도 모른다.
“정현덕, 송태웅, 노경우 중 하나를 2라운드에서 뽑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시뮬레이션 다시 해 보자고.”
박준기 단장은 갑자기 열의가 넘치는 직원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SMC가 도착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2억 원짜리 선물을 받고도 뒤통수를 치진 않겠지. 어찌 보면 일종의 보증금인 셈이었다.
SMC가 도착하면 다시 한번 강건우를 만나러 가볼 생각이었다.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은, SMC는 자료를 만들어주는 장비일 뿐 자료 해석이 중요한데 강건우가 그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였다.
“좋아요. 셋 중 하나 뽑는다고 치고 시뮬레이션해봅시다. 일단, 정현덕부터. 그래. 이 친구 뽑으면 그다음 선택은?”
물론 조금 신경이 쓰일 뿐. 크게 거슬리는 건 아니었다.
해달라는 건 다 해줬으니 자기 탓을 할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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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유리는 뜻밖의 선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이거 레이펙 거지? 신형이네?”
대학교에서 스포츠 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유리는, 내가 메이저리거로 뛸 때 내 개인 전담 컨디셔닝 코치였다.
지금은 대학생일지라도, 장래에 꽤 유능해진다. 날 전담해서 유명해진 것도 있긴 했지만, 미래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걸 샀어? 돈이 어딨어서?”
오션스가 빌려준 건데.
이 SMC를 놓은 사무실은 아버지한테 돈 빌려서 얻었고.
단장이 비밀로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긴 했지만, 유리한테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봐. 잘 들어봐.”
“뭔데뭔데. 로또라도 맞았어?”
“오션스에서 빌려준 거야.”
“오션스?”
“하나 달랬더니 사주더라.”
“진짜 오션스 가는 거야?”
“비밀인데, 가기로 했어.”
유리가 입을 못 다물고 있다.
“15억 준대.”
“15억?”
“응. 근데 드래프트할 때까지는 비밀이라네.”
“…내가 비밀을 지킬 수 있을까?”
엉뚱하지만 진지한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러고 보니, 유리네 가족들이 전부 오션스 광 팬이었다.
부모님들끼리 친하셔서 그런지 아버지가 파이러츠로 갈아탔을 때 장인어른이 배신자라며 호통쳤던 기억이 있다.
“글쎄.”
“봐봐. 건우야. 누나가 가족들한테 말하면 10분 내로 500명은 알게 될 거란 말이야.”
“설마.”
“맞아. 그건 아니지. 한 1,000명은 알 거야. 1,000명이 뭐야. 스포츠 뉴스란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그러고 보니 장인어른이 오션스 팬 카페 간부였던가?
처남이 오션스 갤러리 네임드 유저였고.
장모님 소싯적 별명이 사직동 쌍깃발이었다고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아, 근데 말 안 해주면 엄마랑 아빠랑 동생 놈이 나보고 배신자라고 할 텐데…”
시무룩한 유리에게, SMC를 두드리며 조금 농담을 섞어서 말했다.
“이거 비밀 유지 조건으로 받은 거야. 새나가면 도로 가져갈 수도 있어.”
“아, 생각해보니 우리 건우 미래를 위해서도 비밀을 지키는 게 낫겠다. 그리고 서프라이즈면 더 기뻐하지 않을까? 그치?”
아무래도 비밀은 지켜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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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온 후 알게 된 놀라운 점은, 이때의 내 신체가 너무나도 약하다는 거였다.
“후욱, 후우우.”
다행인 건, 난 내게 어떤 운동이 필요한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메이저리그 시절만큼 잔인하게 운동과 식단관리를 병행하진 않았다.
아직 뇌와 뼈가 완성되지 않았다. 조금은 유연하게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
학교 야구부는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기도 하고, 정말 오랜만에 본 야구부 선수들과 어색해서 좀 더 그런 느낌도 있다.
어릴 때도 그리 붙임성 있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주변 사람들을 잘 상대 안 해줘도 크게 이상하게 여기진 않는 것 같았다. 뭐, 이상하게 여겨도 별 상관은 없는 일이었지만.
학교에선 가벼운 수준의 훈련.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마다 개인 운동.
유리를 만나서 SMC를 활용한 폼 교정과 코어 단련.
모든 일과가 끝나면 아무것도 안 하고 풀파워 휴식.
자세는 완전히 몸에 익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리고 완성되지 않은 이 몸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어어. 팔꿈치 조금 떨어지는데?”
“다시 해볼게.”
온몸에 센서를 붙이고 동작 하나하나를 포착한다. 그리고 특정 부위의 근육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려주고, 그 자료를 분석하면 어느 시점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는지 알 수 있다.
“올. 우리 건우. 허벅지 힘 장난 아닌데.”
유리가 뽑아준 자료에 따르면, 왼쪽 허벅지에 과도하게 힘이 실린다.
투구도 그렇지만, 타격도 어디 한 곳에만 힘이 과도하게 들어가면 부상 위험도가 높아진다.
“다시 해볼게.”
20번 스윙 후, 평균치와 편차를 찾아내 조금씩 동작을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유리가 조금 지겨워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었다. 생긴 거랑은 다르게 천상 공대생이다. 본인은 공대생이 아니라 과학도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 같다.
어쨌거나, 기술적인 면에서 내 생각과 신체 반응의 갭을 줄여 밸런스를 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체력 단련도 마찬가지다. 적정한 선에서의 유산소 운동과 근력 향상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SMC를 활용해서 자세 교정을 어느 정도 하고 나면, 코어 단련을 위해 유리와 함께 필라테스를 하러 간다.
“와. 학교 갔다 와서 SMC, 그다음은 운동. 우와…핵건전…”
“누나가 소원 들어 달라며.”
“응? 누나? 소원? 다시 말해봐.”
“오션스 우승시켜 달라며. 우승시키려고 하는 건데 좀 널널하게 할까?”
“아,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하시나. 누가 싫대? 좋다 이거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장인어른을 만났다. 지금은 장인어른이 아니지만.
“안녕하세요!”
어릴 때로 돌아온 호르몬의 영향인지, 종종 힘이 주체가 안 될 때가 있다. 내가 먼저 발견하고 힘차게 인사하자, 유리 아버님은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이야, 건우. 유리. 너희 요새 매일 붙어 다닌다? 조만간 결혼도 하겠어?”
“아빠. 얘 아직 애거든?”
“맡겨주십시오, 아버님.”
“흐흣핫하, 애 아닌 거 같은데? 덩치 좀 봐라. 이게 어딜 봐서 애냐? 유리 너보다 30cm는 넘게 큰데.”
“무슨 30cm야? 그렇게 차이 안 나거든?”
“정확히 24.8cm 차이 납니다.”
“열받게 하지 마라…진짜…”
장인어른은 유쾌한 사람이다.
오션스에 관련된 것만 빼면.
아. 우리가 이혼할 때도 좀 그렇긴 했었지만.
“아버님.”
“오냐. 딸을 달라고?”
유리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예비 장인어른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저 오션스 갑니다.”
“뭐? 오션스? 오션스으으으?”
유리의 당황한 얼굴이 보인다.
“야, 강건우. 너 그거 절대 비밀이라며?”
“뭐라? 하이고오, 딸내미 키워봤자 소용 없다더니. 너 혼자 알고 있었냐?”
“비밀로 해주세요. 내일이 드래프트인데 발표 날 때까지만요.”
“오오오, 건우야. 물론이지. 메이저 간다고 해서 이 아저씨가 내심 얼마나… 당연히 진심으로 응원하긴 했는데, 오션스의 레전드가 되어다오. 응?”
“오션스 우승시켜드리겠습니다!”
“읏핫핫! 좋다! 기분이다! 건우야! 너네 아빠 나오라 그래라! 아저씨가 소고기 쏜다!”
저녁도 먹었고 운동까지 하고 왔기에 애써 거절했다.
대신, 내일 우리 가족과 유리네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회식하기로 했다.
“입 근질근질해서 죽을 거 같은데. 유리야. 이거 어쩌냐?”
“나도 죽을 뻔했어.”
“아빠한테까지 비밀을 지키다니. 우리 딸. 배은망덕하게 컸구나.”
티격태격하는 부녀를 엘리베이터에서 배웅하며 그냥 웃었다.
사람 냄새 나고 좋네.
그리고 우리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완전히 비밀이 지켜지지 않을 거라는 걸 눈치챘다.
“뭐라고오?! 건우가 오션스 간다고오?!”
사직동 쌍깃발.
예비 장모님의 목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뭐, 괜찮겠지.
인터넷 같은데 떠들만큼 분별 못 하는 분들은 아니니까.
“야! 정현수! 스마트폰 안 내려놔? 너 죽는다! 그새 인터넷에 글 쓰려고 했지?”
…유리가 알아서 잘 막아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