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01)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03화(303/385)
구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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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이 없다면 한국에서 야구는 일주일에 여섯 번 경기 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일상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근래에는 시즌 막바지다 보니 일정이 띄엄띄엄하긴 해도, 이번 주에는 총 다섯 경기의 일정이 있다.
일상과 밀접해 있는 만큼, 일상적인 사건이나 컨디션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메이저리그 시절에는 그런 것들을 조금 간과했었다. 간과했다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준비하고 경기하는 데 조금 더 집중했던 경향이 있다.
경기를 준비하는데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철저히 배제하려고 애썼고, 항상 같은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런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다. 하지만 그 시절만큼 집착하진 않는다.
예를 들자면, 경기를 여섯 시간 정도 남겼을 때 나는 내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 한다. 스트레스 속으로 날 몰아넣어 스스로 분노하는 거다. 주로 나에 대한 악플이나 날 비판하는 기사를 찾아보거나,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경기의 영상을 보며 그때 받은 압박감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단위로 서서히 압박감을 해소한다. 요가나 명상을 하고 날 칭찬하는 기사와 내 팬들의 댓글을 읽으며 구단에서 고용해준 ‘마음 관리사’와 대화했다.
마음 관리사는 특별한 건 아니었다. 그냥…아무 생각 없이 날 칭찬해주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웃으며 들어주는…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미친놈 같네. 그런 걸 해달라고 구단에 공식적으로 요구했었으니.
아무튼,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일상적인 행복감이 컨디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알게 됐다. 유리와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기쁜 감정을 느낀 후 몸이 더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때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오션스 선수들의 콩트 같은 대화를 듣고 있으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고 스트레스가 풀리곤 한다.
이어폰을 꽂고 힐링 음악을 듣는 것보다 귀를 열고 동료 선수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이 더 낫다.
“대한민국의 국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지한 표정을 한 석규 형의 질문에, 창열이 형은 잔뜩 짜증 난 얼굴로 배팅 글러브를 자기 라커에 집어 던지며 대답했다.
“존나 좋아, 존나. 진짜 개좋으니까 너도 지성 있는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으로 나한테 좀 쉴 시간을 주라. 어?”
“저는 그 국민성 말고 투수 국민성 이야기 한 건데요.”
“걔도 존나 좋으니까 저기 다른 애들한테 좀 물어봐라.”
석규 형, 처음 오션스 왔을 때는 여기서 계속 뛰었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들이랑 별로 교류 없이 혼자 지냈었는데.
1군에서 유일한 동기인 세완이 형도 조용한 타입이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KBO 최고의 양아치로 불리는 창열이 형 괴롭히는 것을 자기 취미로 삼은 것 같았다. 사실 소문보다는 같은 팀 선수들에게 친절한 타입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창열이 형이 질색하는 모습을 보고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못 하는 것을 보면, 저 사람이 어떻게 지금까지 참아왔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미 더 이룰 것도 없는 상황이고 상대 엔젤스는 시즌 막바지에 스퍼트를 올려 2위 파이러츠를 한 경기 차이로 추격해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 컨디션은 무지막지하게 좋다.
“왜 그렇게 쪼개고 있냐?”
“쪼개는 게 아니라 행복감을 즐기고 있다…뭐 그렇게 좀, 표현을 다르게 할 수도 있지 않냐?”
“종일 존나 쪼개고 있구만 뭐.”
나는 노경우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리의 애정 넘치는 편지를 읽고 기분과 컨디션이 하늘을 찌를 듯 좋아졌다는 말을 해봤자 이 무지한 두 발로 걷는 고라니는 이해하지도 못 할 테니 굳이 말해줄 생각은 없다.
그냥 나는, 시간을 거스르는 기적 속에서 오션스라는 팀에서 만나게 된 이후 우리의 전통적인 소통 방식을 따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글러브 챙겨라.”
“왜?”
“펑고나 좀 받자.”
“아까 했는데?”
“1초 전에 숨 쉬었으니 이제 숨 안 쉴 거냐?”
노경우는 투덜대면서도 글러브를 챙겨 나왔다.
내가 과거로 돌아온 일의 최대 수혜자는 분명히 나겠지만, 노경우도 엄청난 이득을 보지 않았을까?
원래의 노경우는, 그러니까.
안타 잘 치고 발도 빠르긴 한데, 코너 외야에서도 수비력 부족하다고 욕먹던 선수였다.
게다가 발은 빠른데 뛸 때 안 뛸 때를 구분 못 해서 주력에 비해 도루 성공률도 낮았고, 풀스윙으로 일관하는 것 치고는 홈런 숫자가 부족하기도 하다면서.
KBO에 대해 잘은 모르던 나도 노경우가 어떻게 욕먹는지는 알 정도였다.
다른 건 몰라도, 같은 타격 능력을 가졌다면 코너 외야수와 2루수의 가치는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 나중에 노경우가 야구로 부자가 된다면 내게 감사하는 마음을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아! 그만! 죽겠으니까 그만!”
…지금은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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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 야구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션스와 엔젤스의 시즌 14차전 경기.
이번 시즌 승부수를 띄우기로 한 엔젤스는 공격적인 트레이드로 윈나우를 선언했었다.
워낙 오션스가 막강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지라 일부 팬들은 왜 정규 시즌 우승 가능성도 거의 없는데 유망주 다 넘기면서 전력을 보강하느냐고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확실히 몇 건의 트레이드 이후 엔젤스는 강력해진 모습이었다.
일발 장타력 있는 우타 1루수.
호타준족에 수비까지 리그 최고 수준인 우타 중견수.
최고 156km/h의 강속구를 던지는 국가대표급 마무리 투수.
세 선수를 영입한 후 파이러츠의 턱밑까지 바짝 쫓아오는 성적을 본 엔젤스 팬들은 더 일찍 했으면 오션스와 1위 싸움을 했을 거라고 구단을 욕하기도 했다.
엔젤스와 오션스는 일부 비슷한 점이 있다. 1990년대에 마지막으로 우승했고, 열성적인 팬들을 많이 보유했다는 부분이다.
어떤 팬들은 팀이 어찌 됐건 욕을 해댄다. 어쩌면 그게 팬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엔젤스 팬들은 부산 원정 두 경기 모두를 잡아내 2위 자리를 빼앗고, 플레이오프에서 이긴 후 한국 시리즈에서 오션스를 잡아내며 35년 만의 우승을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솔직히 엔꼴 코시 존나 땡기지 않냐? 그러니까 강건우 라인업에서 빼주라]└그럼 뭐해줄건데?
└신수환 공짜로 드림
└꺼져
신수환은 몇 시즌 전 오션스가 트레이드로 영입을 희망했던 포수다. 올 시즌 1군 성적은 타율 0.114에 1타점. 엔젤스는 신수환의 대가로 양대근을 요구했었다.
상대전적에서 밀리긴 하지만 엔젤스 팬들은 ‘엔꼴라시코’의 의외성을 믿고 있었다. 종종 두 팀의 경기는 누가 더 잘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팀이 더 미친 짓을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곤 했다.
[아 그냥 한번만 봐줘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야 차라리 니가 낫다
└그래서 봐줄거임?
└ㄴㄴ
└족같은놈들
팬들의 말이야 어찌 됐건, 엔젤스 선수들은 최근의 상승세가 운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했다.
1회 초, 올 시즌 14번의 승리를 거둔 국민성을 상대로 엔젤스가 선취점을 뽑아냈다. 타격 달인이라 불리는 송병재가 2루타를 치고 나갔고, 트레이드로 데려온 1루수 정기백이 적시타를 때려냈다.
물론, 앤디 가필드가 항상 장의사라 표현하는 국민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회 초에 트레이드의 결과물인 중견수 김대현에게 솔로 홈런을 맞아 추가 실점을 내주긴 했지만.
엔젤스 선발 투수로 놓칠 수 없는 경기를 맡은 로버트 코반은 굉장히 잘 던져 주고 있었다. 특히 1회 말 1사 1루에서 강건우를 삼진으로 잡아낸 장면은 엔젤스 팬들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감을 선사했다.
[코시에서 보자 십새들아]└아까 한 번만 봐달라던 그 새끼 아님?
└좆건우 삼진 먹는거 보고 내 안의 작은 아이가 깨어낫다 시벌롬들아
└성지예감)이새끼 1시간 내로 한번만 봐달라고 다시 말하러옴
그리고 이 예언은 적중했다. 배영한이 안타를 치고 나간 후 강건우의 동점 홈런이 터졌다. 스코어 2대 2.
아까 삼진을 잡아냈던 결정구 커브를 다시 던졌으나 강건우는 같은 공에 두 번 속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지이이이익도오오오오오오오오] [61호 ㅋㅋㅋㅋㅋㅋㅋㅋ] [전국 외국인노동자 협의회는 외노자 괴롭히는 강건우의 퇴출을 기원합니다] [본인 집 양산인데 베란다에서 보면 홈런 타구 날아가는거 흐릿하게 보임] [저새끼 아까 삼진 한 번 잡았다고 또 잡을 수 있을줄 알았나본데 ㅋㅋㅋㅋㅋㅋㅋ] [마 엔젤스ㅋㅋㅋㅋㅋㅋㅋ코시 오기 쉽지 않다 분발해라] [한 번만 봐주세요 형님들 아깐 제가 실수했습니다] [킹건우 시즌 61호.gif]그래도 경기가 단번에 기울진 않았다. 로버트 코반은 오션스의 강력한 좌타자들을 상대로 훌륭한 피칭을 선보였고, 위기에서 병살도 유도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들에게 문제는 국민성이 2실점 이후로 출루조차 허용하고 있지 않다는 부분이었다. 국민성의 땅볼 유도 능력과 강건우의 탄탄한 수비 능력은 엄청난 시너지를 선보였고, 오늘 경기 전 펑고를 두 배로 받은 노경우도 수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이시욱은 한 번 실수해서 강건우에게 ‘야이…노루…형…’소리를 들은 뒤로는 바짝 독이 올라 꽤 잘 잡아냈다. 강건우에게 한 소리를 들은 것 외에도 인터넷에서 엔꼴라시코의 전통을 이을 적자라느니 저 새끼가 역시 범인이었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역시 강건우였다.
따아아아아아악-!
강건우의 61호 홈런이 터지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건우야! 건우야! 돌겠네 진짜! 강건우우우우!”
한 경기 두 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시즌 62호를 외야로 날려 보낸 강건우는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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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실수입니다.”
엔젤스 박재정 감독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아차 싶어서 목소리 톤을 높였다. 기죽은 모습을 선수들에게 보여주기는 싫었다.
“선발 공이 워낙 좋아서 그냥 붙어버리라고 싸인을 냈는데, 아무래도 이런 건 벤치의 판단 미스로 봐야겠죠. 로버트는 잘 던져 줬습니다.”
정면돌파를 택한 것은 감독 본인이 맞았다. 엔젤스 내부에서는 어차피 강건우를 피하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한국 시리즈에서 만날 것을 대비해 그냥 붙어버리자는 결론을 도출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대실패였다. 시즌 61호와 62호 기록을 동시에 내주고 말았고, 팀은 패배했다.
그나마 파이러츠가 같은 날 엔진스와의 맞대결에서 패배해서 1경기 차이는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엔진스와 동률이 되어 3위 자리도 살짝 위험해진 상태.
“내일도 정면승부를 지시하실 건가요?”
작전을 노출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못하다. 박재정 감독은 꽤 언론 친화적인 사람이지만, 조금 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 투수진은 누가 상대라도 이겨낼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조금 더 심사숙고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네요.”
“한국 시리즈에서 강건우 선수를 상대하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하실 건가요?”
입을 다물고자 했던 박재정 감독의 결심이 조금 흔들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시리즈에서 오션스를 상대하게 됐을 때를 염두에 두고 정면 승부를 지시했습니다만…예. 한국 시리즈에서는 누가 얼마나 잘 할 줄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럴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계속 이야기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안다. 강건우가 멀티 홈런을 친 것은 꽤 오랜만이다. 그간 꾸준히 홈런을 때려오긴 했지만, 한 방 맞고 나면 투수든 감독이든 질려서 피해 가는 피칭을 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스포츠 뉴스 탭은 강건우의 61, 62호 홈런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엔젤스 감독의 인터뷰로 인해 그 정면승부가 벤치의 지시임이 드러났고, 엔젤스 감독을 조롱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절대 엔젤스 감독의 잘못은 아니다. 특히 첫 이닝에 삼진을 따냈으니 충분히 그런 지시를 내릴 만도 했다.
하지만 야구는 결과론적인 스포츠다. 그리고 박재정 감독은 다음 날 다시 정면승부를 지시하며 여론이 뒤집히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강건우를 막아내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다 뒤집힐 것이다.
정면승부를 선택한 엔젤스의 뚝심.
박재정 엔젤스 감독, ‘피해 가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엔젤스 투수진의 힘, 오션스의 유일한 대항마?
이런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하며 맞이한 1회 말.
따아아아아아아악-!
선취점을 기록하는 강건우의 거대한 타구, 시즌 63호.
어쩌면 저 63호 홈런 타구가 63빌딩만큼이나 높이 날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박재정 감독의 머릿속에 오션스 외국인 감독의 얄미운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지고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경기 전에 상상했던 즐거운 헤드라인이 아닌, 끔찍한 헤드라인들이 떠올랐다.
엔젤스 감독의 아집, 2위 추격 기회를 날리다.
엔젤스 팬들, 경기 후 선수단 버스 막고 청문회 요구.
2위로 올라설 기회를 날리고 4위로 내려앉은 엔젤스.
강건우의 홈런 쇼로 끝난 ‘엔오라시코’
이틀 연속 엔젤스 외국인 투수들을 울린 강건우, 엔젤스 팬들도 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