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07)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09화(309/385)
각본 없는 드라마 -2-
#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의 세 자릿수 승리도 대단한 기록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심심찮게 나오는 기록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의미가 있는 기록이다.
하물며 그런데,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KBO에서 100승이라.
지금의 오션스는 메이저리그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팀이 되어버렸다.
KBO 역사상 최악의 팀에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팀이 되기까지 고작 2년이 걸렸다.
물단장 박준기는 어느새 천재단장이 되어 있었고, KBO에서 쫓겨나다시피 하고 수비 코치로 메이저리그로 돌아갔을 휴 브레드먼은 빅리그 팀의 감독 후보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오션스와 메테오스의 시즌 최종 2연전이 펼쳐지는 사직 야구장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몰려왔다.
“홈 팀의 2번 타자 저 친구, 예전에 레드삭스에서 관심을 가졌던 선수지?”
“맞아. 그런데 본인이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없었지. 1번으로 나서는 저 타자는 기억 안 나?”
“글쎄…세오? 흠. 모르겠는데.”
“자네가 30만 달러를 제시했던 그 외야수야.”
“오. 그랬었나?”
현재 오션스는 101승을 기록하며 KBO 역대 최고의 팀임을 스스로 증명했고, 메테오스는 70승 3무 69패로 가을야구 진출권 끄트머리인 5위에 위치해 있었다.
6위 아이언스는 69승 3무 70패.
리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에슬레틱스는 속 좀 쓰리겠어.”
“속만 쓰리겠나?”
스카우트들이 웃었다. 강건우는 갑자기 계약 불가 방침을 그냥 통보했고, 에슬레틱스는 KBO에서 OPS 1.5를 넘기는 타자를 놓치게 됐다. 거기에 퍼펙트 피처이기도 하고, 0점대 평균자책점의 클로저이기도 하니 더더욱 속이 쓰릴 것이다.
“그나저나, 4번 스윙 봤나?”
“봤지. 자네 팀에서 노리나?”
“글쎄. 우리 팀 1루수가 누군지 알잖나. 그래도 2~3시즌 정도 쓰기엔 괜찮을걸.”
“평가가 박하군.”
“더 잘할 거라 보나?”
“저런 타자는 조금 더 늙어도 제값은 해. 물론 자네 팀 1루수를 생각하면 당연히 필요는 없겠지만.”
“그럼 내가 양보하지.”
“양보는 무슨. 누굴 보러 왔는지나 이야기해줘.”
“앤디 가필드.”
“흠. 좋은 투수지.”
“3~4선발 정도는 가능할 것 같더군. 우리만 노리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3선발 투수를 데려갈 기회니까.”
앤디 가필드는 13승 5패 평균자책점 2.87을 기록 중이다. 확실히 오션스의 101승에 큰 힘을 보탰다.
평균자책점 1.98에 21승 3패의 민승기.
평균자책점 2.95에 15승 7패, 국민성.
KBO 역사상 최고의 선발 트로이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건우는 말할 것도 없고 민승기도 아쉬웠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계약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물론, 민승기는 어지간하면 오션스와 계약했을 테지만 말이다.
“이번 2경기에서 메테오스에서는 그 투수, 박이 안 나와서 아쉽네.”
“난 어제 보고 왔지.”
“제기랄. 바이킹스의 킴을 보느라 놓쳤어. 좀 어때 보이던가?”
“자네부터 말해.”
“하나씩 할까?”
“좋지.”
“슬라이더가 더 좋아졌어. 이제 세 종류로 나눠서 던지더군. 자네 차례야.”
“피칭 동작에서 하체 중심 이동이 상당히 좋더군.”
“너무 추상적이야.”
“인정하지. 확실한 건, KBO 탑 레벨 선수들의 수준이 더 높아졌다는 거지.”
“여기에 무슨 일이 있었나?”
조금은 미스테리한 일이었다. KBO에서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은 MLB에서 경쟁력이 있다.
물론, 그냥 리그에서 가장 잘 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리그의 수준을 뛰어넘는 선수는 경쟁력이 아니라 거기서도 족적을 남긴다.
김권종이나 박용재 같은 투수들에게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으나, 올 시즌 그들은 더 발전했다. 어쩌면 그들의 몸값이 더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민승기는 냉정하게 그들의 아래로 평가하는 구단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판단이, 한국인 선수에 관심 있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실수라고 평가될 정도였다.
스카우트들은 강건우가 과거로 돌아온 것이 리그의 대표 격인 몇몇 선수들을 바꿔 놓았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리그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리그의 상식을 파괴하는 강건우는 메이저리그로 가려면 아직 5시즌을 더 뛰어야 한다.
이 구장을 찾은 스카우트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그 사실이었다. 저 친구가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건우 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야구 인생에서 다시 보기 힘든 선수임은 확실했다.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을까 싶을 정도다. 에슬레틱스도 강건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긴 했으나, 저 정도로 평가하진 않았다. 그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고등학생 강건우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과거로 돌아오지 않았던 강건우의 것이었으니까.
물론, 강건우도 민승기와 마찬가지로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메이저리그가 아닌 KBO의 오션스를 선택할 테지만.
그게 다른 이유라 할지라도.
#
정규시즌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별개로, 포스트시즌에서 정규시즌과 같은 경기력이 꼭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메이저리그에서의 경험을 떠올리지 않고 작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우리는 플레이오프에서 바이킹스를 상대로 그럭저럭 끈질긴 모습을 선보였으나, 한국 시리즈에서는 달랐다.
1992년 이후로 우승이 없는 팀.
심지어, 1999년 이후 첫 한국 시리즈 진출.
몇몇 선수들의 스윙은 한없이 커졌고, 수비할 때 발이 땅속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전 포수의 부상 이후 투수들은 낙차 큰 브레이킹 볼 던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다.
상대 투수는 내게 볼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상태로 4승 3패까지 간 것조차 기적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다르기를 희망한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공 잡을 때 글러브를 위로 살짝 꺾으면서 잡으시거든요.”
“제가요?”
“네.”
“아닌데.”
유리는 노루 형이 우기자 영상을 틀어 수비 모습을 보여줬다.
“아니, 왜 계속 같은 장면 반복을…”
“전부 다른 장면인데요?”
“아하.”
“송구가 부담되시는 것 같은데, 어깨 정말 좋으니까 차분히 잡고 던지시면 됩니다.”
유리는 어떨 때 보면, 노루 형에게 꽤 냉정하다. 노루 형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지만, 평소 유리의 노루 형에 대한 평가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냥 웃음만 나온다.
썩 좋진 못했었지.
어쨌거나, 일은 일이다…그런 느낌이긴 해도, 차갑게 말하면서 냉정하게 일하는 유리의 모습은…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음, 그게, 꽤 섹시하다.
정겹게 말하면서 선수를 돕고 싶어 안달 난 유리의 모습도 좋지만, 저런 모습 또한…
“니는 뭐 좋다고 그래 변태같이 웃고 있노? 행님 욕 먹는 게 그리 좋나?”
좀 변태같이 웃었나…?
어쨌든, 모든 걸 마무리 해야 하는 시점에서도 발전하려고 하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형.”
“어.”
“오늘 글러브 들고 잡으면 욕할 거에요.”
“완전 부부폭력배네, 부부폭력배.”
“제가 언제요?”
유리의 말에 노루 형이 코를 먹으며 대답했다.
“언어 폭력도 폭력입니다…”
“누나는 맞는 말만 했는데요.”
“애인 없는 사람 서러버서 살긋나…”
“그럼 만드시던가.”
유리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노루 형은 어지간한 장난은 다 받아주는 호인이다. 유리도 노루 형을 싫어하지 않는다.
“소개 한 번 시키주고 말씀하시면 고맙겠는데요.”
“소개요?”
“예.”
“30홈런 달성하면 생각해볼게요.”
“건우야. 들었제. 니가 증인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듣고 싶은 대로 해석하곤 한다.
생각해보겠다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메테오스는 이 남은 두 경기에서 국가대표 언더 투수 홍정수와 시즌 중간에 교체되어 평균자책점 3.24에 5승 6패를 기록하고 있는 외국인 투수 조셉 라이언을 등판시킬 예정이다.
노루 형은 시즌 홈런 28개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팀은 앤디와 승기 형을 내보낸다.
승기 형은 자기가 최종전에 꼭 등판해야 한다고 바락바락 우겼다고 한다. 뭐, 한국 시리즈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으니까 별 상관은 없지만.
“형. 홍정수한테 홈런 칠 수 있어요?”
“마. 때리야지.”
“그게 때린다고 때려져요?”
“건우야.”
“예.”
“정 코치님 친구들이 그래 이쁘다던데.”
“예?”
“갱우가 말해줬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유리를 바라보자, 유리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음.
우리 누나 맨날 야구만 보러 다녀서 친구 별로 없는데…
#
메테오스는 확고한 접근법을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남은 두 경기에서 1승만 거두면 가을야구가 확정된다. 하필 그 두 경기가 오션스 전이라는 것은 좀 짜증 나는 부분이긴 했다. 올 시즌 상대 전적이 2승 12패. 진짜 밑도 끝도 없이 탈탈 털렸다.
어제 등판했던 박용재와 내일 등판할 조셉 라이언을 제외하고는 전원 불펜 대기다.
사실, 2경기 모두 패하더라도 아이언스가 남은 두 경기에서 모두 지면 가을야구를 할 수 있다. 그래도 야구는 어찌 될지 모른다.
당장 내일이 되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일각에서는 승률이 동률을 이뤄 타이 브레이커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메테오스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수야.”
“용재 형.”
오늘 선발인 홍정수와 에이스 박용재는 1살 차이다. 둘은 원래부터 유대 의식이 있었다. 9-9-10-10-10이라는 역사를 함께 관통했고, 아무리 잘 던져도 패전만 쌓던 슬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조금 달라진 부분도 있었다. 예전만 해도 박용재는 홍정수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었다.
감정 이입하지 마라. 우리만 힘들다. 그냥 내가 잘 던지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 실책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해라. 어차피 평균자책점은 안 올라간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가을 냄새라도 좀 맡아보자.”
놀라운 변화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박용재가 강철 멘탈로 보였을지 몰라도, 홍정수가 보기에 박용재는 이기고 싶은 열망을 감춰온 사람이었다.
상처받기 싫어서, 괜히 혼자 열 내면 상처받을까 봐.
꼭 이겨서 그러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 했다. 이런 경기에 형이 던져야 한다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다.
“최선을 다할게.”
야구는 꼭 이기고 싶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부담감이 어깨를 조금 짓누른다. 그 말에 박용재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거면 되는겨.”
오늘 싱커가 잘 떨어지면 좋겠다.
그래서 오션스 좌타자들을 잡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강건우의 타구가 날아가더라도 펜스 앞에서 멈춰 줬으면. 타자들의 타구가 강건우를 피해서 안타를 만들어내고 점수를 충분히 뽑아 줬으면.
“용재 형.”
“엉?”
“어떻게 던지면 될까?”
복잡한 질문이다. 그래도 박용재는 그 질문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너 잘 던지잖어. 그냥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막 던지면 되는겨.”
“그러다 지면?”
“담에 잘 던지면 디야.”
박용재가 웃었다. 홍정수는, 박용재 본인은 그렇게 못 하면서 다른 선수들에게 저렇게 말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알겄어.”
박용재의 사투리를 따라 하자 박용재가 익살맞게 웃었다.
오늘 져도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져도 올라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꼭 이기고 싶었다. 이 경기장에 있는 두 팀의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말이다.
#
앤디가 1회 초를 1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창열이 형과 영한이 형이 아웃당해 물러났다.
체력적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야구 선수로 완전히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션스에서는 노장 축에 속하기도 하고…뭐,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실, 상대 팀도 죽어라 달려들고 있으니 쉽지는 않다. 메테오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경기니까 더더욱.
“강-건-우우우우! 강-건-우! 강건우! 오션스 강건우-!”
“갱! 건! 우!”
기본 응원가가 들리고.
“건우야!”
“유리 누나가!”
“쌔리 넘가 뿌란다!”
유리 누나를 팔아서 응원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큭큭큭 강건우…”
“큭! 큭! 큭! 강! 건! 우!”
…큭큭큭 강건우도 들린다.
어쨌든, 홍정수는 좌타자를 잘 잡아내는 특이한 언더 스로우 투수다.
아무래도 저 싱커의 역할이 크다. 국가대표급 외야수 둘을 땅볼로 돌려세운.
우투좌타 타자가 많은 환경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유격수 유병성의 수비력도 꽤 일취월장해서 홍정수를 돕고 있다.
승패가 관계없는 상황에서, 치열하게 달려드는 상대 팀에게 승리해야 하는가.
누군가에게는 딜레마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아니다.
글쎄, 어쩌면 상대 팀이 좌절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악취미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는, 모든 경기에서 이기길 원하는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프로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홍정수의 초구는 볼이다.
휘두를까 하다가 내버려 뒀는데, 존 밖으로 살짝 빠져나가는 슬라이더. 각이 좋지는 않다.
볼넷을 준다면 60도루를 채울 것이다. 정면승부 해온다면 홈런 숫자를 늘려도 좋다.
2구, 스트라이크.
몸쪽 낮은 싱커가 존에 꽉 차게 들어왔다. 과감한 승부일지 실투일지.
배트를 쥔 손에 힘을 강하게 주고 다음 공을 기다렸다. 투수가 공을 던졌고, 비슷한 코스로 보인다.
몸쪽 낮은.
예상대로라면 더 꺾일 테고.
날숨에 멈춘 채 스윙한다. 생각보다 조금 더 낮다. 그래도 맞혔다.
따아아악-!
공은 높게 떴다. 하지만 발사 각도가 크다.
이런 타구는 크기에 비해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그래도 강하게 맞힌지라 타구가 큰 아치를 그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팬들은 홈런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단, 나는 달렸다. 펜스 가까이 날아가고 있다.
“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런데, 메테오스로 트레이드되어 건너가 빠른 발로 돌풍을 일으킨 김지호가 펜스를 옆에서부터 달리며 밟고 점프했다.
사직의 펜스는 높다. 펜스를 넘기지 않고 직격하며 떨어질 타구였다.
김지호가 오션스에서는 보여준 적 없었던 집중력을 발휘해 높게 점프해서 잡아내고는 외야 그라운드를 데굴데굴 구르더니, 글러브에서 소중하게 공을 꺼내고는 포효했다.
“아웃!”
누구나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있는 법이다.
아무래도, 메테오스도 그냥 경기장에 나오진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