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08)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10화(310/385)
각본 없는 드라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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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팀의 벤치에는, 그 팀을 상징하는 에이스가 앉아서 팀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박용재는 메테오스 암흑기의 기둥이었다. 자조 섞인 의미로 본인들이 응원하는 팀을 ‘행복 야구단’이라고 부르는 메테오스 팬들이 한때 거의 유일하게 승리를 바라던 투수이기도 했다.
민승기는 이번 시즌이 고작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오션스 팬들 마음속의 1번 선발 투수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오션스 팬들은 밈에 가깝게 이훈을 응원했지만, 지금은 뒤로 물러난 김정용이 한때 그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두 투수는 다르다.
박용재는 정교한 제구력과 일관성이.
민승기는 강력한 구위와 스타성이 있었다.
그리고 두 투수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올 시즌에 발전을 이끌어냈다.
민승기에게 부족했던 꾸준함과 박용재에게 찾아볼 수 없었던 열정.
강건우가 과거로 돌아온 것이 두 사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방식은 달랐다. 박용재는 강건우를 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고 팀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됐으며, 민승기는 강건우를 통해 더 완벽해져야 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팀을 이끄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지만.
민승기는 온전히 팬의 입장에서 이 경기를 응원하고 있었고, 박용재는 가을 야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박용재는 어제 등판했다. 감독이 나름대로 승부수를 걸었다.
애당초 오션스전 등판이 유력했으나, 박용재를 내더라도 오션스 전에서 승리할 거라는 장담을 할 수 없기에 메테오스 정태구 감독은 어제 경기였던 엔젤스 전에 박용재를 등판시켰다.
5위로 올라가면 4위 팀과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 한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4위 팀이 극히 유리하다. 5위 팀은 2승이 필요하고, 4위 팀은 1승 혹은 무승부 한 번만 해도 통과다.
만약 포스트시즌 진출 자체가 실패하면 감독은 감당할 수 없는 비난을 받게 되겠지만, 이게 옳다고 결론지었다. 아이언스와의 타이 브레이커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두 경기의 첫 번째 경기가 끝났을 때.
박용재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사직 야구장 그라운드에서 서로 껴안고 기뻐하는 메테오스 동료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첫 타석에서 홈런이 될 뻔한 타구를 날렸던 강건우는 2안타 1볼넷 1도루 1타점 1득점으로 맹활약했으나, 메테오스는 승리했다.
팀의 승리였다. 선수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오션스의 강력한 불펜을 무너뜨렸다.
어쨌든, 어제만 해도 박용재를 오션스 전에 안 내보낸다고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던 정태구 감독은 이 승리로 인해 메테오스 팬들에게 세계 최고의 명장 반열에 올랐다.
물론, 아이언스가 다른 구장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메테오스 팬들은 메테오스 선수들이 다음 날 경기에서 오션스를 상대로 연승을 거두고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하면, 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인 정태구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으니까.
[야간 예배 시작합니다]-찬양해 빛태구
└합니다 라고 정정해라 씹새끼야
└님 자는 어디 팔아 처먹었냐?
└빛동님 존경합니다
└원래 빚동 아니었음?
└빚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뒤지고싶냐?
예전에 메테오스 팬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인터뷰로 빚동님이라는 별명이 붙은 정태구 감독이었다.
여느 야구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경기에서 많은 홈런이 터지면 빅볼을 구사한다고 빅동님이 되고 어이없는 실책으로 패배하면 빅똥님이라 불렸다.
메테오스 갤러리는 얼마만의 가을 냄새냐며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패배한 오션스 팬들은, 이겼다면 너희가 무슨 가을 야구냐고 집에서 오션스 우승이나 보라고 놀려댔겠지만, 졌으니 쿨한 척을 하고 있었다.
물론, 오늘 이겼다면 이런 글은 아이언스 갤러리에 가서 썼을 것이다.
그리고 메테오스 팬들의 행복회로가 돌아가는 부분은 또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맹활약한 강건우의 타율이 0.400이라는 점.
내일 경기에서 삐끗하기라도 한다면 4할 타율이 깨진다. 물론 도루 두 개만 추가한다면 60-60이 될 수 있지만, 오늘 경기에서 강건우는 도루에 집착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강건우가 없으면 정말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실, 강건우의 성적 자체가 완전히 비현실적이긴 하다. 홈런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솔직히 4할은 좀 욕심나지 않을까? 60-60도 좋은데 4할타율은 ㄷㄷㄷㄷㄷ]이런 글이 올라오자, 쿨한 척하던 오션스 팬들이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댓글을 달았다.
└60-60은 세계 최촌데;
└4할에 60-60동시에 할 수도 있음
└왜 내일 출전하면 4할 깨질거라 생각함?
└갓건우가 그리 겁나냐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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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우…”
앞에 큭큭큭이 없다. 그렇다고 따흑흑도 아니다.
감독님과 면담 후 나왔는데 승기 형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 아마 감독님과 비슷한 말이겠지.
“오늘 선발로 나갑니다.”
내 대답에 승기 형이 웃었다.
“그래. 기록에 연연해서 피했다가는 네 놈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기록에 연연한다?
감독님은 이 최종전에서 승기 형을 등판시키지 않고 어린 선수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었다.
“형은 기록에 연연해서 등판하는 거 아니에요?”
뭐, 아직 그럴 때는 아니지만, 후배들에게 기회를 준다…그런 의미로 한 경기 정도 쉬는 것도 괜찮았을 거다.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다. 휴식을 취하는 것이 결론적으로 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아니 뭐 그런 건 아니더라도.”
“기회는 자기가 따내는 거지 누군가에게 양보받는 것이 아니다, 강건우…!”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아무튼, 나는 오늘 선발이다. 4할 타율이 깨져도 상관없고, 60-60이 안 되더라도 괜찮다.
“어쨌든, 마지막까지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니 내게 잘 배웠구나.”
누가 누구한테 배워?
“아뇨.”
“부끄러운가?”
“그냥 팬들이 저 보러 오니까 경기 뛰는 건데요.”
“팬들은 나를 보려고 티켓을 산다, 강건우.”
틀린 말은 아니다. 승기 형의 티켓 파워도 대단하니까. 쓸데없는 말다툼 하기 싫어서 그냥 튀었다. 뒤에서 큭큭큭 강건우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오늘 홈런 더 치라고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거 아니라니까. 아무도 안 믿는다.
시즌 최종전은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를 몰고 온다.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거다. 마지막 경기에서 온전히 집중력을 발휘하긴 쉽지 않다.
“유리 누나.”
“팔꿈치가 살짝 벌어졌거든요. 체력 문제도 있을 수 있고, 회복 훈련 위주로 하면서 계속 체크해보도록 할게요. 응, 건우 왔어? 누나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어제 좀 안 좋았던 불펜 투수 정혁이 형과 이야기 중이다. 어쩔 수 없지. 일하는 중이니까.
나는 100% 수긍했다. 정말이다. 아무래도 저런 문제는 바로바로 짚어주고 고쳐줘야 한다. 다 이해한다.
그러니까, 분석실에서 나오는 날 본 노경우의 말은 아마 오해일 것이다.
“표정이 왜 비 홀딱 맞은 똥개 같냐? 코치님한테 뭔 소리라도 들었냐?”
아니거든. 진짜로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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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우의 선발 출전에 대해 두 가지 전망이 있었다. 4할 타율 유지를 위해 오늘은 출전하지 않을 것이다, 혹은 60-60 달성을 위해 무조건 뛸 것이다.
-선발 명단에 강건우 선수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 선수 자신감이 대단한 선수거든요. 그리고 그것보다는, 굉장히 역설적이긴 합니다만, 기록에 딱히 연연하지 않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많은 것들이 결정지어질 날이었다.
이미 결정된 오션스의 우승이나 엔젤스의 4위, 그리고 7위 이하 팀들의 시즌 종료 같은 것들도 있지만.
0.5게임 차이로 마지막까지 2위 자리를 두고 다투게 된 파이러츠-엔진스나 1경기 차이로 아직 5위가 확정되지 않은 메테오스-아이언스의 순위가 정해지지 않았다.
또 다른 이슈는, 엔젤스-오션스-아이언스의 사상 최초 동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었다.
엔꼴철이 함께 가을 야구를 하면 대한민국이 폭발한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성적과 별개로 이 세 팀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인기 많은 팀이다.
그리고 오션스와 메테오스라는, 2020년대 꼴찌의 대명사 같은 두 팀의 동반 포스트시즌 가능성도 그렇다. 물론 오션스는 지난 시즌 2위로 잔혹사를 끊어냈지만, 그래도 야구 팬들의 머릿속에 9위와 10위는 이 자연재해 동맹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튼, 볼거리 많은 최종일이었기에 KBO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민승기는 어제와 다르게 등판을 준비하면서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박용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벤치에 앉아서 조금은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개막전과 시즌 최종전…’
민승기가 눈을 살짝 감았다.
막연히 꿈꿔오던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상징적인 경기에 자신이 마운드에 서고 있다.
‘이제 남은것은…’
하나뿐.
‘한국 시리즈.’
감았던 눈이 번쩍 뜨인다. 한국 시리즈의 첫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고, 팀이 고난과 역경을 겪는 가운데 자신이 등판해서 결국 결정적인 승리를 따낸다면?
그리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약간 과부하가 걸린 어깨를 부여잡고 올라와 세이브를 기록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4전 4승의 압도적인 승리도 괜찮다.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구세주가 되는 것 또한 훌륭하지 않겠는가.
박용재는 5위로 올라간 팀이 높은 곳까지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기뻤다.
메테오스와 함께, 어쩌면 자기 손으로, 최하위를 맴돌던 팀을 여기까지 이끌었다는 점이.
더 욕심도 난다. 더 잘 하고, 오션스처럼 승승장구하고 싶었다.
5위로 올라간다 하더라도 더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될 것이야 있겠는가. 어떻게든 꾸역꾸역 올라간다면 얼마나 기쁠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어쩌면 울어버릴지도 모를 것 같았다.
어쨌거나,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진 못할 경기 시작 시각이 다가왔다.
1회 초. 민승기는 마운드에 서서 사직을 가득 메운 관중들을 향해 네 번 인사했다. 박수가 쏟아졌고 민승기의 커브도 쏟아졌다.
타자들은 자진해서 특타를 실시했지만, 6일을 휴식한 데다가 경기에서 의미를 찾은 민승기의 공은 절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33세 좌완 용병 조셉 라이언은 194cm의 장신에서 내리꽂는 강력한 구위와 마이너리그, 대만, 일본을 두루 경험한 베테랑이다.
1회 말에 조셉 라이언은 서창열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것도 단 공 3개를 던져서.
“우와! 조셉!”
“공 죽인다!”
메테오스 벤치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서창열 같은 끈질기고 까다로운 타자를 저렇게 쉽게 처리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2번 타자 배영한을 상대할 때는 4구째 포심이 빗맞아 안타가 나와버렸다. 배트가 밀렸는데 영 좋지 못한 곳으로 허무하게 떨어지며 안타.
아쉽다. 다음 타자가 강건우라 더 그렇다.
다른 상대라면 구위가 좋으니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강건우라서.
강건우에 대비한 전략은 있었다.
도루를 성공시키거나 말거나, 첫 타석에는 볼만 던지는 것으로.
그러다 첫 타석에서 4할이 깨지기라도 하면 조급해질 것이고,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게 된다. 볼넷을 주더라도 괜찮다. 득점권에 나가 있는 강건우는 부담되지만, 그냥 타자와의 싸움에 집중하면 된다.
게다가 지금은 1사 1루 아니던가. 볼만 던지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1사 1, 2루에서 양대근을 만나는 것도 버겁긴 하나, 강건우보다는 낫다. 양대근을 얕보는 것이 아니라 강건우가 말 같지도 않은 선수라는 것을 인정했을 뿐이다.
조셉 라이언의 공이 존 밖으로 공 두 개는 빠진 곳으로 향했다. 고의사구를 하기에는, 혹시라도 병살이 나올까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강건우의 배트가 나왔다. 헛스윙이라도 좋고, 범타면 더 좋다.
따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타격음이 어딘가 심상치 않다. 명백하게 빠지는 공을 쫓아가서 거의 손목 힘만으로 크게 때려냈다.
일단 타구가 날아가면 방향이고 각도고 소리를 질러대고 보는 오션스 팬들도 잠깐 침묵했다.
이상한 타구였다. 높게 치솟긴 했지만 힘이 없어 보였고, 타구 속도도 강건우의 평소 타구보다 훨씬 느렸다.
그런데 점점 멀어진다.
베테랑 주자인 배영한도 이걸 뛰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1루와 2루의 중간쯤에서 눈치를 살폈다.
여기서 단 한 명.
강건우만이 살짝 미소지으며 분석실의 정유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타구는 거짓말처럼 계속 날고 있었고, 이 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소리를 지른 것은 메테오스의 선발 우익수로 출전한 복현성이 사직의 높은 펜스에 기대서 멍하게 위만 바라보기 시작한 때였다.
밀어 때린 타구가 이상할 정도로 두둥실 떠서 날아갔다. 외야에서는 공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드는 관중들과 주의하라는 안전 요원들의 휘슬 소리가 끈적하게 엉켰고, 이 상황에서 ‘아주라’는 나올 일이 없을 것이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션스 팬들의 환희와 메테오스 벤치의 조용한 탄식.
그리고, 다른 구장에서 들려온 그리 좋지 못한 소식까지.
-강건우 선수의 만화 같은 홈런이 터졌습니다! 시즌 65호! 정말 보고도 믿기지 않는 홈런! 타율은 0.402! 152타점째! 4할 타율을 위해 경기에 나서지 않을 거라던 사람들의 예측을 완전히 깔아뭉개고, 스스로 해결합니다! 강-건우! 강건우입니다!
-정말, 예. 그리고 다른 이야긴데, 광주에서는 지형욱 선수가 그랜드 슬램을 쏘아 올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타이 브레이커 게임의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됐군요! 원래는 1위 팀 승률이 동률일 때만 타이 브레이커가 열렸었는데, 2년 전부터 개정된 규칙에 따라 올 시즌은 5위 결정전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정말 대단해요. 이건 뭐…투수가 불쌍해질 지경이에요. 공이 저렇게 빠지는데 살짝 엉거주춤한 자세로 밀어서 저걸 넘기다뇨. 뭔가 이상해요. 야구의 상식이 깨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해봐도 될까요?
-어떻게요?
-예. 흠흠. 우리는 지금 강건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야구 팬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