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09)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11화(311/385)
각본 없는 드라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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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을 빼는 법을 잘 모른다.
스윙이나 공을 던질 때도 좀 그런 편이다. 그 상태로 부상 위험도가 낮은 자세를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그런데, 그건 타격할 때와 투구할 때뿐만이 아니다. 승패가 결정되거나 우승이 확정된 상황이라 할지라도 난 힘을 빼고 뛴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문율이랍시고 점수 차가 크게 났을 때 3볼 노 스트라이크에서 타격하지 않는다거나 그와 같은 상황에서 도루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들이 꽤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유가 웃기긴 하다.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을 때 도루하고 장타 때리면 투수 기분이 상할 수가 있어서 자제해야 한다? 투수가 열 받으면 타자 머리에 공을 던질 수 있고 그러면 타자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나도 투수지만 그건 좀. 아니, 잠깐 열 받는 거 못 참아서 사람 죽이려고 드는 놈이 무슨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을 벌어가?
뭐, 그렇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나는 그냥 두 번째 타석에서 볼넷을 얻고 도루했다. 2대 0 스코어에서 도루하지 말라고 하는 놈은 없으니까.
사실, 져도 되거나 설렁설렁해도 되는 경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선수가 지나치게 부담감에 시달릴 때는 꼭 매일 이기려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줄 때도 있지만, 그건 그냥 위로차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할 때도 있다. 그것도 그냥 지나치게 스트레스받지 않으려는 의미일 뿐이다.
“강-건-우우우우! 강-건-우!”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그랬던 것과 지금 그러는 것과는 의미가 꽤 다르긴 하다.
2루에 도착해서 시즌 59호 도루에 기뻐하는 팬들의 신난 노래를 들으며 유니폼을 털고 일어났다. 메테오스는 포수가 보강되면 더 좋아질 수 있는 팀이다.
송구가 꽤 형편없었다. 유격수 유병성이 내게 태그를 시도하기는커녕 온 힘을 다해 점프해 공이 외야로 빠지는 것을 막아내야 했다.
“…”
유병성이 살짝 입맛을 다시며 날 바라봤다. 뭔가 그런 눈빛이다. ‘살살 좀 하지…’
살살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잖아.
팬들이 내가 도루 하나를 더 해내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고.
거기에, 60-60을 하면 유리가 좋아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유병성이 정말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냈더라면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내가 일어선 후, 투수는 대근이 형을 상대로 바깥으로 빠지는 공을 던졌다. 그리고 내가 3루로 뛰는 척만 했는데도 호들갑을 떨었다.
공을 재빠르게 글러브에서 빼려다가 놓쳤고, 공중에 뜬 공을 잡으려다 바닥에 떨어뜨려서 허겁지겁 주운 뒤 3루로 공을 던지려 했다.
나는 그냥 2루에 서 있을 뿐이었는데.
작년 생각이 난다. 지난 시즌 한국 시리즈에서, 우리는 저 포수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포수를 홈 플레이트 뒤에 앉혀놓고 경기를 해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기량이 부족하다고 해서 선수 개인을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팀 구성을 잘못한 구단 측의 잘못이다. 그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선수 탓일 수는 있지만.
확실한 것은, 개인적인 감정 같은 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리드 폭을 적당히 잡았다. 투수가 견제구를 던졌다.
“마!”
“마!!!!!!”
이번엔 리드를 조금 더 길게 잡았다. 또 견제구다.
“마!!!”
“마! 고마 해라!”
“마!!! 경기 안 할기가!”
비슷한 신경전이 두 번 더. 투수는 내가 리드 폭을 짧게 잡을 때까지 견제를 멈추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포수가 당황하는 것을 봤다.
3루 도루는 2루 도루보다 어렵지만, 포수가 긴장해서 어깨가 잔뜩 굳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세 번 더 견제구를 던지며 사직 야구장 관중들의 목을 쉬게 만들고 싶어 하던 투수는 결국 포수를 향해 공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뛰었다. 도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 베이스 사이의 거리는 27.4m.
속도를 빠르게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장거리 달리기나 100m 달리기가 아니다. 강하게 시작해 정확하게 터치하면 된다.
이번에는 포수가 그나마 공을 더듬거나 흘리지 않고 던졌다. 하지만 나는 3루수 빅터 발타사르의 태그를 피해서 손을 뻗어 베이스를 먼저 터치했다.
한참이나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던 심판이, 결국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리며 선언했다.
“세이프!”
나는 기록 같은 것에는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무릎 꿇은 채 고개를 치켜들고 두 팔로 가슴을 치며 뱃속 깊은 곳에서 소리를 끌어올려 포효해버렸다.
“강건우! 우아아아아아아악!”
“강건우! 강건우!”
“건우야아아아아악!”
아무래도, 팬들이 내게 바라는 게 뭔지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저 사람들이 얼마나 갑갑하고 팀 같지도 않은 팀을 응원하며 응어리져 있었는지 공감해서.
대부분은 유리를 보며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여기서 뛰면서 스스로 배운 것도 많다.
상대 투수의 견제구에 외치는 구호보다는, 내 이름을 외치다가 목이 쉬어버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도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과도한 세레머니는 불문율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온 용병 3루수나 외국인 투수도 내게 불쾌함을 표할 생각도 못 할 정도로 크고 긴 함성이 이어졌다.
예비 장모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오션스 팬들이 날 보면서 한풀이를 한다고.
팬들은 날 보면서 이 맛에 야구 본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리그를 폭격하고, 꽤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내는 걸 보면서.
“우아아아아아아아!”
팬들과 함께 나도 다시 한번 소리 질렀다.
예전엔 잘 몰랐던 건데.
나도 이 맛에 야구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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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 시즌 102승 기록하며 2029시즌 마무리.] [(PHOTO) 최종전에서 눈물 흘리며 기뻐하는 오션스 팬들.]└오늘 ㄹㅇ 사직 저수지였음
└사직에 또 물 샜냐? 족같이 낡은 구장 어케 좀 안됨?
└이새끼는 시적 표현이라는걸 모르네
[민승기의 7이닝 1실점 피칭, 그리고 1홈런-2도루의 강건우는 무실점 세이브까지.] [(이용길의 야구회로) 강건우의 긴 포효가 오션스 팬들을 울린 것은.]└이게 기사냐 일기냐
└야구회로 원래 일기장임 몰랐음?
└‘이 기사가 종이 신문으로 나갔다면 글자가 본 기자의 눈물로 얼룩져 있었을것이다’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
[역대 최다 시즌 102승. 역대 최고 승률 0.718. 2029년의 오션스는.] [민승기, 시즌 22승 기록하며 역대 다승 공동 8위 및 오션스 역대 2위 기록 달성.] [22승 투수 민승기, ‘안녕하십니까. 오션스 에이스 민승기입니다.’] [오션스의 거짓말 같은 2029년, 그 중심에는 ‘강건우’]-타격 : 타율 0.400(역대 2위), 출루율 0.542(역대 1위), 장타율 0.962(역대 1위).
65홈런(역대 1위), 152타점(역대 1위), 141득점(역대 1위) 총 411루타(역대 1위) 60도루(역대 11위) 131볼넷(역대 1위)
-투수 : 2승 39세이브 평균자책점 0.15(42경기 58이닝 1실점 106탈삼진.)
└강건우 잠깐만 빌려주십쇼 오션스 형님들
└돌빠냐?
└예 형님들 진짜 곱게 쓰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제발요
└너네 시즌 전에 강건우 유병성 크보 양대 유격수라고 하지 않았냐?
└어떤 무식한 새끼가 그랬습니까 형님? 그 새끼 야알못이니 노여움을 풀어주십쇼
[2029 KBO 순위표.]1. 부산 오션스
2. 창원 파이러츠
3. 대구 엔진스
4. 서울 엔젤스
5. 대전 메테오스
5. 광주 아이언스
7. 서울 불도저스
8. 인천 바이킹스
9. 서울 선더버즈
10. 수원 다이아몬즈
[아이언스, 최종전에서 엔젤스 상대로 지형욱의 만루 홈런 앞세워 승리하며 기사회생. 71승 3무 70패로 시즌 마감.] [오션스에 패배한 메테오스, 71승 3무 70패. 아이언스와 동률로 순위 결정전 돌입.] [드라마틱했던 시즌 마지막 두 경기. 2승 거둔 아이언스와 1승 1패 거둔 메테오스, 사상 첫 5위 결정전 앞둬.] [‘단두대 매치’ 5위 결정전 선발 예고. 메테오스 비토 로드리게스(10승 10패 평균자책점 3.45) 대 아이언스 최철(13승 7패 평균자책점 3.20)] [강건우, ‘팬들의 함성에 가슴이 마구 뛰어서 나도 모르게 포효했다.’] [‘어엠강’ 강건우,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유리 누나. 다음은 가족, 그리고 그 다음은 오션스와 팬들.’]└건우야 우린 3위라도 만족한다
└강건우 ㅅㅂ 메테오스 존나 싫어하는게 분명함
└아닌데 강건우 메테오스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놈이 그렇게 죽어라 뛰냐???
└아마 크보에서 10번째로 좋아할듯
└시발롬들이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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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 회식이 있었다. 그리고 주장 대근이 형의 영향력 아래, 빠르게 먹고 양손 가득 음식이 포장된 종이 가방을 들고 해산했다.
나와 유리도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다. 두 가족은 다 함께 파티를 벌였고, 술에 잔뜩 취한 채 술 한 잔 마실 때마다 부산 갈매기를 열창하는 예비 장인어른을 보며 오션스에서 뛰기로 한 것이 잘한 결정이었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물론, 메이저리그로 가서도 유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느끼지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과 유리네 가족이 모두 모여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는 거.
웃고, 떠들었다. 현수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공개 선언했고, 술 취한 장인어른은 지금 당장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지만, 장모님의 ‘시간이 몇 신데 남의 집 귀한 딸을 오라 가라야?’라는 말에 말없이 술을 한 잔 더 하셨다.
“진짜 불러도 돼요?”
하지만 현수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우리끼리 파티한다고 했더니 여자 친구가 자기도 가면 안 되겠냐고 했다더라.
하긴, 오션스 골수 팬으로 보였었다.
그리고 정말로 파티에 꼈다. 어지간하면 이런 자리에 끼기 쉽지 않았을 텐데.
집에 조심스럽게 들어오며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인사하더니,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눈치가 상당한 사람인 것 같았다. 장모님한테 달려가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그, 혹시, 저 기억하세요?”
“아이고. 너무 늦은 시간에 온 거 아닌지 몰라. 그런데 나 알아요?”
현수 여자 친구는 마치 신앙 고백이라도 하듯 이야기했다. 중학생 시절 친구들이랑 야구장에 놀러 갔었는데 바로 옆에 앉았던 장모님이 떡볶이와 닭강정을 사줬었고, 술 취한 아저씨가 헛소리하는 걸 깃발을 휘둘러서 쫓아내 주셨다고.
“그런 일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음.
장인어른의 말을 빌리자면, 장모님이 연락 안 될 때면 사직 야구장에 가면 찾을 수 있었다고 하니까. 사직에서 장모님 만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유리에게 말했다.
“유리 누나…정말 팬이에요! 영광이에요!”
유리의 반응은 뭐.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쩌다 저런 놈을…”
남매의 상호 혐오란, 어떻게 해도 가릴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강건우 선수…60-60 정말 축하해요…저 그때 막 울컥해서 경기장에서 울어서 눈이 좀 부었어요.”
현수는 눈 부어도 예쁘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할 때 유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어쨌거나 좋은 시간이었다. 인상 찌푸린 사람 하나 없었고, 모두가 행복했으니.
“아버지, 어머니.”
“오냐.”
“유리 누나가 첫 번째고 가족이 두 번째라고 해서 혹시 마음 상하신 건 아니죠?”
내 말에 아버지가 코웃음을 치셨다.
“가족이라고 말이라도 해줘서 다행이지, 이놈아.”
“내일 캐치볼 하실래요?”
아버지는 허허 웃으면서 연차 쓰고 캐치볼이나 할까 라고 말씀하셨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유리 말 잘 들으라고. 그리고 그때 이혼 했을 때 정말 화를 내셨다.
살짝 취한 유리는 그냥 헤헤 웃고 있었다. 유리 말 잘 듣고 있어요, 아버지.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겠지만,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나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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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민승기는 거실 창을 향해 사직 야구장을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색에 깊게 빠져 있느라 메시지가 온 줄도 모른 채.
-사카모토 상 : 오늘 정말 멋있었어요!
-사카모토 상 : 한국 시리즈도 화이토! (*•̀ᴗ•́*)و
7이닝 1실점.
기대 이하였다.
사람들은 그래도 호투했다고, 좋은 승리였다고 말한다.
퍼펙트게임을 한 번 더 보여주며 화려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야구가 항상 자기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경기 후반에 대타로 나섰던 주상욱과 정예성은 몸이 근질거린다며 아파트 헬스장에 가 있었다.
고요하다.
지금의 분위기는 어딘가, 에이스가 느끼는 고독한 감정과 닿아 있는 듯하다.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해낼 수 있으리라 믿어야 한다.
‘저를 지켜봐 주세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민승기 혼자만이 알고 있다.
국가대표 단톡방은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서로 수고했다고 마무리 잘 하라는 덕담이 오간 후 대화가 뚝 끊겼다.
각자 해야 할 것이 있을 것이다.
불 꺼진 사직 야구장을 내려다보며 민승기는 심호흡했다.
너무 멀리 돌아왔다.
물론.
강건우가 과거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먼 길을 가고 돌고 돌았더라도 갈 수 없는 길이겠지만.
민승기가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으니까.
또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올 시즌의 마지막을 향해서, 하루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