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1)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3화(33/385)
천재 코치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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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리, 정현수 남매는 아버지 정종석과 함께 족발을 먹으며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아, 심판 왜 저래?”
“퍽동님 퇴장당하는 거 개 웃기네.”
“넌 저게 웃기냐?”
남매는 언제나 옥신각신이다. 정현수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건 항상 태클을 걸어대는 저런 누나를 강건우가 왜 그리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맥주를 쭉 들이켜더니 말했다.
“잘 했지 뭐. 가만히 있다가 호구 되는 거보단 훨씬 낫다.”
전 감독은 너무 양반 스타일이었다.
팀이 손해를 봐도 허허 웃고 말았고, 한 번 나가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심지어 휴 브레드먼은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자 달려나가 상대 감독의 면전에 삿대질하기도 했었다.
그때 입 모양이 반복되는 움짤이 오션스 팬들 사이에서 유행을 타기도 했다.
남매가 계속 싸워대자 아버지가 말렸다.
“그만 좀 싸워라. 너희 보고 있으면…어? 저거 니네 엄마 아니냐?”
어쩐지 족발 큰 거 시켜놓고 안 보이더라니. 애들한테 물어봤을 때는 자기들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어? 엄마?”
“엄마네?”
“너희한테도 말 안 하고 간 거야?”
TV 화면 속에 오소희가 있었다.
선글라스 끼고, 머리 질끈 동여매고, 결연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러대며 양손에 든 깃발 두 개를 휘두르고 있는 장군 같은 사람이.
“와…엄마…배신…”
“아빠도 몰랐어?”
정종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저 모습에 반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런데 오소희의 옆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저긴 건우 엄마 아냐?”
“응? 진짜네?”
그리고 그 순간, 정종석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윗집 배신자 : 야 너네 마누라도 잠실 갔냐?
-윗집 배신자 : 어쩐지 오늘 집에 안 들어온다더니 서울 간 줄은 몰랐네…
-윗집 배신자 : (사진)
-윗집 배신자 : 둘이 완전 신났구만
-윗집 배신자 : 치킨 시켰는데 치맥 하면서 야구 콜?
“…건우 아빠도 여자들끼리 잠실 간 거 몰랐나 본데.”
“아, 여자들끼리 갈 거면서 왜 나 빼놓고 가고 그래?”
“넌 내일 학교 가야지.”
“내일 휴강인데!”
“그럼 아빠랑 같이 지금이라도 서울 갈까?”
“아빠 회사는?”
“딸내미 수술한다고 할까?”
“아빠, 나는?”
“고등학생이 휴강이 어딨냐?”
“아빠 수술한다고 할까?”
“이 답도 없는 것들이 진짜.”
“아빠랑 엄마 닮아서 그래.”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은 없다만…”
그리고 잠시 후.
TV 화면이 다시 오소희를 잡아줬고, 정종석은 양팔을 뻗어 아이들의 눈을 가렸다.
“벌써 다 봤거든?”
“엄마 식빵 굽는다!”
“애들은 그런 거 보는 거 아니야.”
정현수가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울엄마 티비에서 식빵 굽고있다 질문 받는다]ㄴ???사쌍이 엄마임? 방금 사쌍누님 식빵 굽는거 보여주던데
ㄴㅇㅇ족발 시켜주고 혼자 서울에 야구보러 감
ㄴ그럼 꼴갤여신이 니 누나임?
ㄴㅇㅇ어제도 누나한테 족발당수로 맞음
ㄴ여신님이 그럴리가
ㄴ맞을 짓을 했겠지
ㄴ건우형이 선물 주고 간거 뜯어먹다가 맞음
ㄴ너 이 개새끼
ㄴ여신님 심기 건들지 마라 죽는다
ㄴ아니 ㅅㅂ우리누나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왜 편들어줌?
ㄴ갤주님 건들면 처맞는거 안 배움?
ㄴ진짜면 인증해라 ㅡㅡ
ㄴ이 밑으로 댓글 선착순 다섯 명 강건우 싸인볼 보내줌
ㄴ형님
ㄴ존경합니다
ㄴ아 이걸 속냐?
ㄴ나
ㄴ기체후일향만강하신지요
ㄴㅇㅋ마감
ㄴㅂㅅ들 좋다고 댓글달기는 ㅋㅋㅋ
ㄴ이새끼 5위 안에 못 들어서 부들대고 있다에 노루새끼 손모가지 건다
ㄴ야 빨리 부들대라 노루 새끼 손목 없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족발을 먹으며 정현수의 스마트폰을 훔쳐보던 정유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아빠. 나 갔다 올게.”
“어딜 가?”
“잠실.”
“뭐라고?”
정유리는 자기 방으로 가더니 대충 가방을 챙겨 뛰쳐나갔고, 남은 남자 둘은 눈을 껌뻑대다 그냥 TV로 눈을 돌렸다.
“아들.”
“응.”
“넌 야구 팬이랑 만나지 마라.”
“아빠는 불행해?”
이닝이 끝나고 하이라이트 화면에 오소희가 깃발을 흔드는 모습이 잡혔다. 정종석은 슬쩍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갈거면 나도 좀 데리고 가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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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초, 오션스가 1점을 내며 도망갔을 때 오션스 팬들은 말했다.
ㄴ마 이게 바로 최강 오션스다 ㅋㅋㅋ
5회 말, 불도저스가 2점을 내며 역전하자 오션스 팬들이 절규했다.
ㄴ씨발새끼들 야구 존나 못하네
6회 초, 이시욱이 3점 홈런을 때리자 이시욱을 욕했던 역적들을 찾기 시작했다.
ㄴ킹노루 욕한 새끼들 대가리 박아라
ㄴ와! 노루!
ㄴ이제 갓노루 초코파이 먹는다고 욕하지마라ㅡㅡ
7회 말, 오션스 불펜이 터졌을 때.
ㄴㅎ ㅏ
ㄴ이쯤되면 투코 참수해야 하는 거 아님?
ㄴ좆태용 이새낀 대체 투수들한테 가르치는게 뭐냐
ㄴ코치진 전원 사형대 앞으로
그리고 8회 초 강건우의 추격 2타점 2루타가 터지자.
ㄴ타격코치 빼고 다 해고해야함
ㄴ근데 건우는 원래 야구 잘 하는거 아님?
ㄴ그럼 타격도 죽여
ㄴ뭘 자꾸 죽이래 이 살인마새끼들아 야구 못하는게 죽을죄냐?
ㄴ아 그럼 무기징역(가석방 불가)
하지만 8회 말, 불펜의 2차 폭발이 있었다.
ㄴ대양생명 불매운동 시작합니다
ㄴ그냥 선발 줘터지든말든 무족건 완투시켜야한다
ㄴ스코어 상태 왜 이럼? 14대 9?
ㄴ오늘 실점 목록 : 이훈 4.2이닝 5실점 정민호 0.1이닝 4실점 송형완 0.2이닝 2실점 박은수 1이닝 3실점 개환장
ㄴ그새끼들 아직 은퇴 안함?
ㄴ김정혁 오늘 왜 안나왔냐???
ㄴ맞음 김정혁이 불펜에서 그나마 젤 나은데
ㄴ조형오 복귀하면 좀 낫겠지?
ㄴ낫긴 뭘 낳아 좃형오는 마무리 말고 셋업이 딱인데
ㄴ그럼 우리 마무리 누가함
ㄴ건우 마무리하면 안되냐 160던진다매
어쨌거나, 그래도 7승 2패로 성적은 괜찮았기에 그리 심각한 반응은 아니었다.
게다가 3루수로 나선 노경우의 수비 범위를 커버하기 위해 강건우가 평소보다 넓게 포지셔닝하는 걸 본 팬들의 행복회로는 여전히 돌고 있었다.
[우리 갓건우 거포 유격수인데 수비도 존나잘함ㅎㅎ]ㄴㅇㅇ평소엔 안정적이긴 한데 오늘 수비 개쩔었음
ㄴ거의 3루까지 혼자 보던데
ㄴ유격 수비 개쩔었는데 왜 14점 내줌?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ㅋㅋㅋㅋㅋㅋ그렇게 쩔면 혼자 다막아야지
ㄴ미친새끼들아 볼넷이랑 홈런을 유격수가 무슨 수로 막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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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리는 택시로 이동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마침 거의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는 비행기가 있었다.
혹시나 도착하기 전에 경기가 끝나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오션스가 두드려 맞느라 경기가 워낙 길어져 문제는 없었다.
‘조금 오버했나?’
아니면 차라리 기왕 올 거였다면 일찍 와서 경기를 볼걸.
사실, 엄마가 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모른 척하라는 말을 지켰을 뿐이었다.
계속 마음에 걸린 건 건우가 써준 편지였다.
남자친구가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었다. 내용도 별거 없었다. 굳이 요약하자면 누나 좋아해 보고 싶어서 써봤어 정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뭔가 마음이 아팠다. 계속 그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봐도 고민 같은 건 담겨있지 않은 편지였는데, 거기서 뭔가 절절한 감정이 느껴져서.
경기는 졌지만 그런 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냥 강건우 얼굴이 보고 싶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윗집 사는 놈 얼굴을 보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게 될 줄이야.
잠실 야구장 밖에 앉아서 기다렸다. 이렇게 해서 볼 수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면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선수들이 나온다. 그리고 팬들은 선수들을 보고자 기다리곤 한다.
“아, 연승 끝났네.”
“오늘 박의현 안타 쳤을 때 대주자만 안 넣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대주자 도루하다 잡히고 대수비 들어온 조용수는 블로킹하다 또 뒤로 빠뜨리고 완전 지랄 났지.”
“진짜 노답이더라. 오늘 그래도 에어컨 두 대 홈런 친 거랑 강건우 수비는 볼만했다.”
“볼만한 수준이 아니라 메이저급 아니냐?”
에어컨 두 대. 팀에서 선풍기라 불리는 울프팩과 이시욱이 홈런을 치면 업그레이드 되어 에어컨이라 불린다.
어쨌거나, 정유리는 흐뭇하게 웃었다. 선수들을 보려고 기다리는 팬들도, 그냥 지나가는 팬들도 강건우 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불도저스 팬들도 그랬다.
“강건우 봤냐? 걔만 오면 파이러츠 바이킹스 박살 낼 수 있겠던데?”
“오션스에는 아깝지.”
“솔직히 잘한다 잘한다 하는 거 오션스 팬들 설레발인 줄 알았는데 진짜 잘 하던데?”
“우린 어디서 강건우 같은 신인 안 튀어나오나?”
“우리 신인들도 괜찮아. 걔가 너무 잘 할 뿐인 거지.”
쟤 우리 팀 왔으면 좋겠다.
타 팀 팬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다.
오션스 팬들이 김권종이나 박용재를 오션종 오션재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물론, 해당 선수의 팬들은 걔가 미쳤다고 오션스에 가냐는 반응을 보이긴 하지만.
퇴근길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양대근이었다. 양대근은 고개를 숙이며 팬들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이겼어야 했는데…”
닭 다리 트라우마가 있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최근 팀 성적이 좋은 데다가 불펜이 터져버리긴 했어도, 9득점을 하며 영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기에 팬들의 반응은 양대근의 예상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괜찮다! 주장! 어깨 펴라!”
“양대근! 양대근!”
“내일 이기면 됩니다!”
양대근은 조금 낯선 팬들의 태도에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꽤 기분 좋은 얼굴로 지나갔다.
“킹시욱!”
“아이고, 킹시욱이라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아이고. 뭐 이런 걸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고. 예. 감사합니다.”
이시욱은 욕먹는 정도에 비하면 상당히 인기 있는 편이었다.
한 팬이 초코파이를 건네자 히죽 웃으며 건네받고 브이 자를 그리기도 했다.
몇몇 선수가 더 지나갔다. 종종 개념 없는 팬들이 ‘특타 하고 퇴근해라!’라고 외칠 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강건우가 나타나자 시끌시끌해졌다.
“건우야!”
“강건우다!”
“갱! 건우!”
유리는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강건우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싸인을 해주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강건우가 잘못한 건 없음에도, 그냥.
“네. 네. 내일은 더 잘해야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면 모르는 여자 팬에게 웃으며 대답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낯설어 보였던 걸지도 모르고, 아니면 능숙하게 팬들을 대하는 게 낯설었는지도 모른다.
정유리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인기 많은 건 알고 있었고, 그런 모습에 뿌듯해했다.
그런데 어딘가 멀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윗집에 사는, 오래전부터 알아온 소꿉친구이자 남자친구가 아니라 스타 같아 보여서.
그냥 되돌아가고 왔었다는 걸 말하지 말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강건우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정유리를 찾아냈다.
“잠깐만요.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눈을 마주치고도 자기를 보는 건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 시끄럽고 사람 많은 데서, 여기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어떻게 찾았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짝 웃으며 팬들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던 강건우가 안전요원이 제지할 틈도 없이 안전띠를 넘어와 정유리 앞에 섰다.
“유리 누나?”
“어…?”
조금 당황했다. 몰래 와서 놀라게 해주려 한 건 자신인데, 왜 자기가 더 놀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정말 환하게 웃는 얼굴의 건우가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표정이 아니라 자기에게만 보여주는 표정이었다.
“야, 나, 나 어떻게 찾았어?”
어디 동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람들과 섞여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술렁이거나 말거나, 강건우가 대답했다.
“나도 몰라. 그냥 여기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고개 들었는데 진짜 여기 있더라.”
얘를 어쩌면 좋을까.
정유리는 그냥 눈을 껌뻑이며 강건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근데 너 가봐야 하는 거 아냐?”
“그건 그런데, 누나 혼자 왔어?”
“아니. 엄마랑 너희 어머니도 여기 계셔.”
“응? 진짜?”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전화해!”
강건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살짝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 좀 있다 전화할게.”
그리고 돌아서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짜 보고 싶었는데 얼굴 보여줘서 고마워. 기분 확 좋아졌어. 시간 낼 수 있는지 보고 연락할게.”
강건우가 자리를 떴고, 사람들의 시선이 정유리에게 쏠렸다.
강건우의 말 덕분에 기분이 조금 좋아진 정유리는 급히 자리를 뜨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어디야? 나 잠실 왔는데.”
-뭐? 잠실? 무슨 소리야?
“아 엄마 티비에 나오는 거 보고 나도 야구 보고 싶어서 왔는데 너무 늦게 와서 끝났더라! 내일 경기는 같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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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년 4월 12일 수요일, 잠실 야구장.
부산 오션스와 서울 불도저스의 시즌 2차전.
-예, 오션스의 1회 초 공격. 1번 타자 황석규가 볼넷으로 출루했고 배영한의 중전 안타로 무사 1, 2루! 타석에는 강건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5선발 간의 맞대결이다 보니 오늘도 타격전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 심장에는 안 좋겠지만, 팬들은 즐겁겠죠.
아침에 잠시 시간을 내 정유리를 만나고 온 강건우는 기분이 좋았다.
이상하게 몸이 조금 처지는 것 같았는데.
컨디션이 확 올라오는 느낌이었고, 감독이 수석 코치와 약간의 언쟁을 벌였던 것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누가 뭘 하던.’
그냥, 멀리서 자기를 보러 와준 유리에게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
-마운드에 서 있는 김선혁 선수는 2007년생으로 아직 어리지만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투수입니다. 연속 출루를 허용하자 포수 박지훈 선수가 올라가서 다독여주고 있습니다.
-예. 최고 151km/h의 공을 던지는 매력적인 투수죠. 경험이 조금만 더 쌓이면 충분히 국가대표급 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주입니다.
국가대표급이 될 잠재력이 있거나 말거나, 강건우는 투수의 타이밍을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있었다.
포수가 자리로 돌아왔다. 오션스 팬들이 강건우의 이름을 외쳤고, 불도저스 팬들은 투수에게 격려의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아침에 약속하고 왔다.
강건우에게 최소한 유리와 한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였다.
투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투구 준비를 했다. 울프팩과 이시욱은 어제 경기에서 홈런을 쳤다. 강건우도 타점을 올렸고 컨디션이 좋아 보였지만, 무사 1, 2루에서 피해갈 상황은 아니었다. 투심 그립을 쥐었다. 불도저스의 내야 수비는 탄탄하다. 정타만 맞지 않는다면 선배 야수들이 해결해줄 것이다.
꽤 진정됐는지, 투구 자세는 매끄러웠다. 손가락으로 실밥 두 개만 잡은 투심 그립. 릴리스 포인트도 꽤 정확했고, 공이 날아갈 때만 해도 투수는 이건 먹혔다고 생각했다.
투심은 땅볼 유도에 좋은 공이다. 낮게 제구됐고, 떨어지는 각도도 좋았다.
따아아아아악-!
하지만 떨어지는 궤적을 강건우의 배트가 그대로 쫓아갔다. 어지간하면 쳐도 땅볼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한참이나 빗나가고 말았다.
-강력한 타구! 갑니다! 갑니다! 아! 갑니다! 갔습니다! 강건우! 강건우가 또 쳤습니다! 시즌 7호 홈런! 어제오늘 잠실이 왜 이렇게 작아 보일까요! 강건우가 넘겨버렸습니다! 환호하는 오션스 원정 팬들!
-아, 완벽했어요. 정말 완벽한 스윙입니다. 완벽하다는 말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아름다운 스윙이었어요.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기술! 스위트 스폿에 정확히 맞은 아름다운 홈런! 아, 이건 뭐, 잘 던졌지만, 어찌해볼 수가 없습니다! 스윙 좀 보세요!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온 걸까요! 아! 다시 봐도 정말 아름다운 스윙입니다!
강건우는 활짝 웃으며 홈을 밟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깃발 두 개가 나부끼는 곳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자친구 잠실 왔다며? 그래서 홈런 쳤냐?”
“그래? 그럼 홈런 칠 만하네.”
“어제는 안 와서 2루타만 친 거고?”
“유리 누나 없으면 홈런 칠 맛이 안 나서요.”
“매일 오라고 해라! 매일 홈런 치게!”
“누나가 아직 대학생이라서…”
벤치에서 강건우를 반겨주는 선배들도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