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11)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13화(313/385)
각본 없는 드라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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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의 포스트시즌은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한 팀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
메이저리그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거치긴 하지만, 거기서 승리한 팀을 포함해 토너먼트 방식으로 승자를 가린다. 여기서는 정규 시즌 우승팀이 하위 순위 팀들이 승부를 펼쳐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체력을 회복하고 경기에 대비할 시간을 갖지만, 미국에서 리그 우승팀이 가지는 메리트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승자가 한 경기를 가지는 만큼만 존재한다.
우리는 여기서 지켜보면 된다.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우리와 맞붙게 될 팀이 투수를 소모하고 선수단의 정신력을 갉아먹는 것을.
박용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 시리즈에서 기다리란다. 돌꼴라시코 결승전 죽기 전에는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냐는데, 내가 우린 매년 한국 시리즈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메테오스 데리고 올라오라고 했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메이저리그 가지 말란 말여?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와카 1차전 등판해요?”
-할겨.
어딘가 결연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3일 쉬고 등판 괜찮겠어요?”
-안 될 것이 뭐 있겄냐.
“한국 시리즈 올라올 때쯤 되면 병원에 계시겠네.”
내 말에 뭐가 웃긴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또 웃었다. 우리와의 최종전 전날 등판했었다. 그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됐고 우리와 두 경기에서 1승 1패 후 타이 브레이커에서 승리했으니 결국 원하는 대로 된 걸까.
아마 구상은 그랬을 거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 비토 로드리게스가 등판하고, 2차전에 4일 휴식한 박용재가 등판하고.
그렇게 됐더라면 조금 더 여유가 있었을 테지만, 결국 그렇게 됐다.
“사직에서 봐요.”
모르긴 몰라도, 오션스와 메테오스의 한국시리즈가 열리면 흥행 하니만큼은 끝내주지 않을까.
두 팀 다 성적은 밑바닥인데 인기 많은 팀이었으니.
조금 시들했었다가, 최근 성적이 향상되며 다시 팬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3일 휴식 후 등판?
한 번 정도는 괜찮다. 그런데 그런 주기로 계속 던지다 보면 결국 탈이 난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5위 팀은 2경기 모두를 승리해야 하고 4위 팀은 1승 혹은 무승부 한 번만 거둬도 상위 라운드로 진출하게 된다.
메테오스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뜻이다. 박용재는 인생 첫 가을 야구 경기를 앞두고 3일 휴식 후 등판을 자청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꽤 놀라운 결정이다.
이유?
박용재라는 사람은, 메이저리그 시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3일 휴식 후 등판을 거부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팬들에게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그에 개의치 않고 그 시즌이 끝난 후 FA로 이적하며 태연하게 말했었다. ‘팬 여러분들의 응원, 잊지 않겠습니다.’
뭔가 기분이 묘하면서도, 기쁘다.
이 리그가 내 가슴만 뛰게 만든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뭔가가 바뀌고 변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꽤 진지한 태도로 경기를 봤다.
메테오스 선수들은 어딘가 벌써 지쳐 보이기도 했다. 매일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박용재는 빛이 났다. 월드 시리즈에서조차 침착하게 던지던 박용재는, 오늘은 그 박용재라기보다는 어딘가 오션스 이적 후의 승기 형을 닮아 보였다.
물론 피칭 스타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과감하게 포심으로 승부를 걸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싱커로 오해받기도 했던 투심으로 헛스윙을 유도하고, 커브로 타자를 속인 후 스플리터로 범타를 유도했다.
구속이 조금 낮게 나오지만 않았더라면, 3일 쉬고 올라온 투수라고는 믿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7회 초, 1사 1, 3루에 몰리자 숨겨뒀던 구속을 다시 끌어올리며 막아냈다.
무리해서 구속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체력 배분을 하느라 구속을 낮춰서 던진 거다.
7이닝 동안 84구를 던져 무실점을 기록하며 경기를 마감한 박용재의 표정에서는,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아쉬움이 머물고 있었다.
아는 표정이다. 더 던지고 싶어 하는 그런 표정.
엔젤스 타자들은 박용재가 내려간 후 힘을 냈으나, 메테오스 타자들도 3일 휴식 후 등판해 호투한 에이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는지, 오히려 엔젤스 불펜을 두들기며 1차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최종 스코어 9대 4.
잠실을 방문한 메테오스 팬 중에는 오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는, 오른팔을 보호하기 위해 완전히 싸매고도 왼손을 들어 팬들에게 인사하며 눈이 벌겋게 변한 박용재를 비추었다.
“멋있다. 그렇지?”
“응? 메테오스?”
“박용재.”
같이 야구를 보던 유리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뽀뽀하자는 뜻인가?
“왜?”
“니가 다른 야구 선수 멋있다고 하는 거 처음 봤어.”
“그랬나?”
“응.”
“누나가 제일 멋있어서 다른 사람은 안 멋있게 느껴졌나 보다.”
“내가 멋있어?”
“누나 일할 때 진짜 멋있어.”
“그래?”
“뭐, 멋있긴 한데. 일하느라 나한테 관심 안 주면 좀 섭섭하긴 해.”
유리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이구, 우리 건우가 그랬쪄? 누나 관심이 부족했쪄?”
“부족했으니까 빨리 채워줘.”
유리의 얼굴에 웃음이 슬슬 떠올랐다.
“보자. 어떻게 채워주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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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재의 투혼, 메테오스를 깨우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승리!]박용재가 보여준 예전과 조금 다른 모습은 야구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낭만 같은 것이 사라진 현대 야구판이라지만, 대전의 이 프로팀과 그들의 상징적인 에이스가 보여준 모습은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박용재가 데뷔 후 쭉 최하위권을 맴돈 팀.
그리고 메테오스 팬들이 말하기를, 유일하게 위안이 되었던 한 선수.
타이 브레이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두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유병성의 인터뷰가 공개된 후 박용재는 더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유병성, ‘(박)용재 형이 꼭 같이 조금 더 야구 하고 싶다고…’]└용재 존나 멋있네…
└마지막으로 좀 더 야구 같이 해라 내년엔 오션용재니까
└하여튼 꼴빠새끼들 아무데나 들이미는건 진짜ㅉㅉ
└메이저리그 가기 전에 조금 더 하고 싶다는거 아님?
└용재 안 갔으면 좋겠는데 가게 되더라도 진심으로 응원할거이뮤ㅠㅠㅠㅠ
메테오스가 기세를 올리는 사이 엔젤스는 곤란한 상황에 마주했다. 시즌 막바지에 삐끗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2위까지 노릴 수 있는 위치였기에 더욱 그랬다.
[빡재정 그냥 뒤졌으면] [빡재정 죽이러 갈 파티원 구함] [윈나우 처 외치더니 씨발 ㅋㅋㅋ] [병재형 이딴 좆같은 팀이라 우리가 미안해 작년에 그냥 메이저 가지 그랬어 ㅠ]엔젤스 박재정 감독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 선발로 정수호를 내세웠다.
[로버트 코반은 삶아 먹었음?] [수호형 잘 해주면 좋긴 한데…]이러나저러나 욕먹는 것이 야구 감독의 삶이다. 그것도, 엔젤스 감독이라면 더더욱.
엔젤스는 오션스나 아이언스와 엮여 엔꼴철으로 불리는 팀이며, 격한 팬들을 많이 보유했다. 오션스는 성적이 너무 좋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아이언스 또한 팀 레전드 출신의 감독을 데려와 마지막까지 경합했음에도 감독을 갈아야 한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컸다.
어쨌거나,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확실하게 4위 팀이 유리한 제도다.
오늘도 훈련 후 당연하다는 듯 민승기의 집을 찾은 박의현은 엔젤스 타자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살폈다.
정수호는 송병재와 함께 엔젤스의 상징적인 선수다. 경기 전 정수호는 타자들에게 3점만 내달라고 말했다. 자기가 그 이상 점수 안 주고 지켜보겠다고.
송병재는 정수호의 그 말을 듣고 타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호 형 말 듣고 부끄럽더라. 나만 그랬냐? 우리가 고작 3점도 못 내?”
정수호는 베테랑답게 교묘한 피칭으로 적극적인 메테오스 타자들을 잠재웠다.
-아! 송병재가 무사 1루 상황에서 번트를 댑니다! 송병재 선수가 번트 대는 건 신인 시절 말고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경기 전에 번트 연습을 하더라고요. 그만큼 엔젤스 선수들도 기를 쓰고 나온 것 같습니다.
엔젤스 타자들은 정수호의 부탁을 들어주려 애썼다. 물론, 3점만 내려는 생각은 없었다.
-자, 2사 2루. 윤세환 타석입니다.
-장타력 있는 타자죠. 메테오스가 야수들의 위치를 뒤쪽으로 조정합니다.
-그리고 윤세환, 예! 때립니다! 아주 가볍게 밀어치는 타격! 윤세환에게 평소 볼 수 없었던 기술적인 타격인데요! 주자는, 돌아서, 뛰어서, 홈으로, 홈에서, 세이프! 세이프!
야구란 그렇다. 어제 잘 했다고 오늘 잘 할 수 없고, 많은 사람이 누군가의 감동적인 드라마와도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더라도 그게 꼭 이루어지진 않는다.
벤치에 앉아있던 박용재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선수들은 경기 도중에 성장하기도 하고, 사소한 계기로 어딘가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엔젤스가 야금야금 점수를 내고 메테오스의 시도는 아쉽게 막히는 흐름이었다.
한껏 기대를 품고 잠실을 찾은 메테오스 팬들의 표정도 박용재처럼 굳어갔다.
작은 희망조차 사라져버릴 그런 시점.
좌절하던 메테오스 팬들은 그래도 선수들의 이름을 불렀고, 기어코 엔젤스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됐다.
-엔젤스가 11대 2로 승리합니다! 아, 박용재 선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어요. 메테오스의 여정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엔젤스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그들에 비하면 작은 목소리지만, 메테오스 팬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자신들 앞으로 인사하러 온 메테오스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그래도 행복하다는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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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올 시즌 KBO에는 스토리가 가득하다.
때로 야구가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폭주하는 열차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꽤 잔혹하기도 하고, 그 흐름을 멈출 수가 없다. 하루가 지나면 다음 경기가 기다리고 있고 결국 종착역에는 한 팀만 남게 된다.
사람들은 언더독의 선전을 바라는 성향이 있고, 메테오스가 조금 더 높은 곳까지 도달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물론 야구 팬들은 일 년 내내, 시즌이 끝나고 난 뒤에도 서로 까고 놀리기 바쁘지만, 그래도 메테오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엔젤스 정수호, ‘타자들에게 3점만 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병재가 저 나가고 나서 화를 내더라고요.’]그래도 엔젤스의 스토리도 썩 나쁘진 않았다.
메테오스나 엔젤스나, 타 팀 팬들의 조롱을 많이 받는 팀들이다. 사실 우리 팀도 그런 것들이 상당하긴 한데, 올 시즌만큼은 예외니까.
아무래도 하위권 붙박이였던 팀들의 선전으로 스토리가 풍부해지는 것 같다.
팬들은 다른 걸 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선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승리를 원하고 간절히 이기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런 모습이 메테오스에게도, 엔젤스에게도 있었다. 물론 시즌 중반에 보여줬던 아이언스의 삭발 투혼도 그런 부분이고.
우리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으리라 믿는다.
-박용재 : 건우야
-나 : 고생 많으셨습니다
패배를 진심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어떤 위로가 가능할까.
나와 대결하게 된다면 상대가 어떤 기분으로 경기에 임하더라도 이기려고 애쓰겠지만.
-박용재 : 한국 시리즈에서는 내년에 보자
-나 : 포스팅은 안 하시게요?
-박용재 : ㅎㅎ우승 한 번은 하고 가야것다
내년에도 우리가 우승할 거라 KBO 붙박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조준이 형이 그 말을 했으면 그렇게 대답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음. 모르겠다.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쌓을 투수의 앞길을 내가 바꿨나?
어떤 행동이나 태도가 사람들을 바꿔 놓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과거로 돌아온 뒤로 원래와 바뀐 일들은 모두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조금 생각이 많아졌다. 그게 티가 났는지, 훈련장 한쪽에서 앉아있는 내게 유리가 손짓했다.
유리가 부르면 가야지.
“무슨 일 있어?”
“응?”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이런 것들을 설명하는 것은 꽤 복잡하다. 하지만 유리가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런데 뭔가 말하고 싶었다.
“누나.”
“응? 무슨 일인지 마, 누나한테 털어놔 봐라!”
내가 웃는 걸 본 유리도 조금 안심됐는지 배시시 웃었다.
“나 때문에 누구 운명이 바뀐다거나, 그러면 내가 미안해해야 하나?”
“음.”
유리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주위를 쓱 살피곤 예쁘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몰라. 근데 난 너 때문에 행복하니까 됐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설명도 안 해줬는데 이런 대답이라면…
그냥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짧은 고민을 끝내기로 했다. 내가 뭐, 메이저리그 가지 말고 KBO 남으라고 협박이라도 했나.
바쁜 유리가 다시 일하기 위해 돌아가고, 이번엔 승기 형이 날 찾았다.
“강건우.”
“왜요.”
“박용재가 한국에 남기로 했다더군…”
“그래서요?”
“오션스에서 뛰고 싶은 모양이지…큭큭큭…”
…아니, 이 사람이 한국에 남아서 오션스로 오라고 하긴 했는데…
“형.”
“그래.”
“그 형 메테오스 우승시키고 싶어서 그러는건데요.”
“…?”
“형이 오션스 우승시키고 싶어 한 것처럼요.”
“내가 우승스를 오션시키고 싶어 한 것처럼?”
“예?”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고 있었지…”
“가서 운동이나 하세요.”
“큭큭큭…강건우. 분명히 말해두는데, 그 누구도 나만큼이나 팀을 우승시키고 싶어할 수는 없다…!”
한국 시리즈가 다가오니 진짜로 맛이 가버리는 것 같은데.
어쩌면 좋을까 저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