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12)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14화(314/385)
웨딩 로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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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스와 엔젤스의 준플레이오프.
KBO에 사연 없는 팀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엔진스 또한 구슬픈 사연이 있는 팀이다.
21세기에 우승이 없었다는 점에서 오션스나 메테오스와 함께 조롱의 대상이 되는 편이었다.
열광적인 팬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그래도 오션스나 메테오스보다 나은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이 팀은 그 두 팀이 밑바닥을 헤맬 때 그래도 꾸준히 가을 야구에 진출했으며, 객관적인 전력 상 우승 후보로 꼽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우승은 없었지만.
[솔직히 엔젤스 전력으로 4위가 말이 되냐?] [타선 괜찮고 투수진도 봉재석 데려오면서 약점도 메꿨는데 마지막에 쭉 미끄러지는 거 ㅋㅋㅋㅎㅋㅋ] [ㄹㅇ과학적인 팀임 DTD]분명히 나쁘지 않았다.
두 명의 외국인 투수를 잘 뽑았고, 정수호는 제2의 전성기를 찾은 데다가 4선발 안현기도 탄탄한 모습을 보여줬다.
타선에서는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들이 충분히 밥값을 해내며 좌타 일색이던 타선에 다양성을 더했고 미다 발데스는 잠실 구장에서도 37홈런을 때려냈다.
투타의 정신적 지주인 정수호와 송병재가 훌륭한 성적(13승 7패/ERA 3.24, 타율 0.346/11홈런/91타점/98득점)을 기록하며 팀을 정신적으로나 성적으로나 이끌었음에도 마지막에 미끄러지며 4위에 그쳤다.
두 선수는 대표적으로 평가절하되는 선수들이었다.
구속 다 떨어지고 퇴물 됐는데 잠실빨로 연명한다는 소리를 듣는 정수호와 승패 무관한 경기에 주로 안타를 몰아친다고 스탯 관리 소리를 듣는 송병재.
신인 시절부터 주목받으며 주목도와 비례해 억울하게 욕을 먹어왔던 두 선수는, 어느새 30대가 되어 있었다.
“젊을 땐 그게 되게 억울했는데. 넌 안 그랬냐?”
“나도 그랬지 뭐. 근데 지금은 괜찮아. 생각해보면 나보다 형이 더 심했겠네.”
32세 정수호와 31세 송병재. 강속구 투수였던 정수호는 부상으로 구속을 잃었을 때 은퇴하라는 비아냥을 들었었고, 송병재는 똑딱거리면서 팀이 꼭 필요할 때 안타가 아닌 볼넷을 얻는다면서.
“그래서, 올해 끝나고 다른 팀 갈 거야?”
지난 시즌이 끝나고 4년 75억에 원소속팀 엔젤스와 계약한 송병재의 질문에, 정수호가 슬쩍 웃었다.
정수호의 입단이 1년 빨랐지만, 부상으로 FA 취득이 좀 늦었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가 된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FA 되면 같이 팀을 뜨자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송병재는 타 팀의 90억 제안에도 불구하고 팀에 남았다.
“야. 병재야. 형 그냥 주는 대로 받고 남으려고.”
“왜?”
“몰라 임마.”
“10년 10억 줘도 남아?”
“…”
“구라네.”
“야. 10년 뒤엔 팔 올라가지도 않겠다.”
“그럼 4년 10억?”
“…”
“구라네.”
“4, 4년 40억 정도만 되더라도…”
“그럼 단장님한테 지금 바로 전화한다?”
“…”
“농담이다, 농담.”
둘은 낄낄대며 웃었다. 굳이 더 잘하자고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더 잘 하고 싶어 하는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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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스의 두 선수가 팀을 이끈다면, 엔진스 포수 백준섭은 거의 혼자 팀의 리더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투수진의 채지성도 30대가 됐고 불펜에 늙은 여우들이 있지만 팀을 이끄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엔진스 팬들의 압박은 대단하다. 오션스나 엔젤스 같은 팀들이 한 맺힌 팬들의 아우성에 파묻혀 버린다면, 엔진스 팬들은 과거 찬란했던 팀 성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팬들의 요구치는 꼭대기에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래도 백준섭은 대놓고 약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사람들은 백준섭이 노안이라며, 배터리 코치와 훈련하는 사진을 두고 누가 코치고 누가 선수인지 모르겠다고 놀리기도 하지만 백준섭은 그게 다 자신이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 왕조 시절에는…’
백준섭이 정말 많이 들은 말이다.
사람들은 엔진스 왕조 재건을 바란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부동산 트리오 외에도 이주혁이라는 거포가 나타나 올 시즌 아쉽게 30홈런 달성에 실패한 29홈런을 때려냈다.
누구나 자신을 인정해준다. 비록 조용한이라는 거물에 가려 만년 2인자 포지션에 그치고 있지만, 그래도 2인자가 어디인가. 그래도 올 시즌 팀 성적에선 앞섰다.
역사와 전통 깊은 이 팀에서 전설적인 선수가 되고 싶었다.
이렇게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애들’을 이끌어야 한다. 쉬는 내내 송구 연습에 몰두하며 타자 분석에 시간을 쏟아부었다.
목표는 한국시리즈다. 거기서 강건우의 도루를 잡아내고 오션스를 잡을 생각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쉬운 일이 있기나 했던가.
-백준섭 : 건우야
-강건우 : 예 형
-백준섭 : 한국시리즈에서도 도루 할거냐?
경기에서 적으로 만나면 진절머리가 나고, 솔직히 말하면 햄스트링을 터뜨려 버리고 싶은 놈이지만, 그래도 야구에 진심이라는 면에서는 호감 가는 놈이었다.
-강건우 : 유리 누나가 다 찢어버리라고 해서요…
“에이 시발. 괜히 문자 했네.”
백준섭은 그렇게 말하며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집어 던져 버렸다.
“아니, 이런, 시발!”
스마트폰이 사망했다. 백준섭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죽어버린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가, 갑자기 전의를 불태웠다.
“강건우 이 새끼…넌 진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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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경기를 전후해서 경기하는 팀 선수들에게 연락이 많이 온다.
엔젤스 송병재는 내게 백준섭을 상대로 어떻게 도루하는지 슬쩍 떠보기도 했다.
물론, 내 밑천을 내주진 않았다.
이쯤 되면 더 상세한 분석이 필요한 시기다.
단기전에서는 시즌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유리는 코칭 스태프들끼리 경기를 보며 회의해야 한다고 한다. 나도 데려가달라고 했더니 유리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건우 누나 없이도 혼자 집에 잘 갈 수 있지?’라고 말했다.
싫은데.
여기에서 내 실수는, 유리랑 같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서 나왔다.
“…넌 어쩌다 여기 와있냐.”
“…그러게요.”
“오오! 제 인생의 등대, 민! 승! 기! 형님! 저는 이 롤렉스 컬렉션을 모두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아아아앗!”
“큭큭큭…박의현, 더 노력하면 그것들을 모두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집에 갈걸.
의현이 형에게 딸려온 거로 보이는 훈이 형이 옆에서 무해하게 헤헤 웃고 있다.
집이 꽤 황량하다. 진짜 별것 없다. 이래서 남자들끼리 사는 집이란…
어쨌거나, 1차전 선발 매치업은 외국인 투수 간의 맞대결이었다.
엔젤스의 로버트 코반과 엔진스의 네드 빌링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마르크 파냐와 정수호를 쓴 페널티를 안고 경기하게 되는 엔젤스지만, 실질적으로 페널티는 그렇게까지 커 보이진 않는다. 엔젤스 4선발이 약했더라면 그 페널티가 굉장히 크게 느껴지겠지만, 안현기는 꽤 괜찮은 투수다.
물론 준PO 2차전에서 안현기가 맞붙게 될 채지성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타선은 엔진스가 좀 더 나아 보인다. 투수는 엔젤스의 작은 우위.
어느 팀이 올라오게 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강건우.”
“왜요.”
“넌 어느 팀이 올라오길 바라고 있지?”
승기 형의 질문이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한국인 에이스의 확실한 약점을 잡고 있는 엔진스가 아무래도.
“엔진스요.”
“왜지?”
“경기당 도루 다섯 개 가능요.”
“흠.”
승기 형이 가늘게 눈을 떴다. 왜. 또 무슨 말 하려고.
“실망이다.”
“또 뭐요.”
“누가 올라오더라도 상관없다는 대답을 바라고 있었건만…!”
“그럴 거면 그냥 물어보질 마요.”
“강건우…!”
이 의미 없는 대화는, 상욱이 형 덕분에 끝낼 수 있었다.
“완댜님. 우유를 데워 왔습니다. 전에 드셨던 비트 슈가를 넣었습니다.”
“음.”
진짜 이상하다. 아니, 진짜 왕자랑 시종 같아 보여서 진짜 이상하다니까.
내 눈빛을 눈치챘는지, 상욱이 형은 자신의 왼손 손목을 슬쩍 들어 보였다. 롤렉스다.
아. 전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얹혀사는데 월세도 안 받으려고 한다고. 그런데 선불이라며 롤렉스를 줬다고.
아무래도 자기가 승기 형 잡일 담당으로 고용된 게 아니겠냐는 말을 했었지.
됐다. 생각하면 나만 골치 아프다.
어쨌거나, 대구에서 열린 두 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은.
홈 팬들의 치열하고 열띤 응원에도 불구하고, 엔젤스가 먼저 가져가 버리고 말았다.
로버트 코반은 홈런 두 방을 맞았지만 모두 솔로 홈런이었고, 송병재는 홈런 한 방 포함 4안타 3타점을 올리며 메테오스를 꺾은 기세를 이어갔다.
엔진스는 쉽게 내줄 수 없다는 듯 추격에 열을 올렸으나, 그들의 기대주 이주혁이 병살 두 개를 포함한 무안타에 그쳤고 엔젤스가 승부수를 던지며 트레이드로 데려온 봉재석이 3타자 연속 탈삼진을 따내며 불씨를 피우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경기 후 카메라는 박재정 감독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클로즈업했다. 대구에 원정 온 엔젤스 팬들의 노란 수건이 화려하게 흩날렸고, 백태현 감독의 애써 무덤덤한 척하는 얼굴도 카메라에 잡혔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인터넷은 아마 빛재정과 좆태현으로 도배가 될 것 같다. 승패가 반대였다면 킹태현과 빡재정이었겠지만.
“이주혁은 풀카운트 떨어지는 공이면 무조건이네, 안 그래?”
“네 말이 맞다! 절대 존 안에 던질 필요가 없다!”
“컨디션 좋을 때는 존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그대로 넘겨버리던데…”
“하지만 컨디션 좋을 때와 안 좋을 때는 레그 킥으로 구분할 수 있지! 이주혁은 컨디션이 나쁠수록 레그 킥 할 때 내려놓는 발의 흔들림이 커진다!”
포수들의 생산성 있는 대화 가운데서, 나는 가만히 앉아서 유리의 메시지를 기다렸다.
포수 두 사람이 엔젤스와 엔진스 타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승기 형이 중간에 끼어들곤 했다.
“송병재? 큭큭큭…내 커브 앞에선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하겠지…”
“…”
-유리 누나 : 끝났어!!!!!
-유리 누나 : 우리 건우 어디있니!!!
나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저 갑니다.”
“어디 가냐?”
“유리 누나 퇴근한대요.”
“그래. 조심히 가고.”
“내일 보자.”
내일은 단장님을 잠깐 만나기로 했다. 또 뭐 CF 찍으라고 하려나. 이제 이상한 건 찍기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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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우 선수.”
“예. 단장님.”
박준기 단장은, 강건우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강건우는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한국에 남은 이후로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이 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처음의 박준기는 꽤 어설펐다. 팀이나 선수에게 득이 되지 않는 언론 플레이를 하기도 했고, 신인 선수에게 휘둘리면서도 표정에 생각을 다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다.
“시기상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코로 한 번 공기를 내뿜고는, 말을 이었다.
“부산시 측에서 사직 야구장에서 강건우 선수의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허락해줬습니다.”
그리고 씩 웃었다.
“부산시 측에서도 부산의 상징과도 같은 오션스가 호성적을 냈고, 그 중심에 강건우 선수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부산시장이 오션스 팬이라는 점이나, 혹은 오션스 덕분에 침체되었던 지역 경제가 살아났다는 점도 분명히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는 세수 확보와 연결된다.
고작 야구 하나 때문에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게 정말 맞느냐며 야구에 미친 도시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다.
강건우는 감사의 뜻을 표했다.
단장이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댔지만, 강건우의 머릿속에는 정유리에게 빨리 이 사실을 전달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너무 들뜨고 싶지도 않고 생각해야 할 문제도 많았지만, 그래도 유리가 기뻐할 테니까.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나갈 새 CF에 대해 이야기도 했다. 경기 준비에 한참 바쁠 테니 그냥 목소리만 나오게 녹음만 하면 된다고 했다.
마지막에, 단장은 강건우의 두 손을 덥석 붙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감사합니다. 강건우 선수. 저 또한 오션스 팬으로서, 강건우 선수가 해낸 것들 덕분에 정말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강건우는 그래도 이 단장에 대한 평가를 조금 긍정적으로 바꿔 놓았다.
오션스 팬이라고 하니까. 다른 이유는 딱히 필요 없다.
강건우는 곧장 정유리에게 달려갔다. 분석실에서 자료를 만들고 있던 정유리는 문을 벌컥 들어온 강건우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
“누나! 우리 사직 구장에서 결혼할까?”
그리고 그 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직에서 결혼?
“응? 어떻게?”
강건우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해도 된다는데? 누나만 원하면!”
정유리의 눈이 커졌다. 조금 당황스럽긴 하다. 그런데,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쳐버린 꼴빠 입장에서 이건…
“진짜? 진짜로? 해도 돼? 할래!”
폴짝 뛰어오르며 반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하객을 얼마나 채워야 하는 거야? 그래도 할래! 하자!”
강건우가 폴짝폴짝 뛰는 정유리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앉아있었던 노경우가 헛기침을 했지만, 둘은 노경우가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근데 너무 소란스럽지 않을까? 아는 사람들만 부르면 너무 휑하기도 할 거 같고…”
“그럼 식 두 번 할까? 한 번은 여기서 좀 크게 하고, 한 번은 진짜 친한 사람들만 불러서 아기자기하게.”
강건우는 정유리가 지난번 결혼식을 마친 후, 친한 사람들을 불러 작게 파티 형식으로 했어도 좋았을 거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유리가 녹아내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될까?”
“당연하지.”
머쓱한 표정의 노경우가 말했다.
“저기요. 코시 우승해야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 아직 여기 있는데요…그, 뽀뽀는 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