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13)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15화(315/385)
웨딩 로드 -2-
#
한국은 미국과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또 느낀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긴 한데, 음.
지난 시즌 내가 완전히 독주했던 신인왕 레이스의 상황과는 달리, 이번 시즌 신인왕 대결은 꽤 치열했다.
엔진스의 이주혁과 아이언스의 지형욱.
그간 쌓아온 역사를 보자면 KBO에서 가장 명문이라 할 수 있는 두 팀의 젊은 거포의 경합은 양 팀 팬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처럼 보였다.
엔진스 이주혁은 2008년생으로 나보다 한 살 많은 좌투좌타 1루수다. 컨택 능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선구안이 좋고 힘이 좋은 타입으로, 올 시즌 최종 성적이 타율 0.239에 29홈런이었다.
그리고 아이언스 지형욱은 2008년생 우투우타 좌익수. 선구안은 상당히 나쁘다. 하지만 177cm라는 비교적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좋은 신체 밸런스와 짐승처럼 돌려버리는 스윙으로 24홈런을 기록했다. 타율은 0.288.
이주혁은 9월 중순까지는 2할 6푼대의 타율에 26홈런을 유지했으나, 체력 소모가 큰 탓인지 급격히 성적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주혁의 출루율은 0.350이고 지형욱의 출루율은 0.325다. 양 팀 팬들이 누가 신인왕이 되어야 하느냐로 눈만 뜨면 싸움을 벌였고, 아직도 그러고 있다.
[이주혘ㅋㅋㅋㅋ어제2병살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무안타 신인왕? 말이냐 ㅋㅋㅋㅋㅋ]└주혁이가 개형욱처럼 눈먼 스윙 했으면 40개는 쳤다
└40개 치고 말하셈
└좆주혁 망나니 스윙 한달 내내 하더니 홈런 3개 추가하고 끝이드만ㅎ
└6위 따리가 신인왕이 말이냐 최소한 포시 진출은 시켜야지
└신인왕에 팀 성적은 왜 넣음? 개인 성적으로 판단해야지
└우리 주혁이는 OPS형 히터다 십새끼들아 씹형욱 구데기같은 출루율로 어딜 비비노
└느그 똥주혁이 OPS형 히터면 우리 형욱이는 배드볼 히터다 십새야
싸워대봤자 저 둘은 차후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멤버로 대성할 선수들이다. 신인왕 그거 뭐라고.
어쨌거나.
뜻밖의 연락을 한 통 받았다.
-건우야. 그,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나 좀 도와줄 수 있겠냐?
엔진스 백준섭이었다. 준플레이오프 진행 중에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마는, 백준섭은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도움받은 적도 있으니.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면요.”
백준섭의 말은 이랬다.
나보다 한 살 많지만 이주혁은 내 팬이며, 내 스윙에 엄청나게 감명받아 스윙을 따라 하려 애쓰다 보니 1군에 진입해 신인왕 후보까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내버려 둬도 잘 됐을 선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 말릴 수도 없다.
결론은 그거였다.
-조언 같은 거 해줄 수 없을까? 네가 주혁이보다 어려서 좀 웃기긴 한데…하. 주혁이한텐 말하지 말고, 애가 어제 병살 두 개 치고 화장실에 숨어서 네 타격 영상 보고 있더라고…
뭐, 이주혁은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난 사람이거나 싫었던 것도 아니었고.
사실, 이 경우에 해결책은 생각보다 쉽다. 그런데 그걸 말해준다 한들, 실행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아무리 정답을 알려주더라도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애당초 정답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냥 뭐, 음. 치고 싶은 공만 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치고 싶은 공만 쳐라?
“예.”
-그래. 고맙다. 주혁이한테 그렇게 전해줄게. 정말 고맙다.
백준섭은 포수지만 타격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저런 짧은 말도 단번에 이해했을 것이다. 코치들도 놀고 있진 않을 것이고.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법이다. 이주혁이 내 스윙을 따라 해 1군 주전으로 올라섰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보다는 내 말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컨디션이 괜찮았던 건지.
이주혁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안현기에게 첫 타석 루킹삼진을 당했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 역전 쓰리런을 때려냈고, 마지막 타석에서 날카로운 2루타를 때려내며 쐐기 득점을 자기 발로 만들어냈다.
[준PO 2차전 수훈선수 이주혁, ‘(백)준섭이 형이 강건우 선수에게 조언을 부탁했는데, 들은 대로 플레이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음.
저 말은 안 해도 됐었을 텐데.
-송병재 : 야 나한테도 조언 좀 해줘라 왜 엔진스만 도와주냐
-정수호 : 혹시 이거 엔젤스 견제…?
-송병재 : 건우 저놈 도루하는 거 좀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
#
“엔진스가 올라오면 좋겠다고 하더니, 강건우…”
개인적으로 이주혁이 활약한 이유가 100% 내 조언 덕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승기 형은 내가 수를 썼다고 생각하고 있다.
엔진스 팬들은 날 찬양하고, 엔젤스 팬들은 내 욕에 여념이 없다.
“뭐라고 해줬길래 저 난리야?”
유리는 이 사건에 대해 꽤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코치들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단 한 마디로 선수를 바꿔 놓는 거.
“그냥 치고 싶은 공만 치라고 했어.”
“오.”
“왜?”
“날카로운데?”
“선수 그만두고 코치 할까?”
“예끼 이놈.”
농담 한마디 했다고 예끼 이놈이라니.
이주혁의 문제는 외부 상황에서 오는 압박감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지형욱과의 신인왕 경쟁에서 언론이 타율 높은 지형욱이 우세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고, 남이 뭐라건 신경도 안 쓰는 지형욱과 달리 이주혁은 원래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많이 쓰는 예민한 타입이다.
나랑은 별 관계 없는 문제다. 그래도 유리는 날 칭찬해줬다.
“그래도 상대 팀 타자 분석 잘 하는 거 보니 우리 건우 장하네. 근데 이주혁한테 조언해줬다가 코시에서 맞으면 어떡하게?”
“내가 이주혁한테?”
유리의 표정이 환해졌다. 물론, 맞을 수도 있다. 잘못 맞으면 훅 넘어가는 힘을 가진 것도 사실이고.
“걱정하지 마. 한국 시리즈에서 실점 안 할 거니까.”
혹시라도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나 말고 다른 투수들한테 생긴다면, 음.
홈런 한두 방 더 때려서 충당하지 뭐.
#
[(준PO 3차전) 대구 엔진스 0 : 1 서울 엔젤스.] [엔젤스 마르크 파냐, 8이닝 무실점. 봉재석 무실점 세이브. 정기백 희생플라이 결승타.] [엔젤스의 트레이드 신화? 올해 트레이드로 영입한 정기백-봉재석 맹활약에 힘입어 엔진스에 2승 1패로 앞서.] [‘강심장’ 마르크 파냐, 스트라이크 비율 91.1%의 맹공으로 엔진을 꺼버리다.] [엔젤스 박재정 감독, ‘파냐에게 겁먹지 말고 그냥 존에 꽂아버리라고 조언했다.’]└맹장 빛재정 감독님 ㄷㄷㄷㄷㄷㄷㄷㄷ
└단기전의 마술사 ㄷㄷㄷㄷㄷㄷㄷ
#
[(준PO 4차전) 대구 엔진스 7 : 2 서울 엔젤스.] [엔진스 염윤현, 정수호(6이닝 2실점) 꺾고 포효. 6이닝 1실점 승리 투수.] [7회 초에 터진 팀 리더 백준섭의 그랜드 슬램, 승리를 굳히다.] [엔젤스 마운드의 정면승부를 뚫어낸 엔진스 선발 전원 안타 맹공.] [엔진스 백태현 감독, ‘대구에서 진출을 확정 짓겠다.’] [엔젤스 박재정 감독, ‘만루 홈런 외에는 괜찮았다.’]└맹장 빡재정 빨던놈들 다 어디감?
└맹장특)없어도 사는데 아무 상관없음
└맹장ㅋㅋㅋㅋㅋㅋㅋ아 그 맹장이었음?ㅋㅋㅋㅋㅋ
└단기전의 맙소사 ㄷㄷㄷㄷㄷㄷㄷ
└동네 똥개 앉혀놔도 빡재정보단 나을듯
#
2대 2로 스코어가 동률을 이룬 가운데, 파이러츠는 이 상황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위 라운드에서 투수진의 체력 소모가 커진다면 플레이오프에서 파이러츠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파이러츠 입장에서는 엔젤스가 올라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엔젤스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2경기와 준플레이오프 5경기를 뛰고 올라올 테니 체력 문제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오션스는 바이킹스와 연습 경기를 가졌다. 2군 위주로 출전한 바이킹스와의 이 경기는, 치열하게 승패를 가린다기보다는 경기 감각 유지라는 측면이 컸다.
하루 휴식 후 엔진스와 엔젤스의 마지막 경기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두 팀은 모두 동기 부여가 잘 되어 있는 상태다. 1차전의 매치업 그대로 로버트 코반과 네드 빌링엄이 등판하게 됐고, 불펜에는 총동원령이 내려져 있었다.
플레이오프를 생각해 체력을 안배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여기서 지면 끝이다.
역대 플레이오프에서 업셋 확률은 거의 절반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5차전까지 온 지금, 어느 팀이 이길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단기전은 알 수 없다는 말처럼, 매 경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약속의 땅 대구 도착.jpg]1차전에서는 똑같은 선발 투수들끼리 대구에서 맞붙어 엔젤스가 승리를 가져갔다.
엔젤스 팬들은 그때와 똑같은 승리가 재현되길 바라고 있었고, 엔진스 팬들은 당연히 반대의 결과를 염원하고 있었다.
[1차전 때는 몸 덜 풀려서 그랬다고 봄 ㅇㅇ]작년은 두 팀의 희비가 갈렸었다.
엔젤스는 3년 연속 가을 야구 진출의 맥이 끊겼었고, 엔진스는 3년 연속 가을 야구 탈락의 흐름을 끊고 막차에 탑승했었다.
엔진스는 바이킹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탈락했었던 기억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한 계단이라도 더 올라야 한다.
두 팀의 맞대결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오! 이연호의 리드오프 홈런! 엔젤스! 선취점을 올립니다!
0.301의 타율에 0.404의 출루율 및 25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1번 타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며, 송병재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이연호의 선두 타자 홈런.
그리고 이에 질세라.
-엔진스가 맞불을 놓습니다! 엔진스 1번 타자 정부원이 초구를 마음먹고 잡아당겨 동점 홈런을 터뜨립니다!
-이야. 오늘 경기 초반부터 예사롭지 않은데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엔젤스 정기백이 2회 초에 솔로 홈런을 터뜨렸고, 엔진스 이주혁이 질 수 없다는 듯 2회 말에 담장을 넘겼다.
코치진과 함께 경기를 분석하기 위해 경기를 지켜보던 휴 브레드먼 감독이 말했다.
“다들 갱처럼 스윙하려 하는 것 같군.”
한국 시리즈에서 어떤 팀을 상대했으면 좋을까 하는 질문에 코치진의 의견은 완전히 갈렸었다.
파이러츠, 엔젤스, 엔진스.
누가 올라오더라도 만만치 않다.
물론, 어떤 팀이라도 자신감은 넘쳤다.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선수단에는 체력과 활기가 넘친다.
“좋은 팀들이야.”
정규 시즌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이었다. 어느 팀이 올라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전개 속에서, 흐름이 바뀐 것은 두 팀이 약속이라도 한 듯 불펜을 내세운 4회부터였다.
스코어 3대 3. 아직 외국인 투수들을 교체하기에는 이른 타이밍이었지만, 지금은 정규 시즌이 아니니까.
엔진스의 능구렁이 같은 불펜이 엔젤스 타자들을 꽁꽁 틀어막았다. 그러자 박재정 감독은 결단을 내려, 3대 3으로 이어지고 있던 6회에 마무리 투수 봉재석을 등판시켰다.
“봉?”
어차피 야구는 결과로 말한다. 이 선택이 악수가 되어 패배한다면 박재정 감독은 맹장(猛將)이 아니라 정말 맹장(盲腸)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봉재석은 가장 까다로운 타자들이 나오는 6회와 7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송병재의 적시타로 1점 앞서 나갔고, 봉재석의 뒤를 이어 등판한 김근이 아웃 카운트 두 개를 잡고도 연속 볼넷을 내주며 위기에 몰리자 박재정 감독은 2차전 선발 투수였던 안현기를 올렸다.
“안?”
경기를 지켜보던 휴 브레드먼 감독의 눈이 커졌다. 사실, 그건 오션스 코치진들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패전 투수가 됐던 안현기를.
그런데 그 승부수가 통했다. 팀에서 제구가 가장 좋은 편인 데다가 침착한 안현기가 국가대표 내야수 이현동에게 포크볼로 삼진을 따냈다.
“끝내주는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파이러츠 회의실에서도 나왔다.
“그럼 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은 마르크 파냐가 나오겠네.”
“2차전에는 정수호가 나오겠고요.”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엔젤스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민승기는 ‘나였더라면 9이닝 전부 무실점이다’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고, 박의현은 ‘저도 그 감동적인 순간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아아앗!’이라고 외쳤으며, 주상욱은 삼진을 잡아내는 포크볼이 바닥에 튀는 걸 보고 자기 심장이 벌렁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정유리를 기다리고 있던 강건우는 별생각이 없었다.
-정조준 : 마 강건우
-정조준 : 긴장했음?
-정조준 : 우승도 해본 놈이 하는 거 알제?
-정조준 : 그리고 머?
-정조준 : 우승하고 사직에서 결혼한다고?
-정조준 : 이 형님보다 어딜 먼저 가려고??
-정조준 :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어???
그냥 스마트폰을 덮고, 엔젤스가 준플레이오프에서 3대 2로 엔진스를 꺾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직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하객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강건우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엔젤스가! 엔진스를! 대구에서 4대 3으로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대단한 승부였습니다! 박재정 감독과 백태현 감독의 귀신같은 지략 승부는 박재정 감독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건 정말, 장군 멍군이라고 해야겠네요. 한 끗 차이였거든요. 정말 명승부였습니다.
-엔진스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송병재 선수와 정수호 선수가 부둥켜안고 있습니다.
-정수호 선수가 마음고생이 많았거든요. 4차전에서 자기가 승리했으면 진출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오늘 덕아웃에서 정말 가슴 많이 졸였을 겁니다.
-예! 두 팀 모두 좋은 경기 펼쳐줬습니다! 플레이오프는 엔젤스 대 파이러츠, 파이러츠 대 엔젤스로 열리게 됐습니다! 이상, 대구에서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