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14)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16화(316/385)
웨딩 로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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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경기에서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파이러츠는 엔젤스가 투수를 많이 소모했다는 점을 기뻐할지도 모르지만, 엔젤스는 지금 경기 감각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있을 것이다.
감각이라는 것은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때로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감각이 들 때가 있다. 사실, 그렇게 움직였는데 결과가 좋으면 감각이 살아있는 거고 결과가 나쁘면 지친 게 되긴 하지만.
추상적이긴 해도 엔젤스는 그런 상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경기에서 이기진 못한다. 아슬아슬한 승부를 거치며 연마된 상태는 종종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깨지기도 한다.
그건 뭐, 그들에게 달린 문제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파이러츠가 얼마나 강하게 밀어붙이느냐에 따라서도 그렇다.
결국, 어차피 야구 잘 하는 놈이 이기게 될 것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해서 쉽지 않은 상대들을 꺾고 올라온 엔젤스, 그리고 체력을 비축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파이러츠.
며칠이 지나고 나면 저 두 팀 중 승자와 우리가 그런 위치에 있을 것이다.
사실, 조금 다르다. 야구에서 항상 잘 하는 놈이 이기진 못한다. 그러면 또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항상 이기는 놈만 이기면 무슨 재미로 야구를 보겠는가.
그래도 이번 한국시리즈는, 잘하는 놈이 이겨야 한다. 바로 우리다.
과거로 돌아오게 된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니 뭐, 그게 이유랄 게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유리에게 한 번만 봐달라고 하고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오게 됐고,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유리와 행복하게 살기’로 잡았다.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오션스가 우승하지 않더라도 유리가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 팀을 이끌고 우승시킨다면 더 행복해할 것은 분명하다.
유리와의 약속은, 이제는 꼭 지키고 싶다. 굳이 이 반지에 새겨진 자국들 때문이 아니더라도, 유리에게 꼭 우승하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으니까.
오션스는 강하다. 투타 모두에서.
타선은 구멍 하나 없이 빽빽하게 메워져 있고, 시즌 중에 심각한 부상을 겪으며 경기력에 난조를 겪는 선수도 없다. 3루의 수비력은 여전히 조금은 물음표가 붙어 있지만, 공격력으로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 노경우는 이제 리그 평균 수준은 해주는 수비수가 됐다.
수비만 놓고 봤을 때 주상욱은 박의현을 따라가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충분히 공백을 메꿀 만하다. 포수뿐만 아니라 대부분 포지션에서 괜찮은 수준의 백업 멤버들이 대기하고 있다.
투수 쪽도 훌륭하다. 민승기-앤디-국민성으로 이루어진 3명의 에이스급 선발진에 내가 들어갈 수도 있다. 나머지 두 명의 선발도 언제든지 어느 자리에서든 활약할 수 있고, 내가 선발로 나서게 되어 필승조에서 빠진다면 클로저가 조금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장태영-김정혁-이휘은의 필승조도 리그 상위권의 불펜진이다.
어쩌면 내가 없어도 승리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션스의 승리 확률이 가장 높을 때는 내가 경기장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때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집중력의 바다에 빠뜨리기로 했다. 내가 잘 하더라도 경기에서 패배할 수 있다.
그런데 정규 시즌 때는 한 경기 정도는 져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면, 여기서는 그런 안일한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다. 작년의 실패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든다. 산소는 없다. 기계적으로 나 자신을 단련하고 몰아세운다. 파괴되고, 재생성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기술적인 부분은 내 본능과 경험이 해결해 줄 것이다. 지금은 육신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정신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날 생각이 난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커먼 어둠 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그때는 내가 옳은 길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이 길이 맞는 길이라고 믿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건우야.”
내 이름을 부르며 환하게 웃는 유리가 내 이정표다. 나는 유리의 얼굴을 확인하고 입가의 근육이 다 풀려버릴 정도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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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강건우 좀…”
“좀 이상하죠?”
“좀이 아닌데.”
오션스 선수들이 숙덕댔다. 준플레이오프가 끝난 직후부터 강건우는 평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입단 직후부터 루키 주제에 말 같지도 않은 활약을 펼쳤던 강건우는 때론 오만해 보였다.
그래도 누가 뭐라고 할 일은 없었다. 훈련에서 자기가 할 일을 정확하게 했고, 실제 경기에서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할 정도의 활약을 해냈으니.
성적이 너무 좋으니 코치고 선배고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강건우가 팀과 동료 선수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자 모두가 즐거워했다.
그런데 지금 강건우는 어딘가 명령어가 잘못 입력된 로봇 같았다. 특히 개인 훈련을 진행할 때, 강건우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집중했다.
종종 다른 선수들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했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좀 무섭지 않냐?”
양대근이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시욱은 초코파이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행님 얼굴이 더 무서운데요.”
“코시에서 실책하면 건우한테 쌍욕 먹겠다. 조심해라 시욱아.”
“행님이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수비형 3루수인데요.”
“그럼 나는 호타준족이다.”
“호타준족은 개뿔.”
“호타준족의 뜻을 모르는구나, 시욱아.”
“뭔데요.”
“호벌나게 때리고 준나 찬다는 뜻이란다. 누구를?”
“뭐를요? 저를요?”
“그래.”
“아, 진짜. 후배들 앞에서 자꾸 힘으로 할깁니까?”
“꼬우면 너도 나처럼 싸움 잘 하던가.”
“경남고 시라소니 맛 함 보이주까요?”
“드디어 보여주나?”
“행님 환갑 잔치 때 보여주께요. 저는 갑니다.”
“시욱이 어디 가냐?”
“저는 쫌 바쁩니다. 행님이랑은 좀 달라요.”
어쨌거나, 싹수없다기보다는 완전히 집중한 모습인지라.
서창열은 그런 강건우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가도, 노경우를 갈궈댔다. ‘마! 노경우!’ 그러면 노경우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린다. ‘왜 나만 가지고…’
민승기는 그런 강건우를 볼 때마다 ‘큭큭큭…강건우…’라고 말하며 질척거렸지만, 강건우의 대답은 단답형이었다.
국가대표 단톡방에서 강건우를 찾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지만, 강건우는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배영한이 이렇게 답장해줬다.
-배영한 : 건우?
-배영한 : 손가락 다쳐서 스마트폰 만지지도 못해~찾지 마~
-배영한 : 아 코시에서 건우 없으면 어쩌나~
강건우에게 타격 혹은 투구에 대한 조언을 얻고 싶은 신인 선수들은 미처 다가갈 기회조차 잡지 못 했고, 국민성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경기를 준비할 때 딱히 커뮤니케이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냥 동료 선수들의 컨디션을 조용히 살피고 활용하는 선수다.
앤디 가필드는 강건우의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자기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 넣어버렸다. 포수들만 죽어나고 있다.
그리고.
세월의 야속함과 사랑하는 팀의 선전에 상반되는 두 감정을 느끼고 있는 김정용이 말했다.
“건우는 진짜 결혼하고 싶은가 보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황석규가 되물었다.
“형님은 후회하세요?”
“뭐?”
“후회하시는구나.”
“아니. 아닌데.”
“형수님도 아세요?”
“아니라고 이 자식아.”
“제 입을 다물게 하려면 한국시리즈 끝나고 저랑 같이 선상 낚시 가줘야 합니다.”
“낚시 가고 싶으면 그냥 같이 가자고 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흐흐.”
김정용은 꽤 많이 변한 황석규를 보며 피식 웃었다. 팀에 적응 못 하는 황석규를 도와주려고 몇 번 낚시에 억지로 데려갔더니 이제 자기가 더 재미가 들려서.
“나 집에서 쫓겨나면 다 너 때문이다.”
“형님 그러다 별명 바뀝니다.”
“그냥 말하지 마라.”
“탓정용.”
“뭐라고?”
“남 탓하면 탓정용 됩니다.”
김정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억났다. 이놈이 이상한 개그를 치게 된 계기가.
‘술 취해서 울면서 사람들이랑 친해지기가 힘들다고 하길래 재미없는 개그라도 해보라고 했더니…’
별거 아닌 작은 행동이 나비효과를 불러온다. 세상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될 것만 같았던 오션스 우승도, 자신이 주역은 아니었지만 이뤄졌다. 김정용이 슬쩍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형님.”
“어.”
“웃으셨네요.”
“웃으면 안 되냐?”
“제 개그가 재밌어서 웃으신 거죠? 다 압니다.”
사람 좋기로 10개 구단에 소문난 김정용마저 이성을 놓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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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상황일 때는 기억이 드문드문한 느낌이 든다. 야구는 팀 스포츠이지만 개인적인 종목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너무 집중했더니 조금 생소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온몸에 충실한 느낌이 들고 있다.
얼핏 드는 기억에, 엔젤스가 2위 팀 파이러츠를 상대로 먼저 2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를 열광적으로 시작했었던 것 같다.
약간 꿈처럼 느껴진다. 조금 몽롱한 상태다.
“아들. 유리 엄마가 너 주라고 갖다 주더라.”
슬슬 뇌가 깨어난다. 장모님이 직접 정성스레 끓여주신 곰탕 냄새가 후각도 깨운다.
어쨌거나, 파이러츠는 3차전부터 반격을 시작했다.
엔젤스가 먼저 2승을 거둘 때만 해도 사상 초유의 엔꼴라시코 한국시리즈가 열릴 거라며 떠들썩했다.
하지만 3차전, 조준이 형이 무려 3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엔젤스를 박살 냈다.
완전히 시동이 걸린 것처럼 보였다. 긴 휴식은 때로 선수들을 둔감하게 만든다. 2패를 떠안고 나서야 시작된 파이러츠의 반격은 다음 경기까지 이어졌다.
체력 소모가 심했던 엔젤스 불펜이 무너졌다. 8회에 터진 파이러츠 타선의 백투백투백 홈런은 정말 이 플레이오프 승패의 향방을 알 수 없게 만들었고, 나는 메이저리거 시절 유리의 말을 떠올렸다.
‘파이러츠가 왕조라니…우리도 못 해본걸…’
강력한 팀임은 확실하다. 투타 불문하고 모든 포지션이 탄탄하다.
그리고 가진 것을 모조리 불태우며 질주하던 엔젤스는, 선수들의 체력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포스트시즌은 선수들의 체력을 몇 배로 갉아 먹는다. 게다가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준플레이오프, 그리고 플레이오프까지 끝장 승부까지 가게 된 엔젤스 선수들의 정신력이 얼마나 남아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어제가 바로 플레이오프 5차전이 열린 날이었다.
파이러츠는 1차전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고 패배했던 손용기를 내세웠고, 엔젤스는 2차전에서 7.1이닝 무실점으로 맹활약한 정수호를 내보냈다.
어제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꽤 놀라웠다. 엔젤스 선수들에게 그런 체력이 남아있을 줄이야.
경기 초반부터 엔젤스 타자들은 연속으로 작전을 성공시키며 앞서 나갔다. 볼넷, 도루, 희생번트, 희생플라이.
경기 중반에 결정적인 실책이 나왔다. 2사 1루에서 김해근의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향했는데, 불규칙 바운드가 나오더니 엔젤스 유격수 윤세환이 공을 놓쳐버렸다.
플레이오프에서 타격감이 미쳐 날뛰는 조준이 형이 나올 차례였다. 여기서 끊어줬다면 어떻게 됐을지 몰랐을 거다.
윤세환은 바닥에 글러브를 내동댕이치더니 자기 머리를 주먹으로 쾅쾅 때렸다. 그리고, 조준이 형의 플레이오프 6번째 홈런이 나왔다.
그렇게 부산과 창원에서 한국시리즈가 열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파이러츠 마무리 투수 이윤호가 등판해 경기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따냈을 때, 엔젤스 선수 중 몇몇은 바닥에 쓰러져 통곡했다.
파이러츠 선수들이 환호하며 마운드로 달려가는 것과 굉장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래도 격렬하기로 소문난 엔젤스 팬들마저도, 이번 패배에는 그렇게까지 분노를 토해내진 않았다. 물론 어떤 사람들이야 이래서 졌고 저래서 안 된다며 화를 내긴 했지만, 팬들도 엔젤스 선수들이 정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고 이기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기에 박수를 보내줬다.
사실, 메이저리그 시절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유리는 지더라도 괜찮은 패배가 있고, 이겨도 화나는 승리가 있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 말에 동감하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뛰면서 그게 뭔지 배우게 된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납득 가는 패배보다는, 영 시원치 않은 승리라도 챙길 생각이다.
며칠 있으면 곧 내 두 번째 한국시리즈가 시작된다. 유리와 함께 차를 타고 훈련장으로 가는 길이 웨딩 로드처럼 느껴진다.
“눈빛이 좀 풀렸네?”
“그래?”
“요새 선수들이 너한테 다가가기 무섭대.”
나는 그냥 웃었다. 그렇다고 뭐, 나 집중할 테니까 좀 이상해져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유리가 날 보며 씨익 웃더니 말했다.
“아니 뭐, 근데 우리 건우 그러다가도 누나만 보면 웃더라? 종일 인상 쓰다가. 나랑 이야기할 때 말고는 웃은 적 없다던데?”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대답했다.
“내가 웃을 일이 누나 말고 뭐 있겠어. 누나 보면 그냥 웃음이 나오는데 어떡해.”
유리가 작게 비명을 질렀고, 나는 바보처럼 웃으며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졌다.
니체가 말하기를, 결혼할 때 내가 늙어서까지도 이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라고 질문해보라고 했다.
사실 그건 유리가 내게 해준 말이다. 나랑 헤어질 때. 자기는 그 질문에 항상 예라고 대답해 왔는데 나는 아니었다고.
두 번째는 무조건 ‘예’다. 그냥, 그렇게 되어야 한다. 무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