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16)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18화(318/385)
웨딩 로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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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어떤 종목에는 상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정해진 법칙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람들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런 상식.
야구에서 예를 들자면 타격왕의 성적이 3할대라거나, 홈런왕은 보통 홈런 30개 정도라거나.
물론, 홈런을 한 시즌에 40여 개 때리는 특출난 선수도 있다. KBO로만 한정 짓더라도 50개를 때린 선수들도 극소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일반적인 야구의 상식을 파괴해버린 선수가 있다.
4할 타격왕.
전대미문의 65개를 넘긴 홈런왕.
이 선수는 마치 맹수 같았다. 물론, 리그에 맹수가 이 선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에드손 타바레즈는 시즌 내내 KBO를 대표하는 에이스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때로 도무지 손댈 수 없는 공을 던지기도 했다.
포심, 컷패스트볼, 싱킹패스트볼, 커브를 구사하는 이 좌완 투수가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는 날이면 타자들은 뭘 노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럴 때는 정말 맹수 같은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높낮이를 조절해 제구되는 세 종류의 패스트볼에 타자들은 속아 넘어갔고, 배트를 강하게 쥐고 휘두를 때 허를 찌르는 커브는 꽤 절묘했다.
이 투수도 일단은 맹수 과에 속한다는 뜻이다. 파이러츠 구단 측에서는 이 투수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다음 시즌 재계약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맹수에게도 급이 있다.
어떤 맹수들은 서로 물고 물리며 싸움을 벌일 수도 있지만, 에드손 타바레즈 앞에 선 이 선수는 그냥 평범한 맹수가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상대를 가격할 수 있는, 어떤 형태로든, 방식을 가리지 않고.
에드손 타바레즈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싱커를 선택했다. 포수가 아닌 벤치에서 나온 싸인이다.
벤치의 의도는 명확했다. 저 타자는 올 시즌 10번 나와서 4번 쳤다. 일단 1루 베이스를 밟을 확률이 54.6%다.
TV 화면으로, 혹은 사진으로, 또는 안전한 사파리 버스 안에서 보는 맹수는 무섭긴 해도 실제로 위협은 될 수 없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냉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출루 확률은 절반이 넘지만 때려서 나갈 확률은 절반보다 적다. 다른 선수들보다는 안타를 때릴 확률이 높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나가는 것은 아니다!
주자가 1루에 있는 상황에서 그라운드볼을 유도하는 것은 정석이다. 1아웃이니 땅볼 하나면 이닝을 끝내고 공격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 의도였다.
게임에서 모니터 안의 괴물을 잡는 것에 강심장 따위는 필요 없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타이밍에 맞춰 두드리면 된다.
그런데.
따아아아아아아아악-!
그 맹수를 직접, 코앞에서 보게 된다면 모든 상황은 달라진다.
마우스로 에임을 옮겨 괴물의 급소를 노리거나, 계산된 정확한 타이밍에 때린 후 커맨드를 입력해 빠지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입김을 후 불어 넣어 힘겹게 녹이고 던진 싱커는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다.
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 하고 던진 공 치고는 괜찮았다는 뜻이다. 존 아래로 살짝 가라앉았고, 일순간이지만 움직임이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완벽하게 담금질 된 강건우의 스윙을 이겨낼 수 없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수용 규모 이상으로 관중이 들어찬 사직 야구장에서는, 그냥 비명만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대부분 행복하고, 일부는 불행한 거대한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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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군.”
오션스 벤치도 선수들의 실력만 믿고 경기 대비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휴 브레드먼 감독은 강건우의 홈런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지었다.
에드손 타바레즈는 제구도 좋고 구위도 좋은 편이다. 문제는 외국인 투수치고는 부족한 체력.
오션스의 외국인 투수 앤디 가필드가 188.1이닝을 소화하는 사이, 에드손 타바레즈는 157.2이닝 소화에 그쳤다. 거기에 5회 이후 피안타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파이러츠가 불펜의 양과 질이 모두 뛰어난 팀이라 조금 가려진 부분이 있었다. 불펜이 약한 팀이었더라면 다른 투수를 알아봐야 했을지도 모른다.
두 팀의 오늘 경기 전략은 유사했다.
[KS 1차전, 경기 초반을 지배하는 팀이 승리한다.]물론, 선취점을 내면 경기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또한, 이런 시리즈에서 1차전을 승리로 장식한 팀이 마지막에 웃으리란 것도 마찬가지다.
└시발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그래서 이런 댓글이 달린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파이러츠는 탄탄한 불펜을 구축한 팀이고, 오션스도 필승조의 위력은 최고 수준이다.
장태영의 제구, 이휘은의 뜬금 피홈런, 김정혁의 우완 상대, 그리고 강건우의 선발 등판 가능성으로 인한 마무리 투입 여부 불확실 같은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승리로 이끌었다.
느낌이 좋았다. 그게 표정에 드러났다. 1회 말이 끝나고 중계 카메라가 양 팀 감독을 동시에 잡았는데, 휴 브레드먼 감독은 여유롭게 투수 코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고 서창원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에드손 타바레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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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보이지만 약한 선수가 있고, 약해 보이지만 강한 선수가 있다. 전자의 전형은 에드손 타바레즈고, 후자는 내 옆에 선 노경우다.
노경우는 언제나 징징거리고 몸쪽으로 공이 날아오면 맞기도 전에 비명부터 지르고 보지만, 꽤 강한 친구다. 어떤 식으로든 발전한다는 점에서 그런 부분이 두드러진다.
예전에는 다이빙 캐치만 해댔다. 몸을 날리면 멋있어 보이고 수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한국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여기서 자기 수비가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상당히 애썼다.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낮춘다. 마치 거미 같은 자세다. 사방팔방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고,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어쨌거나. 나도 자세를 낮췄다. 타석에 선 에릭 랜들러와 대기 타석의 최지용은 모두 총알 같은 타구를 날리는 선수들이다. 타구가 높게 뜨면 내야수는 할 일이 없다. 다만, 빠른 타구가 내야를 꿰뚫고 지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 임무다.
승기 형의 컨디션은 좋아 보인다. 그런데 약간은 정면승부를 가져가려고 하는 것 같다. 조준이 형이 날린 타구는 펜스를 넘어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승기 형이 투구를 시작하려 한다. 투구 동작에 맞춰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며 배를 키운다. 근육을 이완시키는 행동이다. 그리고 들이마신 숨을 조금씩 밖으로 흘려보내며 다음 동작을 준비한다.
“스트라이크!”
다음 공을 던질 때까지 이걸 계속해서 반복한다. 잠깐이라도 집중력을 놓치면 뭐든 하나씩 빠뜨리게 된다. 이런 사소한 준비를 시즌 내내 100% 완벽하게 수행하지는 않지만, 이건 한국 시리즈다.
스텝 하나나 호흡 하나도 허투루 할 수는 없다.
따악!
시즌 36개의 홈런을 때린 좌타자의 타구가 빠른 속도로 1-2루 간을 향했다. 내 호흡법을 배워 따라 하던 노경우는 타격음이 들리자마자 움직이는 경지에까지 이르진 못했지만, 워낙 운동 신경이 좋은지라 팔을 쭉 뻗어 타구를 잡아냈다.
“아웃!”
라인드라이브 아웃. 그런데 살짝 중심을 잃었다가 금세 밸런스를 찾은 노경우가 1루로 짧고 빠르게 송구했다.
“우와아아아아아!”
“민승기! 민승기!”
“노경우! 노경우!”
그냥 아웃된 거라 굳이 1루에 송구할 필요는 없었다. 너무 집중해서 자기가 풋아웃을 따낸 것도 깜빡한 것 같다.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까지 따라주면 정말 좋을 텐데.
“경우야. 이미 아웃이야.”
대근이 형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자 노경우는 멋쩍은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그냥, 슬쩍 웃으며 엄지를 들었다.
“어…음.”
조금 당황한 듯하다. 뭐…갈구는 건 경기 끝나고 해도 늦지 않다. 지금 집중력 좋으니까.
딱!
최지용의 타구는 3루 방향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파이러츠 쪽에서도 승기 형이 오늘 정면승부를 걸어온다는 걸 눈치챈 듯하다.
투구 수를 늘려 일찍 내리는 것보다는 힘 대 힘으로 맞붙어 돌파구를 만들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파앗!
거미처럼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최고 속도를 빠르게 내기 위해서는 코어 근육이 중요하다. 나는 한국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내 신체를 극한까지 준비시켰고, 내가 공을 잡으러 뛰어가서 오른발을 그라운드에 강하게 찍고 그대로 허리를 회전시켜 1루로 던져 아웃 카운트를 따내는 걸 본 노루 형이 입을 벌리고 멍청하게 날 쳐다봤다.
“우와…”
파이러츠는 대부분의 선수가 홈런을 때릴 능력이 있고, 승기 형이 존 안으로 쑤셔 박아 버리는 투구를 하고 있기에, 잡아낼 수 있는 주자를 모두 잡아내서 홈런을 맞더라도 1점에 그치도록 해야 한다.
승기 형이 내 수비를 보고 피식 웃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노경우는 내가 했던 대로 엄지를 들어 올렸다.
뭐든 괜찮다. 이런 걸 해냈다고 잘난 척하기보다는, 팀 승리에 보탬이 됐다고 생각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규 시즌이 아니라 한국 시리즈니까.
“큭큭큭…내 승리를 위해 몸을 날려라, 강건우…”
…결혼식 끝날 때까지만 내가 딱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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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손 타바레즈는 강건우에게 홈런을 맞은 뒤로 꽤 잘 던졌다.
1회 말에 안타를 하나 더 맞긴 했으나 추가 실점하지 않았고, 2회 말에는 삼자범퇴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3회 말, 문제가 생겼다.
-타바레즈 선수,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데요.
-무슨 일일까요? 별일 아니면 좋겠습니다.
지난 이닝까지는 괜찮았다. 황석규-박의현-노경우를 삼자범퇴로 막아내며 반등의 기미를 보였다.
그런데 서창열을 상대로 스트라이크를 하나도 던지지 못했다. 스트레이트 볼넷.
배영한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는 타자가 아닌 대기 타석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모습을 보였다.
집중하지 못한 채 연속 볼넷.
그리고 강건우가 천천히 걸어오는 걸 보고 있다가 숨이 가빠 오는 것을 느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에드손이 숨쉬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땀을 왜 이렇게 많이 흘려?”
파이러츠 투수 코치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오션스 내야수들의 집중력이 보통이 아니다. 그래도 홈런 한 방 맞고 빠르게 회복하는 듯싶었더니, 갑자기 연속 볼넷이라니. 게다가 강건우 앞에서.
“강건우에게 고의 사구를 지시해달라고 합니다.”
“던질 순 있겠대?”
“강건우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합니다.”
투수 코치가 크게 한숨을 내쉬려다가 겨우 입을 꼭 다물었다. 그러니까 이게 강건우가 무서워서 숨쉬기가 힘들다는 건가?
무사 만루가 된다. 스코어는 2대 0이다. 아직 3회 말이니 반격의 기회는 충분히 남아 있지만, 이 시점에서 점수 차이가 더 벌어진다면 오늘 경기는 쉽지 않다.
“고의 사구 오케이. 이번 이닝 끝나고 언더셔츠 좀 갈아입고, 에드손. 릴랙스, 캄 다운, 오케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무사 1, 2루에서 강건우냐 무사 만루에서 양대근이냐를 고르라면 최악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가능하면 주자 없는 상황에서 강건우를 상대하고 싶었건만, 어디 야구가 마음대로 되는 날이 얼마나 있던가.
배트를 매만지던 강건우는 자동 고의 사구 지시에 군말 없이 1루로 향했다.
에드손 타바레즈는 꽤 쌀쌀한 날씨에 흠뻑 젖은 자신의 머리를 털어내고 양대근과 마주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타석에 꽉 들어차는 양대근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겁먹을 일이었나?’
홈런이 꽤 컸다. 하지만 더 크게 날아간다고 1점을 더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서 사이렌이 울린 것 같았다. 눈앞에서 그가 사라지니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다.
그래도 아까 양대근을 상대로 범타를 유도해냈었다. 심호흡하고 자신감을 되찾으려 했다.
양대근은 그저 희생 플라이를 노리고 있었다. 아까 저 투수의 낮게 들어오는 포심에 당했다. 또 낮게 던진다면, 툭 건져 올리듯 때려내 외야 깊은 곳까지만 보낼 생각이었다.
이런 큰 욕심 없는 자세가 0.341 타율에 0.446 출루율, 그리고 131타점을 올린 원동력이었다.
파이러츠 팬들이 불안감에 떨면서, 오션스 팬들이 주장의 놀라운 득점권 타율(0.396)을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을 때.
따아아악-!
양대근이 크게 힘을 쏟지 않고 툭 때려낸 타구가 두둥실 날았다.
“어어? 어어어? 어어?”
관중들이 입을 벌리고 눈으로 타구를 쫓았다. 타구가 괴상할 정도로 두둥실 날고 있었다.
“어? 어?”
“뭔데? 뭔데?”
“넘어가나? 가나? 어어어?”
강건우의 홈런도 꽤 그렇지만, 이 타구는 상당히 비현실적이었다.
그리고 타구가 펜스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며 외야 스탠드에 쏙 파고 들어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거댘ㅋㅋㅋㅋㅋㅋㅋㅋ]└3점 홈런 피하려다가 4점 홈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직 폭격기 입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이러츠 그대로 멸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득타율 거의 4할인 양캡한테 무사만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보)서창원 창원까지 뛰어가기롴ㅋㅋㅋㅋㅋㅋㅋ
└이게코시?이게코시?이게코시?이게코시?
└세계적인 용장 서창원ㄷㄷㄷㄷㄷㄷㄷㄷㄷ용감하게 양캡한테 쇼부걸다 벤치에서 숨만쉰채 발견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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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근이 혀어어어엉!”
나는 대근이 형의 그랜드 슬램을 보고, 소원 있으면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근이 형은, 그때 그 부끄러웠던 CF처럼 자기를 불러달라고 했다.
유리와의 결혼이 걸린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만루 홈런도 때렸는데 그거 못 해줄까 봐?
내가 그렇게 불러주자, 벤치의 선수들 모두가 폭소했다. 대근이 형은 아주 밝게 웃으면서 나와 하이파이브했고,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조금 걱정했거든. 근데 평소보다 더 밝은 것 같아서 마음이 이제야 좀 놓인다.”
한국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본의 아니게 조금 걱정을 끼쳤던 것 같다. 대근이 형은 세심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주장이라는 역할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지만, 이젠 누구보다 그 자리에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 사람한테는 미리 좀 말이라도 해둘 걸 그랬나 싶다.
“그냥, 음. 이번엔 꼭 우승하고 싶어서 과몰입 좀 했던 것 같네요.”
“결혼하고 싶어서?”
푸근하게 웃으며 던진 질문에, 나는 따라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 우리 동생 결혼한다는데 형이 힘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고맙습니다.”
대근이 형이 슬쩍 웃으면서 내 등을 살짝 때렸다.
3회부터 6점 차이로 벌어진 경기는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파이러츠는 아웃 카운트 여섯 개를 잡고 여섯 개의 점수를 내준 에드손 타바레즈를 강판시켰고, 올 시즌 5선발로 뛰었던 이민호를 마운드에 올렸다.
파이러츠 선수들의 표정에서 복합적인 감정들이 느껴졌다. 좌절, 탈력, 허탈함 같은.
조준이 형은 그런 와중에 승기 형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렸다.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모습을 항상 높게 평가해왔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쉽게 포기해주면 좋겠는데.
“저놈이 나의 한국 시리즈 데뷔전을…!”
승기 형은 분노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딱히 마운드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던지는 타입도 아니고, 그간 지켜봐 온 결과 저 사람은 종종 부정적인 감정을 구위로 승화시키곤 했으니.
나는 세 번째 타석에서 2루타를 때려 타점 하나를 추가한 후 대근이 형의 적시타에 득점도 올렸다. 그리고 다섯 번째 타석에서 볼넷을 얻어 나갔다가 대근이 형의 안타에 3루를 밟고 노루 형의 희생 플라이에 홈을 밟았다.
대근이 형은 4안타(1홈런) 5타점 경기.
나는 2안타(1홈런) 2사사구 3타점 4득점.
10대 2 대승.
이제 파이러츠는 커다란 고민에 빠질 것이다.
나를 거르고 미친 타격감의 양대근이라는 타자와 대결하겠다는 결정을 내릴지는 내일까지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어쨌거나 승리했다. 1차전은 오션스의 쇼케이스 같은 느낌이었다.
“저 박의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남자! 이런 멋진 경기를 여러분들과 함께해서 너무나도 기쁩니다! 예! 제 예상에는 제 인생 베스트 경기 4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3위는 한국 시리즈 2차전, 2위는 한국 시리즈 3차전, 1위는 한국 시리즈 4차전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우승하고 나면 저는 미리 제 관을 짜둘 생각입니다! 죽어도 여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들 기뻐하는 가운데, 승기 형은 고뇌에 빠진 얼굴이었다.
아니…
9이닝 2실점 하고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진짜.
파이러츠 선수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퇴장했다.
“오오오션-스! 승-리하리라!”
“오늘도오오오오!”
“내일도오오오오오오오오!”
“모-레도오오오오오오!”
“마! 모레는 경기 없다! 정신 안 차리나!”
“그라믄 글피도오오오오오!”
눈물을 펑펑 흘리며 쉬어빠진 목소리를 쥐어짜는 관중들 앞에서, 우리는 패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다 같이 모여 허리 숙여 꾸벅 인사했다.
“건우야…”
얼른 분석실로 달려가 보자, 유리가 화장이 다 번질 정도로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너무 행복해…흐엉엉엉엉.”
웃게만 해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이런 눈물은 괜찮겠지?
“누나 내일은 워터프루프 화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