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2)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4화(34/385)
천재 코치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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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과거라고 해야 하나 미래라고 해야 하나.
과거이자 미래?
이제는 없을 미래이면서, 오직 나만 알고 있는 과거.
그러니까. 회귀 전,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는 유리가 경기장에 오는 걸 별로 안 좋아했었다.
나름대로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유리는 그걸 섭섭해했었지.
지금은 뭐.
그냥 좋다. 여기서 날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에너지가 샘솟는 느낌이다.
진작에 이럴걸. 아니, 하다못해 제대로 설명이라도 해야 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과거의 기억들이 종종 나를 찌른다. 유리가 슬퍼하는 모습이나 우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물론, 사람이 어떻게 평생 즐겁게만 살겠느냐마는.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게 유리에게는 가장 심각한 종류의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도 그걸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한다.
그때의 유리는 오션스 때문에 슬퍼하곤 했다. ,
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올해는 다를 거라며 말했었고, 매번 오션스 성적이 트래직 넘버(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되는 숫자)에 가까워질 때마다 기분이 나빠졌었다. 그걸 매년 반복하는 게 신기하긴 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잘 하는…아니, 내가 거의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거로 유리를 조금이나마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갱! 건! 우! 갱! 건! 우!”
잠실 구장 한쪽에서 내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르긴 몰라도, 유리도 ‘건우야아아아아!’ 하고 내 이름을 부르고 있을 거다.
“삼! 진! 삼! 진!”
또 다른 한쪽에서는 마운드에 서 있는 불도저스 투수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1회 초에 3점 홈런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우리 감독님은, 8대 7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9회 초가 시작되기 전에 날 불렀다. 오션스 5선발 투수치고는 잘 버텼다고 생각한다.
“자네 애인이 오늘 이 경기장을 찾았다고 들었어.”
“예. 절 보러 어젯밤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어요.”
감독이 눈치가 좀 빠르다. 그는 내게 한 가지 내기를 제안했다.
“자네가 다음 타석에서 경기를 뒤집는다면 말이야.”
“네.”
“오늘 경기 끝나고 1시간 정도 자유 시간을 주지. 선수단 버스를 타지 않아도 돼. 공식적인 제안이야. 어때?”
겨우 1시간이라지만, 날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온 유리와 손잡고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야구에서 신인들에게는 꽤 많은 제약이 있다. 내 메이저리그 경력 같은 건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난 아무리 잘 하더라도 최저 연봉을 받는 루키에 불과하다.
“좋습니다.”
“좋아.”
감독은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선수들에게 선언했다.
“자, 내 친구들! 여기를 봐! 좋아! 갱이 경기를 역전시키면 1시간의 자유를 주고 싶은데, 이에 반대하는 사람 있나?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1시간을 원한다면 실력을 보여주면 될 거야! 손을 들 필요는 없어! 점수를 내고 손을 들면 돼!”
분위기를 보아하니, 반대하는 선수는 없었다. 사실, 여기서 반대한다고 손을 들기도 애매했겠지만.
“아, 한 시간이면 뭐…”
배영한은 그렇게 말하며 실실 웃었다. 1시간 정도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술을 마시거나 여자를 만나러 가긴 힘들 거다.
수석 코치는 조금 떨떠름해 보였지만, 나한테 빨대를 꽂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크게 반대하는 것 같진 않았다.
주장은 내 편을 들어주려고 하는 듯했다.
“오. 한 시간. 야, 시욱. 한 시간이면 곱창 몇 인분 먹을 수 있냐?”
“아, 행님. 한 시간이면 곱창집 재료소진 아닙니까?”
“결승타치고 곱창 먹으러 가자.”
“제가 칠 거라서 형님한테는 기회 없을 건데요?”
“네가 치면 30분만 빌려줘.”
“행님이 치면 30분 내 꺼 콜?”
“콜.”
어쨌거나 대충 다른 사람들은 딱히 크게 관심은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리고 9회 초.
불도저스의 마무리 용수현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홈 팬들이 투수를 격려하며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불도저스 용수현! 우리 이만 끝내! 끝내자고!”
최고 150km/h의 포심과 낙차 큰 커브. 투 피치의 스터프형 마무리 투수.
어제 경기에서는 등판하지 않았다. 3일 전에 공 13개로 세이브를 따냈다고 하니 힘이 넘칠 것이다.
단점은 제구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이번 시즌 들어 개선되었다고 하니, 어떨지는 직접 봐야 알 것 같았다.
마침 1번 타자부터 시작이다. 내게도 기회가 돌아올 것이다.
황석규 선배는 이닝이 시작되기 전 내게 농담을 하고 나갔다.
“1시간 판다.”
약간 시크한 성격이지만, 가끔 보면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기에 조금 힘든데 자기는 어울리고 싶어 하면서도 잘 못 하는 타입이다.
“만원 드릴게요.”
“경우는 필요 없냐?
“예? 저는 여자친구 없어서 괜찮은데요.”
“여자친구 안 만들고 뭐 했냐?”
자기 딴에는 농담으로 한 것 같은데, 노경우가 풀이 죽었다.
“석규 형님! 제 의동생 노경우로 말씀드리자면, 야구에 청춘을 팔아치운 남자! 그래서 여자친구를 만들 시간도 없는 이 시대의 열정남!”
“건우는 여친도 있고 야구도 잘 하는데.”
순간 여자친구 없는 박의현이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했다. 이시욱 선배는 조용히 눈치를 보더니 초코파이를 하나 입에 넣었다.
공을 보아하니, 오늘 컨디션이 꽤 괜찮은 것 같다. 커브의 낙차도 훌륭했고 속구 구위도 좋았다. 그러니까 그 말은, 황석규 선배가 범타로 물러났다는 뜻이다.
“얘들아.”
“…”
“난 그래도 여자친구는 있다.”
“…예?”
노경우의 황당한 얼굴을 보며 대기 타석으로 향했다.
장모님 덕택에 유리가 어디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큰 깃발 두 개가 펄럭이는 곳을 찾으면 된다.
그쪽을 빤히 바라봤다. 유리도 날 보고 있겠지?
마음 같아서는 망원경이라도 가져와서 보고 싶지만, 그럴 때는 아니다. 투수가 어떻게 어떤 공을 던지는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
디딤발에 힘이 강하게 들어간다. 데미지가 누적되면 부상당하기 쉬운데.
“스트라이크!”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하지 않다. 던질 때 온몸에 힘을 주는 타입이다. 컨디션 좋은 날이면 릴리스 포인트랑은 무관하게 공이 묵직하게 들어오지만, 컨디션 나쁜 날이면 제구도 안 되고 회전수도 줄어버린다.
“파울!”
하지만 오늘은 컨디션 좋은 날인 듯하다. 언제나 여유만만하게 웃고 있는 배영한이 침을 퉤 뱉더니 배트를 짧게 쥐었다.
어찌 됐거나 가져다 대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도 같다. 나는 타석에서 누구를 만나도 내 방식을 유지하려 하지만, 배영한의 접근법도 나쁘다고 할 순 없다.
안타를 생산해내는 능력이나 장타력, 선구안 같은 걸 치워두고 나면 배트에 공을 맞히는 능력 하나만큼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평균 수준은 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3구째 몸쪽 높은 공. 배영한은 스윙을 하려다가 배트를 거두어들였고, 심판에게 자기 소매 부분을 펄럭이며 옷에 맞았다고 어필했다.
심판이 고개를 가로젓자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그리고 판정 결과는 사구.
“우우우우우우우우우!”
“마!!!!!”
홈 팬들의 야유와 원정 팬들의 항의가 뒤섞였다.
그리고 나는, 주자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배영한이 실실 웃으며 불도저스 1루수의 엉덩이를 툭 치더니, 날 바라보며 펜스를 가리켰다.
홈런 치라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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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아! 오늘 공 좋다! 그냥 중간에 꽂아!”
불도저스 간판선수인 3루수 서우주는 수비 위치를 잡고 투수를 격려했다. 오늘 성적은 볼넷 세 개에 2루타 하나. 간판으로서 역할은 충분히 해냈다.
힘 대 힘의 대결이 될 거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용수현은 높은 패스트볼로 삼진을 잡아내는 파워 피처고, 강건우는 강한 어퍼스윙을 즐긴다.
봉재석의 빠른 공을 그대로 넘겨버리는 걸 보고 감탄하기도 했었다. 봉재석의 포심은 리그 최고 수준이다. 어지간한 외국인 투수만큼의 포심을 던진다.
그래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커브로 살살 꾀어서 땅볼을 유도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용수현! 내가 잡아줄게!”
유격수도 투수에게 힘을 실어줬다.
장타에 대비해 외야수들이 뒤로 배치되었다. 병살로 끝낸다면 좋겠지만, 기본적으로 외야로 향하는 타구를 날리는 능력이 있는 타자다.
용수현이 깊게 숨을 내쉬고 투구 동작을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인버티드W(던질 때 투수의 양쪽 팔꿈치가 어깨보다 높게 형성되어 W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의)투구 폼.
가장 강력한 무기인 포심 패스트볼이 포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1루 주자 배영한은 2루를 향해 사이드 스텝을 밟았다.
강건우의 배트는 낮은 곳에서 시작해 높은 타점을 노렸다.
왼발을 살짝 들어 이동시키며 자연스럽게 오른발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배트가 나가기 직전 각도기로 잰 것처럼 손목과 배트가 직각을 이뤘고, 오른쪽 겨드랑이와 팔꿈치가 몸통에 붙은 것처럼 빠르고 강하게 회전시켰다. 하체 힘과 상체의 힘을 동시에 활용하는 아주 효율적인 스윙.
배트가 나가는 타이밍에 오른쪽 손목은 배트를 받치듯 힘을 주고, 왼쪽 손은 원심력을 살리면서도 배트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히팅 포인트는 몸의 앞쪽.
150km/h의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맞받아쳐, 미사일을 쏘아 올리듯이.
따아아아아악-!
그리고 오른손은 무게 중심을 잡으며, 왼손에 잡은 배트로 팔로 스윙까지 유려하게.
부드럽고도 파괴적인 스윙 동작이었다.
휴 브레드먼 감독은 끼고 있던 선글라스가 날아갈 정도로 과격한 어퍼컷 세레머니를 선보였고, 강건우가 모든 베이스를 돌아 홈을 밟고 벤치로 돌아오자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Fucking 메이저리그로 가지 않아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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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내일 아침 비행기로 떠난다. 불도저스와의 세 번째 경기는 보지 못 하겠지만, 나랑 같이 한강을 걸을 시간은 충분했다.
“홈런 치면 1시간 자유 시간 준다고 했다고?”
충분하진 않나?
“역전 타점 올리면 1시간 준댔어.”
“퍽동님이 뭘 좀 아네.”
“그치? 아. 2시간이었으면 만루홈런 치는 건데.”
유리는 내 실없는 소리에도 웃어줬다. 경기는 우리가 9대 8로 승리했다. 어제 경기에서 등판하지 않은 김정혁 선배가 올라와서 안정적으로 막아냈다.
연투하면 약해지는 투수다. 수석 코치가 어제 경기에서 오늘까지 생각해서 안 올린 거라곤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거나 이겼다는 게 중요하다.
“오늘 경기 재밌었어?”
유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요새 야구 얼마나 재밌는데.”
“어제는 재미없지 않았어?”
“어제는…”
유리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하긴, 비행기 타고 오느라 경기도 못 봤겠네.
“몰라. 어젠 지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도 안 쓰이더라.”
“왜?”
유리는 항상 오션스 경기를 보며 경기를 분석하는 습관이 있었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그래놔서 코치 능력이 발달한 걸지도 모르겠다.
유리가 약간 어색하게 웃었다가 갑자기 정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야. 강건우.”
“응?”
“네 편지 보고…”
“내 편지?”
“…그냥 야구고 뭐고 이상하게 얼굴이 보고 싶어져가지고…”
우물쭈물하는 유리가 귀여운 건 둘째 치고, 갑자기 가슴 한쪽이 따뜻해져 오는 걸 느꼈다.
나는 유리가 좋다. 솔직히 말해서, 유리가 날 안 좋아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한 번 유리를 떠나보냈던 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유리를 다시 만나도 되는지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고.
그래서 앞으로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되건 관계없이 그냥 솔직하게 대하기로 한 것뿐이다. 솔직하게, 내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기로.
안도감이 든다. 유리도 날 좋아하는구나.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편지 쓰길 잘했네.”
처음이었다. 편지를 써달라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은근히 편지를 써주기를 바랐었던 게 떠올라서, 어떻게 쓰는지는 몰랐지만 써봤다.
유리가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다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너 근데 글씨 진짜 개 못쓰더라.”
“그래서 이제 쓰지 마?”
“어, 뭐? 아니. 야. 넌 꼭 누나 말을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글씨 알아보기 힘들었어?”
“어휴. 넌 어떻게 초딩 때랑 글씨체가 변한 게 없냐?”
“그럼 이제 컴퓨터로 써서 프린트할까?”
“아, 또 확대해석. 야. 괜찮아. 누나가 교양 수업으로 암호 해석 과목도 듣거든?”
아무래도 뻥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 확실해진 건 있다.
나는 야구 경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도루를 시즌 50개씩 하거나, 메이저리그 수준에서 타율보다 출루율을 1할 이상 높게 유지한다거나 그런 건 욕심 내지 않는다.
하지만 유리와의 관계에서는,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시도해보고자 한다.
“누나.”
“어?”
“날씨 좋다.”
그렇다고 해서 할 수 있는걸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
평범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았던 과거, 혹은 앞으로는 없을 그 미래의 나를 반면교사 삼아서.
“우승 반지 말고 신인왕이나 리그 MVP 트로피로 프로포즈 해도 괜찮을까?”
유리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말했다.
“자신 없냐?”
원래는 될 줄 알았는데.
확신할 수가 없네.
“응?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혹시나 해서 그러지.”
“혹시나 뭐?”
“아냐.”
“뭐가?”
“불펜 터지면 내가 던지지 뭐.”
“이미 터졌는데?”
“내일부터 마무리 투수 할까?”
“아직 폼 다 완성 안 됐는데?”
“완성 안 됐어도 내가 우리 팀 투수들보단 잘 던지지 않을까?”
유리는 깔깔 웃으며 내 가슴을 퍽퍽 쳤다.
휴.
오늘 가슴 운동해놔서 다행이다.
“치킨 먹을래?”
“후라이드로.”
“응. 밖에서 뭐 묻으면 별로니까. 뼈 말고 순살이지?”
“당근빳따지.”
“양념 소스 추가?”
“뭘 좀 아네.”
“내가 누나 취향 좀 알지.”
“아. 음료수는 콜라 말고 사이다.”
“당근빳따지.”
“우리 건우 모르는 게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