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33)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35화(335/385)
이상한 투수의 이상한 인터뷰 -5-
#
[부산 오션스 라인업]1. 서창열(CF)
2. 황석규(LF)
3. 강건우(SS)
4. 양대근(1B)
5. 이시욱(DH)
6. 제이슨(3B)
7. 유준(RF)
8. 김세완(2B)
9. 박의현(C)
선발 투수 김정용(R/R)
네 명의 선수가 아시안게임 차출로 빠졌으니 오션스 라인업에도 꽤 변화가 있었다. 배영한이 부상으로 빠진 것을 포함하면 더더욱.
민승기-국민성-호세 킹-이훈-스티븐 레거의 선발 로테이션에도 변화가 생겼다.
김정용은 젊은 시절 혹사에 가깝게 던진, 오션스 암흑기의 아이콘이었다. 한국 나이 34세였던 지난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진 것은 그 여파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어깨와 팔꿈치는 그렇지 못했다.
2020년의 김정용과는 다르다. 2030년의 김정용은 불펜에서 롱릴리프 역할을 소화하며 가끔 있는 이런 선발 등판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김정용! 김정용! 김정용!”
“정용이 햄! 햄 보러 왔어요!”
서글서글하게 미소지은 김정용은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거칠고, 때로는 선도 넘는 팬들이지만.
저주 같았던 무관의 사슬을 끊어내고 올해도 1위를 달리고 있으니 상당히 많이 변했다.
물론, 연패에 빠지거나 오늘 경기에서 김정용이 3이닝 10실점 정도를 하면 돌변할 것이다. 퇴물 소리를 듣는 것도 그리 낯설지는 않다.
올해 2년 차인 전태재와 이병준도 선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땀 흘리며 준비하고 있다. 언젠간 그 친구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것이다.
한쪽 팔이 휘어 제대로 펴지지도 않던 선배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했던 것처럼.
구단 측에서는 코치 연수를 제안했다. 당장 은퇴하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럴 생각이 들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야구판에서 구두 약속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는 김정용도 알고 있다.
김정용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은퇴하게 된다면 야구판을 떠날 생각이었다. 뭐 먹고 살지. 글쎄, 뭐든 괜찮지 않을까.
그냥 여기서 할 만큼 하고 싶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야구를 가르친다면 프로보다는 차라리 어린아이들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건 정유리 때문이기도 했다. 정유리 코치는 선수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해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코치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좋은 코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냥 그런 마음일 뿐이었다. 조금 덜 치열하게 살아가는 방식에서 편안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고.
“형님! 저는 준비 됐습니다! 오션스 팬들의 함성이 들리십니까! 아, 그냥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리는 건데!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 롤렉스 많습니다!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던져 주십쇼! 주셔도 안 받을 겁니다!”
김정용은 피식 웃으며 박의현의 어깨를 주물렀다. 정말 좋은 포수다. 이런 친구가 예전부터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과거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은 아무 쓸모 없는 감정이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 좋아하는 팀에서 아직도 자신을 필요로 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을 인정해준다는 것.
“그래. 그럼 내가 퍼펙트 하면 네 시계 중에 하나 나한테 주는 거로?”
“아앗! 아아아아앗! 제 가보 같은 아이들이지만! 형님께서 원하신다면야!”
“됐다. 가자.”
“옙! 아자아자! 오오오션스 승리하리라! 오늘도오오오오!”
김정용은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
한국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파키스탄을 상대로 17대 0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며 B조 선두를 확정 지었다. 2승 1패의 대만이 2위로 슈퍼라운드 진출.
A조에서는 일본이 3승, 중국이 2승 1패로 슈퍼라운드 대진표를 완성했다.
슈퍼라운드에서는 4개 팀이 참가하지만, 팀당 두 경기씩만 치른다. 예선에서 같은 조였던 팀 간의 경기는 예선의 기록으로 대체하기에 한국은 일본, 중국과 한 경기씩만 치르면 된다.
파키스탄전이 끝나고 하루 휴식일을 가진 후 중국전, 그다음 날이 일본전이며 다음날 바로 동메달 결정전과 결승전이 있다.
마침 이날 김정용의 등판 경기가 있었다. 오션스 선수들이 모여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데 최철이 아주 자연스럽게 끼어서 함께 보는 중이었다.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의 홈런! 아주 멀리 날아갑니다! 압도적인 파괴력! 예! 사실 집에서 와이프가 이제 강건우 선수 홈런 한두 번 치는 것도 아닌데 호들갑 좀 그만 떨라고 했지만! 이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어요! 강건우 선수의 그랜-드 슬램! 김정용 선수의 승리를 돕는 특급 도우미! 아! 넘어갔어요!
“이야…”
최철이 입맛을 다셨다. 발사 각도가 얼마나 컸는지, 맞은 순간에는 수직으로 상승하는 듯한 착각까지 주는 타구였다.
“너넨 어때? 건우랑 같이 뛰면 느낌 좀 다르지 않아?”
강건우와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어느새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노경우가 먼저 대답했다.
“좀 재수 없긴 한데 든든하긴 해요.”
이휘은이 거들었다.
“일단 수비가…어우. 근데 가끔 그럴 때 있어요. 불펜에서 몸 다 풀었는데 홈런 때려서 다시 앉아야 하고. 흐흐.”
“그래? 진짜 든든하긴 하겠다.”
최철이 조금 부러운 티를 내자 노경우가 코를 긁었다.
“그렇긴 한데 잔소리가 진짜, 흐. 울 엄마도 그 정도로 잔소리는 안 했거든요.”
“잔소리? 되게 시크해 보이던데. 실제론 좀 다른가 봐?”
“시크는 무슨요. 은근히 속 좁아서 겁나 담아두고 한 번 실수하면 며칠을 그걸로, 어휴. 상상만 해도 속이 갑갑해지네. 대회에서 실수 한 번 하면 몇 년은 그걸로 갈굴걸요?”
주상욱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이상한 놈이 이상한 놈을 욕하고 있다. 최철은 아무 표정 변화 없이 경기를 보고 있는 국민성을 힐끔 바라봤다. 얘랑도 좀 친해지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민성아.”
“예.”
“그…”
“…”
“음…”
“…”
“제구…”
“…”
“잘 하더라.”
“감사합니다.”
“…”
“…”
최철은 슬쩍 국민성의 등 뒤쪽을 눈으로 살폈다. 혹시 충전 중인 건 아닐까 하고.
“무선 충전인가…?”
혼자 중얼거렸다. 진짜 로봇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노경우를 대신해 출전한 김세완은 1타점 2루타를 터뜨린 후 두 손을 하늘로 번쩍 들고 소리를 질러댔다. 주상욱이 농담을 던졌다.
“경우 자리 뺏기는 거 아냐? 세완이 형 완전 칼 갈았는데?”
“와…요새 진짜 잘 하시네요…”
어쨌든, 최철은 지속적으로 국민성과의 친목을 시도했다.
“만약 결승에서 일본 만나게 되면 이틀 연속 일본전이잖아.”
“예.”
“내가 먼저 던져보고 누가 어떤지 다 알려줄게.”
“감사합니다.”
“감사까지야.”
조금 민망하긴 했다. 그런데, 노경우가 이렇게 말했다.
“오. 두 분 좀 친해지셨네요. 민성이 형 안 친한 사람들 앞에선 진짜 안 웃는데.”
최철은 이놈이 지금 사람을 놀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휘은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금 웃었다고…?’
굉장히 미스테리한 일이었다.
#
사실상 아시안게임 야구는 한국, 일본, 대만의 삼파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세 나라 외에는 우승한 팀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아무래도 군 문제가 걸려 있는 데다가 프로 선수를 내보내는 한국의 우승 횟수가 가장 많았다.
같은 날 앞서 열린 대만과 일본의 경기는 일본의 4대 0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일본 2승, 한국 1승, 대만 2패, 중국 1패.
한국은 중국전에서 승리하기만 한다면 결승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 되었다.
불도저스 선발 투수인 김선혁은 이번 시즌 8승 6패 평균자책점 3.85로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중국을 상대로 6.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타석에서는 주상욱의 3점 홈런이 터지며 주상욱의 대표팀 선발을 비판했던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어디에서나 비슷하겠지만, 야구에서는 잘 하기만 하면 많은 문제가 덮어지기 마련이다.
어쨌거나, 일본과 한국이 결승전에 진출하고 대만과 중국이 동메달 결정전을 치르게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결승전에서 만나게 될 두 팀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만나게 될 두 팀의 일정이 남았다.
마지막 한 경기를 취소하고 바로 결승전과 동메달 결정전으로 넘어가는 방안이 논의되었으나, 세계 야구 랭킹 산정이라는 핑계로, 실제로는 흥행과 관련해 경기를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승패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경기다.
하지만, 경기에서 맞붙게 된 국가 간의 감정을 생각하면 질 수 없는 경기였다.
먼저 열린 대만과 중국의 경기는, 대만이 일방적으로 이길 거라는 예상과 달리 꽤 치열했다.
경기 내용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로.
[(속보) AG 야구 중국-대만전, 벤치 클리어링 발생.]1사 만루에 몰린 중국 투수가 대만 타자의 머리에 그대로 헤드샷을 꽂았다. 대만 타자가 구급차에 실려 나갔고, 다음 이닝에 대만 투수가 초구에 중국 타자의 머리에 포심을 던져버렸다.
공에 맞은 타자는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마운드로 돌진했고, 서로 얽혀서 패싸움이 벌어졌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전쟁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는 대만의 4대 2 승리. 일반적인 야구 경기에서 충돌로 인한 부상자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경기의 부상자가 5명이 나왔다는 점은 조금 특이하기는 했다.
싸움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중국 주자가 대만 2루수의 발목을 스파이크로 찍어버리기도 했다.
[소림 야구의 위엄.jpg]└일본은 어떻게 무사한거임?
└미쳤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군가는 아마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아무 의미 없는 경기를 진행했다가 이 사달이 났으니.
자연스레 시선은 경기 후 이어진 또 다른 경기에 집중되었다.
한일전.
혹시나 여기서도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진 않을까 하고.
#
[AG 야구 한일전, 최철을 앞세운 한국의 2대 1 신승!] [최철(6이닝 1실점)-이휘은(1이닝 무실점)-이도윤(1이닝 무실점)-김근(1이닝 무실점), 깔끔했던 투수 운용.]└아니 승패 상관도 없는데 왜 필승조 다 갖다 박음? 우동기 닉값 개쩌네
└필승조 다 안쓰고 졌으면 뭐라고 욕하려고 ㅋㅋㅋ
└시발 이래놓고 내일 결승에서 불펜 없어서 지면 레전드
└우동님 여전하시네요…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된다 모름?
└어차피 낼 국민성인데 퍼펙트 할거라 불펜 필요 없음
└오늘 이겨서 기선제압 딱 하고 낼도 이기는거지 뭐이리 말들이 많음?
└아니 근데 사회인 야구단한테 존나 힘들게 이기는거 실화냐?
└일본 사회인 야구는 우리 사회인 야구랑 다르단다 뉴비야
└아무튼 프로는 아니잖음?
[한일전을 승리로 이끈 주상욱의 희생플라이 결승타.] [주상욱, ‘짐이 되지 않도록 정말 노력했고, (강)건우의 조언 덕분에 결승타를 칠 수 있었다.’]└강건우도 없는데 왜케 강건우 이야기가 많음?
└메이저리그에서도 강건우 없는데 강건우가 시즌 MVP 타는 분위기임
└김권종 또 강건우무새짓 함?
└하루이틀이냐
[한국 대표팀 우동기 감독, ‘이겨서 기쁠 뿐이다. 내일 경기도 기세를 살려 이기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AG 야구 일본 감독, ‘데이터를 얻는 데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 AG 야구 동메달 결정전에 강력한 의사 표력. ‘아시안게임은 평화의 스포츠 축제로 남아야 한다.’]#
국민성에게도 결승전에서 던지는 것은 꽤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을 보고 ‘민성이는 긴장을 안 해서 정말 좋다’라고 말하곤 했다.
긴장이라.
아주 조금 하기는 했는데.
최철은 일본 타자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줬다. 사소한 것들까지 하나하나.
정유리는 한국에서 자신에게 따로 데이터를 보내주기도 했다. 이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농담으로’ 말하는, 정유리가 기계과학자고 자신이 야구 로봇이라는 그 말이 꽤 웃긴 개그라고.
비슷하게 느껴진다. 정유리가 방법을 제시하면 자신은 그걸 그대로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국민성도 분석이나 연구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지만, 정유리의 데이터는 아득한 수준이다.
여기 뽑히지 않았더라면 군대를 빨리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제 군대 문제는 자신의 손에 걸려 있다.
지면 입대고, 이기면 예술 체육요원이 된다.
기자가 국민성에게 물었다.
“결승전에 강건우 선수가 있으면 정말 든든했겠죠?”
국민성은 대답했다.
“콜드게임 나왔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본 야구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물어보길래 자기 생각을 대답한 것뿐이었으니까.
다들 시끌벅적하다. 노경우는 긴장감을 감추려는지 라커룸에서 무지하게 떠들어댔고, 이휘은은 감독에게 오늘도 던질 수 있다고 어필하고 왔다.
여기는 오션스보다 조용한 선수들이 많다. 김산이나 이주혁 같은 선수들은 거의 말이 없는 편이다. 주변에서 미친 듯이 떠들어대는 데 익숙해져 있었는데, 조용한 분위기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노경우가 시끄럽게 구는 것은 약간의 안정감을 주었다.
앞서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만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관중석에서 오물 투척이 꽤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일본 선수 중 한 명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대표 4번 타자 나카타 다카히사, ‘결사의 각오로 결승전에 임하겠다. 느린 공을 치는 것이 때로 어려울 때도 있지만, 집중력을 발휘한다면 못 할 것도 없다.’]국민성은 올림픽에서 강건우가 일본 대표팀을 때려잡은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씩 웃었다. 그때는 자기도 한국을 응원하며 TV로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는데.
“음.”
등판 직전의 국민성을 본 최철은 응원을 해주려다가 입을 다물고 슬쩍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무리 봐도 고도로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상태다. 솔직히, 얼굴이 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주상욱이 국민성의 옆에 앉더니 이렇게 말했다.
“컨디션 좋아 보이네. 준비됐지?”
“예.”
“표정 좋으니까 나도 마음이 좀 편해진다.”
컨디션이랑 표정이 좋아?
최철은 생각했다.
세상에는 내가 못 보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