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38)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40화(340/385)
전설로 전해져오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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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꽤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어찌 보면 노골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건 미래에 대한 투자다. 어린아이들이 야구장에서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게 된다면, 그 아이들은 20년 혹은 30년 후에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야구장을 찾을 것이다.
어쨌거나, 잠실 야구장에서 유니폼을 입은 사람 중에 어릴 때부터 야구장을 찾았던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관중석에서뿐만 아니라, 그라운드 위나 덕아웃에서도.
당장 민승기는 사직 야구장에서 오션스 경기를 보며 꿈을 키웠고, 이훈 또한 잠실에서 엔젤스 선수들을 보며 자신도 저기 사이에 서 있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조금 다른 선수도 있다. 강건우 같은 선수는, 어릴 적 한눈에 반한 유리 누나가 야구 선수 사진을 보고 잘생겼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야구를 시작했다.
어떤 선수는 체격이 좋아 야구부 감독의 눈에 띄어 야구를 시작하기도 했고, 또 어떤 선수는 부모님이 시켜서, 또 다른 선수는 친구 따라갔다가.
각자 야구를 시작한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쨌든 대다수는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물론, 순수하게 야구를 좋아하던 그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은 다르다.
프로가 된 지금은, 성적에 목을 매야 한다.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여기서 버틸 수는 없다.
야구를 잘 하면서 사랑하면 더없이 좋겠으나, 그게 항상 되는 것은 아니다. 야구가 너무 좋아서 계속하고 싶은데 못 하는 선수도 있고 야구에 지쳐 이 바닥을 뜨고 싶은데 돈 때문에 계속하는 선수도 분명히 있다.
한국 시리즈가 시작된 지 5일 차.
올해 한국 시리즈의 네 번째 경기.
이 경기에서 오션스의 마운드에 선 사람은 야구를 사랑해서나 야구가 너무 좋아서 야구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야구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야구를 시작한 사람이었다.
-호세 킹! 21번째 아웃 카운트를 유격수 앞 땅볼로 잡아냅니다!
-7이닝 무실점이네요. 예. 사실, 작년 초에 저 투수를 봤을 때만 해도 그리 오래 못 버틸 거라 생각했었는데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죠.
-그렇습니다. 정유리 코치와 론버거 킨 코치의 조련 아래, 새로운 투수로 태어났습니다! 오늘 성적은 7이닝 3피안타 4사사구 2실점! 3개의 볼넷과 1개의 몸에 맞는 볼을 내주는 동안 삼진을 9개 잡아냈고, 투구 수 109개를 기록하며 오늘의 호세 킹은 여기까지일 것 같습니다!
-관중들에게 자신의 시그니쳐 무브인 나마스테를 선보이네요. 하하. 아무튼, 오늘 정말 좋았어요. 포심 구속이 161km/h까지 나왔고, 싱커는 155km/h까지 나오면서 엔젤스의 강력한 타선을 틀어막았습니다. 150km/h대의 슬라이더도 좌타자들에게 끔찍했고요.
-예! 8회와 9회가 남았습니다! 현재 스코어 3대 2! 오션스 불펜에는 장태영과 이휘은이 몸을 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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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킹이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4차전 승리는 엔젤스의 것으로 돌아갔다.
언제나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장태영 같은 투수의 제구가 갑자기 안 되는 그런 일들은.
엔젤스가 기회를 살렸다. 그리고 타석에 나온 강건우를 볼넷으로 피했다. 강건우는 도루에 성공했지만, 후속타가 터지지 않았다.
어쩌면 운에 맡겼을 뿐이다.
하지만 이기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단기전은 5대 5’라는 말을 남긴 엔젤스 박재정 감독의 인터뷰를 꺼내온 엔젤스 팬들이 제갈재정이라며 칭송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여기서 졌다면 엔젤스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션스 감독에게는 강건우라는 일격필살 카드가 남아있다. 물론, 강건우를 선발 투수로 내보내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의 리스크를 동반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람에게는 이렇게 받아들여진다.
4선승제 게임에서 3승을 거뒀을 때, 마지막 한 경기를 아주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최강의 패.
한국 시리즈 스코어 2대 2. 작년의 파이러츠와는 달리, 상당히 팽팽한 상황.
엔젤스 감독이나 선수들 처지에서는, 강건우가 차라리 마무리로 나왔으면 했다.
세 번째 패배를 겪으면 강건우가 선발로 나올 수 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거지만, 한참 멀리서 봐도 저쪽이 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제 강건우의 3년 차다. 3년간 강건우는 그 흔한 짧은 부진조차도 겪은 적이 없다.
다섯 번째 경기에서 강건우가 선발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엔젤스 선수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럴 가능성을 조금은 회피하고 있었다.
“내일은 승기 나오겠지?”
4차전 승리의 여운이 다 가시기도 전에, 정수호가 송병재에게 말했다. 퇴근길에 팬들과 함께 기뻐하며 질릴 때까지 싸인을 해준 송병재가 대답했다.
“내일도 힘든 하루가 되겠구만.”
“그래도 1차전에서 잡았으니까…”
“승기 만만치 않은 거 알잖아. 예전 같으면 멘탈 터졌을 텐데 인제 보니 그렇지도 않더라. 어떻게든 선취점 내고 틀어막아야겠지.”
정수호는 입맛을 다셨다.
압박감이 크다. 다음 경기에서 4일 쉬고 등판한 민승기가 올라오고, 만약 그 경기를 잡아낸다면.
사직으로 이동해 자신이 강건우와 맞붙어야 할지도 모른다.
“얼씨구. 죽을 표정 짓고 계시네?”
“누가? 내가?”
능글맞게 넘어가려 했지만, 그래도 압박감은 어쩔 수 없다.
상대가 강건우가 아니라 누구라도 압박감은 느낄 것이다.
“진짜 우승하고 싶다…”
정수호의 중얼거림에, 송병재는 따로 대답하진 않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공감했다.
어쩌다가 이런 팀의 팬이자 간판선수가 되어버려서. 송병재는 심호흡을 한 번하고 말했다.
“우승하면 진짜 멋지겠지?”
“우리 팬들도 여기저기 불 지르고 다니려나?”
“아니, 형은 그런 게 멋있어?”
“그런 건 아닌데 그만큼 기쁘단 뜻이잖아.”
엔젤스 어린이 회원 출신의 두 프랜차이즈 스타는, 감상에 젖어 잠시 멍하게 있다가 푹 쉬어야 한다고 각자 집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강건우, KS 5차전 선발 투수로 등판 확정.] [(오피셜) 오션스 강건우 선발 투수 겸 타자로 출장. 유격수에는 정예성.]제발 아니었으면 했던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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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야구다. 분명히 그렇다. 야구는 야구다.
어제의 야구는 엔젤스가 선취점을 내고 오션스가 뒤집었으며, 엔젤스가 경기 막판에 역전한 명경기였다.
오션스 팬들에게는 그다지 환호할만한 경기가 아니었을지언정, 엔젤스 팬들에게는 정말 즐거운 경기였다. 또, 두 팀의 팬이 아닌 다른 팀 팬들이 보기에도 재밌는 경기였다.
야구다운 경기, 그리고, 오늘 경기에 비하면 인간적인 경기.
강건우의 167km/h 강속구가 불을 뿜는다. 제2의 송병재 소리를 듣는 이연호의 배트가 채 나가기도 전에 공은 미트에 꽂혀 들어왔고, 이연호의 어이없는 한숨과 박의현의 비명, 그리고 심판의 외침이 동시에 들려온다.
“하…?”
“으아아아악!”
“스트라이크! 아웃!”
갑자기 기어가 내려간다. 144km/h 포심에 배트가 헛돌고 130km/h대 체인지업에 타자가 무너진다. 이어지는 150km/h 슬라이더는, 강건우의 의지를 대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우승은 꿈도 꾸지 마라.’
물오른 타격 천재 송병재는 존 끄트머리에 걸쳐 들어오는 초구 160km/h 투심을 보고 생각했다.
“씨발.”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박의현이 헛기침을 했다.
2구는 커브다. 배트가 헛돌았다. 전광판에 찍혀 나온 구속은 120km/h. 괜스레, 작년 한국 시리즈에서 정조준이 당했던 99km/h 슬로우 커브가 떠오른다.
어딘가, 무력하다.
결단코 송병재는 무기력하게 타석에서 물러날 타자는 아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부닥쳐 있더라도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상하다.
그냥 모든 것을 놓고 싶어졌다.
그래도 이를 악물었다. 자기가 그러면 다른 선수들에게도 전염이 된다. 잠시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에서 물러나 배팅 글러브를 조여 맸다. 슬쩍 엔젤스 관중들을 돌아보고, ‘뱅재야 고마 삼진 먹고 들어가라~’라며 외치는 오션스 팬들을 외면한 채 타석에 돌아와 숨을 천천히 뜨겁게 내뱉었다.
강건우가 공을 던진다. 투구 폼은 강렬하나,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하다. 타석에서 보면 손등이 공을 덮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쳐다봐도 뭘 던지려는지 알 수 없다.
문제는, 레퍼토리가 너무 다양하다는 점이다. 어떤 공이 올지 그 누구도 모른다. 또 다른 문제는 최고 구속과 최저 구속의 차이가 70km/h 가까이 난다는 부분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그냥, 본능에 이끌려 배트를 휘두를 뿐.
부웅-
높은 코스로 휘둘렀다. 그런데 공은 몸쪽으로 꺾여 강렬하게 꽂혀왔고, 포수 미트에 들이받는 소리가 들렸다.
배트를 휘둘러서 때린 거라곤 공기뿐.
엔젤스의 첫 공격이 허무하게 끝났다.
“건우야-!”
“다움이가-!”
“아빠 힘내란다-!”
그리고, 강건우의 압도적인 모습에 풀이 죽은 것은 엔젤스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몸 꼭 풀어야 하냐?”
김정혁이 강건우의 피칭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딱히 던지기 싫다거나, 한참 치열하게 진행 중인 한국 시리즈 중에 긴장을 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강건우가 던질 때마다 투수들은 복잡한 심경을 느낀다. 게다가, 강건우가 다른 투수들에게 뭔가를 가르쳐 줄수록 더 그런 경향이 있었다.
‘공 이렇게 잡고,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서 던지면 됩니다. 팔꿈치 너무 돌리지 마시고 여기, 대원근을 꾹 누르는 느낌으로요.’
말이 쉽지.
불펜의 또 다른 핵심인 이휘은이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나중에, 뭐…그럴 일 없겠지만…”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공격적인 사람이지만, 강건우와의 격차는 자신감만으로 메꿔지는 것이 아니다. 어제 패전 투수가 된 장태영은 비교적 편안한 표정이었다.
“건우가 오늘 이겨 준다고 약속했어요…”
믿는다. 믿어야 한다. 강건우는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
2회에도 불펜 투수들은 멍하게 강건우가 던지는 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공 한 번만 던져보면 소원이 없겠네.’
‘타자 안 하길 다행이다.’
‘다시 태어나면 강건우 안 되려나…’
잠시 후, 약간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지. 한 번만 던지면 무슨 소용이야? 하루에 한 개씩만…’
‘그런데 또 투수를 하니까 건우랑 비교가 되어가지고…’
‘아니지. 다시 태어나면 그냥 차라리 정유리 코치님…아니, 이것도 아닌가.’
어쨌거나, 그냥 자기 할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강건우는 이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스트라이크-아웃!”
2스트라이크에서 강건우가 공을 던지기도 전에 한 오션스 팬이 외쳤다. 그리고 그 외침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서터라잌-아웃!”
“스트랔-아웃!”
“스트라잌-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콜이 메아리처럼 밀려온다.
윤태호의 배트가 118km/h 체인지업에 스치지도 못했다. 엔젤스 팬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건우는 마지막 경기에 낸다며…?”
“오션스 감독 저거 완전 양아치 놈 아냐?”
“야! 양키 고 홈!”
비난의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휴 브레드먼은 잇몸 미소를 지으며 물개 박수를 칠 뿐이었다.
“표정이 아주 좋으시네요.”
“하-하.”
“제기랄.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을 하고 있다니.”
“하-하.”
“좋아요?”
“하-하.”
론 버거킨 코치는 그 어떤 말도 지금의 감독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잠시 후, 론 버거킨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빌어먹을.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이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니.”
감독이 론 버거킨을 슬쩍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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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었다.
강건우가 나서면 이기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당연한 일은 그리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강건우가 오늘 경기에서 1피안타 21K 완봉승을 달성하며 홈런 두 개를 포함한 3안타로 5타점을 올리자, 사람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스포츠 뉴스는 강건우를 한국 시리즈의 남자로 칭했고, 잠실 원정 응원단 석에 강건우의 장모님이 올라와 소싯적 휘둘렀던 거대한 깃발을 휘두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강건우의 맹활약에 함박웃음 짓는 정유리는 오션스 팬들에게 추앙받고 있다.
…민승기는 그 모든 것을 마음속 한구석에 몰아넣고, 새벽쯤 도착한 자신의 집 거실에 서서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있었다.
툭.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조작하자, 멀리 사직 야구장 전광판 위의 시계가 작게 깜빡였다.
이제 자신에게 달렸다. 휴 브레드먼 감독은 4일 휴식하고 등판해 복수전을 펼치는 대신, 6일 휴식 후 민승기가 이 시리즈를 끝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쁘지 않다. 아니, 바라고 있었다.
한국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를.
몸이 부르르 떨린다. 강건우의 피칭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얼마나 더 노력해야 잡힐 것이냐. 내가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거냐.
민승기는 잠깐 떠오른 그런 생각을 다시 마음속 작은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 상자의 이름은 ‘발전’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들을 집어넣고 함께 불태워 연료로 삼는다. 애플리케이션으로 불빛을 껐다.
“내 손으로 꺼트려 주지. 엔젤스의 작은 희망, 너희의 작은 불빛…”
이제 1차전 같은 실수는 없다.
자기는 괜찮다며 동료 선수들을 안심시키는 일도 이제는 없다.
남은 것은 승리뿐이다. 내가 가야 할 곳은 그곳뿐이다.
꽤 괜찮지 않나.
과거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주인공…!
그게 바로 나…!
“민승기…!”
누가 뭐래도 야구라는 이야기의 주인공…!
“큭큭큭큭…!”
부산의 야구 팬들에게, 역사상 최초로 한국 시리즈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을 홈에서 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경기의 승리 투수는?
“큭큭큭…큭큭큭…큭큭큭큭…”
민승기만큼 그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민승기는 팔에 오소소 돋은 소름을 손으로 훑어내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잘가라…엔젤스…”
어둡고도 깊은 밤이었다.
“…멀리는 안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