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41)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43화(343/385)
시작이 있다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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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보면, 꽤 파란만장했다.
15년 정도 됐나. 아마 그쯤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김정용은 뜬금없이 데뷔전 기회를 맞이했다.
“마!”
“다 코 박고 뒤지뿌라!”
“느그가 프로가 이 새끼들아!”
스코어 10대 0인 4회 초 2사 1, 3루.
오션스 감독은 신인 김정용을 마운드에 올리기로 했다.
오션스 팬들은 이미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이틀 뒤 선발로 등판할 거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갑자기 불펜 등판이다.
이미 경기는 초반부터 넘어가서 오히려 부담이 덜 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분노한 팬의 생수병이 날아드는 상황이었다.
오션스는 1회 말 첫 공격 기회에서 득점권 찬스를 맞이했으나 시작부터 본 헤드 플레이로 기회를 날려 버렸다. 1사 3루에서 외야 플라이가 나왔으나 베이스 터치 실수로 득점이 무산됐다.
2회 초에는 연속 볼넷을 내주고 보크. 그리고 만루 홈런을 맞았다.
실점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내주고, 득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상황을 스스로 어렵게 가져갔다. 오션스 야수들은 이미 거의 경기를 포기했다.
꿈꾸던 데뷔전이 아니었다. 모든 게 어수선했고, 김정용은 이제 처음으로 프로 1군의 마운드를 밟았는데 관중들은 이성을 잃고 욕설을 쏟아내고 있었다.
큰 기대가 없는 상황일지라도, 김정용은 최선을 다하려 했다.
데뷔 후 몇 년 정도는 그 경기의 악몽을 꿨다.
포수는 바깥쪽을 요구했다. 김정용은 몸쪽 포심으로 강하게 승부하고 싶었지만, 김정용의 생각은 그리 어렵지 않게 묵살당했다.
‘마. 던지라면 그냥 던지라는 대로 던지지 말이 많노. 죽고 싶나?’
4점을 더 내주고서야 아웃 카운트 하나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자책점은 2점이지만, 어쨌든.
그 뒤로, 프로 생활을 길게 한 만큼 여러 일이 많았다.
첫 시즌은 데뷔전의 여파인지 썩 좋지 못했다. 그래도 불펜과 선발을 넘나들며 나름대로 활약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냥 땜빵용 투수에 불과했다. 선발에 구멍이 생기면 급하게 가서 던지고, 선발 투수가 무너지면 바로 몸을 풀고 올라가 욕 받이 역할을 해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에게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발전하지 못했다며 욕을 하곤 했다.
두 번째 시즌에는 많이 나아졌다. 사람들은 김정용이 발전했다며, 역시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는 슈퍼 신인이라고 언제 욕했냐는 듯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김정용은 자신이 뭐가 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바뀐 부분이 있다면, 새 감독이 왔다는 것뿐이었다.
평균자책점 6.54에 2승 6패 2홀드를 했던 투수가 평균자책점 3.98에 8승 14패를 했으니 장족의 발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 뒤로 꾸준히 3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개막전 선발 투수가 되어 있었고, 오션스 팬들은 김정용을 보러 경기장을 찾았다.
김정용은 그 시절이 꽤 부담스러웠다. 리그를 지배하는 다른 투수들과 비교하면 자신은 보잘것없는데. 오션스 팬들은 항상 이렇게 주장했다.
‘김정용이 다른 팀이었으면 벌써 MVP 두어 번은 탔다.’
근거는, 김정용이 오션스 선수라는 점이었다.
오션스 타자를 상대하지 않는다는 부분, 그리고 오션스 야수들이 김정용이 던질 때 수비한다는 것에서.
어쨌거나, 김정용은 묵묵히 던졌다. 어깨가 아프고 팔꿈치에서 뼛조각이 돌아다녀도 던졌다. 그렇게 던지다 보니 어느 순간 김정용은 리그에서 가장 꾸준한 투수가 되어 있었다.
좀 얻어터져도 결국에는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투수. 어쩌면 그 꾸준하다는 간판에 취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제대로 휴식을 취하거나 회복에 전념했다면 지금도 쌩쌩할지도 모르지만.
후회는 없었다.
‘신나게 던졌다.’
잔뜩 굳은 얼굴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벌벌 떨리는 몸을 이끌고 마운드로 향했던 소년은, 이제 주름진 눈으로 웃으며 마운드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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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식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경기가 김정용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다. 경기 전에 팬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선수들은 알고 있었다. 다들 어느 정도는 충격을 받았다. 여기 있는 모든 선수는, 김정용이 팀에 있을 때 데뷔한 선수들이다.
민승기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팔 마사지를 받고 있는 김정용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했을 뿐이었다.
“감사했습니다.”
이훈은 울었다. 데뷔했을 때부터 항상 따뜻한 말을 건네주던 선배다. 닮고 싶은 사람이었고, 자기가 겪는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박의현은 더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사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그랬을 뿐이다.
팬들은 김정용의 유니폼을 티켓 구매자에게 나눠주는 이벤트가 갑자기 왜 열리는지 조금 궁금했지만, 기쁘게 김정용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라인업이 조금 특이했다. 지명타자 강건우, 유격수 박대경. 이시욱은 벤치에서 시작. 정예성의 입대로 백업 내야 유틸리티 역할을 맡던 박대경이 선발 유격수다. 팬들은 강건우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걱정했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갱. 자네가 킴의 뒤를 이어서 던지고 싶다고?”
“예.”
김정용의 팔은 거의 한계치다. 선발로 나선 김정용이 얼마나 던져줄지 모른다. 사실 팀의 승리만 노리고 있다면 이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재밌는 의견이긴 한데…”
“그렇게 하게 해주세요.”
“그래. 그렇게 하지. 좋아. 특별한 경기가 되겠어.”
상대는 파이러츠다. 김정용의 팔이 얼마나 버텨줄진 모르지만, 오래 던지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1이닝. 혹은, 그 이하일 수도 있다.
경기가 시작된다. 토요일 홈 경기, 김정용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팬들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눈물을 흘린 것은 박의현이었다.
“아자아자으아아아! 김! 정! 용! 형님!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박의현! 사직 구장 홈 플레이트 아래 묻힌다면, 묘비명을 김정용 형님의 공을 받았던 남자로!”
눈가를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입 앞에서 마구 튀어댔다.
하지만 포수 마스크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김정용은 괜히 긴장해있는 박대경-노경우 키스톤 콤비를 향해 뒤돌아서며 씩 웃고는 말했다.
“야야. 그러지들 마. 편하게 하자, 편하게. 편하게 하면 너희 잘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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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용은 알고 있었다. 정말 몇 구 못 던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욕심을 낸 것은, 한 번만이라도 자기를 위해서 마운드에 올라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션스는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자신이 첫 이닝을 망치더라도 경기에서 이겨줄 힘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한 경기 지더라도 팀의 시즌 전체 성적에 큰 영향을 못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너무 이기적인가?’
김정용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하루만, 딱 하루만 이기적으로 굴자.
이건 나만의 은퇴식이다.
은퇴식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될 만큼 팀에 공헌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초구.
딱!
“파울!”
구속이 138km/h가 나왔다. 이제 진통제 약발도 안 듣는다. 팔꿈치가 아려왔다.
‘그래서 뭐?’
슈웅-
“볼!”
갑자기 오늘 경기를 보러 온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공 던지는 나를 보러 온 게 아닐 텐데.
그래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은, 강건우 때문이었다.
‘고놈, 진짜…’
경기 전, 강건우는 자기보다 더 열심히 경기를 준비하며 이렇게 말했다.
‘형.’
‘오. 건우. 울 거면 옆에 티슈 있다.’
‘안타 맞을 거 같으면 차라리 그냥 볼넷 주세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보통 반대 아냐?’
강건우가 조금 착잡한 얼굴로 웃었다. 글쎄. 저놈의 저런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안타만 안 맞으면…’
‘안 맞으면?’
‘제가 형님 마지막 등판, 팀 노히트노런으로 만들어드릴게요.’
김정용은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게 마음대로 되나.
하긴. 저놈이면 그렇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도합 17년을 프로로 뛰면서 저런 놈은 처음 봤으니까.
실제로 강건우는 제대로 준비했다.
“볼!”
1스트라이크 2볼.
아무리 그런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맞을 바에 볼넷을 내준다는 생각으로 던질 수는 없다.
그런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볼!”
“볼! 볼넷!”
씁쓸하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마지막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물론, 꽤 큰 첫째 딸은 ‘아빠는 못 해도 멋져! 진짜야!’라고 말해주긴 했지만.
담담해지려 했는데, 갑자기 눈가에 습기가 차오른다. 소매로 눈물을 훔쳐냈다.
‘에이. 내가 승기도 아니고.’
억지로 웃었다. 볼. 볼. 스트라이크. 볼.
그리고 다시 던지려 할 때, 팔꿈치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
공이 바닥에 부딪히며 튀어 올랐다. 박의현은 프로레슬러처럼 날아올라 공을 막아냈다.
김정용은 모자를 벗고 머리에 손을 얹었다.
뜨겁다.
뜨거워서 그런지,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왼손에 낀 글러브를 벗고는 벤치를 향해 손을 들었다.
1이닝도 못 버티고 끝나버렸다.
갑자기 웃음이 차오른다. 투수 코치가 아닌 감독이 심판에게 손을 흔들며 걸어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수고했어, 챔피언. 뒤는 걱정하지 마.”
이 경기의 뒤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떠난 팀의 뒤를 이야기하는 걸까.
뭐든 어떻겠는가. 웅성대는 팬들을 향해 김정용은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눈물을 다시 닦아내며 덕아웃으로 향했다. 오션스 선수들이 덕아웃 밖으로 나와 도열해 김정용을 맞이했다.
김정용의 마지막 경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분위기를 보고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독은 심판에게 설명했다. 김정용이 부상을 당했다. 투수를 교체하게 될 것이다.
사실, 상대 팀으로서는 달가운 일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위장 선발로 보일 수도 있다.
“오른손 투수로 교체하겠습니다. 교체 선수는…”
통역사가 억지로 감정을 숨기며 휴 브레드먼의 말을 심판에게 전했다.
“강건우. 강건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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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창원 파이러츠 0 : 0 부산 오션스.]-무사 1, 2루.
-선발 투수 김정용, 부상으로 교체 아웃.
└???
└던지는거 이상하더라니;;;
└용이햄 다칫나ㅠㅠㅠ
└그럼 누구 올라옴?
└시발 이거 위장선발 아니냐?
└어떤 위장선발이 볼넷만 두개 주고 내려감?
└김퀄 마지막 공 던지는거 보면 모르나ㅅㅂ어디 존나 아픈거 같은데
-구원 투수 : 강건우.
└?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이 개시발것들아 여기서 좆건우가 왜 나오냐
└위장선발 맞네 씨발
└아 아니라고 그런거 아님 암튼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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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은 이번 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로 갈 것이다. 이미 구단과 합의가 끝났다. 복수의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명확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전보다 발전한 정조준에게는 충분히 자신감이 있었다.
물론, 가기 전에 저놈을 넘어서고 싶었다.
드드득.
이가 갈릴 정도로 강하게 악물었다. 김권종과 박용재의 말에 따르면, 강건우와 다른 스타일이긴 해도 압도적인 타자는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강건우 같은 투수는 없는 듯하다는 것이 둘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렇다. 99km/h부터 167km/h 혹은 168km/h를 던지며, 현존하는 모든 구종에 통달한 투수는 메이저리그에 없다!
그러나 지금 정조준의 눈앞에 있다.
강건우가 등판한다고 했을 때, 파이러츠 벤치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김정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공식적으로 항의를 못 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정조준은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강건우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저 공을 칠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못 칠 공이 어딨겠는가.
강건우가 투구 동작을 시작했다. 부드러운 쓰리쿼터 스타일의 김정용과는 달리, 역동적이다.
강건우를 상대할 때는 복잡한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성과를 낸 적은 많지 않지만.
부웅-
휘둘렀고.
딱!
맞았다.
맞기는 했다.
조금 안 좋은 느낌이다. 정조준은 미친 듯이 달렸다.
“아웃!”
1루 주자는 2루에서 아웃.
“아웃!”
타자 주자 정조준도 아웃.
“아, 이, 씨발. 또. 아.”
조금만 낮게 휘두를걸. 그러면 한 방 먹여줄 수 있었을 텐데.
굳은 표정의 1루수, 양대근이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조준이 화를 가라앉히며 물었다.
“정용이 형, 무슨 일 있어요?”
양대근이 대답했다.
“어. 이게 정용이 형 현역 마지막 경기다…”
“예?”
“팔이 심각해.”
“아니, 왜 말 안 했어요?”
“말하지 말라고 해서.”
“그래도 말 해줬어야지.”
인터넷상에서는, 정조준이 양대근과 말다툼을 하는 것 같다며 또 시끄러워졌다.
└좆준이 저 새끼 지가 병살치고 괜히 화풀이하네
└빠마리 한대 처맞으면 착해질텐데
└조준이 착하다 이새끼들아
└더 착해질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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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리는 두 손을 꼭 모았다.
김정용.
애증의 투수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오션스 팬들은 김정용을 지지했다.
정유리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등판이라고 하기에 열심히 준비해준 자료가 큰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남편이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해줄 수 있다.
김정용이 내려오며 눈물을 흘릴 때 같이 울었다.
팀의 상징적인 투수여서도 있지만,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가까이서 지켜봤기에 알기 때문이었다.
강건우는 마치 한국 시리즈를 준비하는 것처럼 이 등판을 준비했다.
무사 1, 2루에 올라가 정조준을 초구 병살로 잡아냈고, 삼진을 따내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1회 말에는 홈런을 때렸다. 2점 홈런.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이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파이러츠 공격 때는 아무 일도 없었으며 오션스 공격 때는 이닝당 1점씩 났다고 대답해줄 수 있었다.
스코어 9대 0.
파이러츠의 공격 기록은 8이닝 동안 2사사구 무안타.
강건우가 9회 초에 마운드에 다시 올랐다.
약간, 핏발이 서 있는 것 같은 눈을 하고서.
9회 초 첫 타자에게 삼진. 9이닝이지만 구속이 166km/h가 찍혔다.
파이러츠 벤치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씨발 저 새끼는 왜 맨날 우리한테만 지랄이야…”
강건우는 KBO 선발 데뷔전에서 파이러츠에게 19K 퍼펙트를 따냈고, 한국 시리즈에서 20K 퍼펙트를 잡아낸 상대도 파이러츠였다.
대타로 나선 타자가 초구를 갖다 맞히는 데는 성공했다.
타구는 1루수 양대근의 코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가 버렸지만.
“이거 위장 선발이라고 해야 하냐, 아니라고 해야 하냐…?”
“정용이 형 이게 마지막 등판이래잖냐.”
“아니면?”
“설마 그런 거로 구라 치겠어?”
“그럴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전쟁이지.”
“전쟁?”
어쨌거나, 다시 경기.
오션스 팬들은 흥에 겨워 있었다. 최근 영 이상하던 김정용이 볼넷만 두 개를 주고 내려갔지만, 강건우는 그 뒤로 단 한 명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152km/h 슬라이더가 존을 찢어발겼다.
“스트라이크!”
137km/h 체인지업이 타자를 속이고.
“스트라이크!”
사람들이 강건우의 목소리를 외치는 모습이 점점 더 광적으로 변해갈 때쯤.
강건우의 165km/h 하이 패스트볼이 경기를 끝냈다.
“스트라잌! 아웃! 경기 종료!”
오션스 팬들은 기뻐했고, 파이러츠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션스 선수들은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강건우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고는, 박의현에게 공을 받아들고는 김정용 앞으로 걸어가 공을 건넸다.
“약속한 대로 팀 노히트 노런 했어요. 형. 이거, 받아주세요.”
눈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긴 했지만, 억지로 참고 있던 김정용이 드디어 오열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터뜨린 김정용은 공을 받아들고 한참이나 꺽꺽대며 울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던 오션스 팬들 앞에서.
응원단장이 마이크를 잡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오션스 팬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슬픈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예. 오랜 기간 오션스의 마운드를 지켜왔던 김정용 선수가, 우리의 영웅 김정용 선수가,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마운드를 떠나려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부디 용서 부탁드리며…
“뭐라고?”
“마! 김퀄이 가긴 어딜 가노!”
“헛소리하지 마라! 직이뿐다!”
-예. 저도 못 믿겠습니다. 김정용 선수는 은퇴식을 하게 되면 정말 오션스에서 떠나는 기분이 들 것 같다고 고사하셨습니다. 대신, 이 경기에서 팬 여러분께 인사드리고 싶다고…
“안 된다!”
“정용아! 안된다! 이런 게 어딨노!”
“구라 치지 마라!”
경기가 끝난 직후 자리를 떴던 팬 일부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울면서 김정용을 추억했다.
오열하던 김정용은 선수들 앞에서 겨우 입을 열었다.
“고맙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너무…고맙다. 진짜. 고마워.”